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호

아직도 머나먼 개혁, 개방… 10년 전으로 돌아가려는가

  • 타릭 후세인 경제칼럼니스트 tariq@diamond-dilemma.com

    입력2007-01-15 16: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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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한국사회의 개혁은 미완성이다. 금융부문을 제외한 기업, 정부, 노동부문은 마치 고여 있는 물처럼 변화에 저항한다. 특히 정부와 노동계의 폐쇄적인 태도는 한국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다이내믹 코리아를 만들고 싶은가? 그러려면 아일랜드나 네덜란드 수준의 개방정책을 펼쳐야 한다.
    아직도 머나먼 개혁, 개방…	10년 전으로 돌아가려는가
    1995년 10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한 강의실. 나는 여러 개발도상국가에서 온 학자들로부터 ‘개발경제학’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때 자그마한 체구지만 눈빛이 날카로운 젊은 교수가 눈에 띄었다. 그는 학생들이 ‘하준’이라고 부르던 장하준 교수였고, 그의 열정적인 강의를 들으면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가 들려준 한국의 기적 같은 경제발전 드라마는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1961년 1인당 국민소득이 82달러에 불과했던 나라가 1995년 소득 1만달러 시대에 접어들기까지의 스토리, ‘Korean Way’를 고집한 박정희 대통령의 굳은 의지와 리더십, 거대 재벌과 철강업체 포스코의 탄생 등 장 교수가 쏟아낸 한국 경제 얘기들은 충격적이었다.

    국민의 돈은 주인 없는 돈?

    그 길로 나는 도서관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책을 뒤지기 시작했고, 그의 말이 모두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한국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1년 뒤. 한강의 기적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 소중한 운명을 나는 주저 없이 받아들였다. 하준이 전한 성공 스토리가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최신식 빌딩 앞에서, 기흥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나는 한국인의 자부심과 야망을 피부로 느끼면서 한국이 갈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음을 직감했다.



    다시 1년 뒤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기 위해 또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서 벌인 여러 프로젝트는 한국이 어떻게 하면 더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1997년 말부터 상황은 급변했다. 대선 주자들은 한결같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확언했지만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말았다.

    그 후 몇 달이 지났을까. 나는 한국 모델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당시 부도 위기에 몰린 한 대형 은행에서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중, 은행의 대출 관행에 대해 조사하게 됐다. 담당 부장은 “잘 모르겠으니 한번 알아보겠다”고만 대답했다. 모르겠다는 그의 말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뒤늦게 안 것은 그 은행의 가장 큰 고객이던 3대 재벌 중 한 기업에 나간 대출액수가 은행 전체 자본금보다 많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다시 대출 과정에 대해 물어봤지만 역시 돌아온 대답은 모호했다. 알고 보니 대출을 결정하는 데 있어 재무 건전성이나 기업의 경쟁력은 문제가 아니었다. 해당 기업의 매출규모와 정부와의 유착 관계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정부가 출자한 은행이었음에도 아무런 규제나 기준, 감시도 없이 국민의 돈을 아무렇게나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재벌 그룹의 평균 부채비율은 500%에 달했다. 수출에 크게 의존하면서도 환율 변동에 대한 대책은 없어 환율이 급격하게 움직이면 번 돈을 속절없이 까먹어야 했다.

    한국에서 체험한 한국의 개발 모델에는 몇 가지 중대한 결점이 있었다. 정부가 시장에 너무 깊숙이 개입했으며 재벌은 세력이 너무 커져 이미 ‘대마불사’가 됐다는 점이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힘을 갖게 된 노동자는 부의 재분배를 요구하며 임금을 꾸준히 높였다. 그 결과 임금상승률이 노동 생산성을 앞질렀고 생산성은 계속 악화됐다. 한국 모델은 현재를 가능케 한 과거의 모델이지 결코 미래를 제시하는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었다.

    실패한 정부 개혁

    일부에선 1990년대 경제 자유화가 외환위기의 원인이며 IMF가 내린 처방이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1998년 당시와 다른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한국인이 외환위기를 ‘IMF 위기’로 부르는 것은 이런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왜곡한 처사다. 1990년대에 경제 자유화가 다소 성급하게 이뤄졌고, 이 때문에 1997년 말 국제수지가 악화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또 IMF의 처방이 특히 금리와 관련해서는 일부 과도한 면이 있었으며, 이 때문에 건전한 기업의 재무 상황이 나빠진 것도 사실이다.

