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호

친구보다 동지, 방만보다 오만

독신의 정치학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4-10-22 15:3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모든 연령대에 싱글족이 꽤 많다. 이들은 어느 정당에도 소속되지 않은 무당파 정치인과도 같다. 자유롭다. 동시에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위태롭다. 혼자뿐이니 정치가 필요 없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정반대다. 혼자 살수록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직장생활에 더 몰두해야 한다. 그래야 호사스러운 독신의 삶을 오래도록 만끽할 수 있다.
    1인 가구가 급증세다. 9월 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9.0%였던 1인 가구 비율이 2010년 23.9%로 두 배 이상 폭증했다. 숫자론 453만 가구다. 20~30대 중 결혼보다 독신을 택하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1인 가구 10곳 가운데 4곳가량이 20~30대 1인 가구다. 과거와 사뭇 달라진 점이다. 과거에 이 세대는 부모와 함께 살거나 결혼해 분가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런데 요즘은 결혼 전에 일단 분가한다.

    요즘 사람들은 왜 혼자 살려고 할까. 가족가치 약화, 개인주의 심화, 결혼 기피, 고용 불안, 경제 여건 악화 순으로 원인이 꼽힌다. 30대 이하 젊은 층 중 많은 사람은 좋은 직장 구하기 어렵고,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돈벌이가 만족스럽지 않아 혼자 산다.

    아~자유!

    독신생활에는 분명 장점이 있다. 자유로운 생활, 출퇴근시간 절약, 사생활 보장, 취향에 맞는 집 꾸밈이 꼽힌다(2013년 싱글생활연구소 조사). 기혼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것! 아~자유! 그것이 독신 생활 최고의 장점인 것이다.

    독신생활의 유형은 매우 다양하다. 자발적 독신은 ①미혼 독신 ②이혼 독신으로 나눌 수 있다. 미혼 독신은 결혼을 원하지 않는 경우다. 순수 독신파다. 이혼 독신은 스스로 이혼을 택하고 혼자 사는 경우다. 비자발적 독신은 ①혼인 대기 독신 ②타율 이혼 독신 ③타율 별거 독신 ④사별 독신으로 나눌 수 있다. 혼인 대기 독신은 그야말로 혼인 대기 상태에서 짝을 못 구해 불가피하게 독신을 이어가는 경우다. 타율 이혼은 이혼을 당해 독신으로 접어든 상태다. 타율 별거 독신은 가정 형편상 불가피하게 독신생활을 하는 경우다. 기러기 아빠가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사별 독신은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 혼자 살게 되는 경우다.



    독신의 유형

    자발적 독신자는 대개 독신생활의 장점을 살려가면서 상대적으로 적응을 잘해가는 편이다. 반면 비자발적 독신자 중엔 독신 생활의 단점에 허덕이면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 독신생활의 단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경제적 부담, 집안일 부담, 극심한 외로움, 아프거나 위급할 때 혼자 해결해야 하는 점을 들 수 있다. 혼자 사는 것, 그렇게 간단치 않다.

    독신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립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9월 9일 추석 연휴 때 한 50대 독신 남성이 한강에서 투신자살했다. 미혼인 그는 가족에게 우울증을 호소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고독사가 관심사인데,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무연고 고독사가 늘고 있다고 한다. 슬픈 일이다. 연고가 있는 고독사까지 포함하면 고독사 숫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립에 빠지지 않기

    고독사는 청년세대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타날 것이다. 2월 부산에서 혼자 사는 30대 남성이 숨진 지 2개월 만에 발견됐다. 단칸방에 홀로 세 들어 살면서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요즘은 연령에 상관없이 고독사가 늘고 있다. 고독사는 극단적 고립에 따른 것이다. 독신자는 자유로운 반면 까딱하면 고립된다.

    정몽준, 안철수의 경우

    고립됐을 때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까. 스스로의 의지력도 중요하지만 조력자가 있다면 한결 수월하다. 정치권에서도 유력 정치인이 고립무원 지경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즘 여권에서는 정몽준 전 의원, 야권에서는 안철수 의원이 그러하다. 한때 고공행진을 하던 지지율도 빠졌다. 곁에서 든든하게 보필하던 쟁쟁한 인물들도 떠났다. 정 전 의원과 안 의원은 저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도, 김영삼 전 대통령도 가택연금 상태로 지낸 바 있다. 이때 고립에서 벗어나 정치활동을 재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정치적 ‘동지’였다. 사람이 답이라는 말이다. 독신생활에서도 고립에 빠졌을 때는 ‘동지’가 큰 힘이 된다. 그냥 아는 친구 말고 운명공동체적 동지 말이다. 내가 세상의 비난을 받을 짓을 했어도 무조건 나를 지지해줄 사람 말이다.

