소말리아 사막에서 유목민 딸로 태어나 세계적 모델로 성장
다섯 살 때 당한 ‘성기 훼손’ 경험 고백하며 인권운동가로 변신
소말리아 여성 열 명 중 아홉 명, 여전히 성기 훼손 피해
코로나19 확산이 성기 훼손 ‘악습’에 미친 영향
유럽, 미국에서도 이민자 사회 중심으로 성기 훼손 성행
지금 우리가 움직여야 미래가 바뀐다
[‘사막의 꽃 재단(Desert Flower Foundation) 제공]
와리스 디리(56) ‘사막의 꽃’ 재단 설립자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그가 내놓은 답이다. 디리는 젊은 시절 샤넬, 리바이스, 로레알 등 세계 굴지의 브랜드 광고에 등장한 톱모델 출신이다. ‘보그’ ‘엘르’ 등 유명 패션잡지 화보를 촬영하고, 첩보영화 007 시리즈에 ‘본드 걸’로 출연하기도 했다. 명실상부 ‘톱스타’였던 그는 1997년 자신이 ‘여성 성기 훼손’(FGM·Female Genital Mutilation) 피해자라는 사실을 고백하며 ‘인권운동가’로 새 삶을 시작했다. 2002년 디리가 만든 ‘사막의 꽃’ 재단은 그가 주도하는 ‘FGM 근절 운동’의 중심 기구다.
FGM은 문화 또는 관습적인 이유로 행해지는 여성 성기 훼손을 일컫는다. 아프리카, 중동 등 일부 이슬람문화권 여성들은 수천 년에 걸쳐 FGM을 당해왔다. 그 행위를 남성 성기 포피를 벗겨내는 ‘할례’에 빗대 ‘여성할례’라고 칭하는 이도 있다. 디리는 이 표현이 “명백히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FGM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훼손’이라는 단어를 꼭 써야 한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코로나19 유행 후 더 높아진 FGM 위험”
세계보건기구(WHO) 자료를 봐도 FGM이 남성 할례와 크게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FGM은 대개 여성 성기 일부를 잘라내거나 인두로 지지는 등의 방식으로 이뤄진다. 성교가 불가능하도록 질 입구를 실로 꿰매 버리는 경우도 있다. 소말리아 사막 지역에서 나고 자란 디리 또한 다섯 살 때 음핵 절제와 질 봉쇄 등 성기 훼손을 당했다. 마취도, 소독도 안 한 상태였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그의 몸 일부엔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이 생겼다. 디리의 친언니와 사촌 중에는 FGM 도중 발생한 과다 출혈 및 염증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다.디리가 이 참혹한 경험을 한 지 5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디리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FGM 근절을 목표로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 여성 상당수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FGM을 경험한다. 특히 피해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지역은 아프리카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이 2016년 아프리카 소말리아에 사는 15~49세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98%가 어떤 방식으로든 FGM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대륙 국가 가운데 기니(97%), 지부티(93%), 시에라리온(90%), 말리(89%) 거주 여성도 절대 다수가 FGM 피해자다.
세계 각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이 문제는 최근 더욱 큰 국제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학교 폐쇄와 이동 제한이 장기화하며 FGM 위험에 노출되는 여성이 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유엔인구기금(UNFPA)은 2월 “코로나19 때문에 2030년까지 소녀 200만 명이 추가로 FGM 위험에 처하게 됐다”고 밝혔다. 저명 의학학술지 ‘랜싯’도 3월 1일 “코로나19가 FGM 퇴치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로이터 통신 등 세계 유력 언론 또한 연이어 관련 보도를 냈다. 코로나19로 세계 각지에서 국제기구 활동이 제약을 받고, 그 결과 FGM 문화권 여성에 대한 보호 및 돌봄 서비스 접근성이 크게 낮아진 것도 결과적으로 FGM 증가를 부추긴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동아’가 디리와 인터뷰한 것은 이런 상황 때문이다.
“다섯 살 때 겪은 끔찍한 성기 훼손 폭력”
뮤지컬 ‘데저트 플라워’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한 와리스 디리. 디리의 삶을 토대로 제작된 이 뮤지컬은 2020년 2월 22일, 스위스 생갈렌에서 초연됐다. 디리는 공연 마지막에 등장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사막의 꽃 재단(Desert Flower Foundation) 제공]
“이민자는 본국을 떠나도 그곳에서의 의식과 관습을 한순간에 버리지 않습니다. FGM 또한 마찬가지죠. 우리 사회가 그것을 용인해선 안 돼요. 저는 모든 이민자 여성에게 FGM에 대한 교육을 의무화하고, 난민 시설 관리자 및 사회복지사 등에게도 관련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FGM에 대한 강력한 처벌 규정도 마련해야 하고요. 이건 유럽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 FGM에서 자유롭지 않은 미국, 캐나다, 호주 등도 마찬가지 조치를 취해야 해요.”
