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호

딸아이의 성조숙증이 걱정된다면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4-08-1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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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후루처럼 달고 열량이 높은 음식은 성조숙증을 유발할 수 있다. [Gettyimage]

    탕후루처럼 달고 열량이 높은 음식은 성조숙증을 유발할 수 있다. [Gettyimage]

    옆집 아주머니가 사색이 된 얼굴로 내게 달려왔다. 초등학교 3학년밖에 안 된 딸이 초경(첫 월경)이 나왔다며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성조숙증은 아닌지’ ‘이렇게 빨리 초경을 하면 키가 안 자라는 것은 아닌지’ 그녀에게서 걱정스러운 질문이 쏟아졌다.

    옆집 아이를 불러 조심스레 ‘생리혈이 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인지’ ‘가슴이 봉긋 솟아올랐는지’ 등을 물어봤다. 얘기를 들어보니 질강이 아닌 요도 쪽에서 피가 나오는 것 같아 소변검사부터 해보자고 했다.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저학년 여아에게서 생리혈과 같은 질 출혈이 나타나는 경우 초경일 수도 있지만 일과성 출혈일 가능성도 있다. 젖 봉오리가 생겼거나 유두가 커졌는지, 치모(恥毛)가 생겼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 다시 말해 성호르몬 분비가 활발해지면서 신체적으로 변화(치모, 가슴멍울 등)하는 2차 성징이 나타난 후 초경을 해야 순서가 맞다.

    어린아이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초경을 맞게 되면 혼란이 생길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불안해질 수 있다. 엄마 역시 너무 빠른 신체 발달(성조숙증)로 인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갖게 된다.

    탕후루의 비극

    한국 여아의 초경 평균연령은 12.8세다. 1990년 말만 해도 13.12세였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영국은 13.6세로 50년간(1940~1994) 4개월이 앞당겨졌다는 통계가 있다. 미국은 12.43세로, 백인 여아(12.6세)보다 흑인 여아(12.2세)가 조금 더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초경 연령이 100년 전에 비해 최대 4년 정도 앞당겨져 11.9세라고 한다.

    초경 연령이 앞당겨지는 가장 큰 원인은 영양 과잉과 불균형에 있다고 본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당과 지방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섭취하면 체지방 비율이 높아져서 과체중이나 소아 비만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되면 지방층에서 여성호르몬이 생기면서 유방이 발달하고 성선자극호르몬(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호르몬)이나 성선호르몬 분비량이 증가해 사춘기가 일찍 오게 된다. 그래서 유년기에서 급성장기 전의 여자아이는 탕후루나 초콜릿, 햄버거, 피자 같은 고칼로리 패스트푸드를 피하고 채소와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을 곁들인 균형 잡힌 식사를 해야 한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성인 포르노물, 성인 오락물에 노출된 경우다. 이 정도는 아니어도 스마트폰이나 TV에서 쏟아지는 드라마나 노래, 춤, 여흥 프로그램이 여아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K-팝을 예로 들어보자. 여성 아이돌이 세계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선사한다. 최근 일본 도쿄돔에서 공연한 아이돌 뉴진스가 40대 일본 남성들에게까지 큰 감동을 안겨줬다고 한다. 아이돌이 보여주는 노래, 율동, 옷차림, 화장, 퍼포먼스가 전 세계적으로 이처럼 인기몰이를 하고 있으니 요즘 아이들이 어찌 열망하듯 따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문화적 자극이 여아들의 신체 발달을 점점 더 빨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미 애틀랜타 에모리대가 최근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태아기나 유년기에 초미세먼지(PM2.5)와 미세먼지(PM10)에 다량 노출된 경우 초경 연령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추정했다. 유해한 환경 화학물질이 신체에 침투해 광범위한 호르몬 변화를 유발하고, 성조숙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해 환경도 원인

    어린 나이에 제2차 성징이 나타나는 성조숙증은 키가 충분히 자라지 못하게 만든다. [Gettyimage]

    어린 나이에 제2차 성징이 나타나는 성조숙증은 키가 충분히 자라지 못하게 만든다. [Gettyimage]

    초경이 빨라지는 병적 증상을 ‘성조숙증’이라 한다. 성조숙증은 2차 성징이 8세 이전에 나타나는 질환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난소에서 난포가 자라 어른 젖가슴처럼 되거나 어른처럼 치모가 수북하게 자라고, 배란이 일어나서 월경을 하는 아이들을 일컫는다.

    급성장기를 빨리 맞이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성조숙증의 가장 큰 걱정은 성인 여성의 생리 양에 육박할 정도의 월경을 규칙적으로(월 1회)하게 되면서 성장판이 닫혀 키가 더는 자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급성장기(가슴 멍울~초경 시작까지 2년간)에 1년에 7~8cm, 2~3년간 20cm 내외로 자란다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어린 나이에 급성장기가 와서 성장판이 일찍 닫히는 것은 여간 걱정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성조숙증은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성조숙증으로 진단된 여아에게 성선자극분비 호르몬 유사체(GnRH 아날로그)라는 약제를 쓴다. 쉽게 말해 ‘월경 일시 멈춤 치료’라고 보면 된다. 이를 통해 2차 성징의 진전 속도를 다소 누그러뜨릴 수 있다.

    또한 성조숙증이면서 나이에 비해 성장곡선이 평균 이하를 보인다면 성장판이 닫히기 전 성장호르몬을 같이 투여해 키가 좀 더 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따라서 월경이 시작됐는데 키가 너무 작다면 소아청소년과를 찾아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가 성조숙증 확진을 받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를 관찰하면서 치료받으면 된다. 무관심도 조바심도 아닌, 인내심으로 지혜롭게 대처하면 되는 것이다.

    조바심 아닌 인내심 필요

    한국에 귀화한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 사람이 키가 작은 이유를 “학동기(7~12세) 잦은 소식(小食)이 야기한 영양소 부족”으로 설명했다. 어린아이는 보통 오후 3시경에 하교하는데, 간식으로 카스텔라나 달달한 쿠키, 만쥬, 슈크림을 간식으로 먹으면 이로 인해 식욕이 떨어져 저녁을 먹지 않거나 소식(小食)을 하게 되고, 급성장기에 영양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키가 크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재일교포 학생의 신장이 일본 학생에 비해 큰 것은 “같은 시기 달달한 음식이 아닌 옥수수·고구마를 먹고, 식사량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학동기 아이에게 단백질이 풍부한 균형 잡힌 식사를 하게 하는 것은 엄마의 중요한 임무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성 몸의 생식 시스템은 시상하부-뇌하수체-난소-자궁으로 연결된 무선통신 체제(HPO·생식축)다. 즉 호르몬이라는 전파가 뇌에서 난소, 자궁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항상 마음에 두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진료 원칙이 여성의 생식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해 생식 기능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것도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부모는 아이가 소녀(소년)로, 여인(남성)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생활 습관, 섭생, 체중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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