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선 의원인 그는 당내 기반이 없던 이 대통령에게 사람을 모아주는 데 앞장섰으며, 대선후보 경선 이후엔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던 서청원, 최병렬 전 대표를 만나 화합을 부탁했다. 국회의원과 당원협의회장을 맨투맨으로 접촉하면서 이 대통령 지지를 부탁한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이 대통령을 움직이는 극소수의 사람 가운데 핵심이다. 이 대통령에 대한 그의 역할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는 ‘멘터(mentor·후견인, 조언자)’.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이 부의장하고 상의하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른바 ‘이명박 특검법’을 수용하겠다고 전격적으로 결정한 데도 그의 영향이 컸다는 후문이다.
대통령의 친형이자 현실 정치인인 그에게 세간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새 정부에서 요직에 앉으리라는 관측은 많지 않다. 막후에서 실세 노릇을 하리라는 것이다. 이 부의장을 필두로 한 포항 인맥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이 부의장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대표되는 ‘원로그룹’은 이명박 정부의 조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부의장은 국회부의장 비서실장이던 장다사로 씨를 정무라인의 핵인 대통령정무1비서관으로 진출시켰으며, 조각 작업을 실무 지휘한 박영준 대통령기획조정비서관은 이 부의장의 보좌관으로 11년 동안 일했다.
이 부의장은 권부의 경쟁그룹으로부터 18대 총선 불출마 압력을 받기도 했다. ‘고령’ ‘다선’이라는 게 불출마 요구의 명분이다. 이 부의장의 공천 논란을 ‘이재오 대 이상득’의 대결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재오그룹’과 ‘소장그룹’이 한동안 연대해 원로그룹을 견제하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부의장은 이 대통령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하교 시간 학우들을 상대로 붕어빵을 팔았고 신문배달을 하면서 학비를 벌었다. ‘목욕탕 수건 1장 쓰기’ ‘사무실 전기 소등 철저’ ‘화장지 1장 쓰기’ 등 그는 근검절약을 강조한다. 학비 부담을 덜고자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 뒤 배구경기를 하다가 다쳐 2년을 수료하고 퇴교당한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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