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호

터키 이스탄불

두 개의 대륙을 품에 안다

  • 사진/글 최상운 여행작가 goodluckchoi@naver.com

    입력2008-12-31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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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 이스탄불

    첨탑인 미나레가 인상적인 블루 모스크의 모습.

    조금 전 이스탄불 항구를 떠난 배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천천히 지나고 있다. 선실 유리창 너머 아시아의 풍경이 눈에 잡힐 듯 들어온다. 제국주의 시대에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재상 메테르니히는 ‘비엔나(빈)의 서쪽은 동양’이라고 했다. 여기서 ‘동양’이란 당시 서구인의 다분히 오만한 시선에서 볼 때 선진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야만의 땅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제 그 동양이 세계 헤게모니의 중심에 다시 서기 위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디는 것을 보노라면 ‘역사는 순환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빈의 한참 동쪽에 있는 이스탄불은 상징적인 동서의 교차로가 아니다. 이 도시는 지리상으로 정확히 동과 서, 즉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장소다. 두 대륙이 바로 코앞에 닿을 듯이 가깝게 보이는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금남의 성 하렘

    선실을 다니는 웨이터에게 터키 차인 ‘차이’를 한 잔 주문하고 건너편인 왼쪽을 보니 유럽 쪽 이스탄불이 보인다. 하나의 도시가 두 개의 대륙에 걸쳐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그만큼 이 도시는 두 대륙의 상이한 문화를 속속들이 체화하고 있다. 324년부터 기독교 문화권인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로, 그리고 1453년부터는 이슬람 문화권인 오스만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로. 이 두 개의 이름만으로도 이스탄불의 무게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1922년 서구 세력에 의해 와해된 제국의 마지막 술탄이 이스탄불을 떠나고 수도가 앙카라로 옮겨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속 터키의 수도는 영원히 이스탄불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짧은 보스포루스 크루즈를 마치고 들르는 곳은 톱카피 궁전(Topkapi Palace)이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오스만제국의 술탄인 마흐메드 2세가 만든 이 궁전은 400여 년 동안 역대 술탄들이 주로 머물던 곳이다. 언뜻 중세 유럽의 어느 성채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탑이 인상적인 입구를 지나면 나타나는 것이 하렘(Harem). 하렘의 원래 뜻은 ‘금지된’, 혹은 ‘성스러운’을 의미하는데, 남자는 술탄과 그의 자식들인 왕자들만 출입할 수 있었다.

    하렘은 대부분 이방인인 일반 궁녀들이 머물던 집과 총애를 받는 후궁들이 살던 집, 그리고 술탄과 그의 가족들이 살던 집으로 나뉘어 있다. 복잡한 복도들을 따라가 보는 하렘은 호사스러운 터키 왕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것 같은 묘한 기분까지 들게 한다. 하렘 외에도 궁전 안에는 여러 정자와 문이 아름답고, 특히 절대 빼놓으면 안 되는 진귀한 구경거리들은 궁전 주방과 왕실의 귀중한 전시품들이다.



    톱카피 궁전 다음으로 가는 곳은 술탄 아흐메드(Sultanahmet) 지구. 유명한 소피아 성당(Hagia Sophia)과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메드 모스크)가 있는 곳이다. 먼저 가까운 소피아 성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에 의해 537년에 건축이 시작된 이곳은 당시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명실상부한 비잔틴 제국의 상징이었다. 그러다 15세기에 오스만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뒤에는 이슬람의 첨탑인 미나레와 정원들, 궁묘들이 들어서며 이슬람 회당인 모스크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런 역사 때문에 기독교와 이슬람의 흔적들이 혼재된 모습이 매우 흥미롭다. 그중에서 높은 벽 위에 새겨진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들은 이슬람 시대의 훼손 흔적인 덧칠을 벗고 현대에 훌륭하게 복원되었다. 그중에서도 성모를 가운데 두고 황제와 왕비가 그려진 그림, 예수와 황제, 왕비가 있는 그림, 천사 가브리엘의 모자이크들이 눈길을 끈다. 또한 56m의 높은 돔 아래에 펼쳐지는 넓은 공간은 찬탄이 절로 나오게 한다.

    소피아 성당을 나와 가는 곳은 바로 건너편에 있는 블루 모스크(Sultandhmaet Mosque). 이 이슬람사원은 돔 주위로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모습이 장관인데 수많은 이스탄불의 모스크 중에서 여섯 개의 첨탑(Minaret)을 가진 곳은 여기밖에 없다. 뾰족한 첨탑은 밤에 보면 묘하게 요염한 느낌마저 준다. 내부를 장식하는 푸른 타일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면 250여 개의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신비롭다. 그리고 넓은 예배당의 여기저기서 예배를 올리는 무슬림들로 매우 경건한 분위기다. 일부 과격분자들로 인한 테러로 그 이미지가 많이 손상된 이슬람의 원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마저 든다.

    모스크에서 나와 볕이 좋은 넓은 마당에 앉았다. 이제 이스탄불에서 쓰는 편지를 마치려 한다. 전세계에서 온 여행자들로 마당은 꽤나 붐비는데 문득 터키의 앞날이 궁금해졌다. 요즘 터키는 아주 작은 유럽 쪽 영토를 빌미 삼아 유럽연합(EU)에 가입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EU는 쿠르드족의 인권 등 여러 이유를 들어 터키의 가입을 꺼리고 있다. 기독교 세력인 동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이슬람의 오스만제국을 세웠던 사람들, 그 제국 역시 무너졌지만 여전히 이슬람의 전통이 많이 남아 있는 터키가 EU에 가입하는 것은 어찌 보면 유럽의 포용력에 달린 문제라고 하겠다. 종교와 인종의 차이를 넘어 세계가 평화롭게 하나가 되는 멀지 않은 미래를 기대해본다.

    터키 이스탄불
    1 보스포루스 해협의 배 위에서 바라다보는 이스탄불 항구.

    2 성 소피아 성당의 내부는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의 흔적이 섞여 있다.

    3 성당 안 성모와 아기예수, 황제의 그림이 거울에 반사되어 보인다.

    4 터키의 유명한 먹을거리인 케밥을 만드는 요리사.

    5 바자에서 발견한 신기한 기구. 음식을 데우는 데 쓴다.

    터키 이스탄불
    1 톱카피 궁전의 입구에 있는 멋진 탑이 눈길을 잡아끈다.

    2 이스탄불의 시장인 바자에서 환한 웃음을 터뜨리는 터키사람들.

    터키 이스탄불
    3 푸른 타일로 치장한 블루 모스크의 돔 역시 매우 아름답다.

    4 하렘의 방. 마네킹으로 하렘의 여인들을 재현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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