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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과 민옹(閔翁), 어두운 도시의 산책자

[환상극장]

  • 윤채근 단국대 교수

박지원과 민옹(閔翁), 어두운 도시의 산책자

  • 윤채근 단국대 교수가 우리 고전에 기록된 서사를 현대 감성으로 각색한 짧은 이야기를 연재한다. 역사와 소설,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져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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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들거리며 흔들리는 호롱불을 훅 불어 끈 늙은 이야기꾼 민옹(閔翁)이 여닫이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갓 열여덟 살이 된 박지원은 그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검푸른 밤하늘을 수많은 별이 수놓고 있었다. 별은 아무런 위로도 될 수 없었지만 땅 위에 갇힌 삶을 어딘지 옹색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 어리석은 촌부가 보기엔, 다 마음이지요. 마음이 문제지요.”

말을 마친 민옹은 툇마루로 나가 앉아 곰방대를 꺼내 들었다. 부시로 부싯돌 치는 소리가 몇 번 나더니 폐를 거쳐 나온 희뿌연 연기가 바람을 타고 하늘로 피어올랐다. 그 모습을 아스라이 먼 별들과 겹쳐 보자니 참으로 장관이었다.

“연기가 참 장관이로군요! 민옹께선 원래 그리 낙천적이셨나요?”

지원의 물음에 대답 않은 민옹은 꾸준히 곰방대에 입을 가져다 댔다. 놋쇠그릇에 다 피운 담뱃재를 탕탕 턴 그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서며 비로소 대답했다.
“어디 본래 낙천적일 수 있었겠습니까? 반가에서 곱게 자라난 도련님은 아실 도리가 없는 그런 세상이 있습니다. 그 세상에서 살다 이리 됐지요.”



“어떤 세상인가요?”

곰방대로 다시 하늘을 가리키며 민옹이 대답했다.

“말하자면 저런 세상입니다.”

“저런 세상이라면 어떤 세상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아름답기만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구구절절 온갖 사연이 얽히고설켜 있는 그런 세상이지요.”

“민초들의 세상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도련님께서 보시기엔 그저 멀고 아름답기만 한 저 세상 속을 수도 없이 들락거리며 닳고 닳다 보니 이리 느긋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도련님도 그러셔야 합니다.”

“저도 그래야 하나요?”

고개를 끄덕인 민옹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가슴속 알 길 없는 울증 때문에 장안의 이야기꾼인 절 부르신 게 아니었습니까? 그 병증을 고치시려면 세상을 알아야 합니다. 제 말 뜻이 궁금하십니까?”
총명한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이는 지원을 향해 머리를 기울이며 민옹이 말했다.

“별을 그저 바라만보기만 해야 한다면 무척이나 외롭지 않겠습니까? 분명 존재하는 세상인데, 게다가 무척 아름다운데, 보는 게 전부라면 어떡합니까? 별은 그래서 쓸쓸함만 주는 법이지요. 끝내 알 길이 없으니 불안만 주는 것이지요. 도련님의 심한 불면증은 지나친 호기심 탓입니다!”

“호기심?”

“만사 아시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가서 닿을 길이 없으니 생긴 병입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보셔야 합니다. 그럼 멀리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다를 테지요. 어쩌면 생각과 달리 몹시 추악할 수도, 아니면 더 아름다울 수도 있지요. 그러다 결국엔 저처럼 느긋해지실 겁니다.”

夜行

찢어지게 가난한 부모 대신 보호자 역할을 해오던 지원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민옹의 야행 제안에 펄쩍 뛰며 반대했다. 특히 큰아버지의 만류가 극심하여 민옹을 당장 쫓아낼 기세였다.

“자네를 우리 집에 불러들인 건 조카의 병을 낫게 하려던 것이었지 세상 물정이나 빨리 가르치라는 뜻은 결코 아니었네. 잔말 말고 다른 기식할 집을 찾아보든가 고향인 남양 땅으로 썩 돌아가게!”

멍하니 방바닥만 바라보던 민옹이 조용히 속삭였다.

“넓디넓은 한양 땅에 이 한 몸 맡길 집이 어디 없겠습니까? 떠나지 못하겠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옵고, 조카 분이 지극히 총명한 데에 비해 겁이 너무 많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알고도 외면한다면 이는 세상 사람들을 위무하고 즐겁게 해줘야 할 이야기꾼의 바른 도리가 아니겠지요.”

