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뒤흔든 이낙연 득표율 62.37%
정권교체론 55% 넘는데…李 딜레마
‘노무현·박근혜 모델’ 차용 어려워져
“25~30% 지지율로 文과 차별화 못해”
특검 불씨도 변수…與 의원에게 ‘을’ 처지
“文 ‘대장동’ 메시지, 심각한데 봐준단 뜻”
10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 세종컨벤션센터 기획전시실에서 열린 ‘균형발전 성과와 초광역협력 지원전략 보고’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는 가운데, 그 옆으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경기지사의 모습이 보인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이날 오후 6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 이상민 민주당 선거관리위원장이 3차 국민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발표하자 장내가 술렁였다. 이낙연 전 대표가 득표율 62.37%(15만5220표)를 기록해 28.30%(7만441표)에 그친 이 지사를 34.07%나 앞섰기 때문이다. 앞선 2차 국민선거인단 투표의 경우 이 지사가 58.17%(17만2237표)를 기록해 33.48%(9만9140표)를 얻은 이 전 대표에 압승한 바 있다.
이재명이 택할 수 없게 된 길
권리당원과 대의원이 참여하는 지역 경선과 달리 국민선거인단에는 사전에 신청만 하면 일반 당원과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에 당심(黨心)보다 민심(民心)에 가깝다는 평을 받았다. 민주당은 3차 국민선거인단을 9월 1~14일 모집했고, 총 30만5779명이 신청했다. 이 중 24만8880명이 참여해 투표율이 81.39%에 달했다.시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투표는 10월 6~10일 진행됐다. 대장동 사업의 ‘키맨’ 중 한 명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10월 3일) 직후다. 유 전 본부장이 구속되면서 대장동 사업을 확정할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 지사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형성되던 때다. 이에 대장동 사건에 분노한 민심이 이 지사에 대한 심판 투표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견도 있다. 여권에서는 보수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등이 조직적으로 ‘역선택’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같은 날 공개된 이 지사의 서울 경선 득표율(51.45%)과 국민선거인단의 득표율 사이에 지나치게 간극이 크다는 게 근거다. 당내 일각에서는 이 지사를 비토하는 특정 종교단체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 전 대표 측 조직력이 막판에 동원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모집단이 커질수록 조직적 역선택 가능성은 낮아진다는 게 여론조사업계의 중론이다. 무엇보다 이 전 대표 측 조직력의 힘이라는 분석을 받아들이자면 ‘대장동 사건’ 이전에 이 전 대표가 고전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심판 투표가 맞는다면 이 지사로서는 셈법이 복잡해진다. 애당초 정치권은 이 지사가 본선에 가면 비문(非文) 내지 반문(反文) 행보를 할 공산이 크다고 봤다. 단순히 표 계산을 하더라도 이와 같은 행보가 실리적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정권 재창출 여론을 웃도는 결과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동아’가 창간 90주년을 맞아 여론조사기관 (주)폴리컴에 의뢰해 10월 13~15일 전국 성인남녀 10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을 위해 여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36.0%였고 “정권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여론은 55.3%였다. 여당 텃밭인 광주·전라에서조차 정권교체론을 택한 응답자가 25.1%로 집계됐다.(이하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李 향한 소위 의심의 눈초리가 심한 상황”
상황이 이렇다면 여당 후보인 이 지사로서는 ‘여당 내 야당’의 스탠스를 취하는 게 유리하다. 이는 과거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의 성공모델이기도 하다.2002년 6월 1일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3김을 청산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도 한꺼번에 청산해야 한다”면서 “김대중은 김대중이고, 노무현은 노무현”이라고 말했다. 여당이면서도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해 정권 심판 정서를 누그러뜨린 셈이다. 2012년 11월 30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도 “박근혜 정부는 민생 정부가 될 것”이라며 “그동안 노무현 정부도 민생에 실패했고 이명박 정부도 민생에 실패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탄생도 사실상 정권교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이 지사가 택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길이었다. 이 지사는 정권교체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도 각종 다자 구도 여론조사에서 대선후보 적합도 1위를 유지해 왔다. 이 지사가 친문(親文) 핵심과는 결이 다르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사가 ‘노무현·박근혜 모델’을 차용하면 ‘문재인 정권 심판’을 내세운 야권은 맞수를 공략할 포인트를 잃는다. 이 지사도 9월 14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재명 정부가 집권세력 내에서 ‘청출어람’한다면 국민 일부는 이를 정권교체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해 본선 뒤 행보를 예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지사 본인이 연루된 대장동 사건은 정국을 그의 기대와 다른 쪽으로 흘러가게 만들었다. 중도층 민심이 이반하면서 그간 이 지사의 강점이던 확장성은 힘을 잃었다. 3차 국민선거인단투표에서 도리어 확장성을 증명한 후보는 이 전 대표다. 이 전 대표는 이 지사보다 더 적극적으로 문재인 정부 계승을 내세워왔다.