    부분적으로 외환위기의 상황을 더 심화한 측면도 있지만 절대로 본질적인 원인은 아니다. 한국은 이미 과거의 경제발전 모델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변화를 추진해야 할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이를 위한 산고(産苦)는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외환위기 이후 추진한 경제 개혁은 성공적이었는가. 부분적으로는 그렇다. 특히 김대중 정부의 몇몇 주목할 만한 성과는 인정해야 마땅하다. 그중에서도 은행 개혁을 추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은행은 대부분 민영화가 완료됐고 더 이상 정부 기관이나 재벌의 사금고 노릇을 하지 않는다. 또 정교하고 체계적인 대출 시스템도 정립했다. 10년 전과 비교해 금융 부문이 훨씬 공고해져 또다시 환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그러나 기업 개혁은 절반의 성공이다. 기업 개혁은 대부분의 중소기업에 아주 가혹했다. 워크아웃을 진행하면서 많은 기업이 개혁의 고통을 감내했지만 소위 5대 재벌은 예외적인 대우를 받았다. 정부는 개혁의 칼자루를 그들에게 넘겨 재벌 스스로 하길 기대했다. 삼성과 LG는 외환위기 이후 적극적인 변화를 추진했지만, 현대와 대우는 이를 거부해 결국 그 대가를 치렀다.

    한국의 기업 개혁은 가장 중요한 곳, 즉 변화를 선도해야 할 ‘위’부터 꽉 막혀 있다. 여전히 기업지배구조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라. 2006년 9월 발표된 기업지배구조 국제비교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점수를 받았다. 심지어 세계경제포럼은 외부 감사의 역할에 대해 한국을 125개국 중 86위로 평가했다.

    노동 개혁과 정부 개혁은 거의 실패에 가깝다. 노동시장이 예전에 비해 유연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미미한 변화에 불과하다. 기업 구조조정은 여전히 난제이며, 과도한 비용을 수반할 뿐 아니라 노사 관계도 개선의 기미가 없다.

    우려할 만한 점은 한국의 이중적 노동시장 구조다. 대기업 노조원은 한국 노동자 평균 임금보다 많이 받고 있으며, 지나칠 정도로 자리를 보호받고 있다. 그러나 비노조원과 비정규직 노동자는 예전보다 훨씬 못한 대우를 받는다. 노동시장은 극도로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공정하지도 않다.

    “어느 때보다 힘들다”

    정부 개혁도 좋게 봐주면 제자리걸음이지 사실상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한 가지 증거는 김대중 정부가 40% 가까이 규제를 철폐한 이후 정부 규제는 다시 급속하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규제에 묶여 투자할 수 없는 기업들은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은 채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인은 외환위기 이후 개혁의 성과에 대해 이중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 한국이 이룩한 급속한 성장과 아시아 어느 국가보다 외환위기를 빨리 극복한 사실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대부분의 국민은 IMF 경제위기 이후 생활수준이 더 떨어졌다고 대답한다. 이런 현실을 보면 국민은 아직도 고통과 불안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나는 택시 기사 몇 명에게 외환위기가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물었다. 그중 한 사람은 외환위기 때 해고돼 택시 기사가 됐다고 했다. 36년간 택시를 몰고 있는 다른 한 사람은 요즘 먹고살기가 어느 때보다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택시를 타는 손님이 많이 줄었다”며 “한 달에 20일을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꼬박 일하는 데도 160만원밖에 벌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나마 아이들을 다 키웠고 예전에 모아둔 재산이 있어서 덜 고생한다고 말했다.

    사실이 그렇다. 대부분의 경제지표가 10년 전보다 훨씬 악화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경제 성장은 저하되고 있으며, 새해에는 더 악화될 것 같다. 소득 불평등은 외환위기 이후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국가별 소득 불평등을 비교하는 데 널리 활용하는 지니 계수를 보자. 1997년 0.28에서 2005년 0.31로 상승했다. 소득 불평등이 더욱 심화됐음을 뜻한다.

    아직도 머나먼 개혁, 개방…	10년 전으로 돌아가려는가

    외환위기 이후 서민의 삶은 더 어려워졌다. 폐업 점포가 속출한 거리.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3/4분기 기준 상위 20% 가구의 소득이 하위 20% 가구의 소득 대비 7.79배로 나타났다. 1년 전에 7.28배였으니 좀더 상승한 셈이다. 지표가 증명하듯 대다수 국민이 외환위기 이후 생활수준이 더욱 악화됐다고 여기는 것은 놀랄 만한 사실이 아니다.

