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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게르니카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게르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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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으로 매우 유명하지만 개인에게는 그다지 큰 감동을 주지 못하는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제게는 괴테가 그렇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고전 중의 고전이라지만 제게는 큰 감흥이 없었습니다. 책으로 읽는 드라마라는 형식이 제겐 낯설고 솔직하게 말하면 그 내용 또한 지루했습니다. 아직 제 공부가 부족한 탓일까요? 아니면 감수성의 코드가 맞지 않는 것일까요. 저도 쉰 살을 넘으면 ‘파우스트’가 전하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지혜를 터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화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깊은 감동을 안겨주는 화가가 있는 반면, 널리 알려져 있더라도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는 화가도 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예술가를 평할 때 유명함이나 영향력보다 제 마음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내 마음 움직이지 못했던 피카소

이 기획에서 다룬 엘 그레코와 카라바조는 제게 상반된 감정을 안겨준 화가들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서양 회화를 대표하는 거장들입니다. 활동한 시기도 매너리즘과 바로크 시대이니 엇비슷합니다. 하지만 제가 두 화가로부터 받은 느낌은 달랐습니다. 엘 그레코의 경우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이 결합된 풍성한 감동을 안겨준 반면, 카라바조의 경우는 천재성이 드러나는 구도와 명암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 까닭은 기독교 신앙인으로서의 제 삶의 태도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엘 그레코의 성화에 담긴 신실한 믿음이 제 마음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感情移入)됐다면, 카라바조의 성화는 현란한 기교가 가득한 불편한 그림으로 느껴지곤 했습니다. 이렇듯 개인에 따라서 예술적 취향은 다양한 차이를 갖는 것으로 보입니다.



화가들 가운데 괴테와 비슷한 느낌을 안겨주는 이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입니다. 피카소는 지난 20세기에 활동한 화가의 대명사입니다. 그 어떤 화가도 피카소만큼 유명하지 않습니다. 앤디 워홀이 피카소에 비길 만하지만, 그는 피카소처럼 정통 화가의 길을 걸은 이는 아니었습니다.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입체주의 회화를 이끈 피카소는 30대에 이미 세계적 거장으로 꼽혔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그의 작품들이 왜 제겐 감동을 주지 못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가 너무 유명하고 그의 작품이 너무 자주 보인다는 게 이유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 더해 그의 그림이 해석하기 어려웠기 때문인 듯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화려했던 일생을 고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그의 작품만을 곰곰이 살펴보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기이하고 특이한 실험적 작품들로만 보이던 그의 그림들이 현실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새로운 기법과 메시지

피카소는 스페인 출신의 화가입니다. 서유럽의 변방인 스페인은 서양 회화사에서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 화가들인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 비록 뒤처졌을지 몰라도 매너리즘의 엘 그레코에서 바로크의 벨라스케스로, 그리고 낭만주의의 고야로 이어진 스페인 회화는 렘브란트와 고흐로 대표되는 네덜란드 회화 못지않게 서양 회화사에서 중요한 흐름을 이뤄왔습니다. 이러한 전통 아래 피카소라는 대가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지요.

피카소의 작품들을 보면 그는 19세기에 활동한 여느 화가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20세기적 개성을 보여줍니다. 대상을 아름답게 재현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기법을 창안하고 그에 입각해 새로운 메시지를 안겨주는 게 그의 회화입니다. 입체주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아비뇽의 처녀들(The Young Ladies of Avignon·1907)’은 이러한 그의 회화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젊은 시절에 피카소는 새로운 회화 양식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에 이르는 방식, 즉 대상을 재현하는 전통적 회화의 방법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먼저 주목할 것은 그 시점(視點)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점입니다.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인물들은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른쪽에 있는 두 여성의 얼굴은 색도, 모양도 왜곡돼 있습니다. 원근법도 고려하지 않은 피카소 특유의 화법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아비뇽의 처녀들’은 그렇게 놀랄 만한 작품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20세기 이 작품이 공개됐을 때 화가들과 대중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피카소가 전통 회화의 원칙을 무시한 채 매우 혁신적인 화풍을 선보였기 때문이지요. 도발적인 포즈로 감상자를 응시하는 캔버스 속 인물들은 전통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유쾌하지 않은 불편함을 안겨주었습니다.

피카소와 함께 입체주의를 주도한 브라크도 이 작품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대중에게 편안함보다는 불편함을 자각시키는 게 모더니즘 예술의 본령이지만, 이러한 모더니즘이 충분히 수용되기에는 다소 이른 시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피카소는 1907년 이 작품이 처음 전시된 이후 10년이 지나서야 대중에게 다시 공개했다고 합니다.


