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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 갈수록 송시열에 가까워진다”

‘김육 평전’ 저자 이헌창 교수가 본 ‘개혁이란’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文 대통령, 갈수록 송시열에 가까워진다”

  • ● 김육, 대동법 완성한 조선 최고 개혁가
    ● 소신 갖춘 조선 관료, 권력자에 직언
    ● 독선적 송시열의 부상, 조선 후기의 불행
    ● 文, 처음엔 김육 가깝다 여겼으나 아니었다
    ● 尹과 여권 사이 갈등 보면 기묘사화 떠올라
    ● 조선은 사헌부 등 司正 기관 건재해 장수
    ● 송시열 재정지출, 김육 재정건전성 택했을 것
이헌창 고려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홍중식 기자]

이헌창 고려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홍중식 기자]

시대를 불문하고 권력이 가장 애용하는 말은 개혁이다. 적폐청산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유독 개혁이라는 말에 집착한다. 초유의 현직 검찰총장 징계건으로 나라가 두 동강 난 시점에도 집권여당 대표는 “민주화 이후 가장 많은 개혁을 이뤄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범부(凡夫)의 살림살이와 동떨어진 개혁은 앙상하고 메마른 레토릭(rhetoric)에 불과하다. 

이헌창(66) 고려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를 떠올린 건 그 때문이다. 그는 경제사를 전공했다. 고담준론에 몰두한 학자 대신 불세출의 경세가를 연구하는 데 천착해 왔다. 진영 논리와 근본주의 사고를 경계하면서 실제 민생 개혁을 이뤄낸 인물을 조명했다. 권부(權府)가 개혁이라는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지금, 이 교수에게서 얻을 지혜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가 쓴 ‘김육 평전’을 읽다 보면 한국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할지 밑그림이 그려진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라. 역사에는 국정운영 기술의 모든 비밀이 담겨 있다”고 썼다. 이 교수는 처칠의 말을 받아 “이 책에서 그 비밀을 발굴하고 싶다”고 했다. 

책의 부제는 ‘대동법을 완성한 조선 최고의 개혁가’다. 익히 알려진 정승·판서가 많은데 유독 김육을 ‘넘버 원’으로 꼽은 이유는 무엇일까. 2020년 12월 9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이 교수와 만났다. 

-김육은 일반인에게 생소한데 조선 최고의 개혁가라고 평가하셨습니다. 

“김육은 대동법, 동전주화제도, 시헌력(서양식 역법) 도입 등 정책 업적이 많습니다. 민생을 안정시켰을 뿐 아니라 재정도 탄탄하게 만들어 조선 후기 경제성장에 이바지했죠.” 



김육은 1580년에 태어나 1658년 사망했다. 그의 사망을 전하는 ‘조선왕조실록’ 졸기에는 김육이 “평생 경제를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평생 경제를 자신의 임무로 삼아”

-보통 사람들은 조선왕조 문신으로 퇴계나 율곡을 떠올립니다. 김육 같은 관료는 업적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학자를 우대하는 조선 시대 문화 때문이죠. 조선 시대를 지배한 유학은 누구나 안정된 일자리를 갖는 도덕 사회를 지향합니다. 유토피아와 비슷한 이상향이죠. 정치를 아무리 잘해도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에요. 그러니 유교 문화권에서는 공자보다 위대한 사람이 없고, 이상을 제시한 학자가 정치가보다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민생 안정과 부국강병을 실현한 관료·정치가도 (제대로) 평가해야 합니다.” 

대동법으로 각종 공물(貢物·특산물)이 쌀로 통일됐다. 과세 기준도 종전의 가호(家戶)에서 토지의 결수로 바뀌었다. 

-대동법이 그토록 중요한 개혁입니까. 

“김육은 대동법이 전국으로 보급되는 데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대동법 개혁으로 인민의 평균 세(稅) 부담이 절반 정도로 줄었습니다. 5분의 1 이하로 줄어든 농민도 있었죠. 방납인과 관리에 의한 중간 수탈을 막아 중앙 세입이 20%(쌀 10만~20만 석) 늘었고요. 단순 명확하고 공평한 과세 기준으로 조세제도의 성숙을 낳은 겁니다. 또 국가가 징발하던 물자와 노동력이 대동법 시행 후 시장에서 조달됐어요. 덕분에 시장이 성장하고 경제성장으로 이어졌죠.” 

