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가 여성만의 꿈은 아닌 모양이다. 아내의 내조를 받아 성공하는 ‘온달족’, 아내에게 빌붙어 편안하게 사는 ‘셔터맨’을 꿈꿔보지 않은 남자가 얼마나 될까. 지난 6월 ‘남자 신데렐라를 뽑는다’는 공모가 있어 화제가 됐다. 1000억대 재산가가 자신의 외동딸 배우자를 찾는다니 많은 남성이 귀가 솔깃할 이야기였다.
결혼정보업체 (주)좋은만남 선우가 홈페이지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1000억원대 재산가의 외동딸은 38세로 키는 조금 작지만(158cm) 얼굴은 ‘A급’이라고 한다.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현재 대학 강단에 서고 있는데, 본인의 재산만 2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배우자의 조건은 집안에 아들이 없는 만큼 아들 노릇을 하면서 집안을 이끌어갈 ‘데릴사위’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외모가 단정하고 종교가 같아야 하며 올바른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전문직 종사자나 그에 준하는 똑똑한 남성을 원했다. 이 밖에도 장남이 아니어야 하고, 최소한 자신의 딸에 준하는 학벌을 갖춰야 하며, 불필요한 자격지심이나 자존심이 없어야 할 것도 조건으로 내걸었다.
데릴사위 공모 이틀 만에 270명 몰려
선우는 당초 데릴사위 후보자 접수기간을 2주 정도로 예정했지만 이틀 만에 270명이 몰리자 서둘러 마감했다. 지원자는 대부분 30대 후반∼40대 중반의 의사, 공인회계사, 부동산업자, 대기업 직원, 벤처기업 부사장 등 전문직이라고 한다. 선우는 지원자들 가운데 5명을 추천해 일주일에 한 명씩 맞선을 보게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런데 더 눈길을 끈 것은 데릴사위 공개모집 공고가 나간 후 “내 데릴사위도 찾아달라”는, 딸만 가진 부모들의 주문이 쇄도했다는 것. 선우에 따르면 보름 사이에 100여 명이 신청을 했는데, 상당수가 적게는 50억원, 많게는 1000억원대 재산을 가진 재력가라고 했다. 선우 이웅진 대표는 “과거에도 데릴사위에 대한 수요가 있기는 했지만 드러내지 않고 쉬쉬하는 분위기가 강했다”며 “그동안 숨어 있던 욕구가 1000억원대 갑부의 데릴사위 공개모집을 계기로 수면으로 올라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몇몇 결혼정보업체에서는 “재산가일수록, 더구나 데릴사위를 얻으려 할 때는 더욱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고 은밀하게 배우자감을 찾는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구할 리가 없다”며 공개모집의 진위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딸만 가진 부모들 가운데 데릴사위를 얻으려는 욕구가 있다는 것 자체는 대부분 인정했다.
결혼전문업체 비에나래의 손동규 대표는 “넓은 의미의 데릴사위를 골라달라는 요청이 최근 2~3년 사이에 많이 늘었다. 요즘은 한 달에 10건 정도에 달한다”고 했다. 이곳에 가입하는 여성 회원이 한 달 평균 200명 정도라고 하니 전체의 5%인 셈이다.
선우 이웅진 대표는 “최근에는 경제력 없는 사위가 처가에 기대어 산다기보다는 아들 없는 집안에서 아들을 맞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앞으로 데릴사위가 주요 결혼풍속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4년 전에 조사할 때만 해도 처가에 들어가 사는 경우가 100쌍에 1쌍꼴이었지만 지금은 보편적인 경향이 됐다. 앞으로는 더 늘어날 것이다.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육아와 가사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처가에 의존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가족제도가 해체되고 자녀의 수도 크게 줄어들면서 새로운 현대적 가족상이 정립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딸 같은 며느리’와 ‘아들 같은 사위’를 찾는 게 이미 보편화하고 있다. 특히 딸만 있는 가정에서 ‘아들 노릇도 해주면 더없이 좋을 든든한 사윗감(신 데릴사위)’을 찾는 게 현실이다.”