500명의 무고한 희생

이렇듯 피카소는 20세기 회화의 혁명을 이끈 리더인 동시에 대상을 재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고 이를 실천함으로써 다른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화가였습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피카소가 그림 그리기에만 관심을 가진 화가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는 등 뚜렷한 정치적 성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회 현실에 대한 피카소의 문제의식이 잘 반영된 작품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게르니카(Guernica·1937)’입니다.

피카소는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출신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지속된 스페인 왕정의 그림자가 고야의 그림에 반영돼 있듯, 피카소의 작품에도 스페인의 우울한 현대사가 담겨 있습니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파시스트 프랑코 정권을 고발하고 비판하기 위해 그린 작품입니다. 1937년 4월 프랑코 정권은 스페인 북부에 있는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를 융단 폭격하는 처참한 일을 자행했습니다. 당시 스페인은 우파 프랑코 정권과 좌파 인민전선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프랑코 정권은 바스크 점령을 위해 이런 악마와 같은 일을 벌였습니다. 이때 1500명의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게르니카 폭격이 충격을 준 것은 민간인들에게마저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피카소는 이 폭격에 큰 충격을 받았고 분노했습니다. ‘게르니카’는 다양한 인물과 상징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죽은 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여인부터 부러진 칼을 든 채 쓰러진 병사까지, 여기에 더해 일그러지고 절규하는 인물들과 멍한 모습의 황소, 광기 어린 말 등이 캔버스에 담겨 있습니다. 이 끔찍하고 절망스러운 모습들을 피카소는 어두운 무채색으로 표현함으로써 충격과 분노와 슬픔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려 했습니다.

‘게르니카’는 발표되자마자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파시스트 정권에 대한 피카소의 비판은 큰 공감을 일으켰습니다. 폭격을 리얼하게 묘사한 게 아니라 상징적으로 재현한 이 작품은 그 어떤 사실주의 회화보다도 폭력에 대한 분노와 전쟁에 대한 증오라는 공명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상의 폭력은 습관

폭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킨다는 점에서 그 어떤 형태라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전쟁은 폭력을 수반하기 때문에 그 어떤 형태라도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폭력과 전쟁이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원을 둘러싸고, 영토를 둘러싸고, 종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전쟁들을 지켜볼 때마다 저는 ‘게르니카’를 떠올리곤 합니다.

주목할 것은 전쟁만이 이러한 폭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일상 속에서도 폭력은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상담사인 저는 숨어 있는 폭력과 자주 맞닥뜨립니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노인학대, 성폭력 등을 포함해 갖가지 폭력에 희생당하는 이들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폭력은 습관입니다. 저는 폭력이 다소 거친 말이지만 배설과도 같은 행위라고 설명하곤 합니다. 폭력은 일어날 만했으니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폭력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화풀이 대상이 필요할 뿐입니다. 배설이 하고 싶은 사람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공격성을 쏟아내고 나서야 마음의 평화를 되찾기 때문이지요. 평화를 되찾은 가해자는 때로는 피해자에게 무릎 꿇고 사과를 하기도 하고, 울면서 자기 잘못을 고백하기도 하고, 또 자상하고 순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다고 그 폭력성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폭력은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폭력이 생기는 까닭이 자신이 피해자였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어리거나 약자였을 때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성적으로 폭력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잊히기 어려운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그 트라우마는 극복되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꽤 많은 경우에 자신이나 타인을 부정하는 우울증으로 발전하거나, 무고한 이들에게 자신의 분노를 풀어내는 폭력의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폭력은 순환된다는 말은 이런 현상을 의미합니다.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

전쟁과 같은 큰 폭력이든 가정폭력과 같은 작은 폭력이든 폭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행동입니다. 폭력 앞에서 생명은 말살됩니다. 따라서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폭력은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야 사라집니다. 폭력을 쓰는 강자들이 사용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약자의 입을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지금도 은밀한 곳에서는 이유 없이 폭행당하고 학대당하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첫 번째 일은 용기를 내어 이 부당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두움은 빛 앞에 드러나야만 소멸됩니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린 이유는 자신의 조국에서 행해진 야만적인 폭력의 문제를 전 세계에 고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불의한 폭력에 대한 용감한 고발과 폭력이 사라진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저는 ‘게르니카’에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멀게만 느껴지던 피카소의 그림들이 이제는 제게 중요한 의미를 주는 작품이 됐습니다.



박 상 희

● 1973년 서울 출생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
● 現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 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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