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 이후 밀입국자 단속률 110% 증가
밀입국 알선 조직의 조직화, 체계화, 전문화, 국제화
국내 입항하는 화물선 선원으로 위장취업도 불사
中 산둥성에서 태안군까지 350㎞, 소형 보트 타고 몰래 상륙
조선족 밀항자 줄고 서해 가까운 한족 늘어
국내에 중국 한족 밀입국 네트워크 광범위하게 형성
“해안경비 강화하고 밀입국 침투 경로 차단해야”
해양경찰청 관계자들이 지난해 5월 25일 충남 태안군 신진항 해경 전용 부두에서 중국인 6명이 밀입국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형 보트를 감식하고 있다. [뉴스1]
“한국에 무사히 도착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한동안 밀입국자의 신분으로 고생 좀 하겠지만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사장들이 당신들의 일자리를 보장해 줄 것이다.”
밀입국 알선 조직 모집책의 달콤한 말만 믿고 어선에 올라 ‘코리안 드림’을 꿈꾸던 밀입국자들은 갑자기 나타난 해안경비정의 포위 작전에 놀라 해안선을 따라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하지만 그들을 쫓는 해안경비정은 너무나 빠르다. 현재 이들은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바다를 이용해 한국으로 밀입국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해양경찰청의 ‘국제성 범죄 단속 통계’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최근 5년간 경찰 단속에 적발된 밀입국자는 모두 187명에 이른다. 2016년 30명에서 2019년 20명으로 줄다가 2020년 42명으로 다시 증가했다. 1년 사이에 110% 증가한 셈이다. 이는 해양경찰청 단속에 국한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실제 밀입국자 규모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밀입국자 단속률 110% 증가
밀입국자가 늘어난 것은 코로나19의 영향과 무관치 않다. 감염 우려로 인해 출입국 규제가 이전보다 한층 강화되자 기를 쓰고 입국하려는 이들의 수법이 다양하게 진화하는 것. 밀입국자들의 출신 국가도 중국에서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러시아 등으로 다양해졌다. 해양경찰청 관계자는 “이들의 배후에는 어김없이 밀입국 알선 조직이 있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밀입국 범죄가 증가한 원인으로 ‘경제적 이득과 돈벌이, 허술한 보안 체계’를 들었다. 노호래 군산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한국은 중국과 동남아에 비해 임금 수준이 2배 이상 높고, 거주 여건과 교육 환경이 우수하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본국의 경제 상황에 대한 불만과 사회 안정을 이룬 나라로 이주하고 싶은 욕망이 증가하면서 높은 임금과 더 나은 환경을 좇아 밀입국을 선택한다”며 “우리 사회에 배금주의가 만연한 가운데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한탕’을 노리고 밀입국 희망자를 모집하는 밀입국 알선 조직이 활개치고 있다. 이와 함께 허술한 보안 체계도 밀입국자 증가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밀입국 알선 조직의 조직화·체계화·전문화·국제화
밀입국은 내·외국인이 입국하는 출입국항에서 담당 공무원의 입국심사를 받지 않고 몰래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행위를 말한다. 현행 출입국관리법 제93조 제3항은 입국심사를 받지 않고 대한민국에 입국하는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불법으로 입국한 사람을 국내에서 은닉 또는 도피하도록 돕거나 그러한 목적으로 브로커를 알선해 주면 출입국관리법 제93조 제2항 위반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강도도 세다.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그렇다면 밀입국 알선 조직은 어떤 방식으로 밀입국 희망자를 모집하고 이들을 몰래 한국에 데려다줄까. 밀입국 알선 조직원들은 점조직 형태로 움직인다. 수사기관의 전언에 따르면 밀입국 알선 조직단은 중국 또는 동남아의 현지 모집책, 국내 조력자 조직과 연결된 해상 밀입국자 모집책, 밀입국 수송책, 국내 운송 및 조력책 등으로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국내 밀입국 모집책과 밀입국자 모두 철저하게 신분을 숨기며 페이스북이나 텔레그램 위챗, 큐큐 같은 모바일 메신저로만 연락을 주고받는다. 현지 모집책은 입국 알선을 원하는 의뢰인이 나타날 때마다 국내 모집책에게 연락하고, 수송책은 밀입국 방법과 지역 특성을 감안해 해당 지역을 순회하며 조력자들을 모집한다. 국내 모집책은 입국 희망자의 개인정보를 건네받아 밀입국에 필요한 적절한 조치를 취한 뒤 ‘작업’에 나선다.
밀입국 알선 조직이 요즘 가장 즐겨 이용하는 수법은 선원으로 위장해 항구나 조선소에 정박한 후 몰래 들어오는 것. 예를 들어 부산항의 경우 서해5도나 강화도 해안가와 달리 후방 지역이라 경계병이 없는 데다 수많은 선박이 드나드는 곳이라 항만 경계가 허술한 틈을 타 몰래 들어온다. 밀입국 알선 조직의 작업 방식은 상당히 과감한 편이다. 현지 모집책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또는 커뮤니티에 “한국에 정기적으로 입항하는 화물선에 선원으로 승선하면 쉽게 한국에 밀입국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려 밀입국 희망자를 유혹한다.
