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우는 “풍경 사진이니까 저작권을 보호해줄 수 없다는 건 너무 단정적이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냥 잠자고 있죠. 프랑스에서 신안 섬 사진집을 내기로 하고 평론가도 선정해놨는데 스톱됐어요. 다음에 다른 군수가 나오면 그때 다시 일하려고요. 섬이 미운 건 아니잖아요.”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그는 바다와 섬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2~3년 간 틈나는 대로 신안으로 내려가 섬을 찍으러 다녔다. 요트를 빌려 무인도를 돌았고, 바위섬에서 새우잠을 잤다. MBC에선 그의 신안 섬 순례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2013년 방영했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섬을 10개 꼽는다면 4~5개는 신안에 있다고 자신합니다. 지중해 섬은 바다 빛깔이 예쁘고 물고기도 알록달록하지만, 우리 갯벌에서 나는 낙지며 꼬막, 얼마나 맛있습니까. 그런 것까지 포함하면 우리 바다와 섬이 훨씬 더 풍요롭고 아름답죠.”
“아이디어 자체가 창작성”
▼ 대한항공의 솔섬 광고가 케나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봅니까.
“솔섬은 케나가 찍어서 유명해졌습니다. 정식 명칭은 ‘속섬’인데 케나가 자기 작품에 ‘Pine Trees’라고 제목을 붙인 뒤부터 솔섬으로 통용됐어요.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케나를) 따라 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닮게 찍기 힘들어요. 대한항공 측이 케나 사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정황도 나왔지 않습니까.”
판결문에 따르면 일우스페이스는 2010년 8월 케나에게 사진전을 제안했으나 10월 협상이 결렬됐다. 그 무렵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은 솔섬 사진을 입선작으로 뽑았다. 대한항공은 이 입선작을 사용해 광고를 제작, 이듬해인 2011년 5월 TV 등에 내보냈다. 법원은 이런 관련성은 인정하면서도 ‘케나 사진을 광고에 사용하는 것이 여의치 않자 이를 대체하기 위해 공모전에서 솔섬 사진을 선정해 광고에 사용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 판결문은 ‘풍경 사진은 창작적 표현 범위가 매우 제한된다’고도 했습니다.
“안드레아스 거스키라는 유명한 사진작가가 있어요. 대형 카메라 에이바이텐으로 경기장, 증권거래소, 명품 매장 등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장소만 찍는 작가예요. 거스키 이전에는 아무도 대형 카메라로 그런 장소를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찍을 생각을 못했어요. 현대를 상징하는 거대 풍경을 대형 카메라로 찍는 것. 이게 거스키의 콘셉트입니다. 그가 북한의 아리랑 공연을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노순철 작가도 아리랑 공연을 찍은 적 있고요. 이 둘이 같나요? 아니거든요.
한때 ‘Staged Photo’라고, 작가가 피사체를 만들어 찍는 게 유행했습니다. 그 시절에 제가 소나무만 찍고 다니니까 모두들 미쳤다고 했어요. 저는 겸재 정선이 그린 소나무를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동양화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1982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해 지금도 경주 남산에 한 달에 한 번은 내려가요. 저 이전에 경주 남산 소나무 사진을 찍은 사람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수묵화 같은 소나무 사진을 계속 찍는 사람은 제가 유일합니다. 유럽에선 저를 ‘사진으로 시를 쓰는 사람(Photo Poet)’이라고 합니다. 이게 배병우의 콘셉트예요.
제가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아무리 잘 찍으면 뭐합니까. 안셀 애덤스라고, 요세미티에 살면서 그곳 풍경을 흑백으로 찍은 유명한 사진작가가 이미 있는 걸요. 사진예술은 아이디어 자체가 콘셉트이고 개별 작가의 창작성입니다. 그걸 인정해줘야죠. 풍경 사진이니까 저작권을 보호해줄 수 없다? 아무리 법이라도 이건 너무 단정적이지 않나요?”
열변을 토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진집 하나를 가져왔다. 하늘, 풀, 나무, 흙…. 흑백사진 속에는 자연 풍경이 고요하게 담겨 있었다. 그가 프랑스 루아르 지역 샹보르 성(Chateau de Chambord)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2016년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일환으로 4년 전 프랑스에서 배병우에게 샹보르 성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오는 9월 샹보르 성에서 그의 전시회가 예정돼 있다.
▼ 스페인 알함브라 성을 찍은 적도 있죠.
“스페인이든 프랑스든 그들이 요구하는 건 딱 한 가지예요. 배병우만의 스타일로 찍어달라는 것. 제 스타일을 인정하면서, 자신들이 타인의 시각에서 재해석되길 원하는 거죠. 궁의 건축물을 찍는 건 내가 할 일이 아니에요. 이미 도서관에 가면 잔뜩 있으니까. 나는 그곳의 자연을 내 시각에서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