민옹의 얼굴을 오래도록 노려보던 큰아버지는 노기가 조금 풀렸는지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 조카가 잠도 제대로 못자고 신열이 오르면서 몸이 부은 지 벌써 여러 달째일세. 약으로도 진정이 안 되니 자네가 긴긴 밤 말동무라도 돼주며 안정을 시키라는 것이었지, 함께 밤에 나돌아 다니며 한양 구경이나 시키라는 게 아니었어!”

천천히 자신의 무릎을 쓸며 민옹이 대답했다.

“조카 분의 울증과 불면증은 질병이 아닙니다. 그건 말하자면, 귀신을 무서워해 잠에 들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귀신을 무서워한다?”

“그렇습니다.”

“어떤 귀신을 무서워하는가? 설마 내 조카를 겁쟁이로 몰려는 건가?”

“아닙니다, 그건! 들어보십시오. 조카 분은 타고난 머리가 비상한데다 하루 종일 책에만 파묻혀 살아왔습니다. 암기하여 쌓은 지식이 어마어마하지요. 세상에 모르는 게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그건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일뿐이지요. 진짜 세상은 저 멀리 따로 있지 않습니까? 왕성한 호기심이 현실에서 채워지지 못하면 불안증이 생기는 법입니다. 조카 분이 귀신을 유달리 두려워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세상을 제대로 체험해보지 못해서 이를 두려워한다?”

“그렇지요! 사실 귀신도 직접 두 눈으로 보고나면 그리 겁이 나지 않습니다.”

“보긴 봤나?”

“아무렴요! 제가 그래서 이야기꾼이 돼 장안을 떠도는 것 아니겠습니까?”

잠시 한숨을 내쉰 큰아버지가 팔짱을 끼며 넌지시 물었다.

“둘이 야행을 한다 해도, 나라에 야금(夜禁)법이 엄연히 있는데 무슨 수로 한다는 건가?”

빙그레 미소 지은 민옹이 느긋한 태도로 대답했다.

“이번 사월초파일 다음 날에 나라님께서 능행을 가시지 않습니까? 어가 거둥 구경에 난리가 날 테니 모르긴 몰라도 그 이틀 동안은 야금이 해제될 겁니다.”

반송방을 나서다

육조로를 거쳐 운종가를 지나가는 어가 행렬이 차츰 흥인문 쪽으로 멀어지자 운집했던 군중들도 하나둘 제 갈 곳으로 흩어졌다. 구경을 마치고 반송방 집으로 돌아온 민옹과 지원은 오수에 들었다. 밤새도록 돌아다니려면 낮잠을 실컷 자둬야 했기 때문이다.

늦은 저녁을 먹은 두 사람은 지원의 큰어머니가 챙겨주는 육포와 과일을 괴나리봇짐에 챙겨 넣고 문 밖을 나섰다. 야동 골목을 돌아 미나리 밭을 유유히 지나쳐 서소문 성곽에 이르자 때마침 달이 떠올랐다. 허리춤에 종을 차고 등불을 든 순라꾼들이 둘을 발견하곤 천천히 다가와 말했다.

“오늘 야금은 없소만 그래도 일찍 귀가하시오. 숭례문 근처 왈짜패들 패악질이 부쩍 심한 건 알고들 계시겠지?”

성곽에 등을 기댄 채 곰방대를 물고 있던 민옹이 느긋하게 대꾸했다.

“내 비록 늙었고 이 도련님은 어리지만, 뭐 걱정일랑 마시오. 다 수가 있느니.”

순라청으로 돌아가도 딱히 할 일이 없던 순라꾼들은 민옹 옆에 앉으며 각자 곰방대를 빼들었다. 그 가운데 가장 연배가 높아 보이는 자가 물었다.

“딱 봐도 족히 환갑은 넘어 보이시는데, 무슨 똑 부러진 수라도 있으슈? 그 기술 저 좀 가르쳐주시구려!”

상대에게 부싯돌을 쳐 불을 붙여주며 민옹이 대답했다.

“내 이래 봬도 한때 수군으로 있으며 바다도 헤엄쳐 봤소. 에, 또 이인좌의 난 때는 무공을 세워 첨사직 제안을 받기도 했고. 성정이 놀길 좋아해 그만두고 세상을 떠돌았지. 남양 고을에 물려받은 땅이 있어 운 좋게 그렇게 살았소이다.”

“무예가 출중하시다? 혼인은 하셨수?”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뒤 곰방대를 빨아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민옹이 속삭였다.

