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화! 뭐해?”
“아, 네. 김매요.”
“곡식도 없는데 김을 매?”
아랫마을 할아버지가 밭을 지나다가 한마디 하신다. 농촌에서는 보통 곡식을 심기 전에 밭을 전부 갈아엎는다. 평생을 농사로 이골이 난 어른들로서는 곡식도 없는 밭에 김을 매는 일이 별나 보일 수밖에.
우리는 몇 년째 밭을 갈지 않고 농사짓는다. 기계로 어마어마한 일을 해내는 시대에, 우리는 우리만의 농사법을 찾아가고 있다.
풀에 두 손, 두 발 다 들다
기계를 써서 땅을 갈지 않는 농사법을 무경운(無耕耘) 농법이라고 한다. 내가 무경운 농법에 관해 처음 영감을 받은 것은 일본인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저서를 읽고 나서다. ‘현대의 노자(老子)’로 불리는 후쿠오카의 농법은 일명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농법’으로, 구체적으로는 4무(無) 농법을 말한다. 즉 땅 갈지 않기, 비료 안 주기, 풀 안 뽑기, 농약 안 치기다. 그러고도 농사가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가 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농사를 시작하며 나도 자연농법을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4월부터 풀이 여기저기 올라오다가 5월이 되니 앞이 까마득했다. 풀 천지에다가 곡식을 심을 엄두가 안 났다. 괭이질을 하며 버티다가 그나마 비가 오니 망연자실 두 손, 두 발을 들고 말았다. 농사나 자연에 대해 잘 모르고, 책만 믿고 덤빈 셈이다. 몸도 아직 농사지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뼈와 살이 다시 태어나야 했다.
지금은 밭 1000평 모두, 그리고 논은 500평 가운데 150평을 무경운으로 짓는다. 논농사와 밭농사는 무경운에서도 많이 다르다. 여기서는 밭농사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왜 무경운을 하는가. 논밭을 간다는 것은 우선 물리적으로 힘이 드는 일이다. 예전에는 소로 땅을 갈았지만 이제는 대부분 기계로 한다. 기계를 쓰면 힘이 거의 들지 않는다. 대신에 그 기계를 마련하고 유지하는 데 또 다른 힘이 든다. 기계는 힘이 좋고 속도가 빠른 만큼 사람이 기계에 다칠 위험도 높다.
땅을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한꺼번에 풀 잡기, 거름 뒤집어주기, 곡식을 쉽게 심을 수 있도록 땅을 부드럽게 갈아주기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한꺼번에 대량으로 하기’가 아닐까 싶다. 기계는 철저히 대량생산 체계를 따른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농사는 ‘골고루 그때그때 하기’다. 우리 식구가 심고 가꾸는 곡식은 종류가 50여 가지다. 3월에 감자와 홍화를 심고, 4월에 양배추, 양상추, 검은콩, 그러다가 5월에 대부분의 곡식을 심는다. 옥수수, 기장, 수수, 메주콩, 녹두, 참깨. 6월에는 양파, 마늘, 보리, 밀을 거두고 그 자리에 팥이나 콩나물콩을 심는다. 7월 한여름에 메밀을 심고 8월 휴가철에는 김장 무와 배추, 그리고 가을에 당근을 심는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다시 겨울을 나는 곡식으로 마늘, 밀, 보리, 양파를 심는다. 그러니까 한겨울, 땅이 얼었을 때를 빼면 늘 무언가를 심고 가꾸고 거두게 된다. 그러다 보니 기계를 쓰는 게 더 불편할 정도다. 그때그때 몸을 바람처럼 움직이는 게 더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