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호

13년 표류 여수 개발, 또 좌초 위험에 처한 전말

韓 기업 두바이에 레지던스 짓는 시대에 여수는 예외?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1-10-2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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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도 개발 판 바꾼 미래에셋의 등장

    • 세계적 관광 휴양지 조성 청사진 호평

    • 여수시의회 타워형 레지던스 강력 반대

    • 여수시와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청은 찬성

    • 공정위까지 나서자 미래에셋 “사업 전면 재검토”

    2020년 6월 11일 전남 여수 경도 개발부지에서 호텔, 콘도, 해상케이블카 등을 짓는 해양관광단지 착공식이 열렸다. 김영록 전남지사(왼쪽에서 네 번째),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왼쪽에서 다섯 번째) 등이 관계자들과 함께 시삽식을 하고 있다.

    2020년 6월 11일 전남 여수 경도 개발부지에서 호텔, 콘도, 해상케이블카 등을 짓는 해양관광단지 착공식이 열렸다. 김영록 전남지사(왼쪽에서 네 번째),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왼쪽에서 다섯 번째) 등이 관계자들과 함께 시삽식을 하고 있다.

    2007년 11월 26일(현지 시간)은 여수시 발전에 변곡점으로 기록될 날이다. 이날 국제박람회기구(BIE)는 프랑스 파리 팔레 드 콩그레에서 열린 142차 BIE 총회에서 2012년 세계엑스포 개최지로 여수를 선정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여수는 이내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여수는 2002년 ‘2010년 세계엑스포 개최지’ 결정전에서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재수의 기쁨 끝에 얻은 성취니 온 시가지가 들썩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내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가 시작됐다. 2012년 여수 세계엑스포 개최를 전후로 고속철도와 고속도로가 놓이는 등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다. 경도를 포함해 5곳에 골프장 건설이 추진됐다. 전남개발공사는 여수 세계엑스포를 앞두고 관광 기반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2008년 여수 경도 해양관광단지를 개발에 착수했다. 여기까지는 장밋빛 스토리다.

    여수 세계엑스포가 끝나고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여수 세계 박람회장은 사실상 버려진 상태다. 이렇다 할 활용도를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기획재정부는 막대한 부채를 가진 여수 세계 박람회장을 놓고 수차례 통째 매각을 시도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경도 개발도 애당초 전남개발공사가 총사업비 약 1조5000억 원을 투자해 추진했던 사업이다. 하지만 곧 자금난이 닥치면서 민자 유치로 전환했다. 전남개발공사 측이 30여 개 국내 유수 리조트 기업 및 대기업을 찾았지만 투자를 유치하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윈-윈’ 게임에서 레지던스 논란으로

    이후 개발 사업은 표류 국면에 접어든다. 그러다 2016년 중국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며 다시 매각이 진행됐다. 여수 안팎에서는 중국 기업이 투자 이후 분양 수익만 챙기거나 투자 중단 가능성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또 분양권을 사놓고 막상 여수는 찾지 않으면 유령도시가 될 것이라는 이유로 시민의 항의가 거셌다.



    2016년 7월 전남개발공사는 이미 준공된 1단계 사업 자산을 포함해 경도 해양관광단지 사업권을 경쟁 입찰을 통해 매각하기로 했다. 뜻밖에도 미래에셋이 입찰 참여 의사를 밝히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중국 자본의 두 업체와 미래에셋컨소시엄이 입찰 경쟁에 참여했고, 같은 해 8월 입찰 결과 미래에셋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곧 경도를 세계적 관광 휴양지로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이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이후 미래에셋은 남해안의 다도해를 개발해 국내 관광산업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투자를 시작했다.

