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숙 앵커가 찍은 사진 작품 ‘모정’.
우산을 쓰고 카메라를 목에 걸고 강가를 걸었다. 어제보다 더 차오를 물 때문에 좀 더 위로 올라서서 걸으면서 부풀어 오른 강물 위를 떠다니는 오래된 나무 찬장, 작은 냉장고, 나뭇가지들이 엉킨 무더기 위에 얹힌 잡다한 옷가지들, 색 바랜 장난감들, 고단한 삶들이 떠내려와서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차오른 강물 때문에 강변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게 됐을 때 못 다니는 길도 많아졌다.
비 내리는 새벽에 차도 별로 없는 고속도로를 달려 다른 도시를 가보기도 했다.
강원도 산속에 무궁화가 줄지어 피어 있었다. 꽃술이 선명한 자주색 무궁화, 상아색 무궁화, 하얀색 무궁화…. 달리아도 그 무거운 머리를 숙여 내 어린 시절을 불러주고 있었다.
벌개미취라는 이름보다 훨씬 단정한 보라 꽃도 시계처럼 열려 있었다.
왜 해가 있어야 꽃은 피고 아름답다고 생각했을까?
쏟아지는 비 속에서 꽃은 확실한 표정으로 제각각의 모습으로 선연히 웃고 있었다. 우산을 목덜미에 끼고 허리를 굽혀 꽃 가까이 렌즈를 대고 빗물에 잠긴 꽃의 얼굴들을 만났다.
영월 청령포 가는 날도 간간이 비가 내렸다. 배를 타고 청령포로 건너갔다.
단종의 가슴
조선 6대 임금 단종. 12세에 왕위에 오른 어린 왕은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17세에 사약을 받고 죽을 때까지 강물이 휘돌아 육지로 나갈 수 없는 청령포에서 노산대군으로 강봉(降封)되어 갇혀 있었다.
강봉된 단종이 매일매일 올라서서 한양을 바라봤다 해서 이름 지어진 언덕 노산대,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는 곳에서 팔을 뻗어 절벽 아래 강물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절벽에 붙어 있던 두 개의 작은 풀더미가 소년의 가슴처럼 찍혀 있었다.
가슴속 돌은 단종의 단단한 분노, 마른 풀잎은 끝없는 절망, 연초록 이파리는 세 살 연상의 아내 정순왕후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과 희미한 희망이 아니었을까.
강물은 피비린내 나는 권력의 비열함을 알기나 하는지 지금도 모른 척 흐르고 있다.
이런 글로 전시된 사진에 생각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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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폭우를 동반한 긴 장마는 8월 말쯤 끝나가고 6개월 동안 찍은 사진은 컴퓨터 속에 수만 장 쌓였다.
개인전, 그냥 해야겠다.
프로급 아마추어가 되려면 100세는 되어야 할 것 같다. 광학 기술의 엄청난 발전으로 나 같은 초보도 찍고 전시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됐다고 생각하자.
인사동의 한 갤러리를 예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