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호

손바닥 경제

‘메기’ 역할 톡톡 ‘결정타’는 콘텐츠 현지화

넷플릭스, 한국에서도 성공할까?

  • 정근호 | 애틀러스리서치앤컨설팅 팀장 jungkh@arg.co.kr

    입력2016-05-24 14: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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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출 8조 ‘공룡’ 넷플릭스, 국내 이용자는 수만 명뿐
    • 옥수수, 푹(Pooq), V앱, 왓챠플레이…국내 OTT 다양화
    • 콘텐츠 보강 속도 내는 넷플릭스…소비자는 ‘행복한 고민’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가족, 친구, 이웃이 삼삼오오 모여 함께 TV를 시청하는 광경이 종종 나왔다. 이것이 TV 시청의 전형적인 형태다. 아니, 형태였다. TV 값이 저렴해지면서 부모와 자녀가 각자의 방에 놓인 TV를 시청하는 경우가 늘었고, 최근에는 TV 대신 PC나 휴대전화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시간’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본 방송을 못 보면 재방송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이제는 ‘다시보기’ 서비스로 언제라도 원하는 때에 원하는 콘텐츠를 볼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를 가져온 것이 ‘OTT (over-the-top)’ 서비스다. 여기서 ‘Top’은 TV에 연결하는 셋톱박스를 가리킨다. 당초 OTT 서비스는 셋톱박스로 인터넷에 접속해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셋톱박스 없이 스마트폰이나 PC 등 여러 단말기를 통해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서비스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130개 국가로 사업 확대

    현재 OTT 서비스는 전 세계적으로 거침없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디지털TV리서치에 따르면, 2010년 OTT 시장 규모는 42억 달러에 그쳤으나 2015년에는 260억 달러 규모로 증가했다. 2020년에는 511억 달러 규모로 2배가량 성장할 전망이다.

    OTT 서비스의 성장을 이끈 주인공은 미국의 넷플릭스(Netflix)다. 미국, 캐나다 등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어온 넷플릭스는 최근 몇 년간 서비스 제공 국가를 조금씩 늘려왔고, 지난해엔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으로 사업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공언대로 지난 1월 한국 등 130개 국가에 새롭게 진출했다. 이에 ‘공룡’ 넷플릭스가 국내 OTT 시장에서도 돌풍을 일으킬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넷플릭스는 1997년에 설립됐다. 처음엔 우편으로 비디오 및 DVD를 배달해주는 렌털 서비스였다. 기존 대여점은 약정 시간이 지나면 연체료를 부과했는데, 넷플릭스는 우편으로 배달받은 DVD를 원할 때까지 시청하고 다시 우편으로 반납하면(우편배송은 무료) 새로운 DVD를 대여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월(月) 정액제를 도입, DVD를 무제한으로 빌려볼 수 있게 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2007년엔 DVD 렌털 가입 고객에 한해 인터넷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DVD 렌털 서비스와 OTT 서비스를 분리해 오늘날과 같은 사업 형태를 갖췄다.

    넷플릭스의 성장세는 거침없다. 2014년 55억 달러의 매출을 낸 데 이어 지난해에는 이보다 23.2% 증가한 68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가입자가 7500만 명으로 전년 대비 30%나 증가했다.

    넷플릭스의 성공 요인으로는 차별화한 영상 콘텐츠, 정교한 추천 시스템, 그리고 저렴한 요금제가 꼽힌다.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 업체들은 영화, TV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여러 미디어 업체로부터 사와 고객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OTT 서비스 업체가 늘면서 서로 엇비슷한 콘텐츠를 제공하게 됐다. 또한 미디어 업체들이 직접 OTT 서비스에 나서면서 넷플릭스 등에 제공하는 콘텐츠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에 넷플릭스는 영화 및 TV 드라마 제작에 직접 투자해 독점적으로 유통하는 전략을  폈다. 즉, 다른 데선 볼 수 없는 ‘넷플릭스만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다. 2013년 2월 공개한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가 크게 히트하면서 이 전략이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했다. 이 작품은 에미상과 골든글러브 등 방송 관련 시상식의 주요 부문에 후보작으로 오르거나 수상하면서 작품성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이후 넷플릭스는 수편의 인기 드라마를 연이어 제작했다. 극장 상영까지 시도한 ‘와호장룡2’에 이어 다큐멘터리도 만들어 장르의 다양화도 꾀했다. 넷플릭스는 올해에도 콘텐츠 제작에 5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얼마 전엔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에 50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인터넷만 되면 무제한 시청

