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고객 데이터 모으기에 혈안
로봇, 백화점 등 다양한 방법으로 데이터 수집 중
데이터 바탕으로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 만들어
필요한 서비스 내놓으니 아마존 떠날 수 없어
AWS처럼 회사 내 좋은 서비스는 밖에도 판매
쿠팡은 일찌감치 아마존 벤치마킹 나서
일각에서는 ‘데이터를 이용한 독점’이란 지적도
아마존이 9월 24일 공개한 가정용 로봇 아스트로. [아마존 홈페이지]
“나도 보고 싶단다. 손에 든 장난감 멋진걸.”
“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이에요. 보세요. 부웅.”
로봇 화면을 바라보며 영상통화를 하던 손녀가 “아스트로, 따라와” 하자 바퀴가 스르륵 움직인다. 로봇은 장난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랑하는 손녀를 뒤따라가며 그 모습을 화면에 담고, 할머니는 이를 바라보며 흐뭇해한다.
9월 29일(현지 시각) 아마존이 공개한 가정용 로봇 ‘아스트로’ 소개 영상에 담긴 내용이다. 높이 44cm, 강아지와 비슷한 크기인 이 로봇은 말을 알아듣고 스스로 움직이는 로봇 비서다. 음료수 캔, 맥주병 같은 작은 물건을 운반할 수 있으며 내장 카메라를 통해 집 밖에서 반려동물이나 가스 불 상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마존 자회사인 ‘링’의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하면 외출 시 자동으로 집을 순찰하는 보안 카메라가 된다.
다양한 기능을 갖췄지만 시장 반응이 썩 좋지만은 않다. 로봇이 집이라는 개인 공간을 돌아다니며 수시로 영상 정보를 수집하는 게 껄끄럽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미디어 바이스(Vice)는 아마존의 내부 문서를 입수해 “아스트로 개발자들 역시 사생활 감시 문제를 우려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들 중 한 명은 이를 ‘프라이버시 악몽’이라고 표현했다.
데이터로 고객도 모르는 필요 찾아내
아마존은 프라이버시 위험을 감수하면서 왜 굳이 가정용 로봇을 출시했을까. 업계 전문가들은 집착에 가까운 아마존의 고객 데이터 중심의 경영 철학이 그 배경이라고 분석한다. 아마존은 고객 가치를 개선하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조사하고, 고객이 원하는 새로운 기능 또는 서비스를 도입하는 ‘폐쇄형 플라이휠(선순환 고리)’ 전략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아마존 클라우드 제품인 ‘AWS’가 갖춘 기능의 90%는 고객 경험 개선을 위해 고객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더 놀라운 건 나머지 10%는 고객이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설명할 수 없거나 설명하지 않은 기능이라는 점이다. 아마존은 “고객과 충분히 가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고객을 관찰하고 데이터를 수집하기 때문에 고객보다 고객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마존이 집이라는 공간, 오프라인 환경에서 고객을 면밀하게 관찰하며 많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가정용 로봇 사업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영감을 얻고, 고객 경험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 경험 개선은 ‘아마존 프라임’ 생태계 속에 고객을 계속 묶어두는 자물쇠(록인·lock-in) 효과도 낳는다. 아마존은 중심 사업 영역인 이커머스(ecommerce·전자상거래) 부문에서 고객이 더 빠른 배송을 원한다는 데 착안,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이하 프라임)를 도입했다. 프라임은 아마존이 제공하는 유료 구독 서비스로 아마존에서 구매하는 품목 일부를 더 빠르고 저렴하게 배송해 주는 서비스다. 여기에 프라임 비디오, 뮤직,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 서비스도 추가했다. 프라임을 구독하는 소비자는 콘텐츠 서비스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고객 이탈 막는 콘텐츠 서비스
아마존의 고객관리 방법인 ‘폐쇄형 자립 플라이휠’ 모델을 도식화한 그림. [아마존AWS 홈페이지]
아마존의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쿠팡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쿠팡은 아마존의 전략을 그대로 벤치마킹, 성공을 이뤄냈다. 구독형 빠른 배송 서비스 ‘로켓와우’를 앞세워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트래픽과 사용자, 판매자 규모를 확대해 다시 고객 만족도를 끌어올렸다. 로켓와우 회원을 대상으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쿠팡 플레이’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 고객 이탈 방지를 위한 전략도 동일하게 추진하고 있다.
데이터 기반 경영과 고객 중심주의는 신사업 개발에도 큰 영향을 준다. 회사 내부에서 필요해 만든 기능, 서비스도 내부 고객(직원, 관계사) 만족이라는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AWS(Amazon Web Services)는 아마존닷컴의 늘어난 트래픽과 주문량을 감당하기 위해 구축한 내부 시스템에서 착안, 전자상거래 분야 다른 기업에 이 시스템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발전한 대표적 사례다.
AWS는 2006년 데이터 스토리지(저장) 서비스와 컴퓨팅(전산)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이후 매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은 온라인상의 서버를 통해 데이터 저장, 네트워크, 콘텐츠 사용 등 IT 관련 서비스 전반을 돕는 서비스다. 쉽게 말하면 AWS 서비스를 이용하면 아마존의 데이터, 고객관리 등 다양한 전산 기능을 쓸 수 있게 된다.
