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호

[신평의 ‘풀피리’⑩] ‘이재명’이라는 뜨거운 감자

기득권에 맞선 투사와 ‘한국의 두테르테’ 사이

  • 신평 변호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lawshin@naver.com

    입력2020-10-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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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정치史, ‘총칼’ ‘구호’ ‘위선’으로 설명

    • 뒤로 사적이득 추구하는 진보귀족, 文정부에 횡행

    • 나훈아가 말한 위정자는 바로 ‘위선의 정치인들’

    • 민주당, 정의당, 민중당은 ‘껍데기 진보’

    • 反기득권자 이재명이야말로 순수한 진보

    • 인간의 보편적 욕망 죄악시 말아야 반감 줄어들 것

    • 측근 정치 폐해 갖고 있다는 지적도 있어

    *19대 대선 당시 신평 변호사(64·사법연수원 13기)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앙선대위에서 ‘공익제보 지원위원회’ 위원장과 ‘민주통합포럼’ 상임위원을 지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여권을 향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지식인의 본보기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경북 경주에서 농사를 짓고 시를 쓰며 산다.

    7월 27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 중인 이재명 경기지사.[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7월 27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 중인 이재명 경기지사.[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4·15 총선 얼마 전 민중당 간부로 있는 대학 후배가 찾아왔다. 그는 나에게 민중당을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그 후배를 아끼고, 그가 우리 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맡기를 바라지만 요청에 답할 수 없었다. 반외세·민족자주·민중해방과 같은 생경한 구호를 외치는 그들에게 설사 내가 조언을 한다 해도 통할 리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후배는 4·15 총선에서 민중당이 ‘3% 봉쇄조항’(*정당 득표율 3% 미만이면 비례대표 의석을 얻을 수 없도록 한 공직선거법 조항)을 뚫고 당선자를 낼 수 있다고 환하게 말했다. 나는 그것이 거의 불가능한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어렵게 먼 길을 온 후배의 기를 꺾어놓을 일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요즘 정의당의 변화가 반갑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9월 16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꺼낸 말이 변화를 향한 몸부림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는 586(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생) 세력을 겨냥해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막는 기득권자가 됐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싸우겠다던 그 뜨거운 심장이 어째서 이렇게 차갑게 식었느냐?”라고 일갈했다. 장 의원의 말에서 낡은 진보가 청산되고 새로운 진보가 등장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총칼, 구호, 위선

    최근 수십 년간의 한국 정치사를 다음과 같이 일별할 수 있다. 먼저 ‘총칼의 정치’가 있었다. 군부의 지지를 바탕 삼은 무력과 남북분단의 현실을 이용한 겁박으로 국민들을 통제하고 억누르던 시기였다. 다음으로 ‘구호의 정치’가 등장한다. 그들은 오직 민주화를 외치며 총칼 앞에서 장렬히 싸웠다. 국민들은 기꺼이 그들의 힘이 돼주었다. 

    저항세력이 권력을 쥔 후 차츰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탄압하던 세력과 거의 비슷하게 이권을 챙겼다. 김지하의 말처럼 룸살롱에 들러 고급술을 마신 뒤 거나하게 트림을 하는 것으로 사회적 위치를 과시했다. ‘구호의 정치’ 다음에 ‘위선의 정치’가 등장한 셈이다. ‘위선의 정치’ 시대에는 보수건 진보건 기득권자들이 ‘총칼의 정치’ 시대처럼 대놓고 나쁜 짓은 하지 않는다. 오직 양두구육(羊頭狗肉·양 머리에 개고기라는 뜻으로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음을 의미)의 행태를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진보귀족에 의한 ‘위선의 정치’가 횡행하고 있다. 진보귀족은 국민들에게 냇가의 ‘가붕게’(가재·붕어·게)로 만족하며 살라고 설교한다. 뒤로는 사적 이득을 추구하기에 급급하다. 자식들에게 높은 사회적 지위를 쥐어주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문서위조는 보통이고, 고등학생을 학술논문의 제1 저자로 끼워 넣는다. 부의 축적을 위해서도 대담하게 행동한다. 웬만한 사람은 엄두도 못 내는 사모펀드 운영에 ‘몰빵’한다. ‘죽창가’를 부르며 ‘반일’의 기치를 흔들지만, 돌아서선 일제에 의한 희생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등골을 빼먹는다. 

    가수 나훈아 씨가 말해 화제가 된, 사라져야 할 ‘위정자’는 바로 ‘위선의 정치인’을 의미한다. 이 몰염치의 위선과 위법을 두고서도 진보귀족들은 우리 사회가 허용하는 기준 내에서의 행위라고 강변한다. 이상하게도 진보귀족들을 결사옹위의 자세로 둘러싸며 기꺼이 순교의 다짐을 하는 ‘가붕게’ 혹은 ‘개돼지’들이 너무나 많다. 지극한 위선과 지극한 어리석음이 함께 합을 이루는 기묘한 형국이다.

