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거리로 전락해버린 청탁금지법
지인이나 친구에겐 무료 변론 가능?
판사에게 밥 사는 것도 특권
‘끼리끼리’와 ‘카르텔’의 본질
일선 경찰은 ‘박카스’ 하나도 안 받는데…
공직사회 ‘스폰서’ 차단이 본 목적
공직자에게 ‘공짜 점심은 없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10월 18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 응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로부터 6년 7개월 후, 청탁금지법은 우스꽝스러운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탓이다. 지난 10월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전현희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변호사 수임료 ‘무료 변론’ 논란에 대해 이런 답변을 내놨다.
“지인이나 친구 등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는 무료로 변론할 수도 있다.”
나는 청탁금지법 제정 취지에 대해 찬성하는 편이다. 대한민국은 특권층의 카르텔형 부정부패가 횡행하는 나라다. 다소 ‘인간미’가 떨어진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 돈과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엉겨 붙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내가 처음부터 청탁금지법에 동의했던 것은 아니었다. 학부에서 법학을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일상의 너무 많은 영역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경향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형법의 적용 범위는 좁을수록 좋다. 그것이 자유주의자의 세계관이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가운데)이 10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2021년도 종합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변호사가 판사에게 밥 사는 게 당연한 일?
하지만 나는 2015년 무렵 생각을 조금 바꿨다. 형벌권의 지나친 확장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지만, 필요하다면 확대할 수도 있다는 유보적 입장을 갖게 됐다.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인터뷰한 책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를 읽고 나서의 이야기다. 책에 나오는 김영란의 말이다.“제가 왜 소위 ‘김영란법’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냐면요, 사법연수생으로 법원에 실무실습을 나갔을 때부터 판사님들이 저희를 데리고 가서 저녁을 사셨어요. 그런데 사실 판사 월급이 얼마 안 되던 시절이니까 제대로 저녁을 사기엔 주머니가 얇고, 그래서 결국 잘나가는 변호사들을 불러서 밥을 사게 하더라고요. 배석판사가 된 다음에 보니 부장판사랑 친한 변호사들이 저녁도 사고, 저녁을 못 사는 경우 변호사가 밥값을 따로 주기도 했어요. 아무 변호사나 그러는 건 아니고 동기 등 친한 변호사들이 그랬고, 액수가 그 당시 한 3만~5만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김영란이 사법연수생이던 1979년~1980년의 3만 원은 오늘날의 3만 원과 다르다. 적지 않은 액수다. 하지만 ‘뇌물’이라 하기에는 부족한 액수기도 하다. 법조인의 눈높이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식사를 하고 술을 곁들이기에 딱 적합한 정도의 금액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딘 김영란이 보기에는 너무 이상하고 의아했다. 변호사가 판사에게 밥을 사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김영란의 의문에 답을 준 사람이 김두식이었다. 김두식이 2009년 펴낸 책 ‘불멸의 신성가족: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은 발간 즉시 진보진영으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자기들끼리 서로 알고 지내고, 친하고, 음으로 양으로 ‘서로 돕고’ 사는 법조계의 내막과 치부를 꼼꼼히 파헤쳤기 때문이다. 김두식이 볼 때 한국의 법조 엘리트들은, 그들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지만, 일종의 ‘카르텔’을 이루고 있다.
그 점을 분명히 짚고 명확하게 드러내준 김두식에게 김영란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2012년 10월 말,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영란은 김두식에게 부패방지에 대한 책을 함께 쓰자고 제안했다. 덕분에 청탁금지법에 대해 속속들이 1:1 과외를 해주는 책이 탄생했다.
국민 눈에는 결국 한통속이고 카르텔!
3만 원. 그 사소한 금액. 어쩌면 ‘인간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그저 밥 한 번 같이 먹고 밥값 대신 계산해주는 데 지나지 않는 자잘한 호의. 김영란은 바로 이런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판사에게 밥을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일종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엘리트끼리 ‘인간적’으로, ‘끈끈한’ 정을 느끼며 서로 감싸고 챙겨주는 동안 그들의 도덕성은 점점 사회 보편의 기준에서 벗어나 둔감해진다.그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볼 때 그렇게 챙겨주고 보듬어주는 문화 자체가 공권력과 국가 기관과 사법 정의에 대한 신뢰를 크게 망가뜨린다. 김영란은 이렇게 말한다.
“왜 대가관계 없는 금품수수를 그렇게 엄하게 다루냐는 비난이 있었어요. 하지만 자격이 있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부패구조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그런 법이 반드시 필요해요.”
‘자격이 있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부패구조’라는 말에 밑줄을 그어보자. 이것이 바로 ‘끼리끼리’, ‘카르텔’의 본질이다. 사법시험이 됐건 로스쿨이 됐건 행정고시가 됐건, 어떤 ‘자격’을 부여받은 이들에게만 허용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 후, 그 속에 들어가면 어지간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다음에야 결코 내치지 않고, 아무리 무능해도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는, 그런 ‘온정’과 ‘시혜’의 구조. 김영란과 김두식은 그것을 문제 삼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김영란의 관점은 너무 심한 게 아닐까?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사람이 새로운 업계에 속해 일을 하면 다른 인생이 시작된다. 모든 업계에는 내부에서 통용되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특히 법조계처럼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쌓고 경험을 다져야 하는 분야라면 더욱 그렇다. 업계 내부자끼리는 물리적, 사회적, 심정적으로 가까울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그걸 억지로 끊어놓기 위한 법을 만드는 게 과연 무슨 의미인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설령 가능하다 한들, 그게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인가.
