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호

‘인도차이나’의 추억, 베트남 호치민&하롱베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옛사랑의 그림자

  • 사진·글 /이형준

    입력2006-07-07 15: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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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차이나’의 추억, 베트남 호치민&하롱베이

    3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하롱베이는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풍광을 연출한다.

    베트남만큼 변화무쌍한 역사를 간직한 나라가 또 있을까. 질곡으로 점철된 이 나라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여러 편이 있지만, 레지스 와그니어 감독의 1992년작 ‘인도차이나’만큼 뚜렷한 잔상을 남긴 영화는 드물다.

    베트남의 현재 수도는 과거 월맹군의 거점도시인 하노이이지만, 가장 활기 넘치는 곳은 예나 지금이나 남부 베트남의 수도인 옛 사이공이다. 베트남이 통일되면서 호치민으로 이름이 바뀐 이 도시는 영화 ‘인도차이나’의 흔적을 이곳저곳에 품고 있다.

    ‘인도차이나’의 추억, 베트남 호치민&하롱베이

    주요 이동수단인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는 호치민 시민들.

    세련된 외모와 도도한 성격의 주인공 엘리안 드브리(카트린 드뇌브)와 프랑스 해군 장교인 장 밥티스트(뱅상 페레)가 함께 운명의 시간을 보낸 곳이 바로 호치민이다. 비 내리는 밤 두 사람이 자동차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 엘리안 드브리와 경찰국장인 이베트(도미니크 블랑)가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장면, 장 밥티스트가 총에 맞은 카미유(린당 팜)를 치료하는 장면 등이 모두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도차이나’의 추억, 베트남 호치민&하롱베이

    야자수와 뭉게구름이 어우러진 사이공 강변 풍경.

    인도차이나의 ‘작은 파리’

    오랜 세월 프랑스와 미국의 영향권에 놓여 있던 호치민은 하노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본주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흔히 호치민 시를 가리켜 ‘작은 파리’라고 부를 정도. 도심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무역센터를 찾아 스카이라운지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사이공 강을 따라 야자수와 열대림으로 이루어진 녹지 공간, 강물 위로 한가롭게 떠다니는 유람선, 멋진 자태를 간직한 서양식 건축물이 자아내는 정취는 파리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영화의 무대가 된 장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만 중심은 도심에 해당하는 동코이 거리다. 이베트 국장이 차를 마시며 엘리안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콘티넨탈 호텔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바라본 주변 풍광은 그대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시클로라는 독특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어디론가 이동하는 아오자이 차림의 여성들, 작은 스쿠터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는 젊은 남녀,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행상까지.

    ‘인도차이나’의 추억, 베트남 호치민&하롱베이

    하롱베이 지역을 순회하는 유람선이 선착장에 정박해 있다.

    그런가 하면 활기찬 이들 거리 인근에는 베트남의 가슴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도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싸웠던 베트남 사람들의 처절한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식민지 시절 이들이 겪어야 했던 핍박과 잔혹상이 고스란히 아로새겨져 있다.

    ‘인도차이나’의 추억, 베트남 호치민&하롱베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빛낸 스위스 제네바의 레만 호수.

    하롱베이, 하이퐁, 그리고 위에

    영화 ‘인도차이나’의 또 다른 주요배경인 하롱베이와 그 주변지역은 이 영화로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120㎞쯤 떨어져 있는 하롱베이는, 영화 속에서 장 밥티스트가 파티가 열리는 엘리안 드브리의 저택으로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좌천되어 복무하던 곳이다. 장 밥티스트가 카미유와 함께 도망치는 장면을 촬영한 곳은 하롱베이의 대표적인 종유석 동굴인 승소트 동굴 입구의 선착장 주변이다.

    ‘인도차이나’의 추억, 베트남 호치민&하롱베이

    관광객과 수상가옥 주민들에게 물건을 파는 하롱베이의 ‘일엽편주’ 상인.

    한편 하롱베이 여행의 거점지로 잘 알려진 하이퐁도 영화에 등장한다. 프랑스 경찰의 추적을 받던 카미유와 장 밥티스트가 숨어 지내면서 아이를 출산한 곳, 공사장에서 일하던 가족과 함께 탈출해 하롱베이를 향해 달리던 차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들판과 산이 바로 하이퐁 외곽지역이다. 또한 왕가의 후손인 카미유가 집안 어른들 앞에서 결혼을 약속하는 의식을 치르던 곳은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구엔 왕조의 도읍이었던 위에다.

    ‘인도차이나’의 추억, 베트남 호치민&하롱베이

    ① 호치민 시 시장의 한 가게. 새는 베트남 사람들이 선호하는 애완동물이다. ②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는 시민과 관광객들. ③ 호치민 시 역사박물관 마당에 전시된 노획 무기.

    진정한 매력 포인트는 순박한 사람들

    영화 끝부분에서 엘리안 드브리가 과거를 회상하며 손자에게 집안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을 촬영한 곳은 베트남이 아니라 스위스의 제네바다. 레만 호수를 중심으로 고풍스러운 빌딩과 잘 가꾸어진 공원, 고급상점 등으로 워낙 유명한 제네바지만, 특히 이 장면의 무대가 된 도심지의 호텔과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호수 주변은 감미로운 추억을 선사할 만한 공간이다.

    ‘인도차이나’는 세계 관객들에게 베트남을 새롭게 각인시킨 영화였다. 그 무대가 된 베트남은 영화에 등장한 곳 이외에도 흥미로운 장소가 즐비하다. 하지만 베트남의 진정한 매력 포인트는 그 순박한 사람들이다. 이방인을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는 친절한 베트남인들이야말로 가장 큰 자랑거리인 것이다.

    여행정보

    인천공항에서 호치민까지는 직항(5시간)을, 호치민에서 하롱베이까지는 항공기(2시간)나 기차, 버스(30시간 이상)를 이용한다. 인천공항에서 하노이까지 운행하는 직항편(4시간15분)을 이용할 경우 하노이에서 하롱베이까지는 자동차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하롱베이에서는 유람선을 타면 주요 촬영지를 쉽게 둘러볼 수 있다. 베트남에는 비자 없이 15일 동안 체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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