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호

대장동 의혹의 또 다른 이름, ‘법조 게이트’

화천대유는 왜 ‘법조 어벤저스’를 만들었나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1-10-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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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前 대법관·검찰총장·지검장 등 ‘화천대유’에 자문

    • 권순일·박영수 자문료 월 1500만 원

    • “좋아하는 형님들이라서? 세상엔 공짜가 없다”

    • 변호사법 피해 가는 자문의 세계

    • 후학 양성한다던 권 전 대법관…“매우 부적절”

    • 고문 등 전관 특혜 막을 실질적 법적 장치 전무

    • “전관 유치 경쟁의 피해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화천대유자산관리에서 고문 변호사를 맡았던 권순일 전 대법관(왼쪽)과 박영수 전 특별검사. [뉴스1]

    화천대유자산관리에서 고문 변호사를 맡았던 권순일 전 대법관(왼쪽)과 박영수 전 특별검사. [뉴스1]

    고질적 병폐인 법조계 ‘전관예우’ 문제가 ‘대장동 의혹’으로 다시 불거졌다.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특별검사 등 검·판사 고위직을 지낸 공직퇴임변호사가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인 화천대유자산관리(이하 화천대유) 자문단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일관되게 “정당한 자문”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이 중 일부는 거액의 자문료를 받기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법조계에서는 “전관예우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법관, 검찰총장, 지검장까지…‘법조 어벤저스’

    대장동 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공직퇴임변호사들을 정리해 보자.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화천대유 법조인 자문단은 총 8명. 권 전 대법관은 2020년 9월 대법관에서 퇴임한 뒤 화천대유와 고문 계약을 맺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지휘한 박 전 특검 역시 화천대유 고문 변호사로 일했다. 화천대유가 설립된 2015년부터 2016년 11월 특검 임명 전까지다. 박 전 특검의 딸은 2016년부터 이번 대장동 의혹이 나오기 전까지 화천대유에 근무했다. 논란에 불을 지핀 대목은 권 전 대법관과 박 전 특검이 받은 고액의 자문료다. 고문 변호사로 일하며 월 1500만 원씩 받았다.

    그 외에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 김기동 전 부산지검장, 김수남 전 검찰총장, 서울고검 검사 출신 이경재 변호사, 이동열 전 서울서부지검장, 이창재 전 법무부 차관이 화천대유로부터 자문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의 법조계 고위 간부 출신이 화천대유와 연관된 것으로 드러나자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9월 29일 낸 논평에서 “몇몇 인사들이 수천억 원에 달하는 부동산개발 이익으로 돈 잔치를 벌이고 고위 전관들은 이들을 비호하는 대가로 억대의 자문료를 챙겼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10월 8일 이균용 대전고법원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전고법 산하 국정감사에서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권 전 대법관이 사법부의 청렴성을 훼손했다는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고 묻자 “법관은 실제로 공정해야 하고 또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고 “국민께서 (권 전 대법관에 대해) 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9월 27일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 씨는 경찰에 출석하며 호화 법률 고문단을 만든 이유에 대해 “제가 좋아하는 형님들인데 멘토 같은 분들”이라며 “대가성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좋아하는 형님’들이라 거액을 준 것일까.



    9월 27일 경기 성남시 대장동 특혜 논란을 빚은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서울 용산경찰서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9월 27일 경기 성남시 대장동 특혜 논란을 빚은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서울 용산경찰서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좋아하는 형님들?”…“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법조계에서는 16명이 근무하는 작은 회사가 고위급 전관으로 구성된 자문단을 보유하는 상황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나종갑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듯이 한 달에 1500만 원에 달하는 돈을 주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았겠나. 대개 작은 기업에서 고위급 전관을 채용하는 것은 수사나 소송 등 법적 분쟁 발생 가능성을 대비해서다. 대장동 개발사업에 문제가 있다는 걸 화천대유 측에서도 알았다면 수사기관에서 회사를 쉽게 건들지 못하도록 고위 전관을 고문 자리에 앉힌 게 아닐까. 소위 ‘얼굴마담’용이다.”

    자문 변호사가 ‘로비스트’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뒷말도 나온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거액을 주고 맡기는 자문은 결국 전관예우 특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문으로 전관을 데려오는 건 그들의 인맥이나 경험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법조계의 뿌리 깊은 문제가 대장동 의혹으로 인해 다시 수면으로 등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갓 공직을 벗어난 전관 변호사가 고액의 수임·자문료를 받아 문제가 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이들의 수임·자문료가 세간에 드러나는 것은 인사청문회에 나설 때가 대부분이다. 올해 5월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김오수 검찰총장은 법무부 차관에서 물러난 뒤 법무법인 화현에서 고문 변호사를 맡아 8개월간 총 1억92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2011년 9월 고검장 퇴임 후 17개월간 법무법인 태평양으로부터 약 16억 원을 받았다. 이 역시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를 통해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대장동 의혹을 통해 밝혀진 전관예우 특혜에는 앞선 사례와 다른 점이 있다. 현재 권 전 대법관은 변호사로 등록하지 않고 법률 자문을 제공했다는 의혹으로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를 받고 있다. 변호사법 109조 1항은 “변호사가 아니면서 금품 등의 이익을 받거나 받을 것을 약속하고 소송사건 등에 관하여 대리 등을 알선한 행위를 처벌한다”고 명시돼 있다.