처가살이≠데릴사위
실제로 처가에 들어가 살거나 처가 근처에 살면서 이런저런 도움을 받는 가정이 급격히 늘었다. 통계청의 2006년 사회통계조사를 보면 전체 10가구 중 4가구가 부모를 모시고 사는데, 이 중 장남과의 동거는 2002년 24.6%에서 4년 만에 21.8%로 하락했다. 반면 딸과 사위가 모시고 사는 비율은 3.6%에서 5.7%로 늘어났다. 아내 동기(同氣)와의 유대감도 높아 처가 중심으로 가족관계가 재편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겉보리 서말이어도 처가살이하랴’는 속담도 요즘 시대엔 통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화여대 함인희 교수(사회학)는 “딸이 아들보다 부모와 정서적으로 가깝고, 남자들도 영악해져 가사와 육아는 물론 주택 문제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처가살이를 한다고 다 데릴사위라고 말할 수는 없다. 처가살이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을 데릴사위로 보는 것에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처가살이를 하고 있는 유인혁(37)씨는 “데릴사위는 결혼 전제부터 종속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지만 처가살이는 그렇지 않다. 처가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그건 선택이지 결혼의 필수조건이나 전제가 아니다. 사위에게 언제든 도움을 거부할 권리가 있기에 사위와 처가가 대등한 관계”라고 차이점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데릴사위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처가에서 데리고 사는 사위’라고 되어 있다. 처가에 종속돼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데릴사위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려시대까지 사위양자(서양자, 壻養子)라는 게 있었다. 집안에 딸만 있는 경우 가계 계승을 위해 사위를 맞으면서 양자 노릇을 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부계혈연의 가계 계승만 인정해 ‘사위는 사위일 뿐’이 됐다. 같은 성씨의 혈족에서 양자를 입적해 가계를 계승하는 한편, 사위는 가사를 돌보게 했다. 이게 솔서(率壻)혼이다.
한국엔 데릴사위가 드문 반면 일본에는 흔하다. 결혼하는 남성 10명 중 1명꼴로 데릴사위일 정도다. 가업을 중시하기 때문에 아들이 없거나 시원찮으면 데릴사위가 처가의 성으로 바꾸고 일과 재산을 물려받는다. 죽어서도 처가의 묘지에 묻힌다고 한다.
일본 마쓰이증권의 마쓰이 미치오 사장은 1987년 마쓰이증권 사장의 외동딸과 결혼하면서 데릴사위가 됐다. 그는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일본 증권업계에 돌풍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급성장해 눈길을 끌었다. 다나카 나오키 자민당 참의원도 데릴사위로 성공한 사례다. 원래 성이 ‘스즈키’였던 그는 1969년 다나카 마키코 전 일본 외무장관과 결혼하면서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데릴사위가 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버지 역시 데릴사위가 되면서 ‘고이즈미’로 성을 바꿨다.
한국에서도 법적으로 데릴사위가 가능하다. 민법에 ‘서양자’와 비슷한 ‘입부혼(入夫婚)’제 규정이 있다. 민법 826조 3항에 ‘처(妻)는 부(夫)에 입적한다. 그러나 처가 친가의 호주 또는 호주 승계인인 때에는 부가 처의 가(家)에 입적할 수 있다. 전항 단서의 경우에 부부간의 자(子)는 모(母)의 성과 본을 따르고 모의 가에 입적한다’고 되어 있다. 이 조항은 2005년 8월31일 삭제됐지만, 호주제가 폐지되는 올해 12월31일까지는 유효하다.
대법원 사법연감통계자료에 따르면 남편이 처가의 호적으로 들어간 경우는 2002년 12건, 2003년 197건, 2004년 64건, 2005년 75건에 불과했다. 해마다 평균 32만쌍이 결혼하는 것에 비하면 없다고 봐도 될 정도이지만 분명 존재한다.
데릴사위로 처가에 입적한 경우와, 그렇지는 않더라도 단순한 처가살이를 넘어 처가의 가업을 이어받아 장자 노릇을 하는 경우로 한정시켜 이들의 명(明)과 암(暗)을 취재했다.
