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힘을 쏟아내고 싶은 욕망’을 충족하는 운동
“주짓수 하는 여성을 ‘제3의 성’으로 생각”
주짓수 배우면 여자가 남자 이긴다?
정신 수양 위해 요가원 찾는 남성 증가세
한국 사회 성 고정관념 사라지는 증거
이윤자 관장이 운영하는 대전 ‘갈마주짓수’ 도장에서 여성 수련생들이 기술을 연습하는 모습. 최근 주짓수를 시작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이윤자 제공]
출처를 알 수 없는 이 말은 주짓수를 설명할 때 자주 쓰인다. FBI가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는 공식 기록은 없다. 하지만 “주짓수를 배우면 체급 차이를 극복하고 남성을 제압할 수 있다”는 말이 널리 퍼지며 많은 여성이 주짓수 도장을 찾고 있다.
주짓수는 일본 전통 무예 ‘유술’을 바탕으로 한 격투기다. 맨손으로 상대방을 엎어뜨린 뒤 관절을 꺾는 관절기, 조이기, 누르기 등으로 제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전 활용도가 높아 종합격투기(MMA) 선수 대다수가 수련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동안 ‘남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진 이 운동을 배우고 싶어 하는 여성이 많아지면서, 요즘은 주짓수 도장에서 여성만을 위한 강의를 개설하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반면 ‘여자들의 운동’으로 여겨지던 요가를 수련하는 남성도 증가세다. 여성으로 가득 찬 요가원에서 남성 수련생이 쭈뼛대며 동작을 따라 하는 풍경은 과거지사다. 남성 전용 요가반이 속속 생겨나고, 국내외 유명 의류회사들도 남성용 요가복을 출시하고 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주짓수와 요가 취미활동을 즐기는 수련생들을 만났다.
“강해지고 싶은 여성 늘고 있다”
유민경(26) 씨는 주짓수를 수련한 지 1년 6개월 됐다. 학창 시절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성인이 된 후 복싱과 필라테스를 잠깐 배우다 주짓수에 ‘정착’했다. 그가 주짓수에 매력을 갖는 것은 ‘강한 여자’가 되고 싶기 때문. 그는 “승부욕이 강해서 혼자 하는 운동이나 정적인 운동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며 “반면 주짓수는 대련을 통해 내 힘을 확인할 수 있어 좋다”라고 말했다.정다금(31) 씨도 합기도, 검도, 유도, 복싱을 두루 섭렵한 운동 마니아. 주짓수 수련 3년차다. 정씨는 주짓수의 매력에 대해 “기술 연마 과정에서 연습 상대와 빠르게 친밀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라며 “다치지 않고 기술을 익히려면 서로를 배려하며 호흡을 잘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주짓수를 시작했을 당시 중학교 3학년 남학생과 스파링을 했는데, 3분 동안 10번 넘게 탭(격투기에서 항복을 의미)을 쳤다. 두 달 뒤 다시 스파링을 하면서 내가 기술을 걸어 탭을 받아냈을 때는 정말 짜릿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가끔은 내가 주짓수를 한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는 시선도 느낀다”며 “아직 한국 사회에서 ‘여리여리’한 여성을 이상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다 보니 주짓수를 하는 여성은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제3의 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갈마주짓수’ 도장을 운영하는 이윤자 관장은 여성 전용 강좌를 열었다. 그는 “주짓수는 근력 향상 효과가 뛰어나 여성이 근력을 키우는 데 적합한 운동”이라며 ”최근 여성 등록자가 크게 늘고 있어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FBI 속설’처럼, 주짓수를 배우면 여자가 남자를 제압할 수 있을까. 이 관장은 “현실적으로 단기간 수련으로는 여자가 남자를 이기기는 어렵다”며 “다만 여러 무술 중 그나마 여자가 남자를 이길 가능성이 높은 종목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남자를 제압하지는 못한다 해도 긴박한 순간에 비교적 상해를 덜 입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 여성에게 주짓수를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여성 전용 스포츠 교육기관 ‘위밋업’을 운영하는 신혜미 대표는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 주짓수 인기가 높아지는 요인으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꼽았다. 신 대표는 “인간은 원초적으로 ‘전력투구’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다”며 “여성은 신체적으로 온 힘을 ‘쏟아내는’ 경험을 할 기회가 별로 없는데, 주짓수는 여성의 그런 욕망을 충족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몸보다는 마음 수련을 하러 많이 찾는다”
‘역전사 자세’를 선보이는 한석완(32) 씨. 요가 수련 4년차인 한씨는 “마음 안정 목적으로 요가를 수련한다”고 말했다. [한석완 제공]
전 원장이 ‘남성반’을 별도로 운영하는 이유는 남녀의 신체 능력 차이 때문. 그는 “강사 시절 혼성반을 지도한 적이 있는데 남성 수강생은 상대적으로 여성보다 유연성이 떨어져 진도를 잘 못 따라오는 경우가 많았다”며 “뒤처진다는 생각에 중도 포기하는 수강생이 많아 그들만을 위한 수업을 개설했다”고 말했다.
전 원장은 남성반 수업의 장점으로 ‘남자의 체력 및 체격 조건에 맞춰 세밀한 수업을 할 수 있는 점’을 꼽았다. 요가 수련을 하려는 남성이 증가한 이유에 대해서는 “직장이나 일상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운동과 더불어 정신 수련까지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요가 수련 4년차인 한석완(32) 씨는 웨이트트레이닝(헬스)에 싫증을 느끼던 중 요가원 전단지를 보고 호기심에 요가를 시작했다. 전 원장 말대로 그는 “마음 안정 목적으로 요가 수련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가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요가원에 다니는 남자가 나밖에 없었는데 최근 1년 사이 남성 수련생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최근 요가를 하는 남성이 증가하는 것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3월 18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아웃도어 활동, 실내외 운동 경험률-코로나19 전후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실내외 운동을 한 사람 가운데 ‘요가/필라테스’를 했다고 응답한 20대 남성 비율은 3%, 30대 남성 비율은 4%였다. 1년 전 같은 조사를 했을 때는 20대 남성 0%, 30대 남성 1%였다.
‘남자 운동’ ‘여자 운동’의 경계가 사라지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김지학 다양성연구소 소장은 “한국에서 ‘남성다움’ ‘여성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은 이렇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주짓수를 배우는 여성이 늘어나는 것은 ‘한국이 여전히 여성에게 안전하지 않은 사회’라는 인식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남성은 ‘홀로 정신적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요가 수련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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