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호

[팩트체크] ‘37.5도’ 넘는다고 모두 ‘발열’ 아니다

“기초체온 높은 사람 ‘감염증 없음’ 진단서 받으면 유용”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0-09-08 15: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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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의심 기준 ‘37.5도’, 방역 위해 엄격히 정한 것

    • 신종플루 때는 ‘37.8도’, 메르스 초기엔 ‘38도’ 기준

    • 성인 정상 체온 범위, 간호학 교과서도 제각각

    • 동일인 오후 체온이 오전보다 0.5도 이상 높을 수 있어

    • 평소 체온 높은 사람은 감염내과에서 ‘감염증 없다’ 진단서 받을 수도

    2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 전통시장에서 시장 관계자가 출입 손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뉴스1]

    2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 전통시장에서 시장 관계자가 출입 손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뉴스1]

    “체온이 너무 높아서 면접을 못 봤어요 ㅠㅠ” 

    8월 22일 국내 대형 포털사이트 취업준비생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제목이다. 내용은 이렇다. 

    “평소 기초체온이 높아 항상 37.0도가 나온다. 면접날 집에서 측정할 때 37.1도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면접장에서 37.7도가 나왔다. (현장 관리자가) 면접 못 본다고, 그냥 돌아가라고 해서 집에 와 다시 체온을 재니 37.1도였다.” 

    글쓴이는 “허무하게 면접기회를 날려 속상하다”는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 글 아래에는 작성자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댓글이 100개 이상 달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기초체온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적잖다. 김탁 순천향대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 문제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제법 많다”고 밝혔다. 최근 관공서, 병원은 물론 상당수 일반 건물, 식당, 카페 등이 자체적으로 발열 감시 장치를 설치하는 추세다. 체온 37.5도 이상인 사람은 출입을 제한한다.



    체온 37.5도, 일반적으로 정상 범위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입구에서 출입자가 발열검사를 받고 있다. [뉴스1]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입구에서 출입자가 발열검사를 받고 있다. [뉴스1]

    열(熱)은 몸에 이상이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다.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되면 체온이 오를 수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발간한 ‘코로나19 대응 지침’에는 코로나19의 주요 임상 증상으로 “발열(37.5도 이상), 기침, 호흡곤란, 오한, 근육통, 두통, 인후통, 후각·미각소실 또는 폐렴 등”이 소개돼 있다. 

    문제는 코로나19를 비롯해 아무 감염성 질환에 걸리지 않고도 체온 37.5도 이상인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또 동일인의 체온도 측정시간, 측정부위에 따라 차이가 난다. 질병관리본부가 운영하는 국가건강정보포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체온은 오전 6시에 가장 낮고, 오후 4~6시 사이에 가장 높다. 구강체온 기준으로 오전 6시경 37.2도, 오후 4~6시경에는 37.7도보다 높을 경우 열이 있다고 간주할 수 있다.” 

    구강체온은 혀 밑에 체온계를 넣어 측정한 값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구강체온은 겨드랑이에서 잰 체온보다 높고, 항문(직장)에서 잰 체온보다 낮다. 대한내과학회가 발행한 전공의를 위한 진료지침에는 이렇게 설명돼 있다. 

    “정상체온 범위는 구강 체온 기준으로 36.8±0.4도다. 직장온도는 구강보다 0.4도 높고, 고막 체온은 직장보다 0.8도 낮은 경향을 보이며 변화가 많다.”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입구에 설치된 발열 감지장치가 출입자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뉴스1]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입구에 설치된 발열 감지장치가 출입자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뉴스1]

    이에 따라 대한내과학회는 발열 기준을 “보통 오전 37.3도 이상 또는 오후 37.8도 이상”으로 잡고 있다. 연세대 의대 김동수 교수는 대한소아과학회지에 게재한 ‘발열’ 논문을 통해 “오전 6시 경에는 37.2도보다, 오후 4~6시 경에는 37.7도보다 높을 경우 발열 상태로 간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발열을 판단하는 기준은 전문가 사이에서도 서로 다르다. 또 37.5도는 보통 정상 체온 범위에 포함된다. 신윤희 연세대 원주의대 간호학과 교수 등이 2019년 기본간호학회지에 발표한 ‘기본간호학 교과서 표준화작업을 위한 기초조사’ 논문에 따르면, 간호학 교과서에서 설명하는 정상 체온 범위도 제각각이다. 김 교수 등의 분석 결과 성인의 정상체온 범위를 ‘36.1~37.2도’로 소개한 책이 가장 많지만, ‘35.5~37.5도’, ‘36.1~37.5도’, ‘36~38도’ 등으로 안내하는 교과서도 있었다.

    정은경 본부장 “방역 위해 엄격한 기준 적용”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접수가 시작된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남부교육지원청에서 수험생이 원서 접수에 앞서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뉴스1]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접수가 시작된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남부교육지원청에서 수험생이 원서 접수에 앞서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뉴스1]

    그렇다면 우리 방역당국은 왜 ‘37.5도’를 코로나19 의심 기준으로 삼았을까. 국내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하던 무렵인 1월 31일,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공식 브리핑에서 이렇게 답했다. 