김영란의 답은 분명하다. 2015년 이전까지 우리 법체계가 지니고 있던 큰 맹점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엄연히 뇌물죄가 존재하지만 ‘대가성’이 입증돼야 처벌이 가능하다는 한계 말이다. 대가관계가 없는 금품수수도 금지하지 않으면 ‘정’이 쌓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사람들 사이에 정이 쌓이고 끈끈해지면 그들끼리 서로 봐주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내부자 사이에서는 훈훈한 풍경이겠지만 외부의, 국민적 시선에서 보면 결국에는 한통속이고 카르텔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금 법으로 대가성 있는 뇌물은 처벌하지만, 대가성 없는 돈은 처벌을 못하잖아요. 평소 돈을 받아오던 관계에서 청탁하는 것은 대가성이 없다고 해서 처벌이 쉽지 않고, 그게 바로 ‘스폰서’지요. 권력형 부패에서는 스폰서라 생각하고 돈을 주고받지, 뇌물이라 생각하고 돈을 주고받지는 않아요. 그래서 금품수수와 부정청탁, 두 가지를 모두 끊어야 하는 거죠. 그 고리를 끊는 행동강령을 만들면서 처벌규정이 없으면 실효성이 떨어지니까, 기존의 행동강령처럼 윤리만 논하는 단계를 넘어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코뱅 같나요? 그래도 속은 시원하지 않나요?”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를 차단하는 것. 법조계와 공직 사회를 기웃거리는 ‘스폰서’를 차단하는 것. 그것이 청탁금지법의 본래 목적이다. 이는 청탁금지법 제1조에 잘 설명돼 있다.“제1조(목적) 이 법은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공직자 등의 금품 등의 수수(收受)를 금지함으로써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공직자 ‘등’이라는 표현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청탁금지법은 처음에 오직 공직자만을 대상으로 한 법이었다. 국회에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사립학교의 직원과 언론사 직원 등이 포함됐지만, 최초의 목적은 공직자, 그 중에서도 ‘높으신 분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가 일상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대가성 없는 후원 관계’, 즉 ‘스폰서’를 처벌하고자 했던 것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 경제학에서 흔히 쓰는 말이지만 세상사 모든 분야에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공직자와 ‘스폰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는 뇌물 수수와 관련해 여러 정치적 스캔들을 겪은 나라다. 고위공직자나 선출직 공무원 뿐 아니라 공직사회 전반이 ‘대가성 없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우리가 좀 더 좋은 나라에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청탁금지법은 완벽하지 않다. 여러 비판이 존재하며 일정 부분 수긍할만한 여지가 있다. 법의 취지에 동의한다고 했지만 나부터가 여전히 국민 생활의 큰 부분을 형사처벌을 동원해 재단하는 것에 대한 반감을 완전히 거두고 있지는 못하다. 비현실적인 도덕주의, 엄숙주의, 결벽주의가 아니냐는 비판 내지 비아냥 또한 할 수 있을 테다. 그에 대해 김영란은 이렇게 답하고 있다.
“저더러 과격하다고 하는데 뭐랄까, 자코뱅(Jacobins) 같나요?(웃음) 그래도 속은 시원하지 않나요?”
청탁금지법은 한 마디로 ‘친해지지 말라’는 법이다. 공직자가 돼 권력을 가진 사람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빌려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그 힘을 갖고 있는 동안은 아무하고나 밥 먹고 술 마시면서 친해지지 말라는 의미다. 그렇게 ‘친하니까 괜찮다’는 범위를 줄여나가야 우리가 공정사회에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청탁금지법의 근간에 깔려 있다.
교사의 카네이션과 이재명의 무료 변론
‘아주 친한 사이면 무죄.’ 전현희의 발언을 보며 황당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되는 이유도 거기 있다. 아주 친한 사이면 변호사비를 안 받아도 청탁금지법 위반이 아닐 수 있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청탁금지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학생들이 주는 카네이션도 안 받아온 선생님들, 동네 어르신이 쥐어주는 박카스 하나도 받지 않은 일선 경찰들, 혼자 밥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 밤늦게까지 일하는 공무원과 법조인들의 조용한 헌신을 짓밟는 셈이다. 말단 공무원이 하면 불법이지만 여당 대선후보가 하면 합법이면 그런 걸 법이라고 부를 수가 있을까?책장에서 뽑아온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를 다시 펼쳐봤다. 여전히 옳은 이야기다. 그런데 너무 이상하다. 더불어민주당 집권 후 권익위원장이 대놓고 청탁금지법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발언을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가 없다. 그 허다한 ‘양심적 법조인’들은 그저 입을 다물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해버린 건 아닐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청탁금지법은 공정하게 적용돼야 한다. 주민센터 9급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그 잣대로 이재명 지사를 평가하라.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법치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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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