처가의 가업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사례로는 고(故) 이양구 동양오리온 회장의 두 딸과 결혼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을 들 수 있다. 딸만 둘을 둔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혈족에서 양자를 들였으니 맏사위인 윤관 블루런벤처스 사장 역시 조선시대 의미의 데릴사위라고 할 만하지만, 그는 처가의 가업인 LG그룹과는 무관한 길을 가고 있다.
처가 일에 전념하라
데릴사위를 원하는 사람들은 왜 데릴사위를 얻으려 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사윗감을 원할까. 선우, 비에나래, 듀오, 에스노블, 방배결혼연구소 등 상류층 자제와 전문직 종사자들의 결혼을 주로 주선하는 것으로 알려진 결혼정보회사들의 도움을 얻어 당사자들을 전화, 서면 또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비에나래 이경 실장은 “데릴사위를 얻으려는 사람은 대부분 똑똑한 사윗감을 원한다”고 했다. 자신이 힘들게 축적한 재산을 제대로 보존하고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처가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상대적으로 본가에 신경을 덜 써도 되는, 형제가 많은 평범한 집안의 차남이나 막내를 선호한다고 했다.
“내가 평생 일군 게 딱 두 가지 있다. 남부럽지 않은 재산과 딸 하나다. 솔직히 딸이 재산을 잘 관리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딸을 행복하게 해줄 남자를 만날지도 걱정이고. 이 둘을 책임져줄 사위였으면 좋겠다. 나로서도 아들 하나 더 얻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사위였으면 좋겠다.”
데릴사위를 고르는데 정작 결혼 당사자인 딸의 목소리는 없을 때가 많다고 한다.
듀오 이미경 실장은 “딸만 있는 집안이라 해도 명문가와 졸부가 원하는 사윗감이 서로 다르다”고 했다. 사회적 지위와 부를 함께 지닌 명문가는 자수성가한 엘리트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 그보다는 학력이나 외모가 조금 떨어져도 제대로 된 집안의 자제를 찾는다. 반면 졸부들은 명문가보다는 자수성가한 엘리트를 원한다. 자기들에게 없는 전문직을 원하는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돈 집안의 명성에 밀려 자존심 상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 때문인 것 같다고.
“강남에 한 재산가가 있었어요. 딸이 셋인데 큰딸을 사회지도층 집안에 보냈다가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나봐요. 둘째사윗감은 못사는 집안 출신의 전문직 종사자였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를 둔 한의대생을 소개했는데 한의원 개업시켜주고, 아들처럼 여기며 잘 지내요. 얼마 전에 찾아와서는 막내에게도 둘째사위 같은 남자를 소개해달라고 하더군요.”
에스노블 이윤희 대표도 “상류층은 자기 아들을 돈으로 데릴사위 삼아 데려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2000억원 가까운 재산을 가진 한 방적회사 회장이 데릴사위를 찾는데, 학자 집안 출신의 변호사가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신이 로펌을 차릴 수도 있고 장인 회사를 물려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가 상견례 후에 어머니가 강하게 반대해 결혼이 무산되고 말았다. “네가 뭐가 아쉬워 돈에 팔려 가냐”고 호통을 쳤다는 것.
또한 졸부가 아닌 상류층의 경우 데릴사위냐 아니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했다. 딸이 잘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명문가 딸에게 평범한 집안의 외무고시 합격자와, 집은 부유하지만 학력은 별로인 남자를 동시에 소개했더니 자신도 돈이 많은 집안임에도 부유한 집 남자를 선택하더라고요.”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난 고객은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관리해줄 사위가 필요하다고 털어놓았다. 그에겐 아들이 있지만 성직자의 길을 걷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 재산관리를 딸이 맡으면 되지 않냐고 하자 “그럴 능력이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사위를 얻더라도 재산의 명의는 딸 앞으로 할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외손자에게 姓 물려주고 파”
유리업체를 경영하는 여사장은 일찍 남편을 잃고 홀로 딸을 키우며 사업체도 키워왔다. 올해 29세인 딸도 미국에서 MBA를 마치고 돌아와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그런데 경영을 하면서 여자이기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절감한 그는 딸을 도와줄 사위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는 필요하면 사위에게 유학 등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경영권은 무조건 딸에게 물려줄 것”이란 말도 잊지 않았다. 은연중에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 처가 쪽 성(姓)을 따르는 것도 사위에게 제안할 생각이라고 털어놓았다.
