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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로 자기 표현하는 MZ세대

신념을 사는 ‘미닝아웃’의 명과 암

  • 윤혜진 자유기고가

    imyunhj@naver.com

    입력2020-03-0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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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닝(Meaning)’과 ‘커밍아웃(Coming out)’ 결합어

    • SNS에 ‘착한 구매’ 인증하고 지인에게 동참 권유

    • 에코백에 메시지 배지 달아 ‘튀지 않게’ 사회참여

    • ‘영혼 보내기’, 크라우드펀딩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

    • 조금 비싸도 가치 있다면 기꺼이 지출

    • “불매 운동이 폭력적 강요돼선 안 돼”

    [비마켓 인스타그램]

    [비마켓 인스타그램]

    대구에서 작곡을 공부하는 김민재(20) 씨는 얼마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세이브더애니멀’ ‘#기부’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기부 팔찌와 반지 사진을 올렸다. 그가 구매한 팔찌에는 ‘Cure’ ‘KOREA’라고 적혀 있다. 수익금의 10~20%를 국내외 비영리단체에 후원하는 ‘비마켓’ 제품이다. 김씨는 “결식아동과 아프리카 난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팔찌를 발견해 처음 샀다. 이후 의미 있는 제품을 계속 구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 SNS 게시물을 보고 다른 사람도 샀으면 하는 바람에서 인증하기 시작했는데 지인들이 실제로 따라 구매하기도 해 기분이 좋다”고도 했다. 

    평소 각종 캠페인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편인 김씨는 최근 유기견 수술비 모금에도 참여했다. 그는 “요즘 사람들은 ‘착한 소비’나 캠페인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며 SNS상에서 순식간에 퍼진 ‘노 재팬’ 운동을 예로 들었다. “처음에는 몇몇 친구가 일본 제품 대신 국산품을 구매하자고 권했는데,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국산품 구매 인증 사진을 올리는 것을 보며 신기했다”고 한다.


    미닝아웃과 ‘윤리적 소비’는 닮은꼴

    농부가 자신이 생산한 작물을 내놓고 판매하는 마르쉐 농부시장 풍경. [농부시장 마르쉐 제공]

    농부가 자신이 생산한 작물을 내놓고 판매하는 마르쉐 농부시장 풍경. [농부시장 마르쉐 제공]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서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의 시대로 넘어가며 최근 김씨처럼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소비로 표현하는 ‘미닝아웃(Meaning Out)’ 트렌드가 확산하고 있다. ‘미닝아웃’이란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벽장 속에서 나오다’라는 뜻의 커밍아웃(Coming out)을 결합한 신조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2017년 말 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18’에 처음 소개됐다. 당시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미닝아웃은 전통적인 불매운동이나 구매운동보다 업그레이드된 소비자운동”이라며 “개인이 나서는 것을 유별나게 생각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 개인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다. SNS에서 가치관으로 자아를 연출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망이 미닝아웃 트렌드를 키운다”고 설명했다. 

    그 후로 2년, ‘미닝아웃’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른바 ‘MZ세대’를 중심으로 때로는 놀이처럼, 때로는 정치 색채를 띠고 사회 곳곳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MZ세대란 1980년부터 2000년 초반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보통 스마트폰 활용이 능숙하다. 이들은 SNS로 ‘착한 소비’를 인증하거나 해시태그로 환경보호 캠페인에 참여하며, 메시지가 담긴 굿즈로 쿨하게 신념을 내보이기도 한다. 

    회사원 이재인(27) 씨는 얼마 전 무선 이어폰 케이스에 달 장식을 구매할 때 판매 수익금으로 유기묘를 후원하는 회사 제품을 택했다. 이씨는 “비슷한 상품 두 개를 비교하다 5000원 정도 비싸지만 좋은 일 하는 곳의 상품을 골랐다”며 “이런 의미 있는 상품을 소개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도 자주 이용한다. 독립 출판물을 구매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미닝아웃을 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내게는 소비가 ‘어떤 사회 문제에 관심 있는지’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사회 이슈에 직접 행동으로 대응하는 건 기성세대에게 극성스럽게 비칠 수도 있잖나. 에코백에 메시지가 적힌 배지를 다는 건 유난스럽지 않으면서도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라 마음이 편하다.”

