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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는 축구를 축구로만 본다

바보는 축구를 축구로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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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는 축구를 축구로만 본다

축구를 통해 인생을 보고, 리더십을 발견한 책들.

386세대, 아니 이제는 대부분 마흔 줄에 접어들었으니 486이라고 해야 옳겠지만 어쨌든 이 또래들은 스포츠라고 하면 전두환의 3S정책부터 떠올리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대학에서 “3S정책으로 국민을 우민화(愚民化)하는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토론을 더 많이 한 덕분이다.

전두환과 3S시대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 섹스(Sex)로 대변되는 3S는 대중을 정치로부터 소외시키고 사회적 불만을 다른 쪽으로 유도하는 교묘한 정치도구였다. 로마의 검투사 시합이나 히틀러의 베를린올림픽처럼 말이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1980년 컬러TV가 보급됐고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으며, 1986년 아시안게임에 이어 언감생심 1988년엔 올림픽까지 유치했다. 전두환, 노태우로 정권이 이어지는 동안 ‘스포츠 코리아 만만세’가 계속된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님이 분명했다. 그래서 많은 대학생이 그 시절 5·18 민주화운동의 상처를 입은 호남을 연고지로 한 해태가 프로야구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했고, 88올림픽 기간에는 애써 무관심으로 우민화에 저항했다.

문제는 필자처럼 태생적으로 스포츠를 좋아하는 인간들이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대학물을 좀 먹은 뒤에는 드러내놓고 “나, 해태 팬인데”라고 말하기가 쑥스러워졌다. 그렇다고 아주 무관심한 척하기는 더 괴롭다. 원초적 본능 탓이다. 군산이 고향인 아버지가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팀을 응원하는 것은 당연했고 덩달아 그 아들과 딸도 축구와 야구를 구분하게 된 순간부터 고교야구에 심취했으며, 김봉연 김일권 김성한 같은 선수들이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대학야구를 더 재미있게 보고,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지극히 자연스럽게 해태 팬이 됐다.

야구 시즌이 끝나면 더 바빠졌다. 김동광 박수교 이충희의 농구에 열광할 시간이 온 것이다. 특히 뒤로 제치듯 점프하며 쏘는 이충희 선수의 슛 동작이 미국 NBA의 마이클 조던을 알기 전까지는 최고라고 믿었다. 강만수 강두태 장윤창 선수가 활약하던 시절 배구는 또 얼마나 우리를 들뜨게 했던가. 그런 필자에게 전두환 군사정권의 유산인 3S니 우민화니 하는 것은 참으로 우울한 족쇄였다.



3S의 망령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그 뒤로도 한참, 2002년 월드컵이었다고 고백하겠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게 무슨 죈가. 지금이 어느 때인데 3S로 국민의 머릿속을 좌지우지한단 말인가. 꺼림칙함을 떨쳐버리니 마음껏 스포츠에 열광할 수 있었다.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쇼트트랙 선수들이 메달 따는 장면을 보고 또 보면 어떤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이 이룬 4강 신화에 코끝이 찡했던 국민은 정치꾼들이 그 덕 좀 보겠다며 야구에 빗대 상대를 비난했을 때 코웃음쳤다. 혼혈인에 대한 편견을 한꺼번에 무너뜨린 하인스 워드 선수를 진정한 영웅으로 받아들이지만 그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사람들까지 인정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고 보니 스포츠가 스포츠로만 보이지 않는다. 운동 경기는 인생의 축소판 아닌가. 덕분에 스포츠를 감상할 때도 이기고 졌느냐를 떠나 관전 포인트가 다양해졌다. 스타플레이어뿐 아니라 감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이 무렵이다.

김인식 리더십 배우기 열풍

2006 WBC에서 최고의 스타는 단연 김인식 감독이었다. 사람들은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을 이럴 때 쓴다는 것을 잘 안다. 김인식 감독이 보여준 믿음의 리더십을 배우려는 열기는 ‘야구를 경영하는 감독의 6가지 원칙-김인식 리더십’(고진현, 채움)을 화제의 책으로 만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마치 4강 신화를 예측이라도 한 듯 절묘한 타이밍에 이 책을 펴냈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소가 뒷걸음질치다 쥐를 잡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 책은 4강 신화 이전에 씌어졌기에 더 가치가 있다. 저자 서문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지난해 한국사회에서 리더십에 있어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인물은 누구일까? 이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김인식 감독의 리더십이 단연 첫손에 꼽힌다. 리더십론의 기본구도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결과 중심적이기 때문에 획득가치가 기대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게 보편적이다. 한국은 1등 지상주의가 판치는 사회다. 그런 가운데 한화의 김인식 감독이 리더십의 한가운데에 선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김 감독이 이끈 한화는 한국시리즈 우승은 고사하고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패해 3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 감독의 리더십이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흥미로움을 뛰어넘어 고무적이다. 리더십론의 치명적 약점인 결과중심주의에서 마침내 벗어났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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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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