내년부터 호주제가 폐지되고, 새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됨에 따라 자녀에게 부모 가운데 어느 한쪽 성을 선택해 물려줄 수 있다. 따라서 이 여사장처럼 성을 이어가기 위해 데릴사위를 얻으려는 사례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상류층 중매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한 방배결혼상담소 차일호 대표는 특별한 조건을 내건 사례를 들려줬다.
“몇 해 전에 2000억원대 재산을 가진 집안의 외동딸 중매를 선 적이 있다. 아버지는 경북의 한 소도시에서 손꼽는 부자 집안이고, 어머니도 경기도 신도시에 많은 땅을 가진 지주의 외동딸이었다. 그런데 그 집에서 데릴사위를 구하면서 첫 째로 내건 조건이 남자의 성씨였다. 여자가 김씨니까 김씨인 남자면 된다는 것이었다. 간접적으로라도 자기의 성을 물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소박하게 딸자식 부부와 함께 사는 게 꿈인 경우도 있다. 한 여성이 자신과 딸 앞으로 된 1000억원대 재산증명서를 들고 차 대표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는 준재벌과 재혼했으며 남편과 사별한 후 딸과 단둘이 살고 있다고 한다. 전처 소생 아들들이 있지만 자신을 챙겨줄 리 만무했다. 그가 사윗감에게 원하는 조건은 단 하나, ‘적적하지 않게 나와 함께 살아달라’는 것이었다.
신데렐라 꿈꾸는 남자들
재산가들이 돈을 앞세워 데릴사위를 얻으려 하는 것에 대해 ‘돈으로 사람을 사겠다는 것’이라는 세간의 비난이 높기는 하다. 중앙대 주은우 교수(사회학)는 “조건을 맞춘다는 명목으로 돈 많은 처가가 남성을 컨트롤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차라리 입양을 하는 것이 솔직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강학중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도 “데릴사위제는 능력 있는 딸을 키워 가계를 번창시키는 게 아니라 남자인 사위에게 이를 맡기겠다는 것이다. 결국 남자가 집안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가부장적 사고나 다름없다”며 데릴사위의 긍정, 부정을 따지기에 앞서 능력 있는 딸에게 가업을 물려주겠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졸부들이 원하는 데릴사위의 첫째 조건은 전문직이다. 현직 의사와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의사나 변호사가 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뿐 아니라 개업까지 보장한다.
젊은 층에서는 데릴사위에 대해 그다지 꺼리지 않는 분위기다. 결혼정보업체 웨디안이 전문직 남성 200명을 대상으로 ‘데릴사위 제안을 받아들이겠느냐’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54%가 ‘재력이 뛰어나도 데릴사위는 관심 없다’고 응답했다. 반면 ‘재력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결정하겠다’(32%)와 ‘데릴사위라도 상관없다’(14%)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한 결혼전문업체에서 만난 커플매니저는 “전문직 남성의 경우 데릴사위 여부와 상관없이 경제적 지원을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당사자가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어머니가 찾아와 구체적인 액수까지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노골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다들 내심 바라는 것은 분명해 보여요. 그런 요구가 없기에 평범한 집안여성을 소개해줬다가 혼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깨지는 경우도 여럿 봤어요. 그러면서 ‘그런 건 말 안 해도 다 아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이런 경우도 있다고 한다.
“돈을 바라는 회계사가 있었어요. 웬만한 여성들은 소개해도 시큰둥해하는 사람이었죠. 500억원대 재산가가 자신의 재산을 관리해줄 데릴사위를 원한다기에 그 회계사를 소개했어요. 그런데 여자를 만나기 전에 그 여자 집안의 재산을 조사했나봐요. 여자의 외모도 성격도 학력도 다 별로였는데 무척 적극적으로 나서더라고요. 그렇게 신데렐라를 꿈꾸는 남자가 많아요.”
