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갱이와 채소를 넣고 팔팔 끓여 만든 올갱이국은 맹숭맹숭 맑으면서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GettyImage]
“자긴 비염이 아니라니까. 본인이 체온 조절을 잘 못하는 거지, 왜 고양이 탓을 해? 목에 머플러 좀 두르고 다녀요! 환절기잖아!”
백발의 여의사에게 야단만 실컷 맞고 약 한 봉지 못 얻은 채 돌아왔다.
병원을 나서는데 하늘은 파랗고 바람이 차다. 코가 또 막혀오니, 뜨거운데 시원한 국물 한 사발 들이켜고 싶다. 이명세 감독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배우 장동건이 그랬던 것처럼 내 머리 옆으로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여러 국물 요리가 흘러간다.
맹숭맹숭 맑고 개운한 국물에 맵싸한 부추의 풍미
된장을 풀어 풍미를 더한 올갱이국. [GettyImage]
부추의 맵고 단 풍미와 올갱이의 구수한 감칠맛이 딱 떨어진다. 내가 먹은 식당은 올갱이를 껍데기째 삶아 밑국물을 내고 소금으로 간을 한 게 전부였다. 나중에 보니 된장을 묽게 풀어 아욱과 같이 끓이기도 하고, 마늘과 대파를 넣어 양념 맛을 보태기도 하던데 나는 영월에서 먹은 맹숭맹숭 맑고 개운한 국물 맛이 좋았다.
경남 하동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재첩국 정식. 뽀얀 국물에 밥을 말아 재첩살과 같이 먹으면 쓰린 속이 쉬 풀린다. [동아DB]
혼자서도 먹을 수 있는 복국의 든든한 맛
시원한 복국물과 미나리를 같이 먹으면 목부터 뱃속까지 훈훈한 바람이 분다. [GettyImage]
맑은국 하면 민어, 대구, 도다리, 생태, 아귀처럼 흰 살 생선으로 끓여 낸 갖가지 탕도 떠오른다. 그러나 한 끼 조촐히 먹기엔 다소 벅찬 게 사실이다. 그럴 땐 복국이 제격이다. 복국은 혼자서도 참 많이 먹으러 다녔다. 대부분 속풀이용이고, 가끔 산뜻한 국물 요리가 당길 때 먹곤 했다.
나는 탱탱한 복어살보다 속을 뻥 뚫어주는 시원한 국물, 국물에 살포시 젖어 향긋하고 부드러운 미나리를 먹으러 다닌 것 같다. 복국물과 미나리를 열심히 먹다 보면 목부터 뱃속까지 훈훈한 바람이 부는 것 같다. 쓰린 속이 가라앉고, 몸에서는 열이 피어난다.
요즘은 다슬기나 재첩으로 끓인 국을 인터넷으로 쉽게 주문해 먹을 수 있다. 반가운 마음에 몇 번 구매해 데워 먹어봤다. 맛은 얼추 식당에서 먹은 것과 비슷한데, 영 신이 나질 않는다. 찬바람을 뚫고 가서 먹는 맛, 낯선 곳에서 다정한 사람과 먹는 재미가 빠졌다. 영월이며 섬진강까지는 못 가겠지만, 가을 길을 실컷 걸은 후 몸을 녹이며 뜨끈하게 한 그릇 먹고 싶다. 그럼 이토록 지긋지긋하게 막히는 코도 뻥 뚫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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