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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민주주의·자유무역·팍스아메리카나 붕괴 이끌 촉매제”

[인터뷰]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코로나19는 민주주의·자유무역·팍스아메리카나 붕괴 이끌 촉매제”

  • ● 국제사회 리더십 공백, ‘불안하고 찝찝한 혼란’ 상당 기간 지속될 것
    ● ‘강한 국가’와 ‘강한 시민사회’ 역동적 균형 이룬 한국, 세계가 주목한다
    ● 코로나 방역 등 사안별로 세계 중추국가들과 연대해야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우리 삶에 전방위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랫동안 이어져온 이른바 ‘자유주의 국제질서’에도 거대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서구 ‘선진국’이 방역에 실패해 쩔쩔매는 사이, 코로나19 발원지 중국은 강력한 국민 통제정책을 펼치며 빠른 속도로 ‘정상’을 회복했다. 이 과정에서 미·중 갈등이 한층 심화했다. 한반도에 실질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김준형(57) 국립외교원장을 만난 이유가 여기 있다. 

김 원장은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국제정치학자다. 한동대 교수,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고, 지난해 8월부터 국립외교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국립외교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외교안보 싱크탱크로, 최근 코로나19 발생 이후 국제 질서 및 한국의 대응전략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8월 31일, 9월 1일 이틀에 걸쳐 ‘팬데믹 이후의 세계: 지정학적 경쟁과 다자주의의 역할’을 주제로 한 웨비나를 열기도 했다. 김 원장과 만나 바로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코로나19가 그동안 국제질서를 떠받쳐온 세 축, 즉 민주주의·자유무역·팍스아메리카나의 붕괴를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며 입을 열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위기

- 최근 미국 상황을 보며 놀라고 실망했다는 사람이 많다. 현재 세계에서 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미국 아닌가. 

“그동안 많은 사람이 생각해 온 미국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나도 주위에서 ‘이번에 미국의 실체를 본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가졌던 독보적 지위가 흔들린 지는 좀 됐다.” 

- 언제부터라고 보나. 

“상징적인 사건으로 떠올릴 수 있는 건 2001년 발생한 9·11 테러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평화의 중심 구실을 했다. 1990년대 동구권이 무너진 뒤 미국에 맞설 존재가 사실상 없었다. 미국 힘을 바탕으로 세계질서가 유지되는, 이른바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10년쯤 이어졌다. 그렇게 최전성기를 누리던 미국이 제집 안방에서 도전에 직면한 게 바로 9·11이다.” 

- 하지만 이후에도 미국의 세계 최강대국 위상은 유지되지 않았나.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는 또 한 번,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가 영속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확인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서구는 자유무역 확대를 통해 번영을 일궜다. 세계화에 특화된 기업과 자본이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그러나 그 열매가 고르게 분배되지 않으면서 불평등 문제가 부상했다. 미국 중심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커질 무렵, 금융위기가 왔다.” 



- 이후 미국이 경기침체, 일자리 감소 등의 문제를 겪자 2016년,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다. 

“당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트럼프 당선으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또 다른 기둥인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 또한 흔들리게 됐다. 코로나19 없이도 이미 문명사적 대전환이 시작되던 상황이다. 그때 미증유의 감염병이 발생하면서 변화에 가속도를 붙였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혼란과 기회

- 최근 미국은 코로나19와 관련해 모든 게 중국 탓이라고 주장하고, 중국은 미국이 엉뚱한 데 분풀이한다고 맞선다. 거대 양국이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그 사이에 낀 우리나라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듯하다. 

“일단 미국과 중국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다. 부딪치면 둘 다 죽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국 내 정치 사정 등을 감안해 미·중 모두 블레임 게임(남 탓)과 블러핑(엄포)은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 다툼이 끝나려면 미국이 중국을 제압하거나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야 하는데 당장은 불가능하다. 미국 위상이 예전 같지 않고, 중국은 많이 성장했다 해도 미국에 맞설 수준이 안 된다. 결국 불안하고 찝찝한 혼란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다. 우리 외교에는 엄청난 도전이다.” 

-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나.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미·중 사이에 낀 나라가 우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미국과 동맹 또는 준동맹 관계를 맺은 나라는 세계적으로 60개국이 넘는다. 또 세계 110개 나라의 1위 교역 대상이 중국이다. 우리 말고도 수많은 나라가 정치적으로는 미국, 경제적인 면에서는 중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셈이다.” 

- 그들과 힘을 합치면 길이 보인다? 

“그렇다. 우리는 미·중 패권 갈등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위치에 머물면 안 된다. 다른 나라들과 연대해 ‘제3지대’ 구축을 모색할 때다. 마침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국제 협력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 세계 중추적(pivotal) 국가와 손잡는 게 가능하다. 이들과 사안별로 함께 움직이며 국제사회에서 우리 공간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본다.” 

- 최근 ‘K방역’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이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잠시 역사를 돌아보자. 제2차 세계대전 후 확대된 자유무역 경제 질서는 국가 기능을 지속적으로 축소시켰다. 미국 유럽 등 많은 지역에서 국가가 독재의 주체, 시장 왜곡의 주체로 여겨진 면이 있다. 결과적으로 정부 힘이 빠지고, 시장이 절대적 지위를 가졌다. 이때 코로나19가 발생했다. 서구 선진국들이 방역에 쩔쩔매는 사이 중국은 강력한 중앙 권력을 바탕으로 코로나19에 맞선다. 서구 나라들은 이 방식을 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코로나19에 무방비로 당할 수도 없다. 그 사이에서 K방역이 새로운 길로 부상한 셈이다.”

강한 국가와 강한 시민사회의 역동적 균형

- K방역의 차별성은 뭐라고 보나. 

“국가와 시민사회의 균형이다. 한국은 전쟁과 독재를 겪었고, 지금까지 분단 상태다. 또 한국인은 유교에 기반을 둔 공동체적 의식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것이 국가를 강하게 만든다. 주목할 것은 동시에 우리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시민사회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시민은 국가가 선을 넘을 때마다 들고일어나 맞섰다. 동학부터 촛불까지 이어진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한국이 가진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의 역동적 균형은 민주주의를 유지하면서 방역에도 성공하고자 하는 나라에 대안 모델로 보일 수 있다.” 

- K방역을 기반으로 국제 협력을 통해 ‘제3지대’를 모색하자? 

“단 주의할 점도 있다. 이른바 ‘한국 모델’은 다른 나라가 단기간에 재현하기 힘들다. 또 아직 코로나19가 해결되거나 종식되지 않았다. ‘불안한 진행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 K방역을 지나치게 과시하는 건 삼가야 한다. 우리가 가진 경험과 역량을 조건 없이 다른 나라에 제공함으로써 세계에 기여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게 우선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중추국가들과 협력하며 리더십 공백에 빠진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가면 좋겠다.”



신동아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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