    “정부 수립 후 다 그놈이 그놈이지요”

    ‘총칼의 정치’와 ‘구호의 정치’에 이은 ‘위선의 정치’가 종언을 고할 때가 됐다. 새로운 정치지형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위선의 정치’가 끝난 뒤 우리는 국민 누구나 공동체에서 공정한 대접을 받는 ‘공정의 정치’를 기대할 수 있다. 특권적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이 우선되는 정치 말이다. 이런 면에서 이재명이라는 지도자에게 희망을 본다. 

    그는 소년공 출신으로 죽음보다 더한 가난을 이겨내며 커온 사람이다. 지금까지 소위 극성스런 ‘문파’들의 압력으로 그가 가진 인간승리의 면이 많이 가려져 왔다. 차츰 대선일이 가까워지며 ‘문파’의 압력은 약해질 테고, 그러면 그가 가진 ‘스토리텔러’로서의 탁월한 면이 좀 더 명확하게 부각될 것이다. 

    그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할 때였다. 시장실로 가서 그와 잠깐 환담했다. 내가 말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와 비교해서 뭣이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어요. 여전히 그 인간이 그 인간 같아요.” 내 말에 그는 특유의 시원한 대답을 했다. “정부 수립 후 다 그놈이 그놈이지요. 보수건 진보건 똑같은 자들이 앞으로 나서서 매번 번갈아 가며 다 해 먹는 거지요.” 나는 스쳐 지나가듯 그가 무심코 한 이 통렬한 말을 듣고 그가 가진 반(反)기득권자로서의 진정성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와 만나고 나오자 차를 몰고 온 아내가 말했다. “이곳은 우리 대구·경북 지역 관공서와 너무나 분위기가 달라요. 성남시청에는 시민들이 마치 자기 집인 듯이 아주 편안하게 오고 가는 것이 느껴져요.” 그 시장에 어울리는 그 청사였다. 그는 자신이 만든 행정의 변화를 토대로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한국 사회를 보수와 진보의 틀로 나누고 바라보면, 초점이 맞지 않는 안경을 낀 마냥 눈이 흐릿하다. 기득권 세력과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국민들로 나누어보라. 한국사회의 여러 특이한 면이 뚜렷하게 보인다. 보수건 진보건 상층부에 있는 기득권자들은 속성이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그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자신이 가진 기득의 이익을 지키고 더 확대하려 설쳐댄다. 그 결과, 국가의 자원배분을 왜곡하고 법 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고친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교묘하게 위장하며 국민을 속여 왔다.

    말 그대로의 순수한 진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7월 30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7월 30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민중당이건 정의당이건 이 단순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엉뚱하게도 여전히 우리 현실에 맞지도 않는 설익은 구호를 외친다든지, 진보의 가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위선적인 진보귀족의 편에 서왔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졌다. 안이한 인식으로 현상에 안주하며 진보의 껍데기를 썼을 뿐이다. 

    이재명은 일찌감치 우리 사회의 모순과 허위를 온 몸으로 깨달으며 자라났다. 어렵게 변호사가 되자 기득권자의 탐욕에 의한 사회구조의 왜곡을 시정하기 위해 자신의 정치인생을 걸었다. 이런 이재명이야말로 말 그대로의 순수한 진보다. 민중당이나 정의당 혹은 더불어민주당은 ‘껍데기 진보’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이재명에 대한 찬사가 눈에 거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나 지으며 조용히 살아가는 나는 이미 현실의 이해관계는 떠난 사람이다. 누구 한 사람을 공연히 돋보이게 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래서 이제 그가 가진 큰 약점 두 가지만 말해보자. 

    무엇보다 일부에서 그를 두고 ‘한국의 두테르테’라고 부르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다. 그 말에는 이재명이 가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얕다는 뜻이 담겨있다. 사람은 약하고 초라하면서도 그 안에 우주의 삼라만상을 담는 위대함을 갖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아득바득하는 비굴함으로 시종하면서도, 때로는 자신의 생명조차 희생해 대의를 따르는 신성한 존재다.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요소를 두 가지로 요약하면 욕망과 초월이다. 두 상반되는 요소가 함께 어울려 인간의 내면을 이룬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자기 내부로의 침잠, 자기 객관화, 타인에 대한 연민의 잉태라는 과정을 밟음으로써 가능해진다. 상당한 시간에 걸친 성찰이 소요된다. 이재명은 당장의 생존에 쫓겨 살아오며 이와 같은 과정을 충분히 거칠만한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게 아닐까 한다. 그러니 적잖은 국민에게 그의 인상은 거친 모습으로 비친다. 이에 ‘한국의 두테르테’라는 말도 듣는다. 

    그가 바꿨으면 하는 모습 한 가지만 말해보자. 이재명은 평범한 국민이 누구나 가지는 욕망을 이해해야 한다. 좀 더 안락한 집에서 가족을 챙기며 살고 싶은, 누구나 갖는 그 소박한 욕망을 죄악시해서는 안 된다. 기득권자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선 투쟁을 해야겠으나,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인정하고 이를 전제 삼아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여유로움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향하는 반감을 줄일 수 있다.

