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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위기보다 ‘김건희 옷차림’이 ‘외교 이슈’로 주목받는 나라

[홍태화의 98년생 독해법] 의회 외교 유명무실한 ‘이상한 선진국’ 대한민국

  • 홍태화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 유라시아 펠로우

    입력2024-03-1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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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 연합위원회와 총리 간 토론

    • 34세에 의회 외교위원장 된 컨스

    • 의회 외교, 선진국 외교의 일부

    • 韓 국회, 외교서 유명무실할 뿐

    • 강대국, ‘대내외 정책’ 융합 꾀해

    지난해 11월 21일(현지 시간) 영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런던 영국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동아DB]

    지난해 11월 21일(현지 시간) 영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런던 영국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동아DB]

    영국 의회에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33개 위원회 위원장으로 구성된 연합위원회(Liaison Committee)가 매년 최다 3회에 걸쳐 총리와 공개 질의응답 세션(Oral evidence)을 갖는다. 이 자리에서 국정 전반에 걸친 치열한 토론 공방이 이뤄진다.

    지난해 7월 세션에서 보수당 앨리샤 컨스(Alicia Kearns) 의원은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칭찬하면서도 코소보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유럽연합(EU)과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총리에게 동맹국들과 함께 코소보 주둔 나토군(KFOR)의 권한을 확대해 세르비아에서 코소보로 밀수되는 무기들을 차단할 것을 요청했다.

    컨스는 2022년 10월 당시 만 34세의 나이로 외교위원장에 선출됐다. 2019년 하원에 입성한 초선의원이지만 의회 투표에서 리암 폭스, 던컨 스미스 등 중량급 의원들을 큰 차이로 제쳤다. 그는 중국에 대한 현실적인 정책을 촉구하는 의회 단체 차이나 리서치 그룹(China Research Group)의 좌장이기도 하다.

    컨스는 지난해 세 번에 걸친 연합위원회 공개 질의응답 세션에서 같은 당 소속인 만 43세의 리시 수낵 총리에게 예리한 질문을 던져 존재감을 드러냈다. 여당 의원이지만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격려뿐 아니라 비판도 가했다. 영국 의회의 대중 외교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보수당, 노동당 소속 의원들과 함께 에르킨 투니야즈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주석의 영국 방문을 저지했다. 외교가 온전히 행정부의 영역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하지만 다소 당황스러운 대목이다.

    의회 외교의 두 가지 역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의회 외교는 외교정책의 중요한 일부다. 의회 외교는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 정부의 외교정책을 보완하고 뒷받침하는 역할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을 전방위적, 범사회적 경쟁으로 본다. 국제 무대에서 중국과 지정학적으로 경쟁하면서 중국의 ‘은밀한 침투’로부터 국내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이때 의회의 역할이 막중하다. 지난해 1월 초당적 합의로 결성된 미국 하원 중국특별위원회가 대표적 예다. 중국특별위원회는 마이크 갤러거 위원장(공화당)을 필두로 공화당 13명, 민주당 11명의 의원으로 구성돼 있다. 중국특위는 입법을 통해 중국인의 농지 대량 구매는 물론 인프라와 보건 등 미국 내 투자를 제한했다. 미국 기업들의 해외투자도 ‘전략적 부분’에 한해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 덕분에 미국은 21세기 국제질서를 결정지을 중국과의 경쟁에서 ‘초당적 의회 협력’이라는 무기를 확보했다. 많은 전문가가 11월 미국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더라도 미국의 대중 정책만큼은 비교적 일관될 것이라 예상하는 이유 중 하나다.

    프랑스 의회는 정기적으로 프랑스 주재 동맹국 대사들, 해외 주재 프랑스 외교관들을 초청해 질의응답 세션을 갖는다. 프랑스 외교·국방위원회는 2022~2023년 사이 세션에서 유럽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국제 이슈를 다뤘다. 오만과 아랍에미리트의 중동 내 역할, 프랑스-세네갈 관계, 브라질과 라틴아메리카 지역 통합 등 광범위한 주제를 논했다.

