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진 책의 역사’ 뤼시앵 폴라스트롱 지음/이세진 옮김/동아일보사/448쪽/2만5000원
당연히 그 이유가 뭐냐는 질문이 있었다.
“너희는 어차피 학문을 위해 대학원에 입학했다. 이 목록에 있는 자료는 너희가 어떤 분야를 공부하든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이다. 이번 학기에 꼭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책들을 준비해두면 언젠가는 읽을 것이 아닌가!”
그 교수의 말은 내 뇌리에 새겨졌고, 이후로 나는 책을 수집하는 데 열심이다. 마치 내가 수집한 지식의 규모라도 가늠해보려는 듯이.
그런데 한정된 공간에 책이 점점 쌓여간다. 책 속에 책이 파묻힌다. 책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책을 분류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때부터 책이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책이 물리적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저 어딘가에서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급기야 책이 거추장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옛날에는 지나가는 엿장수에게 팔아 엿으로라도 바꿔 먹었지만 요즘에는 그렇지 못하다. 책을 버린다. 그리고 책이 파괴된다.
뤼시앵 폴라스트롱(Lucien X. Polastron)의 ‘사라진 책의 역사’는 책의 수난사를 다룬 책이다. 요즘 유행하는 책에 대한 책인 셈이다. 최근에 출간된 ‘젠틀 매드니스’(뜨인돌)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질병에 걸린 사람들’, 즉 도서 수집가들의 역사를 추적한 데 반해 ‘사라진 책의 역사’는 책의 파괴사를 추적하고 있다.
인간의 의도적 파괴
책은 벌레, 곰팡이, 홍수, 화재 등으로 파괴됐다. 전쟁의 화마도 피해갈 수 없었다. 전쟁에 의한 책의 수난은 옛날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최근에, 더 정확히 말하면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2003년 7월에 바그다드 도서관이 파괴됐다! 전쟁에 의한 파괴는 홍수에 의한 파괴처럼 우연일 수 있다. 그러나 책의 파괴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한 부분은 인간의 의도적 파괴였다.
이 책은 지역과 시대를 기준으로 책의 수난사를 다루고 있지만 인간의 의도적 파괴에 초점을 맞춰 읽어갈 수도 있다. 크게 다섯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첫째는 민중의 우민화를 위한 분서(焚書)였다.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대표적인 예다. 진시황을 보좌한 법가 사상가들은 “백성이 무지해야 국가를 제대로 통치할 수 있다”는 철학에 따라 “법과 명령이 분명하게 서기 위해서는 책을 불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가 사상가들과 쌍벽을 이루던 도가 사상가들도 지나친 독서는 도를 깨닫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여하튼 이렇게 해서 ‘시경’ ‘서경’ ‘춘추’ ‘예기’ 등이 모두 불태워졌다. 민중의 우민화를 위한 분서는 20세기에도 있었다. 1933년 1월30일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총리로 임명됐다. 그리고 5월10일, 히틀러는 “우리는 야만인이고 야만인이기를 원한다”고 외쳤고, 그날 밤 10시 베를린 오페라광장에서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등이 쓴 ‘인간의 정신을 좀먹는 책’들을 불태웠다. 책의 파괴는 ‘재능의 말살’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의 잡지 ‘륄뤼스타라시옹’은 히틀러 치하에서 자행된 분서 집회를 평가하며 “이제 독일에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책을 파괴한 둘째 이유는 정복자가 피정복국가의 역사와 신앙을 바꾸기 위한 목적에 있었다. 스페인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정복했을 때 정복자들의 생각은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정복자들은 “그 세계가 어린아이처럼 더없이 새롭기 때문에 아주 기초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잉카제국과 아스텍 제국의 문서보관서에 소장된 성스러운 책들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아예 그들의 역사를 지워버렸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만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원주민의 책 중에는 미신이나 악마의 거짓된 소행이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며 그들의 책을 모두 불살라버렸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렇게 책을 파괴함으로써 원주민의 종교와 신앙마저 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