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수능 끝나면 후회 없이 책상 벗어나 미래 위해 놀자

[김태일의 대자보] 시험 이후 버려지던 시간, 교육개혁 실험 적기

  • 김태일 국가교육위원회 위원·前 신전대협 의장

    입력2024-02-2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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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高 3-2학기, 교육개혁 최적 시기

    • 공교육이 줘야 할 마지막 선물은 ‘인싸력’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배부된 2023년 12월 8일 경기 하남시 하남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본인의 점수를 들여다보고 있다. [동아DB]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배부된 2023년 12월 8일 경기 하남시 하남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본인의 점수를 들여다보고 있다. [동아DB]

    애들도 다 생각이 있다. 수능 끝난 10대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직도 “고3만 끝나면, 대학만 가면, 다 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있을까. 수험생들은 그간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수험 생활하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을 대부분 참아왔다. 수능만 끝나면 해볼 일을 적어본 수험생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자유시간이 생기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수능이 끝난 뒤에도 각 대학에 원서를 쓰면서 고민은 커져간다. 꿈꿔 오던 대학에 떨어진 학생은 슬픔에 휩싸인다. 합격을 하더라도 위기감이 생긴다. 이제는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려운 세상이다. 관성적으로 자격증이나 외국어 시험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시험을 끝내고 습관처럼 다른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이, 끊임없이 언덕 위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 형벌’이 따로 없다. 만나는 사람마다 ‘중요한 시기’라고, “그때 후회 없이 많이 놀아라”고 조언해 주지만, 이 자유를 값지게 누려보고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교실 ‘파행’

    학생을 ‘가만두면 안 되는 존재’로 보는 걸까.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의 학생들. 그걸 지켜보는 선생님. 이런 3학년 2학기 교실의 모습을 두고 ‘파행’이라며, 어른들이 나서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수시·정시를 통합하고, 대입 전형 시기를 늦춰달라고 요구했다. 시험을 늦게 봐서, 2학기도 공부할 수밖에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수시 입학과 수능이 끝나고 나면 학생들이 학사 일정을 따르지 않는 원인을 ‘2학기 내신 성적 미반영’으로 꼽은 것이다. 다른 한편에선, 12년(초·중·고등학교 6·3·3년) 학제 단축을 요구하는데, 실질적으로 한 학기를 더 늘려달라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걸까.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는 교육개혁을 위한 ‘최적의 상륙지’다. 뜬금없는 소리가 아니다. ‘고교학점제’ ’자유학기제’ ‘현장체험학습’ 등은 학생의 자율성 증진과 학업 부담 경감을 위해 학교를 바꿔보겠다고 만든 제도들이다. 그 취지대로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배우고, 해보고, 가보기에 12년 통틀어 3학년 2학기만큼 좋을 시기가 있을까. 학교를 나오고 싶도록 재밌는 프로그램을 제공해 줄 순 없는 걸까. 불안함이 있다면 교원의 지도감독하에서 학교 밖을 배움터로 삼을 수 있도록 발상을 전환해 볼 수는 없는 걸까.

    필자는 열아홉 살에 미국의 금융 중심지 월스트리트에 갔다. 돈을 배우려면, 돈이 가장 많은 곳으로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최소 비용을 마련해 무작정 떠났다. 그곳에서 월스트리트가 형성된 과정과 맨해튼의 도시계획, 뉴욕 기반의 물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일을 대신해주면 돈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교류와 공유가 각자도생보다 더 큰 가치를 형성한다는 것, 예측과 신뢰를 거래할 수 있다는 것, 그를 통해 무역과 증시가 형성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작 몇 십 일이었다. 이 시기 경험이 대학과 전공부터 진로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명물 ‘돌진하는 황소상’. [AP뉴시스]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명물 ‘돌진하는 황소상’. [AP뉴시스]

    책상 너머 세상 만날 시점

    ‘잘’ 살려면 ‘좋은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야한다. 말과 글로 타인을 설득하는 법, 모임을 구성하고 교류하며 협업을 주도하는 법, 행사나 사업을 기획·추진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관련 자료와 제도를 찾고 활용하는 법, 분야별 업계와 학계가 소통하는 문법과 문화도 알아가야 한다. 어디에서, 누굴 만나, 어떤 고민과 경험을 나누는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사교 모임이라는 문화는 인류 역사상 계속돼 왔다. 요즘 말로는 ‘퍼스널브랜딩’과 ‘인싸력’이라 한다. 타인에게 나를 소개하고,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능력이다. 교육을 통해 이를 기업가정신으로 꽃피워 낼 수 있다.

    3학년 2학기에는 책 밖의 공부를 해볼 수 있는 구체적 계기를 제공해야한다. 책상 앞에만 앉아 있던 학생들을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새로운 집단과 환경을 만날 수 있다.

    생산·건설·물류·금융 등 산업현장 탐방과 현직자 교류가 가능할 수 있도록, 기업과 협업하는 것도 방법이다. 각 대학이나 교수님 연구실 탐방도 좋다. 어떤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사업체나 연구를 구현하게 된 건지 알아내는데 집중해 보면 좋겠다. 교육청이나 학교가 나서 이런 기회를 제공해 준다면 지역·산업·학교 간 연계의 든든한 반석이 될 것이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EBS 위대한 수업’ 같은 석학 강의 콘텐츠라도 함께 시청하고 토의하자. 분야마다 세계적 석학의 특강을 제작해 ‘기적에 가까운 섭외력’으로 소문난 콘텐츠다. 아예 EBS에서 나서서 3학년 2학기용 시청각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런 계기가 있다면 학교에서 더 값진 대화와 흥미로 기억에 남는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함께하는 교원들에게도 새로운 활력이 될 것이다.

    EBS1의 명사 강의 콘텐츠 ‘위대한 수업’에 출연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 [EBS]

    EBS1의 명사 강의 콘텐츠 ‘위대한 수업’에 출연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 [EBS]

    배우는 사람에서 해결하는 사람으로

    ‘학생의 정체성’을 바꿔내는 것이 교육개혁이다.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의 정책’이란 구호가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개혁은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가야 가능하다. 학생을 ‘교육 수요자’로 규정하는 관점을 뛰어넘어야 한다.

    학생을 ‘교육을 받는 객체’에서 ‘과거를 계승하고 다음 문제를 해결해 줄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업가정신 교육’이라고 하면 “애들을 창업 바닥으로 내모는 것이냐”는 반대가 뒤따른다고 한다. 누군가 적극적으로 나서도 ‘기업가정신’ 관련 조례가 없어서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 해결력’ 함양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누구나 학생이 될 수 있고, 돼야 한다.

    젊은 세대의 문제 해결 역량이 ‘하루빨리’ 성장·발휘돼야 한다. 개혁을 꼭 국가가 주도하란 법도 없다. 교육개혁은 특히 더 그렇다. 학교가 안 움직이면 학생이 먼저 움직여 바꿔보면 어떨까.

    김태일
    ● 1993년 출생
    ● 한국외대 국제학부 졸업
    ● 前 신전대협(신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 現 국가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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