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특구 지정은 ‘제2 한강의 기적’ 첫걸음”
77건에 달하는 ‘도시 정비사업 백화점’에 박차
다양한 행정 경험으로 지역 문제 해결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오직 구민만 바라보는 ‘구민당’ 당원이라는 각오로 영등포구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해윤 기자]
최 구청장은 1962년 경남 창원 태생으로 서울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제34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1992년 서울시 영등포구청에서 문화공보실장으로 공직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서울시 시장실 정책비서관, 대통령실 행정자치비서관실 행정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기획관리관, 외교부 주인도한국대사관 총영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립과천과학관장 직무대리 등 다양한 행정 경험을 쌓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이전까지 영등포구를 거쳐 간 정치인 출신 구청장과는 다르게 말보다는 행동으로 구민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다는 평을 듣는다. 구민들의 고충을 듣기 위해 구석구석까지 발품을 파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서다. “공무원은 정치인의 눈치를 보지 말고 구민을 위해 봉사하는 일꾼이 돼야 한다”는 소신을 실천하는 그를 따사로운 봄날 오후 만났다.
“나는 지방자치주의자”
지난해 구청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소감이 어땠나.“영등포구는 제2의 고향이다. 1992년 영등포구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고 자식들도 다 영등포에서 키웠다. 30년 만에 구청장이 돼서 다시 돌아오니 말 그대로 ‘감개무량’했다.”
지난 9개월여 동안 느낀 점이 많을 것 같다.
“첫 번째는 직원들의 기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이 주눅들어 있다는 느낌을 가끔 받는다. 공무원은 공익의 대변자로서 구민만 바라보며 업무를 수행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내가 방패가 되어 줄 테니 구민에 대한 봉사자로 당당하게 법과 원칙, 소신을 지키며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하기를 바란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두 번째는 구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같은 기본에 충실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취임 이후 9개월 동안 아파트 화재를 비롯해 115년 만의 집중 호우 등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를 경험했다. 구민에 대한 무한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미리미리 준비하고 챙기겠다. 주민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도 느꼈다. 정말 해결이 불가능한 민원도 한 시간 정도 얘기를 들어드리면 주민들께서 다 이해하신다. 주민들의 표정을 그대로 보면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자치단체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닌가 싶다. ”
‘지방자치의 꿈’이라는 책을 냈다. 지방자치를 강조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는 ‘지방자치주의자’다. ‘지방자치의 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의 성공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행정고시 합격 이후 근무지를 정할 때 중앙부처 대신 서울시를 선택했다. 주민이 아닌 중앙정치를 바라보는 지방정치는 옳지 않다. 올바른 지방자치를 위해 단체장은 선심성 단기 정책 대신 장기 미래비전 제시와 추진에 힘써야 한다. 선거를 의식하기보다 미래를 위한 투자에 더 신경 쓰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며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
서울시, 대통령실, 외교부 등 다양한 공직 경험이 구청장직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나.
“1990년 행정고시 합격 때부터 30년 동안 고등학교 은사님이 말씀해 주신 ‘이름 없이, 정직하고, 청렴하게’라는 좌우명을 늘 되새기며 공직을 수행했다. 영등포구청과 서울시청에서 지방자치를 배웠고, 청와대에서 국정을,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과학의 중요성을, 외교부에서 국제 감각을 경험하며 지방자치에 대한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정부 정책은 중앙에서 광역으로, 광역에서 기초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단체장은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며, 지역 발전을 위해 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시킬 능력도 갖춰야 한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쌓은 다양한 실무 경험과 다져온 인적 네트워크는 구정을 이끌어가는 훌륭한 자산이 됐다. 지난해 집중 호우 당시에도 행정 경험 덕분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었다.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없었고, 중앙정부와 서울시, 인근 자치단체의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 내 복구도 순조로웠다. 7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신길뉴타운을 지나는 버스 노선 신설과 같은 지역 숙원 사업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이명박 서울시장 밑에서 비서실 정책비서관으로 경험한 서울시 시내버스 개편 사업을 통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면 아무리 리스크가 크더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커다란 교훈을 얻었다. 그때 서울시가 과감히 버스중앙차로를 만들고 환승 시스템을 도입한 덕에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시민이 큰 불편 없이 버스를 이용한다.”