‘김육 평전’에는 “대동법은 서인 율곡이 처음 제안하고, 남인 유성룡이 처음 제도화하고, 남인 이원익이 처음 경기도·강원도에 정착시켰고, 서인 김육이 충청·전라도에, 이어서 남인 이원정이 경상도에 확대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인민과 국가에 이로운 정책이라면 초당적으로 추진됐다고 했는데, ‘붕당 망국론’과 배치되는 대목입니다. 

“조선을 이해하는 데 붕당사보다 정책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선에서도 붕당 간 정치 공세와 인신공격이 치열했는데, 오늘날 정당정치도 마찬가지죠. 조선의 정치가는 인민과 국가에 이로운 정책이라는 합의가 있으면 당리당략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유교 사회에서 그렇게 할 수도 없었고요. 오늘날 관료나 정치가보다 소신에 입각한 정책을 추진했고, 권력자에게 직언(直言)하는 문화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정책 효율성은 낮다고 주장했던데요. 

“유학은 사적 이익 추구를 경계했어요. 그래서 경제적 합리성이 부족했고 지나치게 도덕 지향적이었습니다. 부국강병책을 두고도 이익을 앞세우고 인민의 부담을 늘린다며 경계했습니다. 공론을 중시하는 정치 문화가 순기능이 있지만, 대동법과 동전통용책 추진 과정에서 드러나듯 정책 추진력을 약화시켰죠. 김육은 이런 단점에서 자유로웠어요. 오늘날 감성적 도덕 담론이 이성적 경제 합리주의를 압도하거나, 대안 없는 비판이 정책 추진력을 약화시키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문화의 영향이죠.”


“유성룡, 김육 노선 주류 됐더라면…”

김육을 기용한 건 효종이다. 효종이 김육을 후원하지 않았다면 개혁의 성과는 거두기 어려웠다. ‘김육 평전’은 “효종은 김육을 관찰하여 믿은 다음에도 결코 맹신하지 않았고, 김육의 제안을 다른 신하들의 견해, 그리고 민심과 종합하여 판단했다”고 기록한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대목으로 읽히더군요. 

“군주나 대통령이 정책 성과를 내려면 유능한 장관을 기용해 역량을 발휘토록 해야죠. 효종과 김육의 관계가 훌륭한 예입니다. 유학의 정치사상을 집대성한 ‘서경(書經)’에 의하면 고요(臯陶)가 “모든 정치는 인재의 식별과 민생의 안정에 달려 있다”라고 말하자 우(禹) 임금이 전적으로 동감하며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말합니다. 정약용은 ‘서경’을 연구하면서 이 구절이 정치의 요체라며 탄복했고요.” 

-경제사학자로서 보기에 한국현대사에서 유능한 인재를 등용해 업적을 남긴 사례가 있나요. 

“전두환 전 대통령은 광주 학살의 책임자이지만 김재익이라는 유능한 관료가 역량을 펴도록 지원하고 보호했어요. 덕분에 1980년 경제위기를 극복했고, 1986~1988년 대호황의 길을 닦았죠. 걱정스러운 건 군주나 대통령이 소신과 철학을 밀어붙이기만 하는 겁니다. 견제력이 작용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김육은 ‘배향공신’(종묘에 왕과 함께 모시는 공신)에 들지 못했는데요. 

“왕조실록에 따르면, 1661년 대신과 육경 및 삼사의 장관이 모여 효종의 묘정(廟庭)에 배향할 신하를 논했습니다. 김육을 포함해 7명이 대상에 올랐는데, 김상헌과 김집이 선정돼 현종(효종의 아들)이 따랐어요. 유학자를 존중하는 문화 때문에 김집이 들어간 겁니다. 현실적 성과보다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유교 문화의 영향이죠. 그렇더라도 김육은 배향공신이 될 자격이 충분했는데, 노론의 전신인 산당(山黨)이 정권을 장악하고 여론을 주도해 탈락했어요. 효종의 배향공신은 산당 입맛에 맞게 정해졌죠.” 

그는 조선에서 최대의 정책 업적을 거둔 인물로 세종과 유성룡, 김육을 꼽는다. 

-유성룡의 부국강병책이나 김육의 안민부국론은 조선왕조 정책 노선의 주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사이 일본과 조선의 경제 격차가 벌어졌고요. 