“했지 뭐요. 자식들 다 장성해 일가를 이뤘고 아내는 오래전 병들어 죽었지. 그 후론 한양에 올라와 이야기꾼으로 살고 있소. 왜 기생들이 높으신 분 모시는 걸 천침이라 하지 않소? 베개 받쳐준단 뜻이거든. 난 시침을 하지. 말의 즐거움으로 잠자리를 모신다는 얘기요.”

고개를 끄덕인 나이 지긋한 순라꾼은 민옹과 그렇게 한참을 수다를 이어갔다. 멀리서 다음 순라패들이 든 등불이 보일 즈음 곰방대를 주섬주섬 챙긴 순라꾼들이 작별인사를 고하고 멀어져 갔다.

“수군이셨나요?”

지원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묻자 민옹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대답했다.

“다 지나간 일입니다. 뭐 그래도 왈짜패 서넛은 충분히 때려눕히니 걱정은 마십시오. 또한 정 안 되면 숭례문 패두인 째보가 저랑 친합니다. 한양의 밤은 제 것인 셈이랄까요.”

껄껄 웃으며 먼저 걸음을 옮기는 민옹 뒤를 지원이 서둘러 따라붙었다.

반교동의 밤

성균관 앞 반교동 주막거리는 야금 없는 틈을 타 술을 마시려는 유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주막 한 자리를 차지하고 탁주를 시킨 민옹이 앞에 앉은 지원에게 말했다.

“본래 유생이 이리 많지는 않습니다. 동소문으로 들어오는 행인이 주요 고객이지요. 그런데 이곳 고기 맛이 아주 일품입니다. 성균관에 들어갈 고기를 죄 이 동네에서 잡거든요.”

잡고기를 푹 고아 육수를 낸 소머리 국밥을 안주 삼아 민옹은 여러 잔을 거듭 들이켰다. 그러던 차에 옆 주막에서 큰 싸움이 났고 주변은 구경꾼들로 북적대기 시작했다. 구경꾼 무리 틈바귀에서 기웃대다 되돌아오던 주막 주인이 민옹을 알아보고 옆에 앉아 입을 열었는데 말투에 묘한 타령조가 섞여 있었다.

“구경 중엔 싸움 구경이 최고요, 그 가운데 윗길은 양반들 싸우는 모습이라! 봄부터 어린 유생들이 저리 싸워주니 올해 장사도 풍년이 들겄네그랴.”

곰방대를 꺼내 들고 담뱃잎이 든 쌈지를 풀어헤치던 민옹이 물었다.

“유생들이 왜 싸운답니까?”

혀를 몇 번 끌끌 찬 주인이 지원 쪽을 힐끔 쳐다보고 말했다.

“면신례라고 들어보셨수?”

불이 붙은 곰방대를 입에 대며 민옹이 대답했다.

“관직에 막 오른 신입을 신귀라 하고, 그 신귀를 선배들이 다루는 일을 면신례라 하잖소?”

“그렇지! 유생들끼리 그 면신례를 저쪽 집에서 술로 했답디다. 그러다 벌주를 왕창 들이켠 신귀가 엄청 취해 선배들한테 대들었다지 뭐요?”

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된 주막집 쪽을 바라보던 지원이 물었다.

“한데 이상하군요. 유생이라면 성균관생일 텐데, 아직 관직에 오르려면 한참 먼 자들이 어찌 벌써 면신례를 하는 건가요?”

한바탕 구성지게 웃어젖힌 주인이 술상에 손을 짚고 말했다.

“순진한 반가 도련님이시로군! 세상 물정 그리 모르시는 걸 보아하니! 요즘 성균관에 들어가는 유생들은 대부분 뒷배 든든한 집안 자제들입니다. 과거라고 해봐야 그냥 예의상 쳐주는 것이지, 누가 진짜 공부라는 걸 합니까? 말인즉슨, 저들에겐 성균관 들어간 게 관직에 오른 거랑 진배없다, 뭐 그런 말씀이올시다!”

지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민옹이 주인에게 물었다.

“요즘도 성균관 들어가길 기다리며 반교동에 죽치고 사는 선비들이 많소?”

“어디 많다뿐이겠습니까? 자리 나길 하릴없이 기다리면서 여기저기 기식하며 세월을 보냅디다. 그러나 그게 어디 실력만으로 됩니까? 부모를 잘 만나야지 뭐!”

어느덧 싸움이 진정되자 사람들도 제각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피투성이가 된 유생들은 서로 얼싸안고 다른 술집을 찾아 비틀대며 걸었다. 그들은 사방에 대고 ‘이리 오너라’를 연발했는데 정승이나 판서 같은 위엄이 넘치고 또 넘쳐났다.