디리 이야기다. 그와의 인터뷰는 e메일로 이뤄졌다. 질문지를 보내고 답을 받은 뒤 궁금한 부분을 추가 질의하는 방식으로 몇 차례 대화가 오갔다. 인상적인 점은 얼굴을 마주하고 직접 목소리를 들은 게 아닌데도 글 마디마디에서 FGM에 대한 디리의 분노와 슬픔, 어떻게든 이 문제를 바로잡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는 점이다. FGM에 대해 이야기할 때 디리는 종종 사막에서 끔찍한 폭력을 견뎌야 했던 어린 유목민 소녀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 문제를 좀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그의 아픈 경험을 되짚어 보자. 디리는 다섯 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FGM을 받았다. 한 집시 여인이 더러운 면도칼로 그의 음핵을 잘라내고 아카시아 나무 가시로 질 입구에 구멍을 낸 뒤 바느질을 했다. 그 지역 출신 여성이 대대로 겪은 일이다. 디리가 펴낸 자서전 ‘사막의 꽃’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여러 FGM 방법 가운데 성기에 가장 손상을 적게 입히는 건 음핵 덮개를 절제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해도 여성은 평생 섹스를 즐기지 못하게 된다. 가장 심한 FGM 방법은 (질) 봉쇄술인데 소말리아 여성의 80%에게 행해진다. 나도 이것을 당했다.”
생살을 억지로 찢고 꿰맨 고통은 오래갔다. 디리는 한 달 이상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고, 회복 후에도 소변을 시원하게 보지 못하게 됐다. FGM 후 남겨놓은 구멍이 너무 작아 소변이 방울방울 떨어졌기 때문이다. 더 자란 뒤엔 생리 때마다 기절을 했다. 역시 생리혈이 몸 밖으로 잘 배출되지 않고 고이면서 쇼크를 일으켜서다.
디리에 따르면 그가 자란 문화권에서 여성에게 이처럼 많은 고통을 남기는 ‘봉쇄술’을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남편에게 아내의 순결을 증명하는 것. 남편은 첫날밤 성기 봉합 부위를 직접 뜯어내고 관계를 갖는다. 악습이 오랜 기간 이어지며 해당 문화권 사람들 사이엔 “FGM을 받지 않은 여자는 불결하고 방탕하다. 아내로 삼기에 적절치 않다”는 인식이 퍼졌다. 디리 또한 그것을 자연스레 여겼다. 그는 10대 중반, 영국 주재 소말리아 대사가 된 이모부를 따라 런던에 간 뒤에야 비로소 모든 여성이 FGM을 당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이제 디리는 FGM이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잔혹한 탄압을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여자의 충절은 야만적인 관습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과 사랑으로 얻어야 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가 FGM이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아프리카 지역을 비롯해 서구 이민자 사회에도 FGM 관련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디리는 이 ‘당연’한 사실을 소녀와 그들의 부모에게 알려, 아이들이 더는 끔찍한 고통을 겪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디리가 부모 또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다시 한번 그의 자서전을 펼쳐봐야 한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내가 자란 문화권에서) 남자들은 FGM 받은 아내를 원한다. 엄마들은 그 요구에 응해 딸들이 FGM을 받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영영 남편을 구하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유목민 사회에서 결혼하지 못한 여자는 설 자리가 없다. 엄마의 임무는 딸에게 가능한 한 최고의 남편감을 만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서양 부모가 딸을 좋은 학교에 보내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디리 엄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FGM을 앞둔 딸을 향해 “얼마나 아플까” 하며 안타까운 눈길을 보냈지만, 그 가혹한 ‘운명’에서 벗어날 길을 제시해 주지는 못했다. 통증으로 바들바들 떠는 디리의 작은 몸을 FGM 내내 꼭 감싸 안고 있었을 뿐이다. 디리는 모델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1997년, 한 잡지와 인터뷰하면서 이 모든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디리는 이렇게 답했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 잔혹한 성기 훼손을 당한 때부터 이미 제 안에는 강렬한 감정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어린아이에게 그토록 끔찍한 고통을 겪게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어떤 신(神)도 그런 일이 수백만 명의 죄 없는 소녀에게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언젠가는 이 범죄에 저항해 싸우리라 예감했죠. 시기와 방법을 몰랐을 뿐입니다.”
