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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피와 붉음

  • 심민아

계피와 붉음

가을은 시작이니,
이제 끝내는 걸로 하십시다

새들이 빠져나가는 소리와
그 틈에 바람이 흥흥대는 장면 앞에

가을이 왔으니,
이제는 모르는 게 낫지 싶습니다
오 님이시여,
님뿐인가 합니다만,

얼룩덜룩한 손이 건네주는
모서리 깨진 버터 쿠키와
봉지째 휘휘 저은 노란 커피

뜨거움, 스팀, 물집, 곤란함
낳음 없이, 불림 없이, 터짐 없이



가을을 삼켰으니,
깊이 잠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무도 수확하지 않은 감나무와
뒤뜰, 신발 앞코를 쿵쿵 찧기 좋은,

무례한 낙엽 더미와 얼음으로 박힐 말들
님, 정말이지,
오직 님뿐일까, 합니다만,

격자무늬, 도깨비바늘, 햇빛 소독,
리허설 없이, 리허설 없이

가을은 흘러가니,
마지막인 게 좋겠습니다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안녕, 정말 꿈만,
꿈만 있을까, 합니다만

* 매창, 이화우 흩뿌릴 제

심민아
● 1986년 서울 출생
● 홍익대 미학과 석사 과정 수료
● 2014 세계의 문학 신인상 등단
● 시집 ‘아가씨와 빵’




신동아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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