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심(農心)은 흉흉하다. 농업은 이제 3D업종을 넘어 꿈마저 잃은(Dreamless) 4D업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문제, 정치권 분열, 계층갈등 등 나라가 뒤숭숭하기만 하다. 좀 신명나고 희망적인 메시지는 없을까.
어릴 적 매미의 추억이 있다. 40여 년 전 필자 또래 시골 초등학생들에겐 곤충채집이 방학숙제의 단골메뉴였다. 여름내 잡은 잠자리, 나비, 메뚜기, 여치, 풍뎅이, 장수하늘소 등을 마른 수수깡 위에 핀으로 꽂고 와이셔츠 상자에 고정시켜 셀로판지를 덮으면 숙제 끝. 웬만한 곤충은 비교적 수월하게 잡았으나 언제나 그놈의 매미가 문제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던가. 방학은 다 끝나가는데 매미 한 마리를 못 채워 무척 초조했다. 어느날 우리집 대문 옆 가죽나무에서 매미가 울었다. 이놈은 하루종일 원 없이 울고도 모자라 가끔 해질녘이나 밤에 또 울어서 매민가 귀뚜라민가 헷갈리게 했다.
우리집 가죽나무는 나뭇잎을 따서 나물이나 튀각으로 해먹었기에 키만 15m 정도로 훌쩍 컸다. 잎은 헤싱헤싱해서 꼭대기께 매미가 까맣게 보였다. 어떻게 잡을까. 잠자리채로는 어림없다. 긴 대나무 장대에 거미줄 진득이를 잔뜩 감은 겨릅대를 이어붙였다. 그래도 짧아 몇 미터쯤 나무를 타고 올라 몸을 가누고 한 손으로 장대를 치켜올려 매미를 겨누었다. “조금만 더, 더” 하면서 거의 잡을 뻔했는데 매미는 놀라 날아가버리고 나만 굴러떨어졌다. 아픈 건 고사하고 그 낭패감이라니. 뼈 부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지만 긁히고 멍든 데다 손목까지 삔 탓에 한 달을 고생했다. 고얀 놈 같으니라고.
농과대학을 다닌 필자는 ‘곤충학’을 한 학기 수강하며 곤충의 생리나 학명 등을 일삼아 외운 적이 있다. 분류학적으로 매미는 절지동물문-곤충강-유시아강-노린재목-매미아목-매미과 및 매미상과(cicadoidea)에 속한다. 우리나라 매미는 털매미, 늦털매미, 깽깽매미, 참깽깽매미, 말매미, 유지매미, 참매미, 애매미, 쓰름매미, 소요산매미, 세모배매미, 호좀매미, 두눈박이좀매미, 풀매미, 고려풀매미 등 15종이라 한다.
매미의 일생도 자못 감동적이다. 알을 깬 매미 애벌레는 땅속에서 뾰족한 주둥이로 나무뿌리 수액을 빨며 몇 해를 지낸다. 애벌레가 땅속에서 보내는 기간은 대개 6∼7년. 북아메리카의 주기매미란 놈은 정확히 13년 또는 17년을 주기로 떼지어 출몰한다. 매미가 지상에 사는 기간은 고작 일주일 정도. 아주 좋은 조건이라야 한 달을 산다니 장난이 아니다.
“아하, 그랬구나. 참으로 미안하다, 매미야.” “우리가 양념 삼아 듣는 너의 그 절창이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이라니…” “17년을 기다렸기에 암컷을 부르는 애절한 연가였다니…” “수컷들 불러모아 천적을 격퇴하려는 진군나팔이었다니…” “후에 안 얘기지만 대만이나 일본엔 저녁에만 우는 저녁매미도 있다는데 너를 미친 매미 취급했으니…”
매미에게서 소리 빼면 하찮은 미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매미소리는 한여름 개울가 원두막에 누워 수박씨라도 뱉어가며 느긋하게 낮잠을 청하는 때라야 제격이 아닐까. 고즈넉한 들녘에서 듣는 시냇물소리, 매미소리야말로 청량수요, 오라토리오 대합창 아니던가. 이제 매미소리 감상할 차례다. (이영준의 ‘한국의 매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