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밤 잠 못 이뤄 뒤척였는지요, 그대를 꽁꽁 묶어 고문한 가해자는 남을 의식하는 그대의 미망일 것입니다. 아직도 무게로 남은 삶의 등짐. 그 등짐 속에 자기는 없고 하느님만, 타인만 있다면 용감하게 내려놓아야지요. 자기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면 하느님사랑, 이웃사랑은 겉껍질 사랑일 뿐이니까요.” ‘노동의 기쁨을 안고 일터에서 돌아와 가족이 등불 아래 모이는 저녁 식탁, 반딧불 반짝일 때 마을 아이들이 달빛 아래 술래잡기를 하는 정겨운 풍경…’을 꿈꾸며 정년 10년을 남겨두고 잡지사 기자생활을 그만둔 저자의 글은 상투적이라 못마땅한 표현이긴 하나 ‘웰빙’의 경지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남들은 그의 꿈이 ‘백 년 전 이야기’라고 코웃음을 쳤지만, 그는 글을 통해 결국 꿈을 이루었다고 속삭인다. 글나래/272쪽/1만2000원
F-15K 슬램 이글 안승범·양욱 지음
제1차 F-X사업을 통해 2008년까지 40대가 도입되는 F-15K 슬램이글(Slam Eagle·‘전승의 독수리’라는 뜻의 F-15K 별칭)에 대한 최신 정보를 담은 책. 사업 초기부터 잡음이 많았던 탓에 ‘간신히’ 선정된 ‘후진’ 전투기로 인식되는 F-15K에 대한 부정확한 인상 비평 대신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한다. 국내 공군기지뿐 아니라 알래스카 미 공군기지까지 오가며 자료를 수집한 저자들은, F-15K의 초도비행, 출고, 배치, 운용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전력화 과정을 상세히 다루고, F-15K의 각종 시스템 제원 및 특징과 하푼 블록Ⅱ 공대함 미사일, SLAM-ER 공대지 순항미사일, GPS 유도폭탄 JDAM, GBU-28 레이저 유도폭탄 등 최신 무장을 소개한다. 말 많던 F-X 사업자 선정과정 뒷얘기도 담았다. 플래닛미디어/304쪽/1만9800원
여자대통령 아닌 대통령을 꿈꿔라 정미경 지음
현직 검사가 ‘최초’라는 수식어를 단 여성 인사들을 실명으로 비판해 화제에 오른 책. 저자가 당초 의도했던 바는, 최초의 여성지도자들에 대한 비판을 통해 “‘여성 최초’는 좋든 싫든 그 ‘최초’의 의미를 의식하고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자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소수의 ‘여성다운 여성’이 조직 내 남성들의 배려 덕분에 ‘얼굴 마담’이 됐지만, 앞으로는 어떤 포지션에서 요구되는 자질만이 중요할 뿐, 여성 혹은 남성의 특성이나 자질은 중요치 않으리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검찰에서 많은 엘리트 남성을 알게 되고, 여성가족부 장관 법률자문관으로 일하면서 지도층 여성 여럿을 만난 저자는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멋진 포트폴리오를 제시한다. 랜덤하우스/248쪽/1만1000원
나는 통일 정치쇼의 들러리였다 권오흥 지음
북한 핵실험 직후인 지난해 10월, 노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씨가 베이징에서 이호남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참사를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사실이 올해 4월 언론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안희정-이호남 비선(秘線) 접촉을 성사시킨 당사자 권오흥씨의 폭로를 통해서. 당시 권오흥씨가 집필 중이던 비망록이 이번에 책으로 나왔다.
정부가 비선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지만, 그러한 사실을 세상에 알린 ‘권오흥’이란 사람에 대한 의문도 컸다. 일반인에게 그는 낯설기만 하다. 남북관계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정부 관계자, 학자그룹, 그리고 민간인 신분으로 경협 등 대북 관련 일을 해온 사람들, 이렇게 세 부류로 나뉘는데, 권오흥씨는 이중 세 번째 부류에 속한다. 그는 1989년 KOTRA에서 미수교국 업무를 전담하는 특수사업부에 몸담았을 때부터 북한 관련 일을 시작, 근 20년 동안 북한과 중국에 독자적인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활동했다. 현재는 영국계 기업 KIC London의 기술고문직을 맡고 있다.
현 정권 들어 교착상태에 있던 남북관계에 비선라인을 열었지만 결국 정치 게임 때문에 밀려난 그는 비망록을 통해 2006년 9월 이후 자신이 겪은 모든 일을 공개했다. 지난 10여 년간 남북간에 이뤄진 모든 공개-비공개 거래와 협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반성도 담겨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정동영·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이해찬 전 국무총리, 이화영 열린우리당 의원 등 남측 인사들에 대해 북한이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소개했다. 권씨는 “남북한은 경제협력을 통해 정치 문제를 풀어야 하고, 남북한 관계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시도를 중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사/464쪽/1만8000원
일본열광 김정운 지음
‘왜 일본 만화에 나오는 여자는 항상 하얀 ‘빤쓰’를 살짝 보여 주는가?’ ‘도대체 왜 일본음식은 항상 2% 부족할까?’ 일본에서 9개월을 보낸 명지대 여가경영학과 김정운 교수는 일본 문화의 코드를 채워질 듯 채워지지 않아 안달하게 만드는 ‘결핍’으로 읽는다. ‘비합리적 권위에 저항하는 합리적 주체를 생략’한 일본 근대사의 결핍을, 제멋대로의 서양을 만들어냄으로써 채우려 한다는 것. 일본에 서구보다 더 서구적인 건축물이 있고, 이탈리아 본토 음식보다 훨씬 맛있는 이탈리아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까닭이다. 서양이 원하는 ‘동양적인 어떤 것’을 채워주는 데도 능해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일본 문화의 동력은 다름 아닌 ‘결핍의 체계적 재생산’인 것이다. 프로네시스/328쪽/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