    유능한 싱크탱크와 측근 정치의 폐해

    다음으로 측근 문제다. 그는 다른 정치 지도자들과는 달리 아주 유능한 싱크탱크를 갖고 있다. ‘기본소득’ 등의 의제를 던지는 등 싱크탱크를 활용하는 데도 능하다. 이와 관련해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관훈클럽 총무와 이사장을 거친 한 중진 언론인이 경주에 왔다. 그와 계림 숲을 거닐고 반월성을 한 바퀴 다 돌았다. 점심도 같이 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장시간에 걸쳐 국내외 정세에 관하여 의견을 나눴다. 그가 이재명에 관하여 한 말이다. 

    “내가 듣기로 그는 어떤 사람의 의견에 좌우된다고 한다. 그 사람의 말 한 마디면 이재명은 자신이 결정한 중요한 것을 즉시로 뒤집기도 한다고 들었다.” 

    과도한 측근 정치의 폐해는 박근혜 정부 5년과 문재인 정부 5년으로 충분하다. 차기 대통령까지 측근의 말에 휘둘리는 사람이 돼서는 곤란하다. 경륜과 지성으로 국민 앞에 당당히 나서서 국민들을 설복해 희망의 미래로 이끌어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재명은 내가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이하 존칭 생략)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다만 앞서 언급한대로 이재명은 두 가지 약점을 갖고 있다. 이 점만 놓고 보면 이낙연이 이재명에 비해 조금 더 믿음이 가는 면도 있다. 

    ‘문파’는 김경수 경남지사나 조국 서울대 교수에 대한 미련이 여전하다. 그러나 김경수가 무죄판결을 받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는 나라의 지도자가 될 만한 그릇은 아니다. 또 국민들은 조 교수가 저질러놓은 ‘위선의 정치’ 폐해를 대부분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문파’는 그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이 공히 허물어진다면 ‘문파’는 그들의 조급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가릴 수 있는 넉넉한 인품의 인물을 내세울 수 있다. 연말까지 그 작업을 완료하지 못하면, 대선의 시계가 제시하는 타이밍을 따라잡기 어려우리라 본다. 욕심으로 시야가 흐려진 그들 눈에는 아마 이것이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지도 30% 단계 진입의 고비

    야권은 지리멸렬하다. 야권이 내년 4월 치러질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부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단, 야권에 두 개의 흥행요소는 남아있다. 하나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극적으로 대선후보로 영입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시장에 당선된 후 국민의힘과 연대하는 방법이 있다.)
     
    이에 다음 대선은 아무래도 여권 후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의 지지도는 무서운 기세로 오르다가 현재 20% 초반에 머물러 있다. 이낙연과 엎치락뒤치락하는 형세다. MBC 의뢰로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이 9월 27∼28일 100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이낙연의 선호도는 26.4%로 1위였다. 이재명은 23.2%로 2위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재명이 박스권을 탈출해 30% 단계로 조만간 진입하지 못하면 당내 기반이 현저히 약한 그는 곤경에 처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는 탈당 후 출마냐 아니면 경선결과 승복을 통한 깨끗한 패자의 길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될지 모른다. 

    이재명의 대선후보직 쟁취 여부와 상관없이, 그는 민주당 나아가 한국 정치에 위대한 유산을 남길 것이다. 그 유산을 살리면 조만간 우리사회는 소수 진보귀족에 의한 ‘위선의 정치’를 넘어설 수 있다. 기득권 세력의 발호를 억제하고 국정 전반에 국민의 이익이 우선하는 ‘공정의 정치’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야 진정한 진보가 이 땅에 뿌리내리게 된다.

    *시골 사는 촌부가 쓸데없는 소리를 한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시를 한 편 써보았다.

    ■ 반성

    마늘 농사 지으려고
    풀을 쳐 나가다가
    호박넝쿨 건드렸네
    길게 뻗어 아직 노란 꽃 피우고
    뒤늦게 새끼까지 두었는데
    내 한 번 낫질이 이리 모질게
    네 모든 것 끊어놓았구나
    애절토다 애절토다
    하고 소리치지만
    여지껏 내가 뿌린
    오욕의 검댕들
    온 세상 이곳저곳
    퍼지지 않은 곳 없으리니

    옛날에는 아주까리씨를 짠 기름으로 초롱불을 밝혔다. 이제 아주까리가 아무 소용없는 세상이 돼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매년 씨를 뿌려 아주까리를 소중하게 기른다. [신평 제공]

    옛날에는 아주까리씨를 짠 기름으로 초롱불을 밝혔다. 이제 아주까리가 아무 소용없는 세상이 돼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매년 씨를 뿌려 아주까리를 소중하게 기른다. [신평 제공]


    ● 1956년 출생
    ● 서울대 법학과 졸업
    ● 제23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제13기
    ● 인천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대구지방법원 판사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헌법학회 회장 역임
    ● 저서: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 ‘들판에 누워’(시집)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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