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확진자 폭증에 방역지침 강화
“마스크 안 쓰면 1차 26만 원, 2차 88만 원 벌금”
노동부 공무원들이 불시에 사무실 인원 체크
‘록다운’ 덴마크에서 자영업자들이 시위하지 않은 이유
고정비(월세, 난방비 등)와 노동자 임금 지원
영국, 확진자 3만 명 넘지만 일상으로 복귀
“치명률 낮아…최악 경험했기에 무감각”
9월 말 덴마크 코펜하겐 스토크 분수대에서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정상헌(29) 씨. 정씨만 유일하게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정상헌 제공]
한국도 10월 말 2차 백신접종률이 70%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자 위드 코로나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에 앞서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싱가포르, 덴마크, 영국 거주자에게 현지 풍경은 어떤지 물었다.
“백신접종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일상생활 규제도 세계 최고인 게 아이러니하네요. 싱가포르에서 위드 코로나는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어요.”
이동렬(28) 씨는 싱가포르에 3년째 거주하는 직장인이다. 그를 인터뷰한 10월 5일, 이씨는 회사에서 유일한 출근자였다. 싱가포르 보건복지부(MOH) 자료에 따르면, 이날 싱가포르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3486명을 기록했다. 싱가포르 인구를 560만 명, 한국 인구를 5200만 명으로 잡고 계산하면 한국에 대략 3만2370명의 확진자가 쏟아진 것과 같은 상황이다.
“위드 코로나, 확진자 폭증하며 의미 없어졌다”
싱가포르 정부는 7월 10일 코로나19 확진자 집계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9월 6일에는 위드 코로나를 선언했다. 높은 백신접종률을 믿고 방역에 자신감을 내비친 싱가포르 정부는 9월 24일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을 강화했다. 연일 확진자 수가 증가세를 보이다 9월 24일 역대 최다인 1650명을 기록하면서다.이씨에 따르면, 위드 코로나 시행과 관계없이 싱가포르에서 백신 미접종자는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없다. 위드 코로나 시행 전에는 2차 백신을 맞은 사람에 한해 두 명까지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었는데, 위드 코로나 시행 이후 5인 이상 식사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최근 확진자 수가 증가하면서 다시 2인으로 줄인 것이다.
사라졌던 영업시간 제한도 돌아왔다. 식당은 다시 오후 10시 30분이면 문을 닫는다. 외국인 입국 규제도 그대로 유지됐다. 2차 접종을 마친 독일, 브루나이, 홍콩, 마카오 국적자를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 외국인들의 싱가포르 입국은 어려운 실정이다.
이씨는 “2주 전까지만 해도 회사 인원의 50%까지 출근이 가능했는데 현재는 정부가 재택근무를 의무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싱가포르 노동부(MOM) 공무원들이 도심을 순찰하며 불시에 사무실에 들이닥쳐 출근 인원을 체크한다고 한다. 이씨는 “사무실에 사람이 있으면 공무원이 다가와 무슨 용건으로 출근했는지, 꼭 출근했어야 하는지 묻는다”고 말했다.
10월 6일 기준 싱가포르의 1차 백신접종률은 82.7%, 2차 접종까지 마친 비율은 80.8%이다.
이씨는 “백신접종률이 높아도 확진자가 증가하는 추세여서 강력한 방역조치는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흔히 위드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면 답답한 마스크와 작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씨는 “싱가포르 정부는 위드 코로나 이후에도 마스크 규제를 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4월 7일 싱가포르 의회를 통과한 ‘코로나 임시조치’는 6세 이상 모든 시민은 거주지 밖에서는 코 위까지 마스크를 올려 착용할 것을 의무화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마스크 미착용이 적발되면 300싱가포르달러(약 26만 원), 2차 적발 시엔 1000싱가포르달러(약 88만 원)의 벌금을 각각 부과한다.
이씨는 “요즘 싱가포르에서는 경찰 말고도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인파가 몰리는 쇼핑몰, 은행, 식당가를 수시로 돌며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은 사람, 거리두기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적발한다”고 말했다.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은 일명 ‘안전을 위한 거리두기 대사(Self Distancing Ambassador)’로 불리는 이들이다.
정부 부처와 시설 관리 업체가 고용하는 직원들로, 마스크 미착용자에게 벌금을 물리거나 마스크 착용을 강제할 권한은 없다. 하지만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다가가 수칙 준수를 ‘권유’한다. 싱가포르에서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들은 위드 코로나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활동 중이라고 한다.