“이제 일어나실까요? 배오개 장터로 가십시다.”

민옹이 지원의 팔을 잡으며 속삭였다.

배오개 장터

“시전 골목은 이렇게 깨끗합니다. 파는 물건들도 고가품이지요.”

종묘 돌담길을 따라 걷다가 시전 쪽으로 들어선 민옹이 지원에게 속삭였다.

온갖 장신구와 포목을 다루는 점포가 즐비하게 늘어선 시전은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밤나들이에 나선 한양 대갓집 자제들로 붐비고 있었다. 골동과 서화를 진열한 한 큰 상점 앞에서 멈춘 민옹이 다시 말했다.

“청나라 연경에 가면 이보다 열 배나 큰 골동 상점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더군요. 그곳을 유리창이라고 부른답니다. 도련님께서도 나중에 꼭 가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얼마나 넓고도 큽니까? 책도 읽으시되 세상 돌아가는 것 보는 것도 빼먹으시면 안 되지요.”

민옹은 지원을 이끌고 흥인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봐도 시전과 달리 어수선한 분위기인 난전 장터가 점점 가까워졌다. 야금이 있었다면 벌써 한적했을 상점들은 여전히 활기를 띠고 있었는데, 특히 먹을거리 파는 골목이 그러했다. 민옹은 부침개와 전을 파는 점포 하나를 골라 들어섰다.

“나라에서 관리해 주는 시전과 달리 이런 난전 바닥은 상인들이 스스로 물건 값에 관한 법령을 만듭니다. 물가를 조절하는 평시서 관리들도 그걸 또 존중해 주지요. 겉으론 난장판이지만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어 톱니바퀴처럼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또한 백성들의 삶의 지혜 아니겠습니까?”

둘은 전 몇 개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배오개 장터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어느덧 시장의 끄트머리에 이르자 민옹이 남산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 훈련원이 나옵니다. 죄수들을 참수하는 무서운 곳이지요. 거기서 더 남산을 향해 올라가면 무관들이 무예를 익히는 예장입니다. 젊은 시절 제가 노닐던 곳입니다. 자 이제 운종가로 가보실까요?”

운종가

운종가로 들어서자 일반 상점들은 대부분 이미 문을 닫았고 붉은 등불을 내건 주루들만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주루 앞에는 멋들어진 무관 복장을 한 무예별감들과 대궐에서 일하는 다양한 하급 관리들이 장안의 한량 패거리와 뒤섞여 줄을 서고 있었다. 이름난 기녀를 옆에 끼고 술 한 잔 기울여보려는 지극정성이었다.

대열 옆 긴 평상에는 딱 봐도 파락호처럼 보이는 젊은 유생 세 명이 갓도 벗겨진 채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며 잠들어 있었다. 민옹이 그 옆으로 다가가 흔들어 깨워봤지만 종무소식이었다. 줄을 서고 있던 사내 한 명이 그 모습을 보더니 민옹을 향해 말했다.

“그냥 놔두시오, 영감! 그 녀석들 돈도 없이 술 먹다가 쫓겨난 자들이요.”

입맛을 쩍 다신 민옹이 뒷짐을 지며 대답했다.

“그래도 밤이 아직은 찬데, 이리 두면 되겠소?”

그러자 사내가 한 발 내디디며 소리 높여 대꾸했다.

“좌포청 포졸들이 곧 와서 데려갈 테니 염려 붙들어 매시오.”

상대를 빤히 쳐다보던 민옹이 다시 물었다.

“그걸 그쪽은 어찌 아시오? 포졸들이 안 오면 이들은 어찌 되겠소?”

사내가 이번엔 무리에서 벗어나 자기 몸 전체를 드러내며 말했다.

“내가 좌포청 종사관이요! 자 내 행색을 잘 보시구려. 이제 아시겠소? 아 물론 이 녀석들 잡으러 왔다가, 기왕 온 김에 한잔 하려고 그러는 거요. 데려온 포졸들을 다시 보내 숙직 중인 포교들을 오게 했으니 안심해도 되오.”

민옹 옆으로 다가와 선 지원이 종사관에게 물었다.

“종사관이시라면 품계도 꽤 높으시고 군영 소속이실 텐데 어찌 좌포청 일을 하십니까?”