    또 매달 ‘정보 보고서’를 발간해 의회 내 연구 성과를 공유하기도 한다. 2023년에는 ‘서발칸 지역의 중요성’ ‘프랑스와 브라질, 수리남, 가이아나 관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프랑스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공개했다. 의회가 폭넓은 시야로 외교 전략을 논의하는 모양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갈지자 행보를 보이자 각성을 촉구한 것도,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본격적인 재무장을 요구한 것도 의회 의원들이었다.

    두 번째는 행정부가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을 담당하는 역할이다. 일종의 ‘굿캅’ ‘배드캅’ 분업이다. 정부에는 부담스러운 일을 맡을 수도 있고, 독자적인 플랫폼을 구축할 수도 있다.

    2020년 3월 결성된 IPAC(대중국의회연합체)에는 32개국 240명이 넘는 의원이 소속돼 있다. IPAC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중국의 도전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창설됐다. 회원국의 국익이 다르기에 행정부 간 협력은 쉽지 않다. 대신 뜻이 맞는 정당, 의원 간 공통분모를 모색한다. 회원들은 특히 자유주의 원칙을 강조하며 중국의 인권탄압을 공동으로 비판한다. 2021년 리투아니아가 대만과 관계를 강화하자 중국은 리투아니아를 경제적으로 강압했다. IPAC 소속 의원들은 리투아니아를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후 자국 의회에서 리투아니아를 도울 방안을 고안했다.

    일본이 대만과 대화하는 방식

    한국은 지난해 11월에야 지성호(국민의힘), 오영환(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처음으로 IPAC에 가입했다. IPAC 창설 3년 반 만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중국과의 연관성이 낮은 알바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마케도니아, 볼리비아, 우간다보다도 늦은 시점이다. 반면 일본은 IPAC의 창립 멤버다. 현재 자유민주당,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일본유신회를 아우르는 의원 20명이 IPAC에 소속돼 있다.

    일본의 경우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양국 간 집권당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2021년 8월과 12월에는 일본 자민당과 대만 민진당 간 ‘외교·안보 문제 2+2 회의’가 개최됐다. 이듬해에도 대만에서 제3차 안보회의가 열렸다. 대만 독립은 중국 정부가 여러 차례 천명한 ‘레드라인’이다. 이에 오해를 살 수 있는 행정부 간 소통은 ‘로키(low-key)’로 진행하고, 집권당을 통한 우회 전법을 택한 것이다.

    일본은 대만 유사시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다. 그래서인지 활발한 정책 조율이 진행됐다.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공동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입법부가 행정부의 외교 역할을 분담하는 모습이다.

    혹자는 일본이 영국처럼 의원내각제이기에 가능한 전술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집권당 의원들이 곧 총리와 장관들이기에 용이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대 한국 정부는 당정협의, 당정일체를 늘 강조해 왔다. 당정 조율이 진정으로 필요한 외교 부문에서 예외를 둘 필요는 없다.

    선진국이라고 의회 외교가 늘 매끄럽지만은 않다.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은 대만을 깜짝 방문해 중국에 경고장을 날렸다.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 다수는 펠로시의 행보를 공개 지지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와의 적절한 조율 없이 중국에 ‘펀치’를 날렸다는 지적도 있었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대만의 실질적 방위 역량을 집중적으로 강화해야 하는 상황에 상징적 쇼로 긴장만 고조시켰다는 비판이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펠로시 의장이 대만 방문에 사업가 아들을 대동한 것이 밝혀지며 논란을 빚었다. 당연히 공화당은 부적절한 처사였다며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국-대만, 미·중관계에 대한 정책 토론이 이 스캔들에 매몰되는 상황만큼은 벌어지지 않았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비판하는 이들조차 외교 현안에 더 큰 비중을 뒀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2022년 나토 정상회의 참석이 국회에서 ‘유럽 국가들과의 안보 협력 강화’라는 막중한 이슈에 대한 토론 대신 영부인 관련 논란으로 소모된 것과 비교된다.