2019년 서울을 방문해 TV 방송사와 인터뷰하고 있는 와리스 디리. [‘사막의 꽃 재단(Desert Flower Foundation) 제공]
세상을 뒤흔든 ‘사막의 꽃’
세계적 모델이 되고, 많은 사람이 자기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걸 느꼈을 때 디리는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걸 깨달았다.“어느 날 한 잡지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어요. 그들은 ‘소말리아 사막 출신 유목민’에서 ‘세계 유명 패션쇼 무대에 서는 모델’이 된, 저의 그 뻔한 인생 이야기를 또 실으려 했죠. 이미 수없이 반복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것 말고 진짜 이야기가 듣고 싶지 않으세요?’ 이 고백이 저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저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공개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이 야만적이고 불필요한 의식으로부터 소녀들을 구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랬다. 유럽과 미국 등 서구권에서 주로 활동하던 ‘화려한 모델’ 디리의 고백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여러 언론이 앞다퉈 이 스토리를 소개했고, 그때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던 아프리카 FGM 실태를 조명하는 보도가 쏟아졌다.
유엔도 움직였다. 디리를 ‘FGM 근절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디리는 이때부터 세계를 돌며 “FGM의 문제점”을 알리는 ‘독종 반항아 싸움꾼’이 됐다. 2002년 ‘사막의 꽃’ 재단을 설립해 민간 부문 활동도 이어갔다. 그 공로로 2004년 가톨릭 인권운동본부가 수여하는 ‘오스카 로메로 상’ ‘세계 여성의 상’ 등을 받았다. 2007년 프랑스 정부의 레종 도뇌르 훈장도 수훈했다. 2012년 유엔 총회가 ‘FGM 전면 금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등 일정 부분 성과도 얻었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게 디리 생각이다.
아프리카 소녀를 위한 학교 만들기
2018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을 방문해 ‘사막의 꽃’ 재단이 후원하는 소녀들을 만난 와리스 디리(왼쪽). 2013년 디리는 지부티를 찾아 사파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사막의 꽃 재단(Desert Flower Foundation) 제공]
디리는 이 대목에서 이것이 ‘아프리카 여자아이’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를 강조하고 싶어 했다. 아프리카에 만연한 ‘강제 결혼’은 FGM 못잖게 소녀들 삶을 옥죄는 굴레다. 디리 또한 열세 살 때 낙타 다섯 마리에 팔려 60대 노인과 결혼할 뻔한 경험이 있다. 아버지가 이 모든 계획을 세운 걸 알고, 디리는 동트기 전 새벽 맨발로 집을 빠져나왔다. 이후 사자와 뱀, ‘집 나온 소녀’를 노리는 트럭 운전사 등 온갖 위험 요인 사이를 가로지르며 뛰고 또 뛰었다. 길고 긴 여행 끝에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 사는 이모 집을 찾아간 덕에 디리는 ‘가정부 자격’으로나마 영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집 청소와 조카 돌보기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다 우연히 유명 사진작가 눈에 띄어 모델로 데뷔한 디리의 인생사는 한 편의 영화를 방불케 한다. 그가 FGM 경험을 고백하기 전에도, 이미 수많은 잡지사가 ‘유목인 출신 모델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담고자 디리를 인터뷰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디리는 자신의 삶이 아프리카 소녀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북돋워줄 수 있기를 바랐다.
“아프리카에서 여자아이들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 취급을 받아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든 구타, 강간, 결혼, 인신매매를 당할 수 있죠. 그 소녀들이 학교에 다니며 자신감을 얻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여성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서 ‘저는 교사가 될래요’ ‘의사가 될래요’ ‘변호사가 될래요’ 하고 말해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제겐 더없이 보람된 일입니다.”
앞서 디리의 글은 감정을 생생히 전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했다. 바로 이런 부분이 그랬다. 문장 마디마디 디리의 슬픔, 기쁨, 보람, 의지가 새겨져 있어 가벼이 읽어 내려가기 어려웠다.
디리가 아프리카 지부티에 사는 소녀 ‘사파’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도 그랬다.
사파는 세 살이던 2009년, 디리의 삶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사막의 꽃’에 출연한 소녀다. 어린 디리 역을 맡아 끔찍한 성기 훼손 순간 등을 연기했다. 당시 ‘사막의 꽃’ 재단은 사파 가족에게 영화 출연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면서, 사파만큼은 절대 FGM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2013년 1월, 사파가 디리에게 보낸 편지에는 심상치 않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사파 누르’고 저는 일곱 살이에요. 와리스 영화에 제가 나왔는데, 기억나세요? 저는 지부티에 살고, 그 영화 덕분에 발발라(지부티의 교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전부 저를 알아요. 그래서 뿌듯해요.
아빠는 우리가 전보다 형편이 훨씬 나아졌대요. 먹을 것도 있고 전깃불도 들어온다고요. 저는 학교도 다니는데, 정말 좋아요! 거기 다니는 아이들도 전부 와리스가 누구인지 알고, 제가 와리스 영화에 나왔다는 것도 알아요. 아빠는 이제 우리도 유명해졌다고 늘 말씀하곤 하세요.