    물론 한국의 사회복지망은 더 확대돼야 한다.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을 크게 밑돈다. 투자를 계속 늘려야 할 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경제성장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끊임없는 변화,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다이아몬드 딜레마’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한국은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잠재력이 있지만 더욱 정교하게 세공해야 한다. 좀더 적극적인 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한국인이 품고 있는 네 가지 ‘믿음’에 대해 건설적인 비판을 제기하고 싶다.

    주변부만 다이내믹?

    우선 한국인은 한국이 성장하는 데 중국이 가장 중요한 국가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나도 동의한다. 중국은 현재 한국의 가장 큰 수출시장이고 한국 기업의 가장 거대한 직접 투자처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은 한국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중국은 앞으로 여러 부분에서 한국을 앞서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사례를 살펴보자.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중국 산업 및 기술 경쟁력 분석과 대응 방안’에 따르면 한국의 대(對)중국 기술 격차는 향후 5년 내 크게 좁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급속하게 기술을 발전시킬 것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중국이 연구개발(R·D)과 같은 고부가가치 활동의 글로벌 거점으로 부각되고 있어서다.

    글로벌 제약 회사인 노바티스가 최근 상하이에 1억달러를 투자해 R·D 센터를 설립하고 글로벌 수준의 최첨단 연구 개발 활동을 수행하겠다고 밝힌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바티스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케임브리지, 스위스의 바젤과 상하이를 3대 글로벌 R·D 센터로 육성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러한 글로벌 기업의 직접 투자는 중국이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좁히는 것뿐 아니라 일부 영역에서는 이미 한국을 뛰어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한국이 계속 중국과 기술 격차를 벌리려면 신속하고도 중대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얼마 전 외국은행의 한 임원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정부는 시간만 나면 시장 개방, 허브 육성 등에 대해 떠들어댄다. 다 옳은 말이다. 정부 관료들이 어떻게 하면 한국을 허브로 육성할 수 있을지 우리 은행의 임원들에게 끊임없이 묻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실제로 이뤄진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는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 라이프스타일의 급속한 변화, 한류 열풍 등으로 대변되는 ‘다이내믹 코리아’의 이미지를 핵심적인 경제 분야에선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사회의 주변부는 매우 다이내믹하고 유연한 반면 핵심으로 갈수록 고여 있는 물 같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만 혈안이 돼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정부 관료가 더욱 개방된 경제 여건을 조성하려고 해도 온갖 복잡한 규제 때문에 물러설 수밖에 없다. 정부의 관료주의는 시장 개방을 통해 얻을 것이 별로 없는 국내 대기업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더욱 강화되고 있다. 대한민국 노조도 사회적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이익을 지키려는 또 하나의 이해집단이다.

    ‘글로벌화’에 대한 오해

    이러한 이해집단들이 국가 발전에 어떠한 악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싶다면 맨커 올슨스(Mancur Olson)의 ‘국가의 흥망성쇠(The Rise and Decline of Nations)’를 읽어보기 바란다. 한 독자가 이 책을 읽으려고 온 서점을 다 뒤졌으나 결국 오래된 한국어 번역본밖에 구할 수 없었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사실이다. 이 책은 그야말로 모든 정부 관료와 재벌, 노조의 집행부가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은 한국이 왜 핵심적인 영역에서는 ‘다이내믹 코리아’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하며, 그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지 깨닫게 해줄 것이다.

    한국이 당면한 이해집단의 병폐를 타파하려면 시장 개방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또 하나의 중대한 오해, 즉 ‘글로벌화’에 대한 잘못된 정의를 바로잡아야 한다. 내가 한국에 와서 처음 배운 단어는 ‘세계화’였다. 너도나도 ‘세계화’를 외치는 사람들, 현대식 빌딩과 첨단 기술, 사람들의 세련되고 모던한 옷차림에서 한국은 굉장히 ‘세계화’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한국의 ‘글로벌화’는 해외여행이나 수출시장 확대, 혹은 특정 산업이나 영역에서의 ‘세계 최고, 최대, 최초’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진정한 글로벌화는 시장 개방이 ‘윈-윈’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수용하고,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글로벌 기준을 따르며,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외국인 오너 혹은 상사, 동료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열린 자세가 돼야 한다.