당황한 상대가 지원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낮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물론 어영청 소속이지. 근데 그게 뭐? 내가 무과를 건너뛰고 아버님 덕에 어영청에 가봤는데, 나하고 잘 안 맞더라고. 속 편한 포청으로 왔지 뭐. 요즘 포청은 급료도 안 나오고 아주 엉망이야. 각자도생이라고. 그러니까 우리 포졸들에게 뭐라 하지 마셔. 다들 힘들어.”

말을 마친 사내는 자기 순서가 됐는지 허겁지겁 주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민옹이 한숨을 푹 내쉬고 지원에게 말했다.

“포졸들 올 때까지만 기다렸다 이젠 슬슬 반송방 쪽으로 가실까요?”

고마청

돈의문을 나와서 서소문 방향으로 걷던 민옹은 그제야 술기운이 도는지, 아니면 야행을 마치자 긴장이 풀려서인지 조금씩 비틀대기도 하고 콧노래를 흥얼대기도 했다. 그가 지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라님 능행이 좋기는 좋습니다. 한양성 사대문을 이 시각까지 열어주다니요. 덕분에 성 밖 사람들도 한양 밤 구경을 실컷 했지 뭡니까?”

민옹을 부축하며 지원이 말했다.

“저야말로 그렇습니다. 민옹께선 벌써 한양 곳곳을 마음껏 누벼보셨을 테니 새삼스러울 게 없으셨을 듯합니다.”

고개를 저은 민옹이 소리 높여 말했다.

“안 그렇습니다! 절대 그렇지가 않지요! 이 늙은이는 밤마다 누군가의 잠자리에 불려가 걸쭉한 농담을 하거나 재치 있는 입담을 자랑해 먹고살아온 걸요. 마음 편히 쏘다닌 건 오늘밤이 처음입니다. 다 도련님 덕분이지요.”

저만치 앞서가는 민옹을 따라잡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던 지원의 눈에 일렬로 지나가는 말 행렬이 들어왔다. 선두에 선 말몰이꾼은 정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이랴”라거나 “호이” 같은 소리를 내 뒤따르는 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면 줄로 묶여 있지도 않은 말들은 신기하게도 “히잉”하고 대꾸를 하며 바로 앞의 말 꼬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말들이 말을 참 잘 듣네요.”

지원이 웃으며 말하자 민옹이 대답했다.

“고마청 가는 말들입니다. 저 앞이 바로 팔도의 말을 관리하는 고마청 아닙니까? 좋은 말을 골라 궁궐로도 보내고 병마로도 보급하고 하지요. 한양에 나다니는 말 모두가 다 저기서 온 거랍니다. 우리 한번 가까이 가보십시다.”

두 사람은 고마청 근처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고 그곳을 드나드는 말들을 구경했다. 말들은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방귀를 뀌기도 하고 콧김을 내뿜으며 앞발을 거칠게 들어 올리기도 했다. 지원은 말에게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런 그에게 민옹이 천천히 속삭였다.

“말을 타고 싶으신가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던 지원이 마침내 대답했다.

“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넋을 놓고 바라보십니까?”

또다시 깊은 상념에 젖어들었던 지원이 입을 열었다.

“저 생명력이 보기 좋습니다. 튼튼하고 당당하며 남의 눈치 따윈 보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특히나 안장이 등에 얹히지 않은 말은 처음 보는데, 오늘밤 우리가 만난 어떤 사람보다 자기주장이 강해 보이는군요.”

길게 고개를 끄덕인 민옹이 바닥의 말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청나라에선 불 때는 재료로 쓰인다는 걸 아시는지요?”

고개를 저은 지원이 대답했다.

“똥에도 쓸모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건 몰랐습니다.”

“그러시군요. 똥이 우주고 우주가 똥이지요. 우리 모두는 거대한 천지가 눈 똥들인 겁니다.”

민옹이 다시 하늘을 가리켰다. 수많은 별이 예전처럼 빛나고 있었지만 지원은 이제 그것들이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았다. 그 각각에 다 사연이 있고 그 사연만큼 다양한 생명이 살고 있다면,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상이란 얼마나 좁은 곳이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지원은 처음으로 민옹을 앞질러 집을 향한 첫걸음을 뗐다.

* 이 작품은 박지원의 ‘민옹전’을 모티프로 창작됐다.


윤채근
● 1965년 충북 청주 출생
● 고려대 국어국문학 박사
●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 저서 : ‘소설적 주체, 그 탄생과 전변’ ‘한문소설과 욕망의 구조’ ‘신화가 된 천재들’ ‘논어 감각’ ‘매일같이 명심보감’ 등



신동아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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