독박 간병 해소부터 과학인재 양성까지
소위 ‘독박 간병, 독박 요양’으로 불리는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들었다.“고령화와 더불어 날로 심각해지는 치매 어르신 등에 대한 돌봄 문제를 자원봉사라는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요양 보호 가족 휴식제’라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2인 1조 자원봉사자가 일정 시간 요양 보호 대상자를 가족 대신 돌봐주고 돌봄 가족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시범 운영을 통해 요양 돌봄 사각지대 해소에 기여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겠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 평가를 통해 성과가 입증되면 중앙정부와 서울시에 제안해 전국적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 추진 과정에서 대상지가 바뀌었다. 이유가 뭔가.
“새로운 문제가 아닌 원래 갖고 있던 문제 탓이다. 애초에 문래동 부지에 건립하는 건 법적으로 불가능했다. 당초 제2세종문화회관은 영등포구가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서울시가 건립과 운영을 맡는 것을 전제로 했다. 그러나 공유재산법상 무상사용은 최장 5년간 가능하다. 이후 5년마다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2020년 영등포구의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법적으로 반영구 무상사용이 불가함을 지적했으나 결국 사업이 강행됐다. 이후 2022년 제1회 서울시 공유재산심의회와 서울시의회 제305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같은 이유로 제동을 건 것이 건립 대상지 변경의 가장 큰 이유다. 지지부진한 사업 추진이나 구민을 대상으로 하는 설명회나 공청회가 한 차례도 없었던 것도 문제다. 그래서 많은 구민이 구유지 무상 제공 여부를 잘 알지 못했다. 이전 건립 대상지인 문래동 부지는 면적도 세종문화회관의 4분의 1에 불과해 명성에 걸맞은 건축이 불가하다. 주차장도 336면으로 세종문화회관(1260면)의 4분의 1 수준이다. 더구나 구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지만 구민에 대한 확정된 혜택이 없다. 양평동에 공공복합 시설을 건립할 때 구는 시유지 520여 평을 토지교환 방식으로 유상 취득했는데 문래동 부지 4000여 평을 시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결국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 부지는 정치적 이슈가 아닌 법적 요건을 비롯한 여러 이유로 문래동에서 여의도공원으로 변경됐다.”
그러면 문래동 부지는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
“제2세종문화회관 못지않은 구립 복합 문화시설을 건립해 문래예술창작촌의 젊은 예술가들이 걱정 없이 작품 활동을 하고, 지역 문화 예술인들이 맥을 이어갈 터전을 제공하겠다. 또한 영등포문화원을 문래동 구립 복합 문화시설로 옮기겠다. 영등포문화원이 있던 영등포공원에는 추가로 녹지를 조성하고 지하에는 주차장을 만들어 주민들의 편의를 더하겠다. 그렇게 되면 영등포문화원 문화학교 이용자도 현재의 3배에 달하는 5만명 이상으로 늘어나 문래동 인근 상권이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2019년 문래동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 계획 발표 때와 달리 이번에는 주민설명회나 공청회를 열어 다양한 의견을 듣고 속도감 있게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영등포구를 과학교육 특별구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4차 산업혁명 시대, 양질의 일자리는 대부분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에서 나온다. 많은 기업이 디지털 역량을 갖춘 과학 인력을 원하지만 많지가 않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과학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과학과 수학에 흥미와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서울특별시교육청과 ‘과학교육특별구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영등포 미래교육재단도 하반기에 출범하고, 서남권 서울시립과학관과 유아과학 놀이터인 서울상상나라를 유치해 과학교육의 기틀을 마련하겠다. 그래서 우수 학군을 찾아 영등포를 떠나는 현상을 막고, 한강의 기적을 이끈 영등포구의 위상을 되찾겠다.”