한국 입항하는 화물선원으로 취업 후 밀입국
국내 모집책이 밀입국자와 접촉해 가짜 선원수첩을 만들어 전달하면 현지 알선책은 밀입국자들을 대상으로 국내에 들어와 의심을 사지 않도록 선원교육을 실시한다. 만일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선박의 선장이나 간부에게 뇌물을 주고 밀입국자를 정상적인 선원 신분으로 위장한다. 밀입국자가 국내 항에 무사히 도착하면 국내 모집책과 그 일행은 그 자리에서 밀입국자로부터 사례금을 받는다. 이런 방식으로 1명을 밀입국시키고 받는 돈은 적게는 120만 원, 많게는 250만 원 정도. 밀입국자에게 가짜 선원수첩, 교통수단, 은신처 등을 제공하는 것은 ‘별도 옵션’이다.올 5월 이 같은 수법으로 국내 밀입국에 성공한 베트남인 A씨의 경우를 보자. 올 4월 A씨는 현지 알선책의 주선으로 베트남 호찌민시 소재 사이공 항구에서 인도네시아를 거쳐 인천항에 정기 입항하는 파나마 선적 화물선의 기관실 보조 선원으로 위장 취업했다. 그 대가로 A씨가 알선책에게 지급한 사례금은 베트남화 2500만 동(한화 약 125만 원)이었다. A씨를 실은 화물선이 인천내항 제3부두에 닿은 때는 5월 20일. A씨는 화물선에 적재돼 있던 곡물 하역 작업이 시작되자 근무자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화물선 갑판 난간에 설치된 계단을 통해 부두 선석으로 내려갔다. 제3부두 외곽 경계구역까지 약 1㎞ 걸어서 이동한 다음, 인근 보안경계 울타리 철조망을 손으로 잡고 올라가 넘어가는 수법으로 국내에 들어올 수 있었다. A씨는 이미 국내에 밀입국해 불법체류 중이던 베트남인 B씨의 도움을 받아 충남 천안시 한 회사에 일자리를 구하고 기숙사에서 숨어 지냈다.
A씨의 밀입국은 성공하는 듯했지만 결국 CCTV에 찍힌 그의 행적을 수상하게 여긴 인천내항 관리자의 신고로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A씨는 8월 9일 인천지방법원에서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조력자 B씨(베트남인)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A씨, B씨 변호를 맡은 오재혁 국선변호사(법률사무소 진목)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하늘길이 막힌 데다 저렴한 금액으로도 밀입국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선원으로 위장 취업하는 수법이 성행하고 있다. 타인의 여권이나 타국 여권을 위조해 밀입국하게 되면 지불하는 돈은 통상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 내외”라고 말했다.
中 산둥성에서 태안군까지 350㎞, 소형 보트로 몰래 상륙
최근에는 고무보트나 레저보트 등 소형 보트를 이용해 해상 밀입국하는 중국인이 크게 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제주도 무사증·무비자 입국이 불가능해지자 벌어진 일이다. 이들은 주로 산둥성의 웨이하이시 항구를 출발해 충남 태안군에 상륙하는 ‘태안·군산’항의 최단거리 이동 경로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웨이하이시 항구에서 태안반도까지는 불과 350㎞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 중국인의 경우 소형 보트를 이용한 밀입국 방식이 압도적으로 많다.4월 19일에는 산둥성 웨이하이시 일대에서 활동하던 중국인 5명이 인터넷에서 미리 주문한 고무보트에 오른 뒤 스마트폰 영상통화를 통해 한국 조력자로부터 고무보트 조정 방법을 배워 밀입국하다 해양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해양경찰청 소속 한 수사관은 “30시간가량 고무보트를 운전하면 웨이하이시에서 충남 태안군 의항해수욕장 인근 해안에 도달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배 크기가 큰 어선이나 상선을 이용한 밀입국이 군경의 감시망을 피하기 어렵게 되자 소형 보트를 타고 목숨을 건 밀입국을 감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중국 조선족이 해상 밀입국 범죄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최근엔 조선족은 감소하는 반면, 중국 한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조선족의 경우 밀집 지역인 옌벤에서 서해에 가까운 산둥성까지 오는데 이동에 어려움이 커 해상 밀입국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 반면 서해에 인접한 중국 지역 거주 한족은 그간의 국내 불법체류 경험을 통해 한국어를 구사하는 등 국내 사정에 밝아 불법 취업과 생활에 유리한 측면이 많다는 것. 심지어 국내에는 이미 불법체류 한족 네트워크가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어 온라인 커뮤니티와 메신저 위챗과 큐큐를 통해 밀입국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기 편하다는 것도 한족 밀입국이 느는 또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지난해 밀입국자 단속률이 이전 해보다 110% 증가했다. 2020년 9월 부산 남외항에서 밀입국을 시도하는 중국인 선원 2명이 검거되는 모습. [부산해양경찰서 제공]
“해안경비 강화하고 밀입국 침투 경로 차단해야”
밀입국 알선 범죄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밀입국 첩보 수집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경찰대 부설 치안정책연구소의 학술지 ‘치안정책연구’에 게재된 논문 ‘중국인 해상 밀입국 범죄의 현황과 대책’은 “해상 밀입국의 경우 해양경찰이 해안가 지역에 체류하는 중국인의 신상과 정보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요청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면, 이들에 대한 첩보 수집 활동 강화를 통해 밀입국 모집책은 물론 그들에게 지시를 받아 지역을 탐문하는 중국인 조력자까지 단속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노호래 군산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밀입국 범죄자를 검거하기 위해 수사나 추적을 하기에 앞서 해안경비를 철저히 해 밀입국 침투 경로를 차단하고 예방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코리안 드림’에 부푼 밀입국 희망자들과 이들의 심리를 악용하는 밀입국 알선 조직단, 허술한 해상경비와 단발성 검거 작전이 개선되지 않는 한 망망대해를 건너오는 밀입국 범죄 물결을 막을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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