이와 관련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0월 15일 CBS 라디오에 나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권에 이어) 정권을 재창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본질적인 정책의 전환을 약속했기 때문”이라면서 “이 지사는 문재인 정권과 차별화를 하기가 어려워졌다. 이 지사에 대한 소위 의심의 눈초리가 심한 상황에서 차별화가 쉽지 않고, 그러면 정권 재창출이 간단하게 이뤄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핵심 당직자도 “2012년 박근혜 당시 후보가 이명박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밟고 일어설 수 있던 건 ‘박근혜 팬덤’이 ‘이명박 팬덤’보다 강력했기 때문”이라면서 “이 지사 팬덤보다 문 대통령 팬덤의 결속이 더 강하다. 이 지사가 반문(反文) 행보를 했을 경우 뇌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측 기겁했을 것…컨벤션 효과 없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경기지사가 10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참석 의원들에게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이렇다 보니 ‘갑’이어야 할 대선후보가 당내 최대주주인 친문에 비해 ‘을’ 처지가 돼버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지사가 반문 행보를 펴기 곤란해졌고, 친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됐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이낙연 전 대표 쪽에 섰던 세력이 친문의 반인데, 이들이 떨어져 나갔다. 이 지사로서는 남은 친문이라도 붙잡아야 한다. 3차 국민선거인단 투표에서 이 전 대표 측에 대패한 후 이 지사 측이 기겁했을 것이다. 컨벤션 효과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과거에 지금처럼 대선 5개월을 앞둔 시점의 여론조사를 보면 유력 후보의 지지율은 대체로 37~39%를 오갔다. 현재 이 지사의 지지율은 25~30% 사이다. 사실 대장동 사건을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지지율이 높아야 한다. 17대 대선 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BBK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밀고 나갈 수 있던 것은 50% 가까운 지지율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지사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특검의 불씨가 살아 있다는 점도 변수다. 2007년 12월 16일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대선을 3일 앞두고 전격적으로 BBK 특검 법안 수용 의사를 밝혔다. 지금은 민주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 특검의 국회 본회의 통과 가능성은 낮지만, 반란 표의 발생 가능성은 여전하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 당시에도 김무성·유승민계 등 새누리당 내 반란 표가 판을 바꿨다.
자칫 이 지사로서는 현역의원들에게 ‘을’이 돼야 할 처지다. 그간 한국 대선에서는 생경했던 풍경이다. 이 지사 캠프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당의 한 재선의원은 “본선 후보에게 의원들이 먼저 줄을 서려던 과거 관행과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이 지사도 저자세 모드를 취하는 분위기다. 그는 10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해 의원들을 향해 90도 인사를 반복했다. 총회가 끝난 뒤에는 회의장 바깥에서 기다리며 의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
“집권세력과 李 사이에 딜(deal) 가능성”
결국 관건은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이다. 문 대통령은 10월 10일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이 지사가 후보로 선출된 이후 “민주당 당원으로서 이 지사의 후보 지명을 축하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보다 닷새 앞서 나온 청와대발(發) 메시지에 더 주목한다. 10월 5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엄중하게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간 입장 표명을 자제해 오던 기류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이와 관련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0월 13일 기자와 만나 “문 대통령이 갖고 있는 스탠스가 ‘엄중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것인데, ‘엄중’은 어떤 경로의 정보건 취득해서 사건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했다는 뜻이고 ‘지켜본다’는 봐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당신 심각한데 봐주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던지면 대선후보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 집권 세력이 이 지사와 딜(deal)을 하려 하지 않을까 싶다. 검찰이 확보한 내용, 만약 유동규 씨에 이어 김만배 씨까지 구속된다면 거의 조리(調理)가 다 된 것이다. 사실상 반(半)조리해 놓고 전자레인지에만 돌리면 되는 상태로 들고 있겠다는 것은 이 지사에게 상당한 무언의 압박이 될 수 있다.”
정보력이 남다른 야당 대표가 보고 있는 정국이라 함의가 작지 않아 보인다. 이 대표의 분석대로라면 ‘현재 권력’(문 대통령)이 여권 대선 캠페인에서 전면에 서는 초유의 드라마가 전개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여당의 ‘미래 권력’이 ‘현재 권력’인 대통령을 밟지 않고 집권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1988년 대선에서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조차 전두환 대통령과 거리를 뒀다. 이 지사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할까. 아니면 그간의 실패사(史)를 반복할까. 이 지사가 마지막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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