“지원은 확실하게 해준다”
꼭 재벌가나 졸부들만 데릴사위를 찾는 것은 아니다. 남자들도 꼭 재산만 보고 데릴사위로 가는 것만도 아니다. 강남에서 20년 넘게 ‘마담뚜’ 노릇을 하고 있는 김모씨는 7년 전쯤 맺어준 사례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신부 아버지는 제법 유명한 화가였지만 그렇게 부자는 아니었어요. ‘강남 중산층’이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였죠. 그런데 딸이 어려서 사고를 당해 다리를 절었어요. 게다가 외동딸이라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니 중매 요청을 받고 난감했죠. 장애가 있는 여자와, 그것도 가진 것 별로 없는 집안에 데릴사위로 갈 남자가 있겠나 싶었어요. 어떻게 해서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청년을 소개했어요. 집안도 나쁘지 않은 청년이었죠. 그런데 맞선을 보고는 여자에게 반한 모양이에요. 이런 것 저런 것 따지지 않고 6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죠. 지금 처가에 들어가 살고 있는데, 신부 아버지가 나를 만날 때마다 ‘좋은 신랑감 구해줘서 고맙다’고 할 만큼 사위가 잘한다고 하네요.”
데릴사위로 결혼해도 대개는 이렇게 잘 산다. 다음은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들은 이야기다.
신부 아버지는 신촌에서 큰 규모의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는 의사다. 그런데 어머니가 대단한 여걸이라고 한다. 남편의 수입을 잘 굴려 모텔 등 10여 개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고 대형 사우나를 운영하는 등 상당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어머니의 목표는 세 딸과 사위가 모두 의사인 의사 집안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딸 셋을 모두 의대에 진학시켰다. 어머니는 큰딸을 결혼시키기 위해 결혼정보회사에 찾아와 “의사면 좋지만 지금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의사의 길을 걷겠다면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조건은 반드시 의사가 되어야 하고 처가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사위가 병원과 집안을 책임져주길 원했다. 결혼정보회사에서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사원으로 근무하던 남자에게 의향을 타진했는데, 마침 그는 의사가 되길 바랐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꿈을 접은 아픔이 있었다.
“부모가 원하는 데릴사윗감과 신부가 원하는 배우자감이 달라 중간에서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어머니의 영향력이 강하니까 딸이 엄마가 골라주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결혼했다가 갈등을 겪기도 하죠. 그런데 이 남자 외모가 준수해서인지 딸도 싫어하는 눈치가 아니었고, 어머니도 사윗감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을 마음에 들어 했어요. 남자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처가에 잘 보이려고 열심히 했겠죠. 결혼이 성사돼 지금 남자는 의대에 편입해서 공부 중인데, 처가 식구들과 아주 잘 지낸다고 들었어요.”
데릴사위가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잘 살고 있는 대부분의 데릴사위는 소문이 나지 않는 반면, 파경에 이른 경우는 소문이 나게 마련이어서인지 실패사례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장모의 입김과 홀대
데릴사위들이 결혼생활에 실패하는 이유에 대해 서울지방가정법원 김영희 조정위원장은 “장인이나 장모가 딸의 결혼생활에 강하게 개입하는 등 처가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다. 사위로선 처가에 고마움도 느끼지만 홀대받거나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면 반발이 생기게 된다. 자기가 처가에 하는 만큼 아내가 시집에 잘하지 못하는 것도 불만이 되기 쉽다. 그런 게 쌓여 갈등이 생기는데, 대부분 처가 식구들과 아내가 한편이 되어 남자는 고립된다. 결국 밖으로 나돌다 외도를 하는 게 보편적인 순서”라고 설명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상담위원도 “처가살이하는 남자가 늘어나면서 장모와의 갈등, 처가와의 갈등을 호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며 “개중엔 데릴사위로 살다가 이혼 방법을 묻는 상담도 몇건 있었다”고 했다.