“유성룡과 김육이 추진한 정책이 주류가 됐다면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을 겁니다. 조선이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건 합리적 선택이었지만, 유학이 지배 학문이 되면서 주자학의 나라가 되는 건 피할 수 없었습니다.” 

-김육 이후 조선은 주자성리학 이데올로그들이 주도한 나라가 됐습니다. 

“유학은 농경사회와 전제군주가 이끄는 관료제 국가에 잘 어울리는 학문입니다. 유학을 학문적으로 가장 발전시킨 게 주자학입니다. 주자학자인 퇴계와 율곡은 유연하면서 합리적인 학문 자세를 가졌어요. 근본주의 사고가 강한 주자성리학 이데올로그의 전형은 송시열입니다. 송시열은 주자와 조금만 해석을 달리해도 사문난적으로 매도하는 독선적 태도를 보였어요. 그가 노론의 정신적 지주이고, 노론은 1694년 갑술환국 이후 1863년 대원군 집권 이전까지 대부분 시기의 정권을 장악했고요. 

주자학과 실학의 중간 지대에 있던 관료도 적지 않았어요. 조선이 주자학을 편식한 점은 아쉬우나, ‘주자성리학 이데올로그가 주도한 나라’라는 표현까지 사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조선 후기는 ‘송시열의 시대’라고도 불립니다. 

“송시열의 독선적 태도는 진영 논리로 연결됐지만, 대학자로서 기개가 강했습니다. 장점이 훨씬 크죠. 송시열이 학자로 남지 않고 1694~1863년 사이 영향력이 가장 큰 정치가가 된 것은 조선 후기사의 불행입니다.”


진영 논리와 ‘송시열의 시대’

-한국에서 도덕주의의 힘이 도드라진 까닭이 무엇일까요. 

“유학의 영향이죠. 권선징악의 도덕주의야말로 세계 대표적 종교예요. 도덕은 사회에 필요합니다만, 도덕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면 흑백논리를 낳습니다. 유럽에선 종교개혁 이후 세속 세계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이 갈수록 줄었어요. 또 시장이 발달하면서 경제 합리적 사고가 퍼졌습니다. 중국과 일본에는 종교개혁에 상응하는 사상혁명이 없었으나, 조선보다 시장과 상업 문화가 발달해 경제 합리적 사고가 생겼어요. 유학의 도덕지향성을 강화한 주자학의 영향력이 조선에서 가장 강했습니다.” 

-지금도 만연한 정치권의 선악 이분법은 근본주의 사고의 잔재로 보입니다. 

“선악 이분법과 독선적 사고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 성숙을 저해합니다. 그렇다고 유학의 영향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하는 건 아니에요. 김육이 위인이 된 건 수기치인(修己治人)과 경세제민을 추구한 유학의 순기능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조선왕조를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지배층이 백성 고혈을 짜는 나라니 망할 만했다’는 겁니다. 

“지배층이 백성의 고혈을 짜는 건 유럽과 일본에서 더 심했어요. 조선처럼 법정세율을 낮게 책정하려 노력한 전근대 국가는 찾기 어렵습니다. 대동법처럼 인민을 위한 개혁을 장구히 추진한 사례도 세계사에 드물어요. 그런데 19세기에 중앙재정이 악화하자 지방재정을 끌어옵니다. 재원이 부족해진 지방관이나 아전들이 백성의 고혈을 짰는데, 중앙정부는 알면서도 사실상 방관했어요.” 

그는 “서유럽과 일본은 조세 부담이 무거웠지만 자치 역량을 강화한 촌락공동체가 영주의 조세 증가에 제동을 걸었다”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서유럽에서는 의회가 국왕으로부터 재산권을 보호했습니다. 그래서 근대화에 앞서게 된 겁니다. 즉 제도의 차이 탓이지, 조선 지배층이 특별히 착취욕이 심해 나타난 문제가 아닙니다.” 

-집권자의 선의에 기댄 정책이 백성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라는 해석도 가능한데요. 

“세종이 애민(愛民) 정신을 품고 농지세율을 낮췄어요. 식견을 갖춘 신하들이 반대했지만 추진했죠. 결국 반세기 후 인민의 고통을 늘린 결과로 나타납니다.”


윤석열과 사림 정치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5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에게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엄정하게 처리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5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에게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엄정하게 처리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가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과정과도 겹쳐 보입니다. 

