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빠는 풍각쟁이야’ 장유정 지음/황금가지/433쪽/2만2000원
이번에 나온 ‘오빠는 풍각쟁이야’는 장유정의 박사학위 논문을 다듬은 책으로 식민지시대 대중가요가 그 대상이다. 아마 이 논문도 국문과 최초의 대중가요 박사논문이라는, ‘최초’의 명예를 오랫동안 간직하게 될 것이다. 항상 ‘최초’의 행위는 미개척지에 깃발 꽂는 흥분을 동반하지만 막상 시작할 때는 많은 망설임이 있다. 저자가 ‘머리말’에 밝혀놓은 대로, 대학가요제에 도전장을 내볼 정도로 가수를 꿈꿔왔던 개인적 절실함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삐딱선’을 타는 모험을 감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록물에 근거한 문화사적 접근
이 책이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대중가요에 대한 풍부한 문화사적 접근이다. 국문학 논문임에도 작품 내적 분석이 아닌 당대 대중가요가 놓인 문화사적 맥락에 대한 천착의 비중이 책의 절반을 넘을 정도다. 특히 저자의 시선이 대중가요의 생산자와 생산과정, 그리고 수용자와 수용의 맥락 모두를 살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자본력이 뒷받침돼야 생산가능한 대중가요라는 상품의 본질, 유성기라는 새로운 기계를 지녀야 들어볼 수 있는 전달방식, 대중가요와 유성기가 유통되는 시장, 이를 구매하고 선택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수용자들은 실제로 대중가요를 존립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토대다.
저자는 당시의 기록들, 특히 문서기록들을 최대한 모아서 이를 구명한다. 음반에 삽입된 가사지, 각 신문과 잡지에 실린 광고와 기사, 연감 등의 공공기관 기록물을 가장 중요한 자료로 활용했다. 그래서 식민지시대의 대중가요를 앙상한 악보나 노랫소리가 아니라 당대를 풍미한 문화로 생생하게 복원한다. 예컨대 1912년 유성기 광고로 쓰인 삽화(유성기 나팔통에서 한복에 한삼 끼고 춤추는 여자들이 흘러나오는 그림)는 당시 사람들이 유성기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유성기에 대한 기사와 홍보문구에서 당시 개화한 지식인들이 꿈꿨던 서양 스위트홈의 이미지를 추출한 것은 좋은 분석이다.
기록물에 근거해 당대의 총체적인 상을 재구성하려는 저자의 욕구는, 유성기 음반에 실린 전통가요(판소리, 잡가, 민요, 시조를 이렇게 지칭했다) 등 대중가요 이외의 것들에 대한 관심도 놓치지 않았다. 또한 대중가요의 여러 갈래가 당시 어느 정도 생산되고 수용됐는지에 대한 통계적 분석도 그 시대를 포괄적으로 파악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의 이러한 연구방법은, 최근 몇 년간 인기를 모으고 있는 미시사(史)에 대한 관심과 일맥상통한다. 역사나 사회를 연구함에 있어 정치와 경제 이외의 문화와 생활, 풍습의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예술문화 연구자들이 당대 기록물을 구석구석 살펴보며 마치 풍속사가처럼 당대의 생활사·문화사 전체를 파악하고자 하는 연구 경향이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저자가 주장하는 ‘이식과 자생의 이분법을 넘는 일’은 바로 이러한 연구방법으로 가능했다. 미시사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완벽하게 이식적, 혹은 자생적이라고 못박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으랴. 인간사는 모두 과거의 다기한 측면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고, 미시사는 거시적 태도에서 무시하기 쉬운 이 복잡한 결을 놓치지 않으려고 구석구석에 애정 있는 눈길을 주는 방법론이다.
대중가요의 네 갈래
식민지시대의 대중가요를 크게 네 갈래로 구분한 것은 이 책의 또 하나의 성과다. 식민지시대의 대중가요가 트로트 일색이라는 선입견을 뒤집고, 트로트와 신민요의 양대 산맥으로 이 시대를 서술한 것이 필자의 성과라면 여기에 (트로트와 신민요에 비해 비중이 낮기는 하지만) 만요(漫謠, 코믹송)와 재즈송(당시 트로트에 비해 서양풍이 강한 노래를 이렇게 통칭했다)을 더해 식민지시대 대중가요를 4가지로 분류한 것은 이 책의 성과다. 당시 음반에는 작품 제목 앞에 작은 글씨로 작품의 종류를 명기했는데, 저자는 이를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