‘하나의 영등포’로 합쳐질 기회 잡아
영등포구 곳곳에서 정비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구 차원의 지원 방안은 뭔가.“영등포구는 다른 자치구에 비해 도시정비 사업이 늦은 편이다. 현재 77개의 다양한 사업이 추진되고 있어 ‘도시정비 사업의 백화점’으로 불릴 정도다. 속도감 있는 사업 지원으로 구민들의 이익을 더하겠다. 주민들에게 사업을 알리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신길5동주민센터에 현장 상담센터를 만들었다. 퇴직 공무원과 서울시 코디네이터가 상주하며 출장 상담도 진행한다. 도시를 정비하며 녹지 확충과 초고령사회 대비도 병행하겠다. 영등포구는 산이 없어 녹지가 부족하다. 대안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 아파트 단지와 단지 사이 띠 녹지를 연결해 둘레길 같은 공원을 만들 계획이다.”
도심철도 지하화 염원이 큰 걸로 안다. 구 차원에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경부선 철도는 120년 동안 철의 장막처럼 영등포구를 둘로 갈라놓았지만 최근 ‘하나의 영등포’로 합쳐질 절호의 기회가 왔다. 지난해 10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을 만나 구호가 아닌 실행력 있는 지하화를 위해 ‘특별법’ 제정을 건의했다. 국토부는 금년 대통령 업무보고에 6월까지 특별법을 발의하고 하반기 종합계획 수립, 2024년 노선별 사업화 검토 등 후속 절차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영등포역 일대는 당초 정비창이 있던 자리로, 철도 노선이 많고 철길의 폭이 넓어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녹지 확충은 물론 청년을 위한 창업센터, 문화시설 등 상상력이 곧 현실이 될 수 있다. 청계천 개발 경험을 살려 영등포구가 다시 서남권의 중심으로 도약하도록 밑그림을 그리겠다.”
영등포구 하면 경인로변 공장들을 먼저 떠올리는 이가 많다. 이를 개선할 복안이 있나.
“문래동 금속 공장은 현재 도심 산업으로는 적합하지 않지만 보존하고 육성해야 하는 뿌리산업의 중심이다. 현재도 1300여 업체에서 수많은 제품을 만들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산업부와 협력해 IT 기술을 접목한 기계 가공 기술의 디지털화, 정밀화, 고도화를 지원해 부가가치를 높이겠다. 장기적으로는 중소벤처기업부와 협력해 서울시 경계 지역이나 수도권 외곽 산업단지 이전을 추진하는 등 제조업 생태계를 보전하겠다. 그리고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로봇, 메타버스와 같은 4차 산업 관련업체를 유치해 여의도 부럽지 않은 일자리가 풍부한 도시로 만들겠다.”
최근 봄꽃축제기간에 ‘2023 K-푸드 대한민국 발효문화대전’이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열렸다. 영등포구에 어떤 시너지 효과가 있었나.
“많은 사람이 전통 발효식품을 먹고 즐기며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행사다.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와 같이 개최해 한자리에서 꽃도 보고 전통 음식도 즐길 수 있다. 그 덕분에 영등포구의 이미지가 더 좋아지고 행사장을 찾은 이들은 각자의 콘텐츠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나 역시 김치와 젓갈을 좋아해 다양하게 장을 봤다(웃음). 지속적 협력으로 매년 행사가 열리길 바란다.”
구청장으로서 꿈꾸는 영등포구의 미래 청사진과 포부가 궁금하다.
“일자리·주거·문화·녹지가 어우러진 서남권 신경제 명품도시이다. 바야흐로 영등포구의 위상을 새로 정립할 호기를 맞아 미래 씨앗을 뿌리는 구청장이 되겠다. 비록 당적을 갖고 있지만 구청장직을 수행하는 데는 여당도 야당도 아닌 오직 구민만 바라보는 ‘구민당’ 당원이라는 각오로 영등포구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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