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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115년 징역, 코인왕은 어떻게 우리를 속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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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3-11-08 10: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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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샘 뱅크먼-프리드, 고객자금 13조 원 빼돌려

    • 가상화폐 거래소 FTX 창업자

    • 구조조정 전문가 “회계사도 없었다”

    • 연인 앨리슨 “샘 지시로 재무제표 조작”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 [AP=뉴시스]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 [AP=뉴시스]

    가상화폐 업계 큰손이던 샘 뱅크먼-프리드(31‧이하 SBF)가 평생을 교도소에서 보낼 위기에 처했다. SBF는 11월 4일(현지 시각) 미국 남부연방법원에서 유죄 평결을 받았다. 금융사기 및 자금세탁 방조 등 혐의다. 고객 자금 약 100억 달러(13조 원)를 빼돌렸다. 이날 배심원단은 검찰이 기소한 모든 혐의에 유죄 평결을 내렸다. 이후 항소심에서 이 평결이 파기 환송되지 않는 한 유죄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최종 유죄 판결 시 최대 115년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SBF 측은 항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SBF는 가상화폐 시장 혁신의 아이콘으로 일컬어졌다. 가상화폐 투자자이던 때는 높은 수익률을 자랑했고, 가상화폐 거래소 FTX를 운영하면서 탈중앙화 금융(De-Fi: Decentralized Finance)을 적극 도입해 모객에 성공했다. De-Fi를 쉽게 설명하면 가상화폐 대출 서비스다. 고객이 예치한 가상화폐를 다른 고객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거래소는 예대마진을 챙긴다.

    영광의 순간을 짧았다. FTX는 개업 4년을 넘기지 못하고 파산했다. 대표이던 SBF는 평생 옥살이해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이다. 2022년 8월 포천 표지에 실리며 ‘넥스트 워런 버핏’이란 평가를 받던 SBF는 가진 자산을 모두 잃은 것은 물론, 범죄자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몰락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이렇게 완벽한 기업 운영 실패 본 적 없어”

    FTX를 빠르게 성장시킨 De-Fi가 몰락의 단초가 됐다. De-Fi를 도입하려면 갖춰야 할 전제 조건이 있다. 거래소가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비교적 현금화가 쉬운 가상화폐나 현금을 다량 보유해야 한다.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거래소가 De-Fi를 도입하면 일종의 가상화폐 은행 역할을 한다. 예대마진으로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반면, 가상화폐 시장이 침체기에 돌입하면 투자자들이 보유한 가상화폐를 현금화하려 들 가능성이 높다. 이때 거래소가 충분한 자산이 없다면 투자자에게 가상화폐 판매대금을 주지 못할 위험이 생긴다.

    FTX는 이 자산이 부족했다. FTX의 자산 창고는 자회사 알라메다 리서치였다. 이 회사는 SBF가 2017년 창업한 암호화폐 트레이딩 회사다. FTX 파산 직전까지 SBF의 연인이던 캐롤라인 엘리슨이 대표를 맡아 경영했다.



    알라메다는 FTX의 시장조정자 역할을 해왔다. 시장조정자는 거래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주체를 말한다. 인기 가상화폐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면 알라메다가 나서서 공급해준다. 반대로 비인기 가상화폐 공급이 치솟으면 이를 일부 사들여 시장을 안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지속가능한 구조가 아니었다. FTX가 모객을 위해 낮은 수수료율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늘어나자 곳간인 알라메다의 돈줄은 빠르게 말랐다. 결국 SBF는 FTX에 예치된 고객 자산에 손을 댔다. 고객 자산을 알라메라의 부실을 막는 용도로 사용한 것. 그럼에도 위기가 해결되지 않자 FTX 거래소 발행 가상화폐인 FTT를 담보로 막대한 자금을 빌려 쓰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알라메다의 실상이 공개됐다. 지난해 11월 2일 가상화폐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가 알라메다의 대차대조표를 단독 입수해 보도했다. 대차대조표에 따르면 알라메다의 자산 대부분이 FTX가 자체 발행하는 가상화폐 FTX토큰(FTT)으로 이뤄져 있었다. FTT의 가격이 급락하면 FTX는 물론 알라메다도 함께 무너지는 구조였다.