    “대장동 안 터졌으면 지나갔을 일”

    정 교수는 “퇴직 이후 변호사 등록도 하지 않고 고액의 자문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난 첫 사례”라며 “권 전 대법관 외에 변호사 등록 없이 고액의 보수를 받는 사례가 더 많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장동 의혹이 터지지 않았으면 권 전 대법관이 조사받을 일도 없지 않았겠나”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권 전 대법관은 2020년 대법관 자리에서 물러난 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부임해 한 학기에 평균 1~2개 강의를 하고 있다. 김종민 전 순천지검장은 “퇴직 후 학계로 간다고 했을 땐 주변에서 대단하다고 말했을 것”이라며 “그러면서 변호사법을 위반하고 화천대유 자문으로 거액의 고문료를 챙긴 일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 공직퇴임변호사의 업무가 자문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개 고위직 판·검사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점은 실제 소송 문서에 이름을 올릴 때로 알려져 있다. 업무는 하지 않는 채 전관의 이름으로 변론 서류에 도장만 찍는 데 드는 비용이라고 해서 법조계에선 이를 소위 ‘도장값’이라 한다.

    이로 인해 2007년 공직퇴임변호사가 변호사법에 따라 2년간 자신이 수임한 사건에 대한 수임 자료와 처리 결과를 소속 지방변호사회에 제출해야 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이 만들어졌다. 적어도 막 퇴임한 전관 변호사가 싹쓸이하는 수임 사건 개수를 파악·관리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제출 대상에 자문 사건은 빠져 있다. 법조계에서는 자문 사건의 내용을 제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의 말이다.

    “공직퇴임변호사의 경우 사건을 직접 수임하기보다 자문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번에 다양한 곳에 자문할 수 있기 때문에 자문으로 걷어들이는 수익이 더 클 수도 있다. 현행법에서는 자문을 통해 전관예우 특혜가 이뤄지는 걸 통제할 장치가 없다.”

    특히 6월 29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변호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자문으로 전관예우 특혜를 보는 이는 더 많아질 수 있다. 해당 개정안은 근무한 기관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수임 제한을 1년에서 최장 3년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수임 제한 기간이 늘면 전관들이 사건 수임 대신 법률 자문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공직에서 배운 경험으로 사익 추구

    9월 29일 검찰은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의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화천대유자산관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뉴스1]

    9월 29일 검찰은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의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화천대유자산관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뉴스1]

    뿌리 깊은 전관예우 특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대법관·검찰총장이나 법무부 장·차관 등 법조계 최고위직 인사들이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못 하도록 법으로 막아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2019년 12월 사법정책연구원은 ‘해외의 전관예우 규제사례와 국내 규제방안 모색’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대법관·헌법재판관 등 최고위직 법관에는 전면적·영구적인 변호사 개업 제한을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해외에서는 법적 규제나 서약을 통해 전관예우 발생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대법관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공직을 그만두고 뭘 하고말고 할 필요가 없다. 영국과 홍콩은 판사 임용 시 변호사 개업 영구 금지 서약을 하도록 한다.

    전관예우 특혜를 막을 실질적 법적 장치가 전무한 우리나라의 경우 결국 전관들의 법조 윤리에 기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동아대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긴 조무제 전 대법관을 필두로, 퇴임 후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김영란·박시환 전 대법관과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이 좋은 사례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처럼 고위 공직자를 지낸 자들이 학계로 가거나 무료 변론 등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데도, 금전적 이유로 대형 로펌이나 기업에서 고수익을 올리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매번 반복되는 전관예우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선 법적 장치도 중요하지만 법조인들이 스스로 법조 윤리가 무엇인지를 되묻고 공직에서 습득한 지식과 경험을 사익 추구에 이용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하창우 전 변협회장은 “일반 시민이 민사소송에서 상고심까지 갔다고 하자. 상대편에서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나. 자신도 울며 겨자 먹기로 전관 변호사를 선임할 수밖에 없다”며 “전관예우가 지속되면 피해를 보는 건 결국 국민”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이렇게 귀띔했다.

    “의뢰인들이 전관이 고문으로 있는 로펌을 아무래도 선호하기 때문에 대형 로펌들은 마케팅 측면에서 공직퇴임변호사를 데려 올 수밖에 없다. 고객을 유치하고자 로펌들은 전관 유치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고 그들이 로펌으로부터 받는 보수는 결국 돌고 돌아 변호 비용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전과예우 #대장동의혹 #공직퇴임변호사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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