    드라마 공개 방식에서도 새로운 전략을 취했다. 기존의 방송사들은 대략 일주일에 1편씩 방영하며 매회 끝부분에 다음 회 예고편을 삽입한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각 드라마의 모든 회차를 한꺼번에 공개, 시청자들이 한자리에서 연이어 볼 수 있게끔 했다. 이로써 고객의 호평과 높은 서비스 이용률을 동시에 얻었다.

    넷플릭스가 차별화되는 두 번째 요인은 정교한 추천 시스템이다. 넷플릭스는 미디어업체와 IT(정보기술)업체의 특성을 동시에 갖는다. 고객이 선호하는 장르, 배우 등 단편적 사실 외에도 즐겨 시청하는 시간, 어떤 장면에서 시청을 멈추거나 빨리 감는지 여부 등 세세한 습관을 분석한다. 이에 따라 고객이 관심 가질 만한 콘텐츠를 추천해준다. 이 시스템 덕분에 넷플릭스 가입자는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한 후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잇달아 시청하는 경우가 많다. 넷플릭스는 보다 정교한 추천 기법을 개발하기 위해 수백여 명의 개발자를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의 세 번째 성공 요인은 저렴한 요금제다. 넷플릭스는 SD~UHD급의 화질과 동시 시청 가능 인원수(최대 4명)에 따라 월 7.99달러, 9.99달러, 11.99달러의 3가지 요금제를 운영한다. 이는 월 수십 달러에 달하는 미국 케이블TV나 IPTV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수준이다. 월정액 가입자는 횟수에 관계없이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스마트TV, PC, 태블릿, 스마트폰 등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대부분의 기기에서 시청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인기를 얻으면서 미국 방송시장은 크게 변화했다. 특히 비싼 유료 TV를 해지하고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만을 이용하는 ‘코드커팅(cord-cutting)’, 아예 TV를 구입하지 않는 ‘제로TV(zero-TV) 가구’와 같은 트렌드가 등장해 기존 방송사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전통적인 방송사와 미디어 업체들도 자체 OTT 서비스를 출시하는 추세다. 아이폰 혁명을 일으킨 애플도 셋톱박스인 ‘애플TV’를 통해 실시간 방송까지 제공하는 OTT 서비스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네이버, 카카오도 ‘뛴다’

    국내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OTT 서비스가 제공돼왔다. 그러나 미국 등과 다른 점은 넷플릭스 같은 전문업체가 아니라 유료 TV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사와 케이블TV, 그리고 기존 방송사들이 주류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또한 스마트폰의 빠른 확산에 따라 모바일 서비스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SK 계열사들이 제공하는 Btv모바일 및 호핀, KT의 올레TV모바일, LG유플러스의 U+HDTV, 지상파콘텐츠연합플랫폼의 푹(Pooq), CJ헬로비전의 티빙(Tving), 그리고 판도라TV와 현대HCN의 합작 서비스 에브리온TV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푹을 제외한 서비스들은 기존 IPTV와 케이블TV의 보완재 기능을 한다. 기존 상품에 가입하면 무료로 제공하는 것. 또한 유료 TV 이용료가 최저 월 1만 원 수준으로 비교적 저렴하다는 점도 OTT 서비스 확산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렇지만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OTT 서비스의 특성, 그리고 모바일 광고 시장의 확대로 무료로 볼 수 있는 콘텐츠의 양이 많아지면서 시장 규모가 빠르게 확대될 전망이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OTT 시장 규모는 2012년 1085억 원 수준에서 지난해 2587억 원으로 성장했다. 2020년엔 7801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넷플릭스의 국내 진입이 가시화한 최근 1,2년간 국내 OTT 시장에서는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6월 기존의 U+HDTV와 ‘유플릭스 무비’를 통합해 실시간 방송과 다시보기, 미국 드라마 등을 제공하는 ‘LTE비디오포털’을 새롭게 출시했다. SK브로드밴드도 지난해 7월 SK플래닛으로부터 호핀 사업을 넘겨받은 후 올해 1월 ‘옥수수’라는 이름으로 OTT 사업을 재정비해 98개 실시간 채널과 800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 33개 스포츠 영상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특히 SK브로드밴드는 CJ헬로비전 인수 이후 1년간 3200억 원의 펀드를 조성해 콘텐츠 제작에 투자한다고 밝혀 주목받고 있다.