싱가포르의 공권력은 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임명한 ‘안전한 거리두기를 위한 집행관’(safe distancing enforcement officers, 이하 집행관)들은 방역수칙 위반 혐의를 포착할 경우 영장 없이 시민 집 안을 수색할 수 있다. 실제로 7월 31일 집행관들이 제보를 받고 한밤중에 한 배우의 집에 들이닥쳐 수색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집에 없었던 그 배우는 집행관들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강력히 항의했고 이 사건은 사회적 논란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강력한 거리두기 지침에 반발하는 사람은 없느냐’고 묻자 이씨는 “싱가포르에서는 국가에서 발급한 면허증이 있는 사람만 집회를 할 수 있다”며 “종종 온라인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접할 뿐 대다수 사람들은 방역에 매우 순종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확진자가 폭증하며) 싱가포르에서 위드 코로나는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며 “최근 부스터샷 접종이 시작됐지만 언제쯤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싱가포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전을 위한 거리두기 대사(Self Distancing Ambassador)’의 모습. [Los Angeles Times 캡처]
“마스크 쓰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본다”
“덴마크에서는 사실상 6월에 코로나19가 끝났어요. 이제는 마스크를 쓰는 사람을 도리어 이상하게 봐요.”정상헌(30) 씨는 2018년 축구선수가 되고자 덴마크로 떠났다 현지에 정착한 경우다. 두 살 아이와 여자 친구는 올보그 외곽 작은 도시에 살고, 정씨는 수도인 코펜하겐과 올보그를 오가며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 주말 마스크를 착용하고 코펜하겐행 기차에 몸을 실었는데, 기차 내 승객들 시선이 유난히 자신에게 자주 멈춰 섰다고 말했다.
정씨를 인터뷰한 10월 3일 기준 덴마크의 1차 백신접종률은 76.4%, 2차 접종률은 75%다. 9월 10일 덴마크 정부가 코로나19가 사회적 위협이 더는 아니라고 선언하고 확진자 집계를 중단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다.
정씨에 따르면, 덴마크는 현재 코로나19 이전으로 완전 복귀했다.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마스크를 쓴 사람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그는 “8월 중순에는 도심에서 성소수자 축제인 ‘코펜하겐 프라이드’가 열렸다”며 “연일 1000명 넘게 발생하던 신규 확진자 수가 300명 이하로 줄어든 6월부터는 록다운(강력한 봉쇄)이 풀려 도시가 활기를 되찾았다”고 전했다.
덴마크 정부는 8월 14일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 조치를 폐지했다. 9월 1일에는 다중시설 사용이 허용돼 나이트클럽까지 영업을 재개했다. 이때부터 백신접종자에게 부여하는 백신패스를 보여주지 않아도 공공시설 입장이 가능해졌다.
덴마크는 최근 한국 정부가 도입을 검토 중인 ‘백신패스’를 유럽에서 제일 먼저 시작한 국가다. 백신패스는 일종의 국내용 여권으로 식당이나 축구장 같은 밀집 시설에 입장하기 위해 필요하다. 지난 4월 BBC는 “여타 유럽 국가들은 3차 대유행을 겪고 있지만 덴마크는 백신패스를 성공적으로 도입해 봉쇄를 서서히 풀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씨는 코펜하겐의 일식집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9월 이전에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백신접종을 증명하거나 72시간 이내 진단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는 사실을 인증해야 식당 입장이 가능했다”며 “그때는 백신패스가 없는 사람은 음식을 포장해 가거나 실외에서 식사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백신패스가 없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아 사람들 사이에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정부가 록다운 조치를 해도 사회적 논란이 많지 않았던 이유로 자영업자가 문을 닫으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손실을 보전해 준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덴마크는 록다운으로 가게가 문을 닫으면 고정비(월세, 전기·수도요금, 난방비)를 전액 부담했다. 코로나19 방역조치 해제 후 노동자가 직장에 복귀하는 조건으로 주 37.5시간 이상 일하는 풀타임 노동자는 임금의 75%,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직원은 90%를 지원해 준다.
정씨는 “지금 내가 일하는 가게의 경우 임금이 비싼 정규직 직원은 집으로 돌려보내고 아르바이트생 위주로 운영했다”며 “문을 닫는 기간 일부 식재료의 유통기한이 지났는데 그 비용도 정부가 한도 없이 전액 보상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제 덴마크에서 백신접종을 마친 사람은 해외여행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는 “좋아하는 축구선수인 혼다 케이스케가 가까운 리투아니아 리그에서 뛰고 있다. 겨울 휴가 때 다녀올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확진자 늘지만 치명률 낮다는 인식
10월 초 영국 런던에 사는 조기윤(25) 씨가 참석한 콘서트 현장.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중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이 혼재돼 있다. [조기윤 제공]
조씨를 인터뷰 한 10월 8일, 영국의 1차 백신접종률은 73%, 2차 접종률은 67.2%. 같은 날, 영국에는 하루 확진자가 3만4910명이 쏟아졌다. 엄청난 규모의 확진자에도 조씨는 “여기 사람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라고 말했다.
조씨는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극소수”라며 “버스에서는 마스크를 안 쓰지만 튜브(런던 도심 지하철) 안에서는 쓰는 이상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식당과 펍, 나이트클럽도 모두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확진자는 많지만 치명률이 낮다 보니 크게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은 7월 중순 기준 일주일 신규 확진자가 4만 명을 넘어서고 이후 줄곧 3만 명대에 머물러왔다. 같은 기간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는 하루 평균 100명 수준이다. 적은 수가 아니지만 올해 1월 한 달 가까이 매일 6만 명에 가까운 확진자가 발생하고 사망자가 1200명대까지 치솟았던 데 비하면 크게 줄었다. 조씨는 “(영국 사람들은) 최악을 경험해 봤기에 지금의 확진자 수에 무감각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사람이 가득 들어찬 극장에서 뮤지컬을 보고 왔다”며 “영국에서는 백신을 두 번 다 맞으면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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