    창고가 부실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FTX는 빠르게 무너졌다. 투자자들은 빠르게 FTT를 손절했다. 개당 22달러이던 FTT 가격은 5달러 아래로 폭락했다. 결국 보도 9일 만인 지난해 11월 11일 FTX는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에 챕터11 파산보호을 신청했다. 파산법원 감독하에 구조조정 절차를 진행해 회생을 모색하는 제도로, 한국의 법정관리와 유사하다. SBF는 CEO에서 물러났다. 존 J. 레이가 차기 CEO로 취임해 파산절차를 밟았다. 레이 CEO는 2001년 에너지 기업 엔론이 회계 부정 이후 파산하는 과정을 지휘한 구조조정 전문가다. 그는 지난해 12월 미국 하원 금융위원회가 개최한 청문회에 출석해 FTX를 파산에 이르게 한 경영방식을 폭로했다. 그는 “그 동안 나의 경력을 통틀어 이 정도로 완벽한 기업 운영 실패 사례를 본 적은 없다”며 “FTX는 회계사도 두지 않고 중소기업용 회계 소프트웨어만 사용해 왔다”고 밝혔다.

    “새로운 시장에서 오래된 수법으로 범죄 저질러”

    “경험이 부족한 소수가 기업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다” 레이 CEO는 FTX의 경영상태를 이 같이 평가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경험이 부족한 SBF와 그의 작품 FTX에 투자했다. 파산 당시 FTX의 부채는 약 500억 달러(66조 원). 싱가포르 대표 국부펀드인 테마섹은 FTX에 투자한 금액 3억 달러를 전부 손실로 처리했다. 규모가 알려지진 않았으나 삼성전자의 투자자회사 삼성넥스트도 FTX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산 직전까지 SBF의 이력과 실적은 완벽했다. SBF는 1992년 스탠포드대 교수 부부의 자녀로 태어났다. IT 기업 창업 명문인 MIT를 졸업하고 헤지펀드 제인 스트리트에서 3년간 일했다. 이때 만난 동료들과 함께 2017년 가상화폐 투자사 알라메다를 창업, 설립 2주 만에 2000만 달러(260억 원)를 벌어들였다. 이렇게 번 돈으로 2019년 5월 가상화폐 거래소 FTX를 세웠다.

    FTX는 빠르게 성장했다. 2012년 설립된 거래소 코인베이스나 2017년 세워진 바이낸스에 비해 시작은 늦었으나 저렴한 수수료, De-Fi 등 파생상품 거래 기능이 인기를 끌었다. 대형 벤처캐피털(VC)과 월스트리트 기관투자자들의 암호화폐 투자 규모가 커지는 등 운도 따랐다. 2022년 1월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하자 FTX의 기업 가치는 320억 달러(42조8000억 원)에 달했다.

    SBF는 가상화폐 관련 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정치권과도 소통했다. 지난해 10월 기준 미국 정치권에 기부한 금액만 4000만 달러(52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11월 8일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전체 기부자 중 두 번째로 많은 돈을 민주당에 후원한 사실이 알려졌다.

    몰락이 시작되자 민낯이 드러났다. 연인이던 앨리슨은 10월 10일 법정에서 “SBF의 지시로 회사의 재무제표를 조작했다”며 “가격 방어를 위해 FTT를 자체적으로 사고파는 등 시장 조작에도 참여했다”고 밝혔다. 형태만 다를 뿐 분식회계, 주가조작 사건과 비슷한 형태다.

    사건 수사를 맡은 데이미언 윌리엄스 뉴욕 남부연방지검장은 유죄 평결 직후 “가상화폐 사업이 새롭게 보일 수 있고 SBF의 사업 방식도 새로워 보일 수 있으나 이런 종류의 범죄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고 밝혔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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