    ‘가성비’보다 중요한 건 ‘가심비’

    ‘미닝아웃’은 개인의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만큼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다. 지난해 패션업계를 휩쓴 슬로건 패션이나 충무로 신풍경인 ‘영혼 보내기’도 미닝아웃의 일종이다. ‘몸은 집에 있지만 영혼은 극장에 있다’는 뜻의 ‘영혼 보내기’는 여러 사정으로 직접 영화를 관람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럼에도 영화표를 삼으로써 예매율을 높이는 응원 문화를 의미한다. 영화 ‘미쓰백’ ‘걸캅스’ 등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주로 영혼 보내기 대상이 됐다. 

    이처럼 미닝아웃은 소비자가 자기 이익뿐 아니라 사회, 환경 등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 소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윤리적 소비’ ‘착한 소비’와도 맥이 통한다. 2030 소비자는 친환경 마크가 부착된 상품, 동물 테스트를 거치지 않은 화장품, 사회적 약자를 고용하는 기업 제품 등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가진 제품의 경우 가격이 다소 비싸도 기꺼이 소비한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17년 전국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착한 소비’ 관련 설문조사를 한 결과도 이를 잘 보여준다. 응답자 68.9%가 ‘윤리적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 제품이면 비싸더라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제품이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소비자도 68.1%에 달했다.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은 워킹맘 최하나(38) 씨는 생활필수품을 구매할 때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천연 성분으로 만든 제품을 인터넷에서 ‘손품’ 팔아 구매하거나 친환경 먹거리를 직거래하는 ‘한살림’ 등을 이용한다.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농부시장@혜화’를 찾기도 한다. 농부에게 영농자금을 빌려주고, 믿을 수 있는 농산물로 배당을 받는 이른바 ‘농사펀드’에도 가입했다. 이유는 뭘까. 최씨 얘기다. 

    “이렇게 소비하려면 다소 번거롭기도 하고 일반 마트에서 구매할 때보다 가격을 더 많이 지불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얻는 가치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으로 재활용이 가능한 대나무 빨대를 샀다. 이런 나의 지출로 환경이 보호되고 농부들의 피땀이 좀 더 보상받길 바랄 뿐이다.”

    소비보다 강력한 불매운동의 힘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를 시행한 지 100일째인 2019년 10월 11일 서울 시내에 위치한 유니클로 매장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를 시행한 지 100일째인 2019년 10월 11일 서울 시내에 위치한 유니클로 매장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여러 미닝아웃 형태 중 최근 가장 주목받는 건 소비하지 않는 것, 즉 불매운동이다. 지난해 7월 일본 정부의 보복성 수출 규제 조치가 있기 전에는 ‘갑질’로 지탄받은 유제품 업체,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일으킨 생활용품 회사 등 특정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7월 이후엔 일본 제품 불매가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1월 일본 재무성이 발표한 2019년 12월 무역통계에 따르면 일본 맥주의 한국 수출량은 10만6065L로, 전년 같은 달(498만9510L)보다 97.9% 격감했다. 임원의 실언(‘한국의 불매운동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불매운동 타깃이 된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18년 9월부터 2019년 8월까지의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4.94% 감소했다. 유니클로 본사인 패스트리테일링 측은 겨울철 성수기 매출이 반영돼도 실적이 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게임 마니아인 직장인 서모(33) 씨는 지난해 7월 이전에만 해도 일본산 게임을 즐겨 하며 일본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즐겨 입던 유니클로 대신 다른 글로벌 제조·유통 일괄형(SPA) 브랜드를 이용하는 등 일본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있다. 서씨는 “역사 문제를 논외로 하고 보면 일본의 문화나 시민의식이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에는 문제가 많다”고 꼬집었다. 그가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이유는 “내가 가진 자원 안에서 한정적인 소비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왕이면 가치 있고 명분 있는 소비를 하고 싶어서”다. 

    일본 불매운동 열기가 급격히 타오르던 지난해 여름보다 다소 시들해지긴 했지만 ‘애국템’(‘애국’과 ‘아이템’의 합성어)이나 일본 브랜드 대체품에 대한 관심은 지금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SNS에서 젊은 ‘다꾸족’(다이어리를 꾸미는 사람들)과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의 소확행 물품인 ‘#국산필기구’를 검색하면 “일본 제품 대신 샀는데 정말 좋다. 앞으로 국산만 써야지”라며 구매 인증하는 사진이 꾸준히 올라온다.