“문 대통령도 약자를 위하는 선의를 갖고 있지만, 냉정한 이성의 뒷받침이 없으면 역효과를 낼 수 있어요. 최저임금을 지나치게 올리면 그 이전에 최저임금도 못 받던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고, 그러면 전반적으로 실업자가 늘어납니다. 또 세입자 보호를 강화하면 전세 공급이 줄어 가격이 상승합니다. 이것도 경제원론의 수요·공급 이론을 공부하면 알 수 있고요.” 

그의 말투는 조곤조곤하다. 평생 경제사 연구자로 단련된 사람에게 엿보이는 내공이 있다. 문외한이라 생각하는 분야의 질문이 나오면 “전문가가 아니다”라는 말로 갈음한다. 단어도 매우 신중히 고르는 편인데, 말 속에 뼈가 있다. 직접적인 질문을 건넸다. 

-문 대통령은 김육과 송시열 중 누구에 가깝습니까. 진영 논리에 빠져 있다는 지적을 고려하면 송시열을 닮았고, 탈원전 등 정책 소신을 끝까지 추구하는 면을 보면 김육이 떠오릅니다. 

“저는 문 대통령이 김육과 송시열 사이에 위치한다고 봅니다. 처음에는 김육에 가깝다고 생각해 기대가 컸는데, 갈수록 송시열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김육은 열린 마음, 합리성, 실용적 자세를 가졌기 때문에 잘못된 견해에 빠져들지 않았습니다. 문 대통령에게는 그런 점이 부족해요. 김육은 정책에 대해 숙고하며 노력한 경험이 있는데, 문 대통령이 품은 정책 소신은 그에 미치지는 않습니다. 김육은 정파를 초월해 정책적 협력을 얻었는데, 문 대통령 재임기에는 진영 논리가 정치를 지배하고 있고요.” 

-진영 논리가 발현되는 사례로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이 생각납니다. 

“윤 총장과 여권의 갈등을 보면 기묘사화(己卯士禍)와 사림 정치의 성립이 생각나요. 세조 때 이후 기득권층이 문제로 떠오르자 주자가 주창한 도학(道學) 정치의 이상을 추구하는 사림이 출현했습니다. 도학 정치란 유교 도덕이 구현되는 정치죠. 기묘사림은 도학 정치에 입각한 개혁을 추구하다 1519년 사화로 희생됐어요. 그렇지만 이후 도학 정치를 추구하는 사대부가 점점 늘었죠. 결국 선조가 즉위한 직후인 1570년대에는 사림 정치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윤 총장이 훗날 역사적 성과를 거둔다는 뜻인가요. 

“윤 총장이 징계받는다 해도 기묘사화가 사림의 성장을 막지 못했듯 독립성·중립성을 지향하는 검찰의 각성은 이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합니다. 그러면 검찰 문화도 성숙하겠죠. 조선왕조는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이라는 사정(司正) 기관이 건재해 정치에서 도덕성을 강화하고 장수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재형 감사원장이 탈원전 정책을 감사(監査)한 일은 인상적이에요. 훗날 문 대통령이 윤석열·최재형 두 사람을 임명해 법치 확립에 기여했다는 (역사적) 평가가 나올지도 모르죠. 역사의 아이러니예요.” 

그는 “검찰이 권력에 위축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정치적 독립과 중립을 지키지 않으면 법치는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도 덧붙였다.


지속 가능한 복지와 경제성장

세상의 관심이 권력놀음에 매몰된 사이 민생경제는 절벽에 내몰렸다. 고용은 얼어붙고 빈자의 소득은 줄었으며, 비정규직은 급증했다. 뛰어난 경세가가 필요한 시대지만 그만한 그릇의 인물이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김육이라면 ‘지금, 여기’의 한국에 어떤 처방을 내렸을까. 이 교수가 말했다. 

“송시열을 비롯해 주자학자 대부분의 생각은 실업과 불평등 대책으로 재정지출을 통한 복지 확충을 주장하는 입장에 통해요. 반면 김육은 민생 안정을 우선 과제로 삼으면서도 재정건전성을 고려한 지출을 주장했을 겁니다. 또 지속 가능한 복지제도를 추구했을 거예요.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도록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정책개발에도 힘썼을 테고요.”



신동아 202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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