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할 때 절인 배추를 김치 양념에 무쳐 먹으면 첫맛은 매콤하고, 아삭아삭 씹을수록 달고 짜며, 삼키고 나면 감칠맛이 남는다. [GettyImage]
채 어우러지지 않아 저마다의 향긋함, 산뜻함, 아삭함, 콤콤함이 살아 있는 김치 양념에 무쳐 먹는 절인 배추의 맛! 첫맛은 매콤하고, 아삭아삭 씹을수록 달고 짜며 삼키고 나면 감칠맛이 남는다. 지금 필요한 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밥! 엄마는 커다란 그릇에 생김치를 수북하게 덜어 놓고, 나머지는 김치 통에 차곡차곡 담아 김장을 마친다. 그 다음엔 나랑 마주 앉아 뜨거운 밥에 펄펄 살아 있는 생김치 한쪽씩 얹어 가며 오순도순 밥그릇을 비웠다. 1년에 딱 한 번씩 즐긴 엄마와 나의 특별한 만찬이다.
참기름, 깨소금으로 무친 신김치에 멸치국물 듬뿍
큰 그릇에 가늘게 썬 묵과, 김치, 오이를 소복하게 담고 멸치국물을 부은 뒤 김과 통깨를 솔솔 뿌려 먹는 묵국수. [GettyImage]
엄마는 신김치를 입에 잘 대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나랑 같이 맛있게 드시는 게 있었다. 묵국수다. 묵이 부서지지 않도록 살살 달래가며 막대처럼 가늘고 길게 썰고, 김치는 잘게 썬다. 이때 씹는 맛이 좋은 배추 줄기 부분을 많이 넣어야 맛있다. 오이를 가늘게 채 썰어 넣으면 씹는 맛을 더한다. 김치는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어 무친다. 구운 김은 잘게 부순다. 멸치를 가득 넣고 국물을 낸다. 대접에 묵, 무친 김치, 오이를 소복하게 담고 멸치국물을 붓고 김과 통깨를 솔솔 뿌려 먹는다. 내 그릇에는 김치가 듬뿍, 엄마 그릇에는 묵이 듬뿍 담긴 게 다를 뿐 둘 다 국물 하나 남기지 않고 시원하게 먹어치우기 일쑤였다.
겨울철 주말에는 김치전이 단골이다. 들기름에 부칠 때도 있고, 해물과 땡초를 잘게 썰어 넣기도 하고, 조선호박이나 늙은호박살을 채 썰어 넣고 굽기도 했다. 어느 날은 큼직하고, 어느 날은 손바닥만 했다. 넙대대한 김치전은 부드럽고 촉촉해 좋다. 자그마한 김치전은 가장자리 바삭한 부분이 많아 맛있다.
지금도 나는 생김치가 가장 맛있고, 익은 김치는 그 자체보다 요리로 먹기를 좋아한다. 집에서는 김치찌개보다 찜을 자주 한다. 엄마의 김치찌개는 특별한 재료 없이도 찜처럼 깊고 진한 맛이 나는데, 내가 만든 김치찌개는 꼭 매운 배추찌개처럼 심심하고 잡스러운 맛이 난다. 그나마 돼지고기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배추 8분의 1쪽 짜리를 두어 덩어리 넣고 푹 끓이면 좀 낫다. 재료를 넉넉히 쓰고, 시간을 들이면 좋은 맛에 얼추 가까워진다.
잘게 썬 김치 달달 볶아 조물조물 주먹밥
김치를 넣고 돌돌 싸먹는 김밥은 신김치로 만들 수 있는 별미다. [GettyImage]
잘게 썬 김치를 베이컨, 양파와 함께 물기 없이 달달 볶아 밥에 넣고 조물조물 뭉쳐 주먹밥을 만들어도 된다. 조금 더 부지런을 떨자면 김치 줄기 부분을 볶고, 남은 잎은 양념을 씻어 물기를 꽉 짠다. 거기 밥을 넣고 쌈밥처럼 만든다.
신김치를 넣고 돌돌 말아 싸 먹는 김밥도 별미다. 참치와 깻잎을 넣으면 맛있고, 잔멸치와 매운 고추로 조합을 맞춰도 된다.
먹성 좋은 이란성 쌍둥이를 키우는 내 친구가 이맘 때 캠핑 가면 하는 요리가 있다. 김치와 햄, 또는 김치와 작게 썬 오징어를 프라이팬에 넣고 달달 볶는다. 햄이나 오징어가 익을 때쯤 자장라면의 가루 수프를 넣고 볶는다. 뻑뻑하면 물을 조금 넣어 걸쭉하게 만든다. 면을 삶아 각자 그릇에 나눠 담고 자장김치소스를 끼얹고, 달걀프라이로 예쁘게 덮어 완성한다. 어른 그릇에는 고춧가루를 솔솔 뿌린다. 먹어보지 않았지만 절반 이상은 아는 맛이라 군침이 절로 돈다.
문제는 우리집에 신김치가 똑 떨어졌다는 것. 아무리 맛난 김치를 얻어 와도 제대로 보관할 줄 모르는 내 솜씨 탓에 늘 김치가 궁핍하다. 김장 전에 신김치 수거하러 시댁과 친정을 한 바퀴 빙 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