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호

쇠똥구리의 철학

  • 입력2004-06-02 1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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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똥구리의 철학
    지금으로부터 30∼40년 전, 그러니까 1960년대에 나는 자원공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그 시절에는 누구나 그랬을 테지만, 우리집 형편은 그다지 넉넉하지 못했다. 특히나 소슬바람이 불고 날씨가 선선해지는 가을이 되면 기나긴 겨울을 날 준비가 큰일이었다. 당시 구공탄이라 불리던 ‘연탄 확보 전쟁’에 온 식구가 총동원되던 기억이 새롭다. 식구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리어카에 연탄을 실어 마당 한쪽에 차곡차곡 쌓아갈 때의 그 만족감이라니.

    지금이야 먹을거리가 사방에 넘쳐나고 난방 연료도 부족함이 없지만, 그때는 기나긴 겨울을 나기 위해 연탄과 쌀을 장만하는 문제가 자녀들에게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 보이기 싫어하시는 우리네 부모님의 그늘진 시름이었다. 하지만 나는 집을 드나들며 내 키보다 높이 쌓아올려진 연탄을 바라볼 때마다 흐뭇해하면서 만족감에 젖곤 했다. 나와 내 형제들, 우리 세대에게 새카만 연탄은 따스함, 푸근함, 그리고 정겨움이다.

    그때는 경제개발과 산림녹화, 그리고 새마을운동이 ‘국가’를 상징하던 시절이었다. 과거 5000년간 이어내려온 가난과 궁핍을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가장 급박한 문제였다. 경제성장을 위한 동력 확보를 위해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는 것. 그것은 시대의 진리에 가까웠다. 그랬기 때문일까. 서구 선진국들이 200년에 걸쳐 이뤄낸 고도의 산업화를 우리는 30년이란 짧은 시간에 이뤄냈다. 참으로 숨가쁘게 달려온 시간이었다.

    유가가 요동칠 때마다 거론되고 또 거론되는 얘기이지만, 자원은 무궁무진한 게 아니다. 한창 개발에 열을 올리던 1970년대에 이러한 당연한 명제가 우리 사회에 강한 메시지를 던진 적이 있다. 1970년대 초 로마클럽에서 낸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가 그것이었다. ‘앞으로 인류가 자원(에너지)을 소비할 수 있는 기간이 수십 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 보고서는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줬다. 인류의 앞날이 이 보고서가 말한 대로 간다면, 한창 먹성 좋게 자원을 소비하며 경제발전을 일구어가던 우리 사회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런 고민과 걱정에 빠지게 하는 보고서였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가능성 있는 미래 자원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성과 기술수준이 아직 미흡한 형편이라 대체자원을 개발할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아직까지는 석탄과 석유 등 천연자원만한 에너지는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경제발전을 위하고, 보다 높은 삶의 질을 누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가 명확해진다. 유한한 그리고 점점 줄어드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산, 하늘, 강물은 우리 후손에게 고이 물려줘야 하는 자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경제개발 시대의 잔유물로서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면서 친환경적 자원개발과 자원재활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해마다 조금씩 평균기온이 올라가는 지구온난화현상,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기상이변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자연의 복수극’을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도 헌법 제120조를 통해 자원의 효율적 개발과 이용을 권장하고 그에 필요한 계획을 수립하도록 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자원개발과 재활용에 대한 연구가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한 연구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자. 현재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지열(地熱) 에너지와 탄층 메탄가스(Coal Bed Methane)는 비재래형, 즉 신종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열이란 뭘까? 화산활동으로 발생한 뜨거운 용암처럼 200℃ 이상의 고열수(高熱水)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보다 온도가 낮은 지열도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70∼80℃의 중저온열수를 지역난방이나 농작물 재배 등에 이용하고 있는데, 그 비중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물론 이 지열 에너지는 석유나 석탄 등 화석 에너지와 달리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화산활동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고열수보다는 중저온열수 개발에 초점을 맞춰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또 지열펌프(Geo-heat Pump)가 개발되어 천부(天賦) 지열수를 이용한 온냉방이 가능해져 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30여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농촌에서 커다란 통을 땅속에 묻고 그 속에 분뇨를 담아두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농민들은 이 분뇨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를 취사 연료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농민들의 지혜가 요즘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깊은 땅속 석탄층에 매장되어 있는 메탄가스를 시추공으로 채광하여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새로운 개념의 사업이다. 탄층 메탄가스 개발은 이미 미국과 중국에서는 실용화되어 있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천연가스 매장량의 100배가 넘는 10조t 정도가 묻혀 있을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 가스 하이드레이트 생산기술이 확보된다면 당분간은 에너지 걱정을 덜어도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이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에너지원이 개발된다면 그야말로 과학기술의 개가로 로마클럽의 충격적인 보고에 대한 걱정을 덜어낼 수 있겠지만, 여기에도 잊어서는 안 될 게 있다. 자원은 유한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풍족한 에너지원이라도 시간이 가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재활용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매일 버려지는 엄청난 양의 산업폐기물이 ‘도시 광물(Urban Minerals)’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만약 TV 프로그램인 ‘동물의 왕국’에서 보듯 수백만 마리 동물의 배설물이 쇠똥구리의 재활용 없이 그대로 방치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마찬가지 상상을 우리 사회에서도 할 수 있다. 매일 도로를 질주하며 도시 외곽으로 실려나가는 덤프 트럭 안의 각종 폐기물을 언제까지 방치하면서 살아야 할까? 최근 들어 각종 전자제품에 포함된 납 등 중금속을 분리하여 회수하는 기술이 도입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회수율이 높지 못하다니 안타깝다.

    얼마 전 ‘자원 재활용 국제 공동연구’를 위해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세계 제2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일본이지만 그들에겐 복도의 전기와 화장실의 물을 아껴 쓰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런데 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우리는 어떠한가.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습관이 우리의 미래를 밝게도, 혹은 어둡게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세기가 ‘자원의 지배’에 혈안이 된 세기였다면, 금세기는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자원을 탐사하고 관련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 세기이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경제 발전을 이루는 한편 유한한 자원과 환경을 유지해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자원 소비행태에 대해 되돌아봐야 한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게 마련이다. 인류의 문명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는 더 미룰 수 없는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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