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호

‘메가 서울’, 신도시 30‧40 화이트칼라 욕망을 겨누다

[여의도 머니볼⑭] 김포를 콕 집은 與, 우연 아니다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3-11-09 10: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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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3일 경기 김포시의 한 거리에 서울시와 김포시청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설치돼 있다. [뉴스1]

    11월 3일 경기 김포시의 한 거리에 서울시와 김포시청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설치돼 있다. [뉴스1]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촉발한 경기 김포시의 서울 편입 문제를 놓고 여야가 공방을 펼치고 있습니다. 10월 30일 김 대표는 경기 김포한강차량기지에서 열린 수도권 신도시 교통대책 마련 간담회에서 “당 내부에서 검토한 결과 경기 김포를 서울로 편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해외 사례들을 봤을 때 인구 대비 면적으로도 서울시의 면적을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라고도 했고요. ‘메가 서울’ 구상입니다.

    김 대표의 발표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만큼 전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이슈의 주도권을 쥐었다는 자신감 때문일까요. 김 대표는 11월 2일 더불어민주당에 “찬성인지, 반대인지 입장을 명확히 밝히라”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직접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1월 8일에서야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서울 확장 정책”이라는 견해를 내놨습니다. 김포시의 서울 편입에 대한 여론이 꼭 호의적이지만은 않다는 판단이 읽히는 대목입니다.

    이 연재의 제목은 ‘여의도 머니볼’입니다. 도시공학보다 정치공학에 치우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야 간 논쟁이 분분한 ‘세수(稅收) 감소’ 이슈도 다루지 않습니다. 정책의 정당성에 대한 평가도 논외로 둡니다. 그보다는 표심에 미칠 파장을 가늠해보려 합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남 화성 김포 시흥으로 간 ‘서울러’

    김병수 김포시장이 11월 7일 경기 김포시 장기본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테마가 있는 소통광장’에서 김포시의 서울 편입과 5호선 연장 등 지역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김병수 김포시장이 11월 7일 경기 김포시 장기본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테마가 있는 소통광장’에서 김포시의 서울 편입과 5호선 연장 등 지역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지난해 5월 서울연구원은 통계청의 2020년 국내인구이동통계와 자체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수도권 내 서울 인구 전·출입 패턴과 요인’ 보고서를 냈습니다. 이에 따르면 2020년 서울에서는 157만8127명이 전입했고 164만2977명이 전출했습니다. 가장 많이 전출한 지역은 경기 하남, 화성, 김포, 시흥입니다. 이에 대해 서울연구원 측은 “서울 인구 전출을 유발한 주요 원인은 양질의 주택수요와 맞물린 수도권 주택지 개발, 신도시 건설로 분석됐다”고 밝혔고요.

    다만 4개 도시 중 화성은 다소 예외적인 사례입니다. 화성은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를 기반으로 동탄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재정과 인구가 급격히 늘었습니다. 올해는 재정자립도가 61.1%로 서울 강남구(60.4%)와 경기 성남시(59.6%)를 제치고 ‘전국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요. 즉 서울서 밀려서 둥지를 튼 곳이라기보다는 삼성전자와 협력업체 등에 일터를 둔 직장인들이 자발적으로 옮겨간 경우로 해석해야 합니다. 바꿔 말하면 화성에 살면서 화성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은 겁니다. 흔히 하는 말로 자족도시(自足都市‧self-contained city)죠.



    외려 주목할 사례는 김포와 하남입니다. 주로 서울로 출퇴근하는 30‧40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이 많은 도시입니다. 2020년을 즈음해 부동산값이 폭등하면서 서울 근교에서 대안으로 주목받은 곳이 김포의 한강신도시와 하남의 미사강변신도시입니다. 서울과 가깝되 대형건설사들이 지은 ‘브랜드 아파트’들이 있어 관심을 끌었죠. 실제로 ‘메가 서울’ 논쟁의 도화선이 된 김포의 경우, 한강신도시가 조성된 마산동·장기동·구래동·운양동에 외지(外地) 인구가 몰렸습니다. 그 덕분에 김포는 2020년 기준으로 전국 인구 증가율 1위 지자체에 올랐습니다.

    특히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젊은층의 인구 유입이 많았습니다. 김포시청은 매달 ‘인구브리핑’을 공개하는데요. 여기서 김포시청은 북부권(통진읍, 양촌읍, 대곶면, 월곶면, 하성면)과 중부권(장기본동, 장기동, 구래동, 마산동, 운양동), 남부권(고촌읍, 김포본동, 사우동, 풍무동)을 구분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중부권이 한강신도시와 상당 부분 겹칩니다. 올해 9월말 기준으로 김포시 전체 인구(48만5943명) 중 43.14%(20만9679명)가 중부권에 살고 있습니다. 중부권의 평균연령은 38.3세로 북부권(51.2세) 및 남부권(42.1세)에 비해 매우 젊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구래동의 평균연령은 36.8세에 불과했습니다.

    선거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한때 보수정당의 ‘텃밭’으로 불리던 김포의 표심에도 적잖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김포시 갑과 을 지역구 공히 민주당이 석권했습니다. 이번에는 같은 해(2022년) 치러진 제20대 대선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살펴보겠습니다.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김포에서 15만3206표(51.07%)를 얻어 13만6814표(45.61%)에 그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비교적 넉넉한 격차로 이겼습니다. 읍 단위에서는 1000표 차 이내의 백중세거나 되레 윤 후보가 소폭 앞섰는데요. 마산동과 구래동, 운양동 등 신도시 지역에서는 이 후보가 2000~4000표 이상 격차로 압승했습니다.