    발목을 잡거나 지르고 보거나

    1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 [뉴스1]

    1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 [뉴스1]

    한국 국회 외교의 현실은 어떠한가. 존재감 자체가 유명무실하다. 제21대 국회에는 11개의 의회 외교포럼, 115개의 의원친선협회가 있다. 하지만 매년 열리는 한일의원 친선 축구대회만 기억에 남는다. 외교통일위원회의 역할도 위상만 못하다. 현안 질의에 충실한 일부 여야 의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책 토론은 부실하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슈들은 자극적인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미국과 일본 의회는 대만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비상등을 켰다. 대만, 호주, 필리핀 카운터파트와 협력할 방안을 모색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통령 부인의 옷차림을 비롯한 해외 순방 행보가 대만 위기보다 ‘외교 이슈’ 면에서 압도적인 주목을 받는다. 대만 위기가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때로는 비과학적 음모론이 회의장을 엄습하기도 한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모습이다.

    정책에 기반한 국회 외교가 전무하지는 않다. 행정부의 외교 노선을 대외적으로 비판하고, 정당성을 떨어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 당시 민주당 의원들의 방중, 2019년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방미가 떠오른다. 모두 당시 정부의 대외정책 동력을 약화하려는 시도였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행보가 그 자체로 문제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치밀한 계획과 논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발목잡기에 불과하다. 특히 특정 사안과 관련해 일회성으로 해외에 나가 자당에 우호적인 타국 지도자를 만나는 모습은 사대주의로 비칠 위험이 있다. 지난해 6월 민주당 의원 8명은 티베트를 방문한 후 ‘(티베트) 인권탄압은 70년 전 일’이라고 주장했다. 안보와 인권, 국가 위상 등 어느 면에서 봐도 도를 넘는 행동이었다.

    행정부의 이니셔티브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회가 나서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은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을 했다. 그러자 일부 여당 의원이 일제히 독자 핵무장을 거론했다. 이러한 주장이 봇물 터지듯 나오다가, 대통령실에서 해명을 내놓자 금세 수그러들었다. 독자 핵무장을 주장할 수는 있다. 핵무장의 비용과 리스크는 막중하지만, 핵 사용 결정권이 워싱턴에 있는 한 우리가 북한과 완벽한 핵 균형을 맞추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리와 계획 없이 우선 ‘지르고 보는’ 행태는 우려스럽다. 어떻게 동맹과 국제사회를 설득할 것인지, 우리의 핵기술 현황은 어떤지 등을 포함한 냉철한 분석이 부재했다. 되레 자극적인 일회성 발언이 횡행했다.

    한국 외교의 히든카드

    국회의원의 일차 의무는 산적한 국내 문제를 해결하고 민생을 챙기는 일이다. 하지만 국내외 이슈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통일전선부의 해외 공작을 ‘마법의 무기’라 칭한다. 경쟁국들의 국내 담론을 중국에 우호적으로 조성하면, 그들의 대중 강경책에도 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강대국이 ‘대내외 정책’의 융합을 강조하는 이유다. 2022년 발간된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은 ‘전략적인 접근’의 첫 번째 ‘기둥’으로 대내외 정책의 일체화를 꼽았다. ‘미국이 해외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혁신과 산업력에 투자해야 하며, 미국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우호적 국제질서를 형성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지정학 소용돌이의 한복판인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한국에도 와닿는 대목이다.

    쿼드 플러스, G7 가입을 꿈꾸는 대한민국 외교는 행정부의 정책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정부 외교정책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보완하는 솔직한 여당이 절실하다. 정부 노선에는 반대하더라도 진지한 정책 토론과 협의에 임할 수 있는 성숙한 야당도 필요하다.

    5월 30일 들어설 제22대 국회가 한국 외교의 히든카드로 부상하길 기대한다. 30~40대 초선의원이 외교통일위원장으로 선출돼 정부 외교정책에 때로는 전폭적인 지지를, 때로는 날카로운 지적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과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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