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호

박성중 구청장이 말하는 World Best City의 조건

“친환경·복지·글로벌 경쟁력 갖춘 명품도시를 지향한다”

  • 구가인│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9-03-05 11:5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박성중 구청장이 말하는 World Best City의 조건
    확실히 좀 다르죠? 오늘 자랑을 많이 늘어놓더라도 이해해주세요(웃음).”박성중(51) 서초구청장과 인터뷰를 하기 전 구청 1층에 있는 OK민원센터를 들렀다. OK민원센터는 박 구청장이 취임하자마자 한 층에서 모든 민원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하게끔 개선해 호평을 받은 시설. 편의성 못지않게 세련된 디자인이 눈에 띈다고 칭찬하자 박 구청장은 “다른 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뼈있는 농담을 던진다. ‘세계 명품도시 일류 행복도시’라는 슬로건이 그렇듯,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배어나온다.

    “‘명품도시’라는 말은 아마 서초구가 가장 먼저 내걸었을 겁니다. 구청장선거에 뛰어들면서 어떤 모토를 내걸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명품을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백화점에서나 명품이란 말을 써서 조금 주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서초구가 세계도시와 경쟁해야 한다면 ‘명품’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과감히 내걸었습니다. 물질 못지않게 정신도 중요한 만큼 ‘행복도시’라는 말을 붙였고 요. 그런 개념으로 시작했는데, 좀 있으니까 다른 자치단체에서도 줄줄이 쓰더라고요.(웃음)”

    60%가 녹지 친환경 도시

    서리풀(벼)이라는 뜻을 지닌 ‘서초’구는 본래 임금님께 바치는 쌀이 나던 평야지대였다. 1960년대 이후 급속히 도시화가 진행됐지만 북쪽에는 한강을 끼고 있으며 우면산, 청계산, 구룡산과 더불어 양재천, 반포천, 사당천에 둘러싸여 좋은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총 면적이 47.14㎢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가장 넓은 서초구는 전체 면적 대비 녹지 비율이 60% 정도며 그린벨트 지역이 52%로 서울시 평균인 27%의 2배 가까이 된다. 박 구청장 역시 이러한 서초구의 자연환경에 대한 애정이 깊다.

    박성중 구청장이 말하는 World Best City의 조건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덮개공원은 올 9월말에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무엇보다 서초의 강점은 자연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좋은 환경 조건을 가진 곳은 서울시내 어디에도 없어요. 지난해 환경부에서 전국 250여 개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총 여섯 군데의 그린시티를 선발했는데 그중 한 곳이 서초구입니다. 서울시에서는 저희뿐이에요. 그만큼 좋은 자연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것을 제대로 보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양재천 복원사업이나 청계산과 우면산의 환경개선사업, 조경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한 가로수 전지사업 등은 환경보존에 대한 박 구청장의 이러한 철학과 무관하지 않다. 박 구청장은 올해에도 “한강과 우면산을 잇는 서리풀공원에 그린아트보도교를 설치하는 등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벌이는 것과 동시에 반포천, 사당천 주변 시설 개선 사업 등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올해 9월말 착공을 앞둔 덮개공원은 박 구청장이 특히 공을 들이는 역점사업이다. 덮개공원은 서초1교에서 반포나들목까지 경부고속도로 440m 구간에 터널을 만들고 터널 위를 녹지로 덮어 쾌적한 편의, 휴게시설을 갖춘 테마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으로 미국 보스턴의 빅딕(Big-Dig) 프로젝트, 독일 뮌헨의 페투엘(Petuel)공원 등이 대표적이다. 덮개공원이 완성되면 경부고속도로 주변 지역의 소음과 매연 피해를 줄이고 도심에 부족한 녹지를 늘릴 수 있게 된다. 서초구 측은 터널 내부의 먼지와 소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터널 내부 높이를 일반 터널보다 1m 이상 높은 5.5m 이상으로 하고 소음제거장치와 배기가스 배출시설 등 배기처리시설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역민 참여 통한 복지 향상

    “경부고속도로 덮개공원은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겁니다. 이미 1800억원의 공사비를 댈 민간투자자를 확보했는데 법령상의 문제로 서울시와 추가 협의 중에 있습니다. 서초구 주민이 원하는 시설이자, 나아가 서울시를 대표하는 녹색 명소가 될 것입니다.”

    서초구는 교육과 소득 면에서 가히 대한민국 최고 수준이라고 할 만한 곳이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대졸이상 가구주가 73.6%로 서울시 평균 46%보다 월등히 높다. 박 구청장은 “소득과 교육수준이 높은 만큼 행정 서비스 역시 남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이 중산층 이상이죠. 교육수준도 높습니다. 그런데 그만큼 수요가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10인 10색이에요. 보도포장 하나만 해도 ‘보통’으로 하면 안 됩니다. 보고, 배운 수준이 높은 만큼 공공서비스의 수준도 높아야 해요. 자연히 사업비용도 많이 필요하죠. 한 예로 복지관 하나 짓는 데 토지보상가격만 해도 서울시 평균보다 두세 배 들어가는데 서울시에서 지원받는 액수는 (다른 구와) 똑같으니 오히려 구의 형편은 어렵다고 봐야죠.”