    與 압승 바람에도 신도시 도의원 꿰찬 野

    김동연 경기지사가 11월 6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2024년도 본예산 관련 기자회견’에서 김포시의 서울 편입 관련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김동연 경기지사가 11월 6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2024년도 본예산 관련 기자회견’에서 김포시의 서울 편입 관련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이 대승한 지방선거를 볼까요.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김포에서는 9만8054표(50.48%)를 득표한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가 9만2596표(47.67%)를 얻은 김동연 민주당 후보를 이겼습니다. 김포시장 선거에서는 김병수 국민의힘 후보가 10만1566표(52.42%)를 받아 8만6798표(44.79%)를 얻은 정하영 민주당 후보를 적잖은 격차로 앞섰고요.

    몇 달 새 김포 표심이 달라진 걸까요. 대선에 나선 후보들이 얻은 득표수와 지방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얻은 득표수를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1위를 한 후보의 득표수를 기준으로 보면 약 5만 표의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국민의힘의 득표도 줄었으나, 민주당의 득표가 더 크게 줄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 상당수가 투표에 불참한 결과로 해석할 소지가 큽니다.(*바꿔 말하면 이런 상황에서도 경기지사직을 꿰찬 김동연 후보의 경쟁력을 높이 평가할 수도 있겠네요.)

    동 단위로 보면 도지사 및 시장 선거 공히 마산동, 구래동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를 소폭 앞섰습니다. 운양동은 시장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앞섰지만 도지사 선거에선 민주당이 이겼죠. 보다 구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경기도의원 개표결과도 살펴봤습니다. 흥미롭게도 김포시 선거구 4곳 중 3곳을 국민의힘이 가져갔는데, 김포시 제4선거구에서는 이기형 민주당 후보가 2만3914표(51.11%)로 2만2870표(48.88%)에 그친 양형용 국민의힘 후보를 꺾었습니다. 이곳은 장기본동‧마산동‧운양동 등 한강신도시가 위주인 선거구입니다. 같은 행정구역 안에서도 토박이들이 주로 사는 곳과 신도시 표심이 갈린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번에는 6월 9~12일 동아일보가 여론조사업체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경기 지역 성인남녀 802명을 대상으로 ‘내년 총선에서 어느 정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느냐’고 물은 조사를 소개합니다. 조사에서는 경기도를 6개 권역으로 나눴는데요. 김포는 고양‧파주와 함께 북서해안권으로 분류됐습니다. 고양에는 1기 신도시인 일산이 있고 파주에는 운정신도시가 있죠. 그런데 경기 전체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가장 높은 권역이 이곳 북서해안권이었습니다. 민주당은 39.5%를 얻었고 국민의힘은 28.1%를 기록해 격차가 오차범위 밖인 11.4%포인트였죠.

    ‘욕망의 정치’이긴 하지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경기 신도시에서는 여전히 민주당이 헤게모니를 쥐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한 현 시점에서 총선을 치르면 여당이 불리합니다. 30‧40 화이트칼라는 전 세대와 직업을 통틀어 윤 대통령에게 가장 불만이 많은 이들입니다. 조사대상자가 3005명인 한국갤럽의 10월 통합 대통령 직무 평가 결과를 보면, 30대와 40대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각각 18%, 17%였습니다. 화이트칼라를 뜻하는 사무/관리직에선 25%만 윤 대통령을 지지했습니다. 부동산 폭등이 만든 수도권 내 이주 행렬이 정치 지형마저 바꿔놓은 겁니다.(이하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메가 서울’이 김동연 경기지사가 내건 경기북부특별자치도와 결부돼 논의되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경기도가 분도(分道)되면 김포는 경기북도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기남도로 가면 다른 지역과 동 떨어지는 모양새가 되고요. 과거에는 김포가 인천시에 편입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 바 있습니다. 경기도민보다 서울시민의 정체성이 짙은 30‧40 화이트칼라로서는 선택지 중 굳이 고르라면 ‘서울시 김포구’가 낫다는 정서가 퍼질 개연성이 높습니다. 현재는 전국단위로 여론조사가 이뤄지고 있는데, 김포시민에게 ‘경기북도’와 ‘인천시’ ‘서울시’ 중 선호하는 편입 대상을 고르라는 식으로 문항이 짜인다면 결과는 달리 나올 겁니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욕망의 정치’입니다. 여권은 집값 상승 욕구를 부채질하고, 사교육계는 “서울시 김포구에선 대원외고 진학이 가능하다”고 부추깁니다. 서울에서 밀렸지만 같은 세대에서 중상층에 해당할 30‧40 화이트칼라만을 위한 정치라는 비판에도 마땅한 반론을 찾기 어렵습니다. 한데, 누군가는 욕망보다 선망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윗세대도 경험해온 ‘자산 증식의 사다리’라고 판단할 겁니다. 벽돌처럼 단단하게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중 선망하는 사람이 3할만 되도 정치공학으로는 ‘남는 장사’입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유권자는 ‘옳은 것’보다 ‘끌리는 것’에 마음이 동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도 ‘메가 서울’은 단발성 해프닝으로만 넘길 사안이 아니기도 합니다. 그간 상투적으로 활용된 지역개발론을 넘어, 행정구역 개편을 고리로 표심을 공략하는 어젠다가 등장했다는 의미 때문입니다. 수년간 민주당이 초강세를 보인 경기도가 그 무대가 된 건 우연이 아닙니다. 바야흐로 ‘부동산의 정치’를 넘어 ‘국토 재구성의 정치’ 시대가 열렸습니다. 한국정치에는 새로운 변곡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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