저는 잘 지내지만, 가끔 저만 혼자라서 아주 슬프기도 해요. 길에서 놀고 있을 때, 아이들이 저를 보고 도망가고 욕하고 나쁜 말을 해요. 절 보고 더럽다고 하지만,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엄마랑 아빠도 나 때문에 말다툼하고 엄마는 소리를 많이 질러요. ‘사파는 망신거리야, 할례(FGM)를 안 받았잖아!’ 그리고 아빠는 화를 많이 내요.
나도 할례를 받는다면, 다른 아이들이 나랑 놀아주겠지만, 엄청 아플 테니까 무섭기도 해요. 그래서 받고 싶지 않기도 하고요. 모르겠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중략) 와리스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강한 여자예요. 와리스는 정말 멋져요! 제가 크면 꼭 와리스처럼 되고 싶어요. 언제 절 보러 오실 건가요? 다시 지부티에 오실 건가요? 그렇다면 좋을 거예요. 사랑해요.”
디리는 이 편지를 읽는 순간 사파의 말들이 심장을 옥죄는 올가미처럼 느껴졌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책 ‘사파 구하기’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이 어린아이가 겪어야 할 고통이 대체 무엇이기에 겨우 일곱 살짜리가, 이렇게 길게 아이답지 않은 편지로 도움을 청해야 했을까. 해를 입지 않아 기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외면당해 외로워하면서….”
디리에 따르면 ‘더럽다’는 욕설과 차별, 따돌림은 FGM을 거부하는 아프리카 소녀가 흔히 겪는 일이다. ‘전통’을 따르지 않는 존재에게 공동체가 가하는 처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명 영화에 출연하고 적잖은 경제적 지원을 받은, 그래서 이웃 모두 은근히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파 가족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엄마는 드러내놓고 FGM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꺼낸 참이다. 디리는 즉시 지부티에 가기로 결심했다. 현장에서 사파 학교를 방문하고, 주위 사람들을 만났다. 사파 가족을 유럽으로 데려와 ‘FGM 근절 캠페인’을 보여주며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깨닫도록 이끌기도 했다. 이 과정은 2013년 출간된 책 ‘사파 구하기’ 등에 담겨 있다. 디리에게 지금 사파는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어엿한 청소년으로 성장했죠. 사파 모습을 보면 마음이 뿌듯합니다. 사파는 ‘사막의 꽃’ 재단이 FGM으로부터 구한 최초의 아이예요. 사파를 통해 비로소 ‘어린 사막의 꽃 구하기’ 후원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고요. 지금 사파는 지부티에서 계속 가족과 함께 지내며 프랑스 학교에 다닙니다. 배우나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해요. 또 한 번 저와 함께 영화 찍기를 바라고 있고요.”
디리는 이 마지막 문장 옆에 직접 ‘웃음’이라는 글씨를 써 넣었다.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사춘기 소녀를 떠올리며 기자도 함께 웃었다. 디리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사파는 지금 전 세계 소녀와 여성의 권리를 위한 싸움에서 상징적 인물이 됐습니다. FGM 철폐를 위한 싸움을 할 때 제게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자 가장 중요하고 든든한 지원군이에요.”
와리스 디리의 삶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데저트 플라워’의 한 장면. 사파는 이 영화에 어린 디리 역으로 출연하며 ‘사막의 꽃’ 재단과 인연을 맺었다. [동아DB]
“우리에겐 더 많은 사파가 있다”
디리의 바람은 세계 곳곳에서 각종 폭력과 차별에 노출돼 있는 또 다른 소녀들이 제2, 제3의 사파가 되는 것이다.“FGM 문제를 얘기할 때 좋은 말은 참 많습니다. 하지만 행동은 부족합니다. 우리 ‘사막의 꽃’ 재단은 아이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학교 물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사막의 꽃 교육 상자’에는 읽기 교재 및 연습장, 연필, 자, 연필깎이와 책가방 등이 들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최다 30명의 아이가 교과서 한 권을 공유해요. 어디를 가도 교육 관련 물품이 턱없이 부족하죠.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자 ‘사막의 꽃’ 재단은 아프리카 학령기 아이들에게 교육상자 100만 개를 배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또 산부인과 의사 등 전문가와 함께 젊은 세대에게 ‘FGM 철폐 운동’에 대해 알리는 캠페인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 처음 이 운동을 시작했을 때, 저는 반드시 FGM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도 이 싸움을 절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요!”
디리는 더 많은 사람이 이 행동에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의 마지막 말은 “우리가 함께할 때 비로소 FGM을 몰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변화는 지금 당장 필요합니다!”였다. 현재 한국에서는 디리 책 ‘사파 구하기’를 번역 출간한 출판사 ‘열다북스’와 ‘인천여성의전화’가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학교를 짓기 위한 ‘사파 구하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디리의 각종 활동 정보는 ‘사막의 꽃’ 재단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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