    여수 여론은 우호적이었다. 미래에셋이 우선협상대상자로 확정된 후 여수시청에는 “박현주 회장님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여수가 세계적 관광 휴양지가 되면 좀체 신성장동력을 못 찾고 있는 남해안권에 새로운 돌파구가 열린다. 그래서인지 이때까지도 민관 사이에 절묘한 ‘윈-윈(win-win)’ 게임이 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지난해 6월 11일 열린 착공식에서 “여수 경도를 최고의 퀄리티로, 창의적으로 개발해, 문화를 간직한 해양관광단지로 만들겠다”면서 “경도 개발에 따른 이익을 단 한 푼도 서울로 가져가지 않겠다. 개발 이익 전부를 여수에 재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미래에셋컨소시엄이 레지던스 건립을 추진하면서다. 관광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컨소시엄이 레지던스 건립에 나선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싱가포르 센토사섬(Sentosa)이 장기 체류형 숙박시설인 레지던스를 도입해 비수기 슬럼화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계획대로 되면 성수기와 비수기 간 매출 격차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다. 실제 센토사섬에는 1582세대의 레지던스가 있다.

    단기 숙박용 리조트와 호텔 및 장기 숙박을 위한 레지던스를 동시에 짓는 것은 세계적 트렌드로 꼽힌다. 쌍용건설은 두바이 팜 주메이라(Palm Jumeirah) 인공섬에 46층 초특급 호텔 3개 동과 37층 최고급 레지던스 3개 동을 시공하는 프로젝트에 나섰는데, 12월 말 준공 예정이다. 지난 4월 문을 연 글로벌호텔그룹 아코르의 SLS두바이는 254개의 호텔객실, 371개의 레지던스, 321개의 호텔아파트로 구성돼 있다. 롯데건설이 2023년 완공을 목표로 베트남 하노이에 2018년 착공한 롯데몰 하노이도 호텔과 레지던스를 같이 짓고 있다.

    여수 경도 해양관광단지가 개발될 경우의 조감도와 싱가포르 센토사섬(Sentosa) 조감도를 비교한 모습.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청, 구글 캡쳐]

    여수 경도 해양관광단지가 개발될 경우의 조감도와 싱가포르 센토사섬(Sentosa) 조감도를 비교한 모습.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청, 구글 캡쳐]

    여수시의회는 대체 왜?

    하지만 레지던스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점이 변수였다. 전라남도 건축경관심의위원회는 지난 4월 타워형 레지던스가 여수 국동항에서 바라보는 경도 경관을 해치고 위압감을 조성할 수 있다며 재검토를 의결했고, 7월 2일 재심의를 통해 조건부 의결했다. 그러면서 위원회는 대규모 레지던스가 경도 관광단지 경관을 훼손할 것이란 일각의 우려를 고려해 층수 및 규모를 축소할 것을 조건부로 제시했다.

    여수시의회는 타워형 레지던스 건설에 가장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여수시의회는 생활형 숙박시설이 경도 일대 경관 훼손은 물론 부동산 투기를 조장할 수 있다며 7월 임시회에서 경도 생활형 숙박시설 건립 철회 촉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또 9월 7일 임시회에서 경도 생활형 숙박시설 건립에 대해 국정감사와 감사원 공익감사 실시 촉구를 결의했다.

    정작 여수시는 경도 개발을 놓고 여수시의회와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권오봉 여수시장은 7월 1일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이 관광개발 사업 자체를 투기로 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장기 체류 관광 수요를 끌어오기 위해선 레지던스 설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9월 16일 여수시는 입장문 발표를 통해 시민 성원 및 협조를 당부했다. 여수시는 “관광산업은 우리 여수의 미래 먹거리이고,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라며 “시의회가 제기하는 레지던스 철회, 신월~경도 간 교량예산 감액, 감사원 감사, 국정감사 등이 진행되면 경도 개발은 무산 내지 상당 기간 지연된다”고 주장했다.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청(이하 경제자유구역청)도 여수시의회의 문제 제기에 선을 긋는 모습이다. 경제자유구역청은 타워형 레지던스가 비수기 관광객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본다. 개정된 건축법 시행령과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라 주택으로 사용이 불가해 투기 시설로 보기 어렵다는 게 경제자유구역청 측 견해다.