    인간관계는 양보다 질

    이런 점에서 특히나 독신자는 인간관계의 양보다는 질에 집중해야 한다. 아직 그런 존재가 곁에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만들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첫 한 명이다. 그렇게 3명, 5명 순으로 조심스럽게 확장해나가는 전략을 써야 한다. 처음에는 아주 더디게, 하지만 견고하게 스크럼을 짜야 하는 것이다. 초기에 좋은 사람으로 스크럼을 짜면 그들이 여과해서 사람을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좋은 문화를 가진 조직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동지가 필요해

    마음이 조급한 나머지 무조건 외연 확장에 나서다보면 스크럼이 순간 와해되면서 갈등의 골만 심해지는 결과를 빚곤 한다. 이런 경우에는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 스크럼을 짜는 것이 정답이다. 정몽준 전 의원이나 안철수 의원도 앞으로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산속 토담집에서 지내는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고문도 마찬가지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도, 김영삼 전 대통령도 조직 물갈이를 몇 차례 단행한 바 있다. 창당을 거듭하면서.

    고독사는 끝까지 곁에 있어줄 동지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잊지 말자! 그냥 아는 친구와 동지는 질적으로 다르다! 고립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단 한 명이라도 동지가 필요하다.

    자잘한 단점은 돈으로 해결

    돈도 매우 중요하다. 독신의 단점으로 지적된 경제적 부담, 집안일 부담, 극심한 외로움, 아프거나 위급할 때 혼자 해결해야 하는 점, 이들 모두는 돈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집안일 부담과 관련해 이미 기업들이 적극 도와주고 있다. 물론 공짜는 아니지만. 1인 가전제품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1인 가전제품은 앞으로 더 빠르게 진화할 것이다. 청소는 로봇청소기, 세탁은 세탁 서비스, 음식은 배달 서비스로 해결하면 된다. 가끔 재미삼아 손수 하는 것으로 끝이다.

    승진에 전력투구를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결국 직장생활을 성공적으로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1차 목표는 승진이다. 그 점에서 독신자에게는 비교우위 요인이 있다.

    첫째, 시간이다. 집에서 빨리 들어오라고 채근하는 배우자가 없기 때문에 넉넉하게 야근할 수 있다. 이 점을 100% 활용하는 게 좋다. 요즘 거리엔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려는 커플로 넘쳐난다. 이들이 노는 사이에 업무 실적도 차근차근 쌓고 업무 역량도 키워두면 두고두고 이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용돈 활용법

    둘째, 용돈이다. 기혼자에 비해 용돈에 여유가 있다. 이 점 역시 잘 활용해야 한다. 용돈이 밑천이라는 생각을 갖고 사람에게 투자하는 게 좋다. 먼저 회사 내에서 여러 사람과 식사할 기회를 갖는 게 필요하다. 아울러 사외 동호회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하는 게 좋다. 사내외의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힘을 발휘할 것이다. 더욱이 이런 활동으로 외로움도 극복할 수 있다. 이성 친구를 사귈 기회도 늘어난다. 사람을 만나야 일이 발생한다.

    셋째, 신속한 의사결정이다. 배우자가 생기면 의사결정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모험을 하기 어렵다. 딸린 가족 생각에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직(轉職) 결정도 쉽게 내리지 못한다. 독신자는 진보적인 결정을 내리기에 유리하다. 너무 속단하지 않을 자신만 있다면, 신속하고 공격적인 의사결정은 기회를 만들어준다.

    돈 모으기엔 더 유리

    이런 비교우위 요인을 극대화함으로써 승진에 모든 것을 거는 게 좋다. 승진을 향해 전력투구하는 것은 실직 방지 대책이기도 하다. 임원이 되어 억대 연봉을 받으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 물론 물질적인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조망 좋은 강남 아파트에 살면서 주말에 골프 치고 1년에 두어 번 해외여행 가는 독신생활이 원룸 독신생활보단 나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실직 없이 승진을 거듭하면 이런 호사로운 독신생활이 충분히 가능하다. 결혼 안 한 독신자는 자녀 양육비·교육비 안 드는 것만으로도 3억 원은 절약한다. 돈 모으기엔 독신이 더 유리한 측면이 있다. 본인이 하기에 따라 독신생활은 상대적으로 더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외로워 술집 자주 찾으면…

    혼자 살다보면 이른바 ‘귀차니즘’에 빠질 때가 많다. 이때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면, 당연히 생활이 방만해질 수밖에 없다. 방만은 방만을 낳는다. 방만하면 경제적 기반도 흔들린다. 직장생활 비교우위 요인도 무의미해진다. 일시적인 무절제만으로도 독신생활의 기반이 일거에 사라질 수 있다.