40대 초반인 A씨는 13년 전, 은행 동료 직원의 소개로 결혼했다. 처가는 사채업으로 어느 정도의 현금과 부동산을 가진 집안이었다. 장모는 그에게 은행을 그만두고 자신의 재산을 관리해줄 것을 요구했고, 그는 처가에 들어가 살면서 열심히 일을 도왔다. 그의 노력 덕분에 처가 재산은 크게 불어나 지금은 1000억원에 가깝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장모에게 그는 머슴, 기껏해야 부하직원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괄괄하고 직설적인 장모는 잔소리도 심했고 인간적인 모욕을 주기도 했다. 심지어 사위에게 무릎 꿇고 잘못을 빌게 한 적도 많았다. 그렇다고 아내가 그를 위로하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아내는 시댁의 ‘시’자가 들어간 것은 다 싫어했다. 시부모 생일에조차 직원 손에 꽃과 돈봉투를 들려 보내곤 친정식구나 친구들과 외출하는 게 다반사였다. 형제들 보기도 민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와의 다툼이 잦아지고, 처가식구와의 갈등도 깊어졌다. 결국 그는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싶다며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방법을 물어왔다.
앞으로 처가살이와 데릴사위가 늘어나면 사위들의 이 같은 ‘처가 반론’도 거세질 것이다.
모 대학병원 과장도 데릴사위로 들어갔다 이혼했다. 레지던트 시절 중매로 만난 아내는 지방에 골프장을 가진 갑부 딸이었다. 장인의 재산은 사업체와 부동산을 합쳐 500억원을 족히 넘었는데, 딸만 셋이 있고 아들이 없었다. 딸들은 모두 지방대학을 나왔다. 장인에겐 주변에 자랑스럽게 소개할 새로운 가족이 필요했다. 장인은 그에게 결혼하면 생활비 등을 다 대줄 테니 대학병원에 남아 사회적 명성을 쌓기를 요구했다. 외국 유학도 보내줬다. 고마움을 느낀 그는 최선을 다해 맏사위 노릇을 했다. 처가의 대소사를 자기 일처럼 다 챙기며 장인과 장모를 보좌했다.
‘콤플렉스’와 ‘배은망덕’
하지만 데릴사위는 데릴사위였다. 모든 일에서 처가가 우선이었다. 주말이면 언제나 처가 식구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고, 여름이면 처가와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고, 겨울에는 스키장, 봄가을이면 처가의 별장에서 시간을 보내게 됐다. 친구나 본가의 사촌 결혼식이 있다고 할지라도 처가의 사돈에 팔촌 결혼식이 있으면 그것이 우선이었다. 세월이 꽤 흘렀지만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는커녕 처가의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주변의 따가운 눈총, 부모의 불만, 형제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느끼며 그는 점점 자신의 처지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가정에서도, 본가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던 그는 병원에서 함께 일하던 간호사에게서 위안을 얻고, 사랑하게 되었다. 처가에 이 사실이 알려져 위자료 한푼 받지 못한 채 빈 몸으로 나왔지만 마음만은 편하다고 했다.
아내 쪽에서는 아내대로 불만이 많았다. 비록 서로의 돈과 능력을 보고 결혼했지만 남부럽지 않은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행복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은 처가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기 시작했다. 다툴 때 튀어나오는 남편의 말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내는 점차 그런 남편의 눈치를 보게 됐고, 그러다 보니 평소에도 말을 아끼고 조심하게 됐다. 두 사람 사이엔 점점 대화가 사라져갔다.