    “원래는 38도 정도 이상을 발열이라고 보는데, 저희는 그것보다 조금 더 낮은 37.5도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 배경에는 2009년 신종플루와 2015년 메르스 경험이 있다.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했을 때 방역당국이 정한 의심 기준은 체온 37.8도였다. 그런데 그해 8월, 태국을 여행하고 돌아온 남성이 37.7도 상태로 보건소를 찾았다가 “신종플루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고 집에 돌아간 뒤 뒤늦게 신종플루 판정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보건소가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2015년 메르스 유행 때도 방역당국이 초기 의심 기준을 38도로 세웠다가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37.5도로 낮춘 일이 있다. 양병국 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의심환자 발열 판단 기준은 38도지만, 우리는 경미한 증상도 철저히 관리해 추가 감염 발생을 막고자 진단검사 기준을 낮췄다”고 밝혔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에 대해 “감염병 의심기준 체온을 낮추면 방역당국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커진다. 하지만 국민 안전을 지키는 데는 도움이 된다”며 “방역당국이 코로나19 위험을 더욱 철저히 차단하고자 엄격한 체온 기준을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우리 방역당국은 코로나19 유행 초기 중국 우한 교민을 입국시킬 때는 더욱 높은 기준을 적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입국 교민 가운데 체온이 36.9도 이상인 사람은 전원 2차 검사 대상으로 삼아 만에 하나라도 있을지 모를 감염자를 찾아내는 데 만전을 기했다.

    감염내과에서 ‘감염증 없다’ 진단서

    8월 26일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이 등교 전 교문에서 체온을 확인받고 있다. [뉴스1]

    8월 26일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이 등교 전 교문에서 체온을 확인받고 있다. [뉴스1]

    문제는 엄격한 방역 과정에서 체온이 정상범위에 속하는 사람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평소 체온이 측정 시간에 따라 37.2~37.7도 사이를 오간다는 50대 직장인 A씨도 그중 하나다. 그는 “체온이 좀 높다는 이유로 요즘 어디를 가든 눈총을 받는다. 각종 건물 입구에서 붙들리는 일이 반복되니 일상생활이 위축되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판정을 받았다. 매일 출근하는 회사에는 이 사실을 알리고 통행제한의 예외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외 다중시설을 이용할 때는 매번 마음을 조인다고 한다. 

    자격시험과 취업면접 등을 앞둔 청년들 사이에서도 최근 체온 측정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취업커뮤니티 등에서는 “평소 체온이 높은 편인데 혹시라도 시험일에 37.5도를 넘을까봐 걱정”이라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방역당국은 각종 시험 운영당국에 체온 37.5도가 넘는 사람도 마스크를 착용한 채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별도 공간을 마련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수험생들은 여전히 고사장에서 체온이 높아 유무형의 피해를 입을 것을 두려워한다.
     
    김탁 순천향대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에 대해 “사람마다 기초체온이 다르다. 건강에 전혀 이상이 없는데 체온이 높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며 “시험 등 중요한 일을 앞두고 체온 측정이 걱정되는 사람은 미리 감염내과를 찾아 감염병 검사와 기초체온 확인을 받은 뒤 진단서를 받으면 좋다”고 밝혔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관련 진단서를 발급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는 “감염내과 의사들은 기초체온이 높은 사람이 요즘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병원을 찾아 자기가 현재 감염병에 걸린 상태가 아니고 기초체온이 높을 뿐이라는 데 대한 의사 확인서를 받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초체온 측정 및 건강관리법]

    8월 29일 서울 강남구 한 웨딩홀에서 하객들이 입장 전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뉴스1]

    8월 29일 서울 강남구 한 웨딩홀에서 하객들이 입장 전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뉴스1]

    사람 체온은 주위 환경과 몸 상태에 따라 변한다. 또 체온 정상 범위는 각 개인의 기초체온을 기준으로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체온이 다소 높고, 노인은 다소 낮은 편이다. 젊은 사람이라도 운동량이 부족하거나 만성질환이 있으면 체온이 일반적인 정상범위보다 낮은 경우가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 구강, 고막, 겨드랑이 등 동일한 부위 체온을 측정해 기록해두면 자기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최근 가정에서 널리 사용하는 귓속체온계는 고막에서 나오는 적외선 파장을 감지해 체온을 측정하는 장치다. 고막은 체온을 조절하는 뇌 시상하부와 혈액을 공유해 체내 온도를 측정하기 좋다. 단, 체온계가 귀 벽을 향한 상태에서 사용하면 측정 오차가 생길 수 있다. 정확한 체온을 재려면 귀를 약간 잡아당겨 이도(耳道)를 편 후 기기 측정부와 고막이 일직선이 되도록 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이 방식으로 체온을 3회 측정해 그 가운데 가장 높은 값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체온을 여러 번 연속해 잴 때는 체온계를 외이도에서 빼낸 뒤 30초 정도 경과 후 다시 사용하면 된다. 


    7월 19일 광주 서구청에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한 시민이 피부적외선체온계로 체온 검사를 받고 있다. [ 박영철 동아일보 기자]

    7월 19일 광주 서구청에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한 시민이 피부적외선체온계로 체온 검사를 받고 있다. [ 박영철 동아일보 기자]

    최근 흔히 볼 수 있는 체온계 가운데는 적외선 센서를 이용해 이마나 피부 표면 온도를 확인하는 피부적외선체온계도 있다. 이 체온계를 사용할 때는 측정부위에 머리카락, 땀 또는 이물질이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피부에 땀 등 수분이 있으면 기화열이 발생해 체온이 낮게 측정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최근 체온 37.5도가 ‘통행증’처럼 널리 통용되면서 발열을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커졌다. 출근, 통학 등에 지장을 받지 않으려고 열이 나는 즉시 해열제를 복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열은 우리 몸이 해로운 물질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열이 올랐을 때 바로 약을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체온이 38.5도 이하일 때는 약을 먹기보다 충분한 휴식과 수분공급, 샤워 등으로 인체가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도록 돕는 게 좋다”고 밝혔다. 방역당국도 발열증세가 나타나면 3~4일간 휴식하며 경과를 지켜볼 것을 권한다. 이후에도 체온이 떨어지지 않고 기침·인후통(목 아픔) 등 증상이 심해지면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339)에 문의해 지시에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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