    박성중 구청장이 말하는 World Best City의 조건

    서초구에서는 2008년부터 영어사용 가능업소를 선정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잘사는 사람이 많다고 구가 부자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초구 전체 세수(稅收) 약 6조원 중 자치구에 할당된 액수는 2000억원 정도로 많지 않다. 박 구청장은 정부나 서울시 지원으로 부족한 부분을 지역민의 기부를 통해 메운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역주민의 기부액수는 2006년 27억, 2007년 34억, 2008년 118억으로 매해 증가하고 있다. 우면산, 청계산 등산로 개선사업도 지역민들의 기부를 통해 이뤄졌다. 이에 더해 지역민들의 자원봉사 비율도 증가했다. 서초구에서는 유명 연예인을 포함한 주민 1400여 명이 중증장애인, 독거노인 등 사정이 어려운 2000여 가구와 1:1 맞춤형 결연을 맺거나 매주 안부전화를 통해 도움을 주고받는 ‘사랑의 소리’등 자원봉사프로그램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기부와 자원봉사 문화가 발달해 있습니다. 하지만 소득수준, 교육수준이 높다고 무조건 참여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처음 구청장에 취임했을 때만 해도 참여율이 높진 않았어요. 뭔가 참여할 만한 여건과 프로그램을 만들어줘야 참여도 하는 거죠. 가장 먼저 시도한 게 자원봉사입니다. 공무원뿐 아니라 기업체, 시민단체, 일반 시민, 직능단체, 각종 친목단체 등을 모아 꾸린 전문가 자원봉사 단체가 100여 개로 총 3000여 명이 활동합니다. 분야별로 자신에게 맞는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해서 주민참여를 높인 거죠. 이밖에 우면산, 청계산 정비 사업을 할 때 전부 기부를 받았습니다. 5만원에서 10만원까지 받고 계단이나 시설물에 시민들의 이름도 새겨 넣고요. 자기가 기부한 곳의 시설이 좋아지면 확실히 뭔가 느껴지잖아요. 그러면서 서초가 뭔가 발전적으로 변한다는 느낌도 받게 되고 그래서 다시 참여율은 더 높아지게 되는 거죠.”

    World Best City 향한 노력

    ‘강남의 부자동네’로 잘 알려진 서초구에는 그 못지않게 사회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고속버스터미널이 위치한 교통과 물류유통의 중심지이며, 예술의전당, 국립국악원, 대법원, 대검찰청 등도 서초구에 위치해 있다. 최근에는 삼성그룹의 주요 계열사와 LG그룹 R&D센터가 서초구에 자리 잡았다.

    “서초는 지금도 잘사는 곳이지만 앞으로의 가능성이 더 큰 도시입니다. 경제, 사회, 교육 모든 분야의 1등이 다 서초구에 모여 있습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서초구가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도록 충분한 동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 중 하나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만드는 겁니다. 순수 토종만 고집하는 도시는 세계적인 도시가 될 수 없죠. 세계 유명 도시들은 다양한 인종의 사람이 모여 마치 용광로처럼 새로운 융합을 만들어내고 그게 다시 도시의 발전 동력으로 쓰입니다. 서초 역시 그런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서초구에는 약 6000명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프랑스인 거주지역인 서래마을과 인베스트 코리아, 외교센터 등이 위치해 있고, 최근 대기업 본사 이전으로 인해 그 비율은 증가했다. 실제로 서초에는 구청 OK민원센터 안에 있는 외국인 도움코너를 비롯해 서래 글로벌빌리지센터 등 외국인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편이다. 박 구청장은 이에 더해 글로벌 경쟁력의 첫째 조건으로 영어를 강조한다. 2008년부터 방배지역에 영어도서관, 영어체험공간을 갖춘 영어센터를 열었고, 이어 올해 안에 반포, 양재, 서초 권역에도 영어센터를 열 예정이다. 더불어 지자체가 직접 영어사용 가능업소 지정을 위해 호텔, 병원, 음식점 등을 대상으로 평가를 실시했다. 서초구 측은 지난해 총 32개 업소를 영어사용 가능업소로 지정했으며 올해 100개소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2년까지 구민의 30%가 영어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하는 박 구청장은 서초구 공무원들에게도 영어실력을 강조한다. 서초구는 분기별로 영어간부회의를 개최하고 직원을 대상으로 한 영어 집중교육을 하며 영어능력 경진대회 등을 열어 화제가 된 바 있다.