아내는 당연히 남편이 친정부모님이 베풀어준 배려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마음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게 섭섭했다. 고마움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면서 불신의 벽은 더욱 높아갔다. 특히 친정부모에게 비뚤어진 태도로 대하는 것을 보면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러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됐고,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신뢰가 깨어졌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직접 목격한 위의 사례를 들려준 비에나래 이경 실장은 “데릴사위의 혜택은 신혼 때나 달콤한 사탕으로 느껴질 뿐,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가 점차 퇴색한다. 자신의 처지에 대해 점차 불만이 생기고, 숨 막히는 상황이라고까지 생각할 수도 있다.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생각에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며 이에 대한 해결방법을 부부와 처가 식구들이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서울 모 대학교수인 B씨는 데릴사위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돌린다. 4년 전 이혼의 아픔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는 처가의 조건을 보고 결혼한 것은 아니었다.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그는 서울대 상대를 나와 국비장학생으로 유학을 다녀온 뒤 젊은 나이에 정교수로 임용된 엘리트였다. 동료 유학생이던 아내와 7년 전 결혼했다.
‘씨내리’용 種馬?
장인은 당시 잘나가던 정치인이었다. 장인에겐 아들이 있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지, 아내보다 먼저 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사위를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의 후계자로 키우려고 여러 가지 주문을 했다. 학자의 길을 걷고 싶어 하는 그에게 사법시험을 보라고 권하는가 하면 정관계 인사들과의 만남에 그를 대동하기도 했다. 선거 때는 총참모 노릇을 맡기기도 했다. 그럴수록 그는 장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좌절했다.
장인의 기대가 버거웠던 그는 결국 이혼을 결심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장인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곤경에 처하자 책임을 자신에게 떠넘기려 한 것이었다. 사위는 역시 남일 뿐 결코 아들은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김충식(36)씨도 현재 이혼 수속을 밟고 있는 데릴사위다. 모 대기업에 근무하던 그는 동료 연구원이던 아내와 2000년 결혼했다. 장인이 공기업 사장 출신으로 어느 정도 재력도 있는 집안이었다. 결혼을 결심하고 처가를 찾았을 때 장인은 조심스럽게 종손(宗孫)인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며 처가로 호적을 옮길 것을 부탁했다. 본가에서 강하게 반대했지만 그는 입부혼을 강행했다.
장인은 처갓집 바로 옆에 아파트를 얻어주고 조건이 더 좋은 회사로 옮겨줬다. 달콤한 신혼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환상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처가는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본가를 무시하는 것은 물론, 자신도 무시했다. 그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 특히 아이를 본가에 데려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생각해보니 자기 이름으로 된 재산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명의로 된 신용카드도 마음대로 만들지 못하게 했다.
이런 불만을 장인에게 털어놓자 장인은 “내가 자네 집안이나 자네의 비전을 보고 내 딸을 준 건 아니다. 건강하고 건장한 자네의 몸이 좋았을 뿐”이라고 했다. 순간 그는 자신이 처가에서 씨를 얻기 위해 사육되는 종마(種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집안을 이을 후손을 얻기 위한 정략적 결혼이었음을 깨달은 그는 이혼을 결심하고, 현재 아들을 되찾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내년부터 자녀가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게 한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되면 이처럼 재력가가 자신의 기업이나 재산을 포함해 성까지 물려줄 수 있는 ‘아들 같은 사위’를 얻고자 하는 사례가 늘어날 전망이다.
이명숙 변호사는 “피도 살도 안 섞인 남(양자)보다는, 딸의 피가 섞인 아이에게 대를 잇게 하겠다는 것인데, 직계가족에게 가(家)를 계승시키겠다는 사고 자체가 이젠 버려야 할 가부장제의 잔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건’이 결혼의 주체?
데릴사위의 무엇보다 큰 문제는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결정에 장인, 장모의 목소리만 있고 정작 결혼 당사자인 딸의 목소리는 없다는 것이다. 당사자는 빠진 채 부모가 내건 ‘조건’이 결혼의 주체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선우 이웅진 대표는 “데릴사위로 들어가더라도 그 집안의 경제력이 결혼 목적이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명숙 변호사는 “과거 여자가 남자의 집안으로 들어가는 개념이나 남자가 데릴사위로 처가에 들어가는 것이나 ‘한쪽에 종속된다’는 것은 같다. 지금은 독립된 남녀가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시대다. 두 사람이 어떻게 가정을 꾸릴지는 철저하게 그들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결혼 당사자들도 처가든 시가든 부모의 재산은 별개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