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호

면세사업권 출혈경쟁, 인천공항공사만 웃었다

호텔신라·신세계 10년간 1조 원 적자 예상에도…

  • 조은아 더벨 기자 goodgood@thebell.com

    입력2023-04-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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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텔신라 vs 신세계 vs 현대백화점 vs 롯데

    • 매출 40~45% 임차료로 내놓아야

    • 상징성·홍보 효과 커… 업계 1위 롯데는 탈락

    • 최종 승자는 인천공항공사

    [Gettyimage, 각 회사]

    [Gettyimage, 각 회사]

    찬밥인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2020년 10월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사업권이 걸린 입찰이 무려 세 차례나 유찰됐다. 업계 안팎에서 ‘황금알이 오리알이 됐다’는 말이 나왔다. 그 뒤 2년 반이 흘렀다. 코로나19 여파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 면세 시장이 이전만큼 회복됐다고 보기는 어려울 때, 인천공항 면세점 4기 사업자 선정을 위한 경쟁 입찰이 시작됐다.

    매번 반복되던 출혈 경쟁 논란이 이번에도 불거졌다. 호텔신라(신라면세점), 신세계DF(신세계면세점), 현대백화점면세점. 국내 유통 공룡들이 여전히 인천공항 면세점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뭘까. 이들과 달리 고배를 마신 호텔롯데(롯데면세점)는 나중에 웃을 수 있을까.

    임대료만 1년 4000억 원

    3월 말 향후 10년 인천공항 면세점을 운영할 사업자가 추려졌다. 호텔신라, 신세계DF, 현대백화점면세점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사업자들이 써낸 입찰가격(40점)과 사업제안서 평가 결과(60점) 등을 합산해 복수 사업자를 결정했다. 관세청은 이들에게 4월 26~27일 이틀동안 프레젠테이션을 실시하도록 해 최종 사업자를 가려낸다.

    특히 이번 입찰전은 팬데믹 기간 계속 유찰되다가 3년 만에 재개된 ‘빅 이벤트’다. 지난해 세법 개정으로 기본 사업 기간도 10년으로 늘었다. 임대료 산정 방식도 ‘고정 최소보장액’(고정 임대료)에서 ‘여객당 임대료’로 완화됐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구체적으로 대기업의 참여가 가능한 곳은 사업권 DF1~5다. 이 가운데 4월 27일 향수·화장품·주류·담배를 판매하는 DF1~2은 호텔신라(DF1), 신세계디에프(DF2)가 최종사업자로 발표됐다. 패션·액세서리·부티크를 취급하는 DF3~4에는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부티크만 다루는 DF5에는 신라면세점, 신세계면세점, 현대백화점면세점이 각각 최종사업자 후보 상태다.



    1그룹(DF1~2)과 2그룹(DF3~5) 간 중복 낙찰 금지 규정에 따라 2그룹에선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1그룹 경우처럼 사업권을 나눠 가지고, 사실상 현대백화점면세점이 DF5를 가져갈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큰 관건으로 꼽히던 임대료 문제는 다음과 같이 결정됐다. 2019년 이용객 약 3500만 명을 기준으로,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연간 약 4000억 원의 임차료를 10년 동안 내야 한다. 4000억 원은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연매출의 40~45% 수준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10년간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7000억~1조 원의 적자를 볼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번 입찰 과정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중국면세그룹(CDFG)은 단 한 구역에도 입점하지 못한 채 짐을 쌌다. 글로벌 면세점 업계 1위 기업인 CDFG가 입찰에 참여하면서 국내 면세사업자들의 위기감이 컸다. CDFG가 사업권을 취득하게 되면 중국 관광객을 모두 빼앗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CDFG도 낙찰을 위해 공을 들였다. 국내 기업의 면세점 운영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관련 인사들을 영입하는가 하면 최종 입찰 PT에서는 ‘매출을 늘리기 위해 중국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적극 내세웠다.

    뚜껑을 열어보니 CDFG가 제시한 가격은 신라면세점, 신세계면세점보다 20% 가량 낮았다. 정확한 이유는 전해지지 않는다.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 가치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혹은 기존에 알려진 만큼의 의지가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 의도가 어찌됐든 그렇지 않아도 달아오른 경쟁에 다크호스로 등장해 기름을 뿌린 건 확실하다.

    3월 20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인천공항 면세사업권별 복수 사업자로 신세계DF, 호텔신라, 현대백화점면세점을 선정했다. 사진은 이날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 위치한 면세점 모습. [뉴스1]

    3월 20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인천공항 면세사업권별 복수 사업자로 신세계DF, 호텔신라, 현대백화점면세점을 선정했다. 사진은 이날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 위치한 면세점 모습. [뉴스1]

    롯데면세점, 탈락이 신의 한수?

    업계의 관심은 국내 1위 면세사업자 롯데면세점에 쏠리고 있다. 롯데면세점의 탈락은 이번 입찰에서 가장 큰 이변으로 여겨진다. 패인은 가격이다. 롯데면세점은 주요 기업 가운데 가장 낮은 입찰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부터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기간은 기존 5년에서 10년 계약으로 바뀌었다. 임대료도 이용객 연동 방식으로 산정된다. 가장 매출이 높은 향수·화장품·주류·담배 사업권 기준으로 신라면세점이 1인당 최고 9163원, 신세계면세점이 최고 9020원을 제시한 반면 롯데면세점은 7224원을 써낸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1위 사업자 롯데면세점이 써낸 가격이라고 보기엔 다소 짜다. 업계 안팎은 물론 롯데면세점조차도 ‘다른 곳에서 이렇게 높게 써낼 줄은 몰랐다’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롯데면세점이 다소 보수적으로 가격을 제시한 데엔 과거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롯데면세점은 3기 사업자 입찰 당시 과감한 베팅으로 노른자 구역을 따냈다. 2015년 3월부터 2020년 8월까지 롯데면세점이 내야 했던 4개 구역 임차료만 4조1412억 원에 이른다.