이 서비스는 세계 비즈니스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2020년 기준 AWS의 글로벌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점유율은 44.6%로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지난 2분기 매출 기준으로 AWS 매출은 아마존 전체 매출의 12%를 차지했으며 매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다. 올해 3분기부터는 AWS CEO였던 앤디 재시가 2선으로 물러난 제프 베이조스의 뒤를 이어 아마존 전체 CEO가 됐다.
전산 시스템도 외부에 판매
제프 베이조스 역시 내부 서비스를 외부 사용자, 고객에게 판매하는 전략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아마존에 근무했던 직원에 따르면 제프 베이조스는 예외 없이 모든 서비스 인터페이스를 처음부터 외부에 판매할 수 있도록 설계하라고 요구해 왔다. 이런 전략은 아마존이 자연스럽게 인접 비즈니스로 확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아마존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먼저 실시했다가 외부로 확장한 원격 의료 서비스 ‘아마존 케어(Amazon Care)’가 대표적 사례다. AI 및 헬스케어 업계 전문가인 김병학 아카사(AKASA) AI 테크놀로지 리드는 “헬스케어 분야에서 구글이 고전하는 것과 달리 아마존은 영향력을 확대하며 선전하고 있다”며 “기술적으로는 구글이 앞서겠지만, 내부 서비스 외부화 전략 등은 아마존의 확실한 강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근 아마존이 준비 중인 백화점 형태의 오프라인 매장 역시 고객 데이터 확보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아마존은 내년에 3만 스퀘어피트(약 2787㎡) 규모의 소형 백화점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와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오픈할 예정이다.
아마존은 이 백화점에서 의류를 판매할 계획이다. 마음에 드는 옷의 QR 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한 후 탈의실에 가면 매장 직원이 이를 모아 탈의실에 가져다주는 서비스도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탈의실 내부에 마련된 터치스크린에는 고객이 고른 품목에 기반한 추천 의류가 표시되며 탈의실을 벗어나지 않고도 버튼으로 추천 항목을 눌러 더 많은 옷을 입어볼 수 있다.
매장을 활용하면 온라인 쇼핑할 때와는 다른 고객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고객이 직접 옷감을 만져보고 육안으로 확인한 후 마음에 들어 하는 상품은 어떤 것인지, 매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상품을 전시했을 때 더 주목을 받는지 등 다양한 오프라인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
제2의 AWS, ‘아마존 고’
아마존이 운영 중인 무인 매장 ‘아마존 고(Amazon Go)’는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아마존 고는 단순한 무인 매장이 아니라 새로운 ‘판매 시스템’이다. 아마존 고는 천장에 설치된 수백 대의 카메라로 소비자 동선과 동작을 분석, 매장 이탈 시 구매 품목을 자동 결제한다. 현재 아마존은 시애틀,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지에 25개 이상 아마존 고를 운영하고 있다.아마존 고도 고객 경험 개선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AI 기술, 센서, 카메라를 활용해 고객을 줄 세우지 않고 물건을 판매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아마존은 2016년 12월 미국 시애틀 아마존 본사 1층에 아마존 고를 처음 오픈,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하다 2018년부터 일반에 공개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아마존 고의 잠재력이 AWS 못지않게 크다고 보고 있다. 다양한 고객 데이터를 획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계산 및 구매가 편리해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고, 무엇보다 ‘저스트 워크 아웃(Just Walk Out·그냥 걸어 나가기)’ 시스템 자체를 외부에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마존은 지난해 몇몇 리테일 업체와 아마존 고 무인 매장 시스템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아마존은 또 지난해 11월 처방약 온라인 판매 서비스인 ‘아마존 약국(Amazon Phramacy)’을 선보이는 등 헬스케어 분야에도 힘을 쏟고 있다. 고객이 온라인으로 자신의 약 복용 이력, 건강 상태, 알레르기 유무 등 관련 정보를 등록하고, 의사 처방전을 아마존에 전송한 뒤 지불 방법을 선택해 주문하면 처방약을 집으로 배송해 주는 서비스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아마존 고’ 매장. [아마존 유튜브 캡처]
아마존이 해결해야 할 문제, 독점
데이터, 고객, 록인에 집중하는 아마존의 성장 전략은 주가를 밀어 올린 배경이지만 위험 요인, 논란도 없지는 않다.가장 심각한 도전은 불공정 경쟁 논란이다. 아마존이 쓸어 담는 방대한 데이터가 독점 이슈로 이어지고 있다. 아마존이 사실상 경쟁사인 서드파티(외부) 업체의 판매 데이터를 활용해 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예를 들어 아마존닷컴에 입점한 서드파티 업체가 판매하는 티셔츠가 인기라면 이 데이터를 보고 있던 아마존이 자체 브랜드로 비슷한 디자인 티셔츠를 내놓는 식이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의회에서 작성한 반독점 보고서에는 아마존이 서드파티 셀러(판매자)의 판매 데이터를 남용해 유리한 지위를 점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지적돼 있다. 최근 미국 FTC(연방거래위원회)를 비롯한 미국 규제 기관들이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에 칼을 겨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배적인 온라인 플랫폼을 자연적인 독점으로 받아들이고 이들 기업을 공공기업처럼 다뤄야 한다는 접근도 있다. 공공 유틸리티 시스템이나 필수 설비 등을 맡겨 플랫폼의 힘 남용을 제한한다는 개념이다. 다만 이런 논의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마존의 경우 과거 독점 기업과 달리 고객 편익을 계속 높여왔기 때문에 기존의 독점 잣대로 규제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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