    소비 패턴 변화 따라 바뀌는 기업들

    [GettyImage]

    [GettyImage]

    자유로운 사고로 다양성을 인정하며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MZ세대는 상품 품질을 넘어, 특정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사회적 책임까지 꼼꼼하게 살핀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환경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친환경을 넘어 ‘필(必)환경’을 추구하는 젊은 소비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업계 또한 이에 발맞춰 변화하고 있다. 올해를 친환경 상품 출시 원년으로 삼은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1월부터 빈폴맨의 모든 상품에 친환경 발수제와 대체 충전재를 사용한다. 같은 브랜드 여성 라인인 빈폴레이디스도 폐어망을 활용한 트렌치코트와 재킷을 출시했다. 

    지난해 10월 유엔환경계획(UNEP)으로부터 환경 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지구환경대상’을 받은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역시 재활용 소재로 의류를 제작한다. 옷을 새로 사지 말고 수선해 입으라는 의미의 ‘원웨어(Worn Wear)’ 캠페인을 펼쳐 젊은 층 사이에서 ‘힙’한 브랜드로 떠오르기도 했다. 파타고니아 마케팅팀 이정은 차장은 “브랜드의 지속가능 경영, 제품 생산 공정과 소재에 대한 친환경 철학 등이 소비자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간 것 같다”며 “2월 전국 파타고니아 매장과 이웃도어 스포츠 행사 현장에서 ‘원웨어 투어’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관련 캠페인을 확대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착한 소비족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 기업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사회적 기업 ‘모어댄’의 브랜드 ‘컨티뉴’는 폐자동차에서 수거한 자원을 활용해 가방을 만든다. 액세서리와 디자인 문구 등을 판매하는 ‘누미아띠’는 순수익금의 50%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기부하며 이들 이야기를 다룬 영화 ‘에움길’을 제작했다. 

    자신의 사회적 신념이나 가치관에 부합하는 기성 제품이 없을 경우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2030의 소비 특징을 반영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이란 사업자금이 부족한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익명의 다수에게 투자를 받는 것을 뜻한다. 와디즈, 텀블벅 등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 프로젝트의 목적, 목표 금액과 모금 기간 등을 공개하면 누리꾼이 그 내용을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 개설 8년 만에 누적 프로젝트 2만 건을 넘긴 ‘텀블벅’의 경우 지난 한 해 동안 전통의 멋, 여성연대, 에코라이프 등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 6317건을 진행했다. 이 중에는 폐업 위기에 처한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 인수 프로젝트도 있었다. 염재승 텀블벅 대표는 “창작자와 후원자가 서로 취향과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매년 창조적인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며 “올해 사이트 개편 및 고도화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미닝아웃을 환영하는 목소리만 있는 건 아니다. 잘못된 정보가 SNS를 타고 전파돼 피해자를 만들거나 정제되지 않은 감정 표현이 사회 갈등을 부추긴다는 시선도 있다. 특히 광범위한 불매운동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이가 적잖다. 


    ‘미닝아웃’의 두 얼굴

    불매운동이 권유를 넘어 강요로 변질되는 부분도 문제다. 한때 유니클로 매장에 들어서는 사람이 있는지 감시하는 파파라치까지 등장해 논란이 됐다. 서울 한 지역 인터넷 맘카페에는 지난해 11월 불매운동에 대해 글이나 댓글을 작성할 때 조심하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롯데나 유니클로 등에서 일하는 분이나 그 가족에게 상처가 될 말은 하지 말자. 일본 이야기를 하거나 일본 브랜드 물건을 구입한다고 해서 애국심이 없는 건 아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게시물에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으면 좋겠다” “너무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서로 배려해야 한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목소리 내는 사람이 많아지고 이런 개개인의 힘이 모여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미닝아웃의 긍정적 효과다. 하지만 미닝아웃이란 명목으로 누군가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제한하면 이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자기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타인의 권리를 침해 또는 위협하면 안 된다. 그건 자유민주 시민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기업들이 최근 미닝아웃을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는 점에도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업은 소비자 눈과 귀를 사로잡을 무언가를 늘 제시한다. 분위기에 휩쓸려 트렌드를 좇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소비 시 가계 수지를 살피고 미래에 대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 교수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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