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몰이 성공, 규제 변수 못 피해
9일 만에 대출한도 5000억 원 소진
年2% 통장, 지속가능성 의문부호
“카뱅·케뱅과 달리 시작부터 ‘쓴맛’”
홍민택 토스뱅크 대표가 10월 5일 온라인으로 열린 토스뱅크 정식 출범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토스뱅크 제공]
최근에는 고객이 점포를 찾는 일이 점점 줄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 애플리케이션을 ‘쾌적’하게 만드는 데 더욱 집중하고 있다. 사용자환경(UI)에 공을 들여 소비자가 계좌 개설이나 대출 신청 절차를 손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다.
지난 10월 5일 국내 20번째 시중은행인 토스뱅크가 문을 열었다. 인터넷전문은행(이하 인터넷은행)으로는 케이뱅크, 카카오뱅크에 이은 세 번째다. 즉 토스뱅크는 시중은행뿐만 아니라 인터넷은행 중에서도 후발 주자에 속한다. 특히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가 이미 많은 고객을 끌어들인 뒤 출범했다는 점에서 공격적인 전략이 필요한 처지였다.
토스뱅크는 어떤 서비스를 앞세웠을까. 은행업권의 특성상 기존 은행이 쓰던 전략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토스뱅크 출범에 맞춰 가장 관심을 끈 점은 역시 ‘가격’이었다.
토스뱅크는 예금금리를 ‘파격적’으로 제시했다. 일단 연 2% 이자를 지급하는 수시입출금 통장을 선보였다. 가입 기간이나 예치 금액 등에 아무 제한 없이 무조건 지급하는 이자다. 주요 시중은행의 경우 수신상품 금리가 가입 기간 1년 기준으로 0%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수준이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 역시 1% 중반 수준에 불과하다. 토스뱅크는 이런 이자를 매달 한 차례씩 지급할 계획이다.
계좌를 개설하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체크카드에도 혜택을 마련했다. 토스뱅크는 전월 실적 조건 없이 매달 최대 4만6500원을 현금으로 돌려주는 혜택을 제공한다. 통상 카드사들은 전달에 일정 금액 이상 결제해야 혜택을 제공하는데 토스뱅크는 이런 ‘조건’을 없앴다. 해외에서 사용하는 금액의 3%를 즉시 캐시백 해주는 혜택도 내놨다.
후발 주자 토스뱅크의 파격
토스뱅크가 출범하자 가장 관심을 받은 건 ‘대출 상품’이었다. 정부는 가계대출 규모가 위험 수위에 달했다고 판단해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대부분 시중은행이 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 이내로 제한하는 등 당국의 기조에 맞추는 분위기다. 대출 수요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새로운 은행이 대출 상품을 내놓는다 하니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토스뱅크는 후발 주자답게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대출 상품을 내놨다. 신용대출 최저금리는 은행권에서 가장 낮은 연 2.76%로 책정했다. 대출금리가 낮은 편에 속하는 케이뱅크(2.87%)와 카카오뱅크(2.86%)보다 경쟁력 있는 금리다. 신용대출 최고 금리는 연 15%로 금리의 폭을 비교적 넓게 잡았다. 중·저신용자까지 끌어안겠다는 계획이다. 인터넷은행의 경우 금융 당국의 권고로 이른바 ‘중금리 대출’의 비중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출 한도도 높였다. 토스뱅크의 신용대출 상품의 최대한도는 2억7000만 원으로 은행권 최고 수준이다. 케이뱅크의 경우 애초 일반 신용대출 한도가 2억5000만 원이었지만, 금융 당국의 ‘대출 규제’ 기조에 따라 10월부터 한도를 1억5000만 원으로 낮춘 바 있다. 카카오뱅크 역시 신용대출 한도를 기존 70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낮췄다. 큰 금액을 대출받으려는 이들에게 토스뱅크는 희망이었다.
또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비상금대출 모두 자격 조건을 3개월 이상 재직 중인 직장인으로 정했다. 다른 시중은행은 6개월 이상이나 1년 이상 재직 중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곤 한다.
이처럼 토스뱅크는 예금과 대출 상품을 파격적으로 내놓으면서 초반에 이슈몰이를 하겠다는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이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복병이 있었다.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 기조다.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한 탓에 수요자의 관심이 토스뱅크에 쏠린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토스뱅크 역시 은행인지라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100만 명 기다리는데 ‘길’ 막혔다
토스뱅크는 시작부터 금융 당국의 대출 규제에 따라 이례적인 방식을 도입해 눈길을 끌었다. 토스뱅크는 오픈 한 달 전인 9월 10일부터 서비스 사전 예약을 받았다. 주목을 끌겠다는 전략이기도 했지만, 한꺼번에 가입자를 받을 경우 대출 잔액이 급격하게 소진될 우려가 있어 내놓은 방안이라는 해석이 많다.사전 신청자는 10월 5일 출범 직전까지 110만 명이나 몰렸다. 토스뱅크는 이들에게 각각 대기 번호를 지급했다. 토스뱅크 오픈 이후 가입해 계좌를 만들려는 이들은 100만 번대를 훌쩍 넘는 대기 번호를 받아야 했다. 당장 계좌를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었다. 토스뱅크는 사전 신청한 100만 명에게 10월 중 서비스를 오픈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또 있었다. 금융 당국은 토스뱅크에 연말까지 대출 총액이 5000억 원을 넘기지 않도록 권고했다. 그런데 대출 수요가 몰리면서 오픈 9일 만에 신용대출 총액을 모두 소진해버렸다. 토스뱅크는 금융당국에 한도를 8000억 원으로 늘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10월 14일 대출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토스뱅크는 대신 기존 사전 신청 고객 전원을 대상으로 ‘연 2% 금리’ 통장 등의 서비스를 전면 오픈했다. 대출이 중단하면서 더는 ‘줄 세우기’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토스뱅크 관계자는 “여러 제약 속에서도 고객이 가장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해 대고객 오픈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대출이 중단되면서 연 2%대 수시입출금 통장 운영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많다. 은행은 대출 금리를 받아 예금 금리를 주는 식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토스뱅크는 대출 금리로 느는 수익은 없이 높은 예금 금리만 줘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토스뱅크가 ‘출혈’을 감수한다고 하더라도, 시장에서 토스뱅크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 있다. 당장은 토스뱅크 주주들이 증자를 통해 비용을 보완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언제까지나 지속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은행의 재무건전성은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요소다.
토스뱅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후발 주자로서 토스뱅크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금리 혜택으로 상품의 매력을 높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품을 마음대로 팔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금융 당국 처지에서도 토스뱅크의 출범에 맞춰 ‘길’을 열어줄 수는 없다. 최근 대출 규제를 강화한 기조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토스뱅크 정식 출범 하루 전날인 10월 4일 서울 강남구 토스뱅크 본사 모습. [뉴스1]
“내부적으로 다양한 방안 고민 중”
한 은행권 관계자는 “카카오뱅크나 케이뱅크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출범해 손쉽게 경쟁력을 강화했지만 토스뱅크는 시작부터 ‘쓴맛’을 보고 있다”며 “은행업권이 대표적인 ‘규제 산업’이라는 점을 최근 인터넷은행들이 뼈저리게 느끼면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토스뱅크 관계자는 “정부의 가계부채 안정화 정책을 준수하고 시장의 상황을 모두 고려한 결정”이라며 “토스뱅크 대출은 약 3개월 후인, 내년 1월 초 서비스를 다시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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