    시민사회 의견도 엇갈린다. 여수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여수항 일대 경관을 훼손하는 부동산 개발이라는 비판을 사고 있는 경도 레지던스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여수 대경도 발전협의회는 “반대를 위한 반대나 분열된 시민의식으로 원주민의 고통과 피해는 무시한 여론 형성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고, 여수관광발전 범시민운동본부는 “여수시의회가 경도 개발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공정위의 칼날, 미래에셋의 반론

    사태는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까지 튀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미래에셋의 경도 개발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자금 대출에 대해 현장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계열사 자금을 끌어온 것이 적법한지 보자는 취지다.

    얼개는 이렇다. 미래에셋컨설팅 자회사인 YKD는 2016년 전남개발공사로부터 경도 개발에 대한 시행권 및 토지 소유권을 위임받아 2020년 사업을 시작했다. YKD는 경도에 생활숙박시설을 시행할 특수목적법인 GRD를 설립했고, 미래에셋증권과 생명은 GRD에 대출을 실행했다. 공정위는 YKD가 자본시장법상 계열사인 미래에셋증권 등으로부터 대출을 받지 못하자 GRD를 설립해 편법으로 자금을 조달받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

    이에 미래에셋 측은 “편법이 아니다”라고 강변한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사전에 태평양, 율촌, 광장, 지평 등 법무법인 4곳의 법률 검토를 거쳐 GRD를 비(非)계열회사로 판정한 만큼 법적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통상의 거래 범위를 초과해 거래하거나 지배력을 행사했다’는 증거가 있을 경우 공정위는 YKD를 계열사로 강제 지정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에셋 측은 공정위의 억측이라는 입장이다. GRD는 YKD가 보유한 의결권이 20.5%에 불과하고, BSG(시행사)가 출자금과 의결권 비율이 가장 높아 YKD가 GRD를 독자적으로 지배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GRD 의결권은 YKD와 BSG 외에도 현대건설, 호반건설 등 시공사 및 분양대행사가 갖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현주 회장은 9월 회의에서 “여수시의회에 발목이 잡히고 계열사 부당대출 오해까지 받은 상황”이라면서 경도 해양관광단지 개발 사업에 대한 전면 재검토 지시를 내렸다. 엑스포 이후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전남 지역경제에 재차 브레이크가 걸린 셈.

    경색 국면이 이어지면 해양관광단지 입지가 전격적으로 바뀔 가능성도 제기된다. 2019년 네이버가 경기 용인에 지으려던 ‘제2데이터센터’는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그러자 60개 지방자치단체와 민간·개인사업자까지 포함해 총 136개 관계 단체가 유치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용인까지 다시 뛰어들었지만 결국 세종시가 유치하게 된다.

    개발 찬성의 논거, 지역경제

    전남은 지역 재정자립도가 전국 최하위권에 속한다. 22개 시·군의 재정자립도는 14.1%에 불과하다. 경제자유구역청에 따르면 경도 해양관광단지가 개장하면 여수에 매년 외국인 관광객 82만 명이 찾아오고 생산유발효과 2조 2000억 원, 고용 창출 1만4000명 등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한다. 분석대로라면 지역경제에는 숨통이 트인다. 이는 경도 개발 찬성론의 가장 강력한 논거이기도 하다.

    전남 지역 경제계 인사는 “여수 경도 개발은 전남 재정 자립을 위한 도약으로 지역사회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며 “13년 전 시작된 여수 경도 개발 기회가 있을 때 잡지 못한다면 다시 지독한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또 “지속성이 있는 지역사회 인프라 개발인 만큼 철저한 감시와 토론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과도한 태클로 선수를 퇴장시키는 일은 부디 없어야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수경도개발 #미래에셋 #박현주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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