    외로워서 술집을 자주 찾는다고 전제해보자. 여종업원이 말동무도 해주는 동네 바(Bar) 같은 곳 말이다. 집에서 빨리 오라는 사람도 없으니 끝까지 마신다. 과음 상태로 집에 돌아오긴 하지만 아침에 깨워주는 사람이 없다. 일어나기 힘들고 지각이 잦아진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면 가사도 엉망이 된다. 옷도 대충 입고 출근한다. 업무 실적이 오를 리 없다. 독신자 티를 팍팍 내는 사람을 동료나 상사가 좋아할 리 없다. 자연히 승진에서 밀리고 만년 과장 신세로 전락한다. 술값에 카드 빚만 늘어나 퇴직금으로 빚잔치를 해야 할지 모른다.

    방만의 악순환

    이런 독신생활을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독신생활 중에 방만의 악순환에 빠지기 시작했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노후를 집도 없는 부랑인으로 보내거나 죽음을 고독사로 마무리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방만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다. 자제력이 있는 경우다. 그런데 자제력이 부족하다면 간섭할 타인을 많이 만들어두는 것이 좋다. 가족 중에 그런 역할을 해줄 사람이 있다면 다행이다. 없다면 친구나 애인, 주변의 지인에게 그런 역할을 맡겨야 한다. 공인인 정치인이 대중의 눈을 의식해 스스로 욕망을 절제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슈퍼맨 증후군

    방만도 문제지만 오만도 문제다. 몇몇 독신자는 ‘나는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사람은 ‘슈퍼맨 증후군’에 빠질 수 있다. 직장생활에서 승승장구하면 이 증세는 더 심해진다. ‘나는 혼자서도 이렇게 잘해내는데 너희들은 도대체 뭐냐’는 식으로 사람을 업신여긴다. 독신 CEO이나 독신 대통령에게서 종종 볼 수 있는 증세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다재다능한 것, 나쁘지 않다. 자신감이 넘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자기 확신이 자기 과신, 자만의 경지에 이르면 화를 부를 수 있다. 이럴 땐 누군가 한숨 죽게 초를 살짝 쳐주어야 한다. 불행히도, 독신자 주변에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돌직구를 날려줄 사람이 별로 없다. 특히 잘나가는 독신자의 경우엔 더 하다. 이런 잘나가는 독신자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싸늘한 답변을 많이 해왔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답변이 돌아올까 겁이 나 충고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잘 나가는 독신자의 오만, 슈퍼맨 증후군, 자만은 더 심해진다. 자연히 소통이 안 되고 인적 네트워크에 금이 간다. 고립되기 시작한다.

    그래도 독신자는 방만과 오만 중 하나를 택하라면 오만을 택하는 게 낫다. 방만하면 굶어 죽지만 오만하면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만한 사람은 스스로 처참해지는 것을 절대 용서치 않는다.

    우아하게 홀로 살자

    기혼자는 기본적으로 배우자와 자녀에게 상당한 시간과 돈을 써야 한다. 반면 독신자는 선택적으로 사람을 사귈 수 있고, 원하면 한 사람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이것이 집착을 부를 수 있다.

    친구보다 동지, 방만보다 오만
    이종훈

    성균관대 박사(정치학)

    국회도서관 연구관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 진행자

    現 아이지엠컨설팅(주) 대표, 시사평론가

    저서 : ‘정치가 즐거워지면 코끼리도 춤을 춘다’ ‘사내정치의 기술’


    더욱이 인간관계에 목말라 있던 상황이라면 불에 기름을 끼얹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런 집착을 방지하려면 역시 인간관계를 풍부하게 만들어야 한다. 친구는 물론 썸 타는 대상도 많은 편이 좋다. 선택지가 많아지면 집착 따위가 자라날 여지가 없다.

    여기저기 손을 내미는 행위를 두고 주접떤다고 한다. 집착하는 독신자, 주접떠는 독신자, 진상 떠는 독신자. 피할 일이다. 우아하게 홀로 살자.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