    당시엔 이번과 달리 입찰 기업이 매해 낼 임차료를 직접 정했는데, 롯데면세점은 3년차부터 임차료를 급격하게 올려 써낸 것으로 전해진다. 초기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당시 면세사업이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면서 앞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던 점도 한몫했다. 그러나 이른바 사드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한 데다 내국인 역시 더 낮은 가격에 구매가 가능한 인터넷면세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롯데면세점이 3기 사업자 선정 때 과감한 베팅에 나섰던 배경에는 국내 1위, 세계 2위 사업자로서의 자신감도 한몫했다. 재고관리 역량에서부터 브랜드 유치, 마케팅 노하우까지 운영능력에 두각을 나타냈기에 매해 늘어나는 임차료를 지출하고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 것. 지금이야 자충수를 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당시엔 놓칠 수 없던 매물을 손에 쥐기 위해 합리적 판단을 내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입찰에 대해선 업계 안팎에서 출혈 경쟁에 끼어들지 않았던 롯데면세점의 앞날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신의 한수가 될 수도, 악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임대료 비싸도 들어가는 이유 있다”

    롯데면세점은 먼저 시내면세점과 해외면세점에 집중할 모양새다. 롯데면세점 측은 인천공항이 허브공항으로서 갖고 있는 상징성이 큰데다 매출 규모를 봤을 때 놓치기 아쉬운 곳이긴 하지만 롯데면세점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고 설명한다. 시내면세점과 온라인면세점을 강화해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빠질 매출을 만회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업계 일각에서는 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관측한다. 이번에 선정된 사업자는 10년 동안 사업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 롯데면세점은 10년 동안 해당 구역에서는 면세점을 운영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다른 면세사업자들이 비싼 임대료를 감수하고도 인천공항에 입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며 “매출 규모가 크고 상징성은 물론 홍보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아무리 국내 1위 사업자여도 10년 공백에는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천공항 면세점에 입점하면 주요 명품 브랜드를 유치할 때 유리하기도 하다. 명품 브랜드가 입점 여부를 판단할 때 주요 글로벌 공항에 입점했는지 아닌지를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해외 시장으로 발을 넓힐 때도 인천공항 입점 자체가 평가에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전해진다. 고로 롯데면세점이 아예 인천공항 면세점을 포기할 수는 없다. 롯데면세점은 2025년 계약 만료로 신규 사업자를 모집하는 DF6 구역 사업권에는 재도전해 인천공항 면세점 입성을 재시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면세점 업계 순위는 롯데면세점-신라면세점-신세계면세점-현대백화점면세점 순이다. 2021년 기준 매출이 롯데면세점이 3조7200억 원, 신라면세점이 3조3400억 원으로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 두 곳이 양강 체제를 형성하고 나머지 두 곳은 조금 뒤처졌다. 신세계면세점은 2조7000억 원, 현대백화점면세점은 1조6000억 원 수준이다.

    롯데면세점에 따르면 롯데면세점 전체 매출에서 인천공항 면세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이다. 이를 빼면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의 매출이 거의 비슷해지지만 신라면세점이 역전할 공산이 크다. 해외로 떠나는 관광객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인천공항 면세점 전체 매출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은 “인천공항 이용객이 2019년 수준으로 정상화하면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신라면세점은 연간 1조 원, 신세계면세점은 연간 4000억 원 가까운 매출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천공항공사의 漁夫之利

    국내 면세사업자 간 출혈 경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롯데면세점, 신라면세점, 신세계면세점 등 3기 입찰에서 승리했던 3곳 면세사업자들이 ‘승자의 저주’에 빠졌던 게 겨우 몇 년 전이다. 당시 사드 보복으로 관광객이 급감했던 영향이 가장 크지만 사실 사드 보복이 불거지기 전부터 인천공항 면세점은 대부분의 사업자가 적자를 내던 곳이다.

    면세사업자들이 수익성은 고려하지 않고 입찰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1기 사업자의 경우 흑자를 냈지만 경쟁 심화로 입찰가격이 치솟으면서 이후 사업자들에게 인천공항 면세점은 사실상 ‘돈은 포기하고 뛰어드는 곳’이 됐다.

    문제는 면세사업의 불확실성이 워낙 높다는 점이다. 이미 최근 몇 년 사이에만 사드 보복,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졌다. 특히 최근까지는 면세점 특허기간이 5년밖에 되지 않아 경영 불확실성이 높다는 불만이 많았다. 투자비용을 회수하기엔 기간이 짧고 사업 초기 대규모 투자가 어려워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업계의 지적을 받아들여 특허기간을 10년으로 늘렸다. 특허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특허 갱신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2회까지 가능토록 조정했다. 그러나 10년이 됐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이번엔 오히려 안 그래도 업황이 들쑥날쑥한 상황에서 10년이라는 기간이 독이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결국 승자는 입찰 흥행에 성공한 인천공항공사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으로선 입점에 성공한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웃을지, 과거 경험을 바탕 삼아 보수적 전략을 취한 롯데면세점이 웃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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