    CJ헬로비전이 제공하던 티빙은 지난해 말 SK브로드밴드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계약 이전에 CJ E&M으로 사업이 이관됐다. CJ헬로비전은 ‘미생’, ‘응답하라’ 시리즈, ‘꽃보다 할배’ 시리즈 등 tvN은 물론 CGV, 투니버스, OCN 등 소속 케이블채널의 콘텐츠 제공에 주력한다.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포털 역시 OTT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이들은 한 편이 10여 분 안팎의 길이인 웹드라마 제작을 지원하고 독점 유통한다. 이와 함께 국내 방송사에서 시청하기 어려운 해외 스포츠와 비인기 종목 경기를 방송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네이버는 인기 연예인이 실시간으로 직접 방송을 진행하는 ‘V앱’을 제공하는데, 동남아 지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또 하나의 한류(韓流) 열풍을 낳았다. 최근 V앱을 통해 제공한 ‘빅뱅’의 콘서트 영상은 362만 회의 시청 기록을 세웠는데, 그중 해외 이용자 비중이 65%를 넘어섰다. 영화 추천 서비스 ‘왓챠’를 제공하던 스타트업 프로그램스도 지난 2월부터 넷플릭스와 유사한 ‘왓챠플레이’를 개시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내게 맞는 OTT는?

    국내 OTT 업체들이 이처럼 사업 강화에 나서면서 넷플릭스는 예상과 달리 국내에서 이렇다 할 돌풍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지난 1월 안드로이드폰 기준 넷플릭스의 국내 이용자는 일주일에 5만~6만 명 수준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 KT의 올레tv모바일, LG유플러스의 LTE비디오포털의 실이용자는 각각 150만, 120만, 90만 명 규모였다

    한국인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 부족이 넷플릭스가 부진한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콘텐츠는 미국 드라마와 영화 중심이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국내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이 턱없이 부족하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진출한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얻는 데 실패했는데, 이 또한 콘텐츠 현지화 미진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더욱이 월 9500~1만4500원 수준의 이용료는 미국에서야 저렴한 편이지만, 국산 OTT 서비스에 비해서는 오히려 비싼 수준이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콘텐츠가 최근 빠르게 늘고 있어, 미국 드라마 팬들을 중심으로 이용자가 점차 증가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OTT 서비스를 선택해야 할까. 지상파 TV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한다면 푹, tvN의 애청자라면 티빙이 가장 적절하다. TV 드라마와 영화, 인터넷 개인방송 등 폭넓은 작품을 시청하고 통신사 요금 혜택이 구미에 당긴다면 자신이 가입한 통신사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적합하지만, 일부 콘텐츠는 월정액과 관계없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미국 드라마를 좋아하고 가족과 함께 이용하길 원한다면 넷플릭스가 최적이다.

    이처럼 넷플릭스 진입 전후로 국내 OTT 시장의 변화가 빨라지면서 소비자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넷플릭스가 국내에서도 그 명성에 걸맞은 성공을 거둘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한국에 진입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국내 방송 및 인터넷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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