    일부에선 한국이 지난 10년간 충분히 시장을 개방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여전히 폐쇄적인 국가 중 하나다. 예를 들면, 한국의 GDP 대비 해외직접투자(FDI·Foreign Direct Investment) 비중은 일본을 제외하고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2006년 9월까지 한국은 고작 75억달러의 해외직접투자를 유치했으며 그나마 2005년 동기 대비 2% 감소했다.

    반면 한국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처음으로 해외투자 유입액을 크게 넘어섰다. 중국에는 한국이 유치한 투자액의 10배가 유입되고 있으며, 세계 챔피언인 영국은 한국의 22배에 달한다. 한국 경제를 영국이나 아일랜드, 혹은 네덜란드 수준으로 개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다이내믹 코리아를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아직 한국은 갈 길이 너무도 멀다.

    한국의 재벌이 초기 경제 발전의 기반을 닦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다. 제대로 된 자본시장과 노동시장, 수요처가 없는 상황에서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은 성장을 위한 첨병으로 거대한 사기업 조직을 만들었다. 그의 뜻대로 재벌은 초기 산업화를 진두지휘했으나 너무 비대해지고, 복잡해졌으며, 막강해졌다. 한국 국민은 여전히 재벌을 경외시하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원과 중앙일보가 공동 실시한 ‘파워기관 신뢰 영향력 조사’에 따르면 현대, 삼성, LG, SK와 같은 국내 재벌은 영향력과 신뢰도 면에서 여전히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시 돌아가려고?

    따라서 그들은 한국의 경제 개혁을 선도하기 위한 중추적 역할과 책임을 담당해야 한다. 글로벌 수준의 제조업체에서 서비스 업체로, 관료적인 대기업 조직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한 유연한 조직으로, 더욱 공정하고 투명한 지배 구조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자발적으로 경주해야 한다. 재벌이 한국의 경제 개혁을 다시 한번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재벌은 이처럼 중요한 역할과 책임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그렇다면 삼성은 어떤가. 삼성은 이미 글로벌 수준의 그룹이 되지 않았는가. 이미 그들은 세계 최고의 기업인 GE와 여러 면에서 경쟁할 정도로 성장하지 않았는가.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예스 or 노’이다. 삼성은 의심할 여지없이 한국에서 가장 선진화하고 성공한 기업이다. 삼성은 과거 한국의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무엇보다도 삼성의 가장 큰 성과는 삼성전자라는 초일류 기업을 만들어냈다는 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조차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많다. 핵심적인 이슈는 복잡한 지분구조와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다. 이는 삼성이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GE와 다른 글로벌 선진 기업과 비교하면 가장 뒤처진 부분이기도 하다.

    보장된 미래는 없다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GE가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훨씬 크고 중요하다. 바로 이 때문에 삼성은 ‘한국주식회사’의 역할 모델이다. 동시에 삼성이 적극적으로 개선하지 않는다면 다른 재벌이 핑계로 삼을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삼성은 한국이 진정으로 개방을 가속화하고 핵심 영역에서 ‘위’로부터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매우 특별하고도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다.

    한국과 한국이 이룩해낸 경제 발전에 대한 나의 경외심은 장하준 교수가 처음 나의 호기심에 불을 지폈던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어떤 면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개혁과 변화를 포용하고자 했던 한국 국민의 의지를 목격하면서 그러한 경외심은 더욱 커졌다.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또 한번의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한국은 이젠 더 이상 정체되거나 혹은 구시대적 모델로 돌아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한국이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더욱 개방적이고 다이내믹한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모든 영역, 모든 집단, 모든 직급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아직도 머나먼 개혁, 개방…	10년 전으로 돌아가려는가
    타릭 후세인

    독일 출생

    영국 런던정경대 경영학과 졸업,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석사

    부즈앨런해밀턴 한국사무소 이사

    現 Maxmakers 한국대표

    저서 : ‘다이아몬드 딜레마’

    수상 : 2006 Global Korea Award


    내가 느낀 한국 국민의 추진력과 야망, 에너지와 결단력은 무서울 정도로 우수하다. 이러한 장점이 올바른 방향으로 분출된다면 그것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 엄청난 에너지는 오히려 소모적인 논쟁과 상호 비난, 혹은 이기적 투쟁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는 심각한 국력손실로 이어질 것이다.

    지난 십수년간 한국이 이룩한 경제 발전은 분명 놀라운 것이지만 그것이 미래를 자동으로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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