    “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뉴욕의 맨해튼은 인구가 160만명가량 되는데, 175개국 출신 사람이 산다고 합니다. 영어가 범용적으로 통하기 때문이고, 나아가 영어를 몰라도 살 수 있는 편리함이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서초구의 목표가 5년 내 지역민 30%가 영어회화를 구사하는 거라고 말하면 거창하다고 받아들일 분들도 있겠지만, 서초구민의 교육수준이 높은 만큼 조금만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공무원들에게 영어 공부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외국인 주민이 늘면 공무원 역시 언어 소통 능력을 갖춰야죠. 간부 전원과 원하는 직원에 한해 영어교육을 시켰습니다. 영어교재를 선정해 한 달간 매일 한 시간씩 영어교육을 하고 평가도 했어요. 영어 회의도 하고요. 당장은 유창하지 못하지만 한 5년쯤 지나면 많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박성중 구청장이 말하는 World Best City의 조건

    등산을 좋아한다는 박성중 구청장은 틈나는 대로 청계산을 오른다.

    반발은 없었을까. 자신도 직원들과 함께 매일같이 문장을 외우고 있다고 말하는 박 구청장은 다음과 같은 고사를 들려줬다.

    “중국 고사에 대추나무에서 대추를 매해 일정량 이상 수확하려면 나무에 염소를 매어두라는 말이 있어요. 염소가 대추나무를 흔들다 보면 대추나무가 긴장해서 종 번식이라도 많이 시키기 위해 대추열매를 많이 내는 거죠. 발전을 위해서는 적절한 자극이 필요합니다.”

    이론과 실전 겸비한 행정CEO

    박 구청장은 행정고시 23회 출신이다. 2006년 민선 4기 구청장이 되기 전 그는 대통령비서실에서 지낸 4년 남짓한 시간을 제외하고 20여 년 넘게 서울시에서 일했다. 조순 시장 시절에는 행정과장을 지냈고, 고건 시장 때는 교통기획과장과 공보관으로 일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으로 당선된 후에는 시정기획관으로 재임 4년의 계획인 ‘비전 2006’을 만들었다. 도시행정학 박사이기도 한 그는 이론과 실전을 겸비했다는 게 강점이다. 구청장으로서 중요한 덕목을 묻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비전’과 ‘추진력’을 꼽았다.

    “모든 조직의 리더에게, 특히 자치단체장에게 필수적인 것은 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은 실패가 바로 드러나지만 자치단체의 행정은 10년, 20년이 지나야 결과가 드러나니까요. 물론 비전이란 건 실력이 없으면 불가능하겠죠.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하면 추진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모든 집단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추진력이 없으면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가 없어요. Doing First, 지금처럼 모든 게 빨리 진행되는 시대에는 특히 어느 정도 선에서 논의가 되면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진행하면서 잘못된 점이 나오면 고쳐야죠. 그래야 뒤처지지 않고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런 행정철학을 바탕으로 그가 취임한 후 서초구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OK민원센터와 다목적CCTV종합상황센터인 서초 25시센터 등 전국 최초로 시도한 사업이 46건, 정부와 서울시 각종 언론에서 주관하는 평가에서는 그 성과를 인정받아 82개 분야, 30억원 가까이 인센티브를 받았다. 그러나 정부, 서울시와 지역주민 사이의 다리가 되는 구청장으로서 어려운 점도 적지 않다. 더불어 도시계획의 큰 방향이 때로 각기 다른 집단의 이익과 충돌하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재건축, 재개발은 민간에만 맡기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재건축 역시 도시 계획의 일부로 공공이 맡아야 전체적인 짜임이 있죠. 현재 방배권역 일부 지역에 재건축을 하게 됐는데 전부 고층으로 지으려 합니다. 하지만 도시 전체 틀을 생각해야 하거든요. 바람의 통로도 고려해야 하고 녹지축도 내줘야 하고, 도로도 다 연결되도록 전체 그림을 그려 방향성을 준 후 재건축에 들어가야 하는데,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니 미래를 망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득하고 있습니다. 일부 잃더라도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갈 사람을 생각하고 도시를 만들어가겠다, 도시의 장래를 망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죠. 사실 구청장의 권한이 제한된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영국 런던은 32개 자치구로 이뤄져 있는데 도시의 모든 권한이 다 이들 구에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시장 권한만 있지 구청장의 의지만으로 추진될 수 있는 게 없어요. 좋은 도시계획을 가지고 있어도 쉽게 추진하기 어렵다는 게 아쉽습니다.”

    서초가 변해야 대한민국이 변한다

    박 구청장은 올해 할 일이 많다. 서초구에서는 덮개공원 사업, 서리풀공원, 사당천 및 반포천 개선 사업뿐 아니라 강남 고속버스터미널과 주변 기능을 재정비하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입체복합개발 사업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장애인 정보문화센터, 노인종합복지관 등 복지시설도 확충된다. 박 구청장은 “세계 명품도시를 지향하는 만큼 앞으로도 친환경, 복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혁신을 거듭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취임 초 계획했던 단기적인 사업들은 올해 안에 다 끝날 예정입니다. 중장기적인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할 거고요. 하지만 서초가 갈 길은 아직 멀다고 봅니다. 세계적인 도시들을 경쟁 대상으로 삼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해야죠. 명품도시가 일류 국가를 만듭니다. 서초가 변해야 대한민국도 변한다고 믿습니다.”



    신한국지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