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호

시원 구수 쌉싸름, 배 속에 훈풍 이는 올갱이국 한 모금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1-11-0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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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갱이와 채소를 넣고 팔팔 끓여 만든 올갱이국은 맹숭맹숭 맑으면서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GettyImage]

    올갱이와 채소를 넣고 팔팔 끓여 만든 올갱이국은 맹숭맹숭 맑으면서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GettyImage]

    요 며칠 코가 말썽이다. 꽉 막혀 하루 종일 킁킁대고, 시도 때도 없이 콧구멍에서 물이 줄줄 흐른다. 입을 벌리고 자니 밤중에 여러 번 깨 낮에도 피곤함이 이어진다. 이게 다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 녀석들 때문이라는 생각에 비염 치료를 받으러 이비인후과에 갔다. 한참 내 코와 목을 들여다보던 의사가 “작년에도 이맘때 왔잖아요”라고 한다.

    “자긴 비염이 아니라니까. 본인이 체온 조절을 잘 못하는 거지, 왜 고양이 탓을 해? 목에 머플러 좀 두르고 다녀요! 환절기잖아!”

    백발의 여의사에게 야단만 실컷 맞고 약 한 봉지 못 얻은 채 돌아왔다.

    병원을 나서는데 하늘은 파랗고 바람이 차다. 코가 또 막혀오니, 뜨거운데 시원한 국물 한 사발 들이켜고 싶다. 이명세 감독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배우 장동건이 그랬던 것처럼 내 머리 옆으로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여러 국물 요리가 흘러간다.

    맹숭맹숭 맑고 개운한 국물에 맵싸한 부추의 풍미

    된장을 풀어 풍미를 더한 올갱이국. [GettyImage]

    된장을 풀어 풍미를 더한 올갱이국. [GettyImage]

    봄인지 겨울인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오늘 아침처럼 코가 시리던 날, 강원 영월에서 아침밥으로 올갱이(다슬기)국을 먹은 적이 있다. 안개처럼 흐릿함이 낀 연한 풀색 국물에 작게 썬 부추가 한 줌 올라가 있었다. 어릴 때 놀이공원을 거닐며 삶은 다슬기를 쪽쪽 빨아 먹은 적은 있지만 다슬기로 끓인 국은 처음이었다. 달고 짭짤하여 맛좋았던 어린 시절 기억이 되살아났다. 올갱이는 작은 몸집에 참으로 여러 가지 풍미를 담고 있다. 조개처럼 시원한 감칠맛이 나고, 민물 특유의 향도 있고, 살집을 씹으면 쌉싸래한 맛도 꽤 진하게 난다. 이런 맛이 국물에 그대로 스며있다. 국을 휘저으니 귀여운 올갱이 살집이 두어 국자 분량이나 된다. 이 조그마한 걸 어떻게 다 손질해 6000원짜리 국물에 이만큼 푸짐히 주시나 싶었다.



    부추의 맵고 단 풍미와 올갱이의 구수한 감칠맛이 딱 떨어진다. 내가 먹은 식당은 올갱이를 껍데기째 삶아 밑국물을 내고 소금으로 간을 한 게 전부였다. 나중에 보니 된장을 묽게 풀어 아욱과 같이 끓이기도 하고, 마늘과 대파를 넣어 양념 맛을 보태기도 하던데 나는 영월에서 먹은 맹숭맹숭 맑고 개운한 국물 맛이 좋았다.

    경남 하동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재첩국 정식. 뽀얀 국물에 밥을 말아 재첩살과 같이 먹으면 쓰린 속이 쉬 풀린다. [동아DB]

    경남 하동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재첩국 정식. 뽀얀 국물에 밥을 말아 재첩살과 같이 먹으면 쓰린 속이 쉬 풀린다. [동아DB]

    올갱이만큼 작은데 맛 좋은 게 또 있다. 재첩이다. 내게 올갱이냐 재첩이냐 물으면 재빠르게 고르기 어렵다. 재첩국은 한동안 직장에서 점심으로 자주 먹었다. 고향이 경북 김천인 선배가 있었는데, 회식 다음날이면 무조건 재첩국을 찾았다. 뽀얀 국물에 밥을 말아 재첩살과 같이 듬뿍 떠서 오물오물 씹어 먹는 맛이 늘 좋았다. 쫄깃한 재첩살 덕에 국밥을 야무지게 씹게 돼 소화도 금세 됐다. 손톱만큼 작은 조개에서 우러난 국물이 속을 쉬 풀어주는 건 당연했다.

    혼자서도 먹을 수 있는 복국의 든든한 맛

    시원한 복국물과 미나리를 같이 먹으면 목부터 뱃속까지 훈훈한 바람이 분다. [GettyImage]

    시원한 복국물과 미나리를 같이 먹으면 목부터 뱃속까지 훈훈한 바람이 분다. [GettyImage]

    수년 뒤 섬진강변을 지나며 몇 번이나 재첩국을 먹었다. 섬진강은 재첩의 고향인지라 근처에 재첩 요리집이 참 많다. 재첩국에 수제비를 떠 넣어 걸쭉한 맛으로 먹는 곳이 있고, 소면을 곁들이기도 한다. 점도 없는 국물에 소면을 넣는 게 괜찮은가 싶지만 멸치국물에 말아내는 잔치국수 못잖게 맛있다. 다만 양념장을 과하게 얹으면 맛이 ‘꽝’이다. 재첩국물에 재첩살, 부추, 소면을 넣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맑은국 하면 민어, 대구, 도다리, 생태, 아귀처럼 흰 살 생선으로 끓여 낸 갖가지 탕도 떠오른다. 그러나 한 끼 조촐히 먹기엔 다소 벅찬 게 사실이다. 그럴 땐 복국이 제격이다. 복국은 혼자서도 참 많이 먹으러 다녔다. 대부분 속풀이용이고, 가끔 산뜻한 국물 요리가 당길 때 먹곤 했다.

    나는 탱탱한 복어살보다 속을 뻥 뚫어주는 시원한 국물, 국물에 살포시 젖어 향긋하고 부드러운 미나리를 먹으러 다닌 것 같다. 복국물과 미나리를 열심히 먹다 보면 목부터 뱃속까지 훈훈한 바람이 부는 것 같다. 쓰린 속이 가라앉고, 몸에서는 열이 피어난다.

    요즘은 다슬기나 재첩으로 끓인 국을 인터넷으로 쉽게 주문해 먹을 수 있다. 반가운 마음에 몇 번 구매해 데워 먹어봤다. 맛은 얼추 식당에서 먹은 것과 비슷한데, 영 신이 나질 않는다. 찬바람을 뚫고 가서 먹는 맛, 낯선 곳에서 다정한 사람과 먹는 재미가 빠졌다. 영월이며 섬진강까지는 못 가겠지만, 가을 길을 실컷 걸은 후 몸을 녹이며 뜨끈하게 한 그릇 먹고 싶다. 그럼 이토록 지긋지긋하게 막히는 코도 뻥 뚫리겠지.

    #올갱이국 #다슬기국 #섬진강재첩 #재첩국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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