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총선 투표 항해 안내할 10개 체크리스트

[백승주 칼럼] “너를 물어뜯어야만 내가 산다”는 좀비 정치 청산하기

  •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 회장·前 국회의원

    입력2024-03-1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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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인은 미래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 좀비정치인 퇴출, 유권자의 선택이 결정

    • 품격·통찰력·국제 감각은 필수 요건

    • 국가정체성 위협하는 세력 정확히 인식할 것

    • 증오 정치 떨치고 진정한 협치 필요한 때

    정치인은 유권자를 좋은 미래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같은 역할을 한다. [Gettyimage]

    정치인은 유권자를 좋은 미래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같은 역할을 한다. [Gettyimage]

    정치평론가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한국 정치를 ‘좀비 정치’라고 했다. 2022년 1월 출간한 자신의 저서 ‘좀비 정치’(인물과 사상사)에서 한국형 좀비 정치의 특징을 12음절 한 문장, “너를 물어, 뜯어야만 내가 산다”로 정의했다. 좀비 정치의 목적과 수단을 명료하게 제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좀비정치인들이 정치를 하는 목적은 자신의 안전과 번영이다. 그들에게 정치의 본질은 이권 쟁탈이다. 이익공동체, 카르텔, 생태환경 구축이 좀비 정치의 존재 이유인 셈이다. 핵심 메커니즘은 극단의 네거티브 정치다. 네거티브 정치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증오 정치, 편가르기 전문가가 득세한다. 정치 현장에 욕설과 악플이 양심과 선플을 몰아낸다. 좀비 정치를 청산할 해법으로 강준만 교수는 “승자독식의 정치,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언”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강 교수를 만난 적이 없다. 그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광복 후 진행된 한국 현대사는 가장 비참하던 나라를 ‘세계 10대 강국 코리아’로 만든 기적의 기록이다. 현대사, 현대 정치사에 대한 긍정적 평가 때문에 강 교수 주장 전체를 동의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 정치의 과거는 다른 나라에 비해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 측면이 많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강 교수가 지적한 좀비 정치 요소를 하루빨리 청산해야 한다. 좀비 정치를 청산해야 할 권리도, 의무도 본질적으로 정치인보다 유권자에게 있다. 유권자가 투표를 잘 해서 좀비정치인들을 퇴출하면 된다.

    총선을 앞두고 있다. 우리는 더 나은 정치를 기대한다. 더 나은 정치인이 더 좋은 정치를 만든다. 더 나은 정치인을 어떤 기준으로 뽑을 것인가. 주요 정당은 부적격 기준을 만들고, 심사해서 좋은 후보자를 찾으려 노력한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은 그들만의 리그로 여기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다.

    좀비정치인 걸러낼 체크리스트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남을 물어뜯어 생명력을 높이는 좀비정치인이 늘고 있다. [Gettyimage]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남을 물어뜯어 생명력을 높이는 좀비정치인이 늘고 있다. [Gettyimage]

    내비게이션은 필자가 가장 많이 의존하는 문명의 이기 가운데 하나다. 1990년대 초반부터 대중교통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원하는 곳을 찾아간다. 우리 정치도 좋은 내비게이션을 장착했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가 도착할 정치적 미래를 쉽게 예측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NAVIGATION, 알파벳 10음절을 이용해 좀비 정치와 거리가 먼 좋은 정치를 추구하는 정치인을 감별해 내는 키워드를 만들어봤다.



    ① Noble, 품격이 있는가
    좀비 정치를 키워드로 넣어 정치를 유형화한다면 좀비 정치와 품격 정치로 구분할 수 있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도덕적으로 어느 후보가 고결한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품격 정치는 조선시대 선비 정신과 맥을 같이한다. 선비에게 벼슬은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과 세상을 편안하게 이끌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선비 정신은 크게 세 가지 인품을 축으로 한다. 사적인 일을 뒤로하고 공적인 일을 앞세우는 선공후사(先公後私), 강자가 약자를 돕는 억강부약(抑强扶弱), 자신에게 엄격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대한 박기후인(薄己厚人)이 그것이다.

    독립운동가 이회영은 정치인을 ‘세상을 어지럽힐 사람’과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을 사람’으로 나눈 적이 있다.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는 정치를 품격 정치라 할 수 있다. 권력욕이 있는 선비가 하는 정치, 품격 정치를 기대할만 하다. 서양의 노블레스오블리주(Noblesse Oblige)와 맥을 같이한다. 부와 명성, 권력으로 얻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즉 노블레스오블리주는 정치인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도록 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② Academic, 솔루션을 찾는 데 학구적인가
    정치인은 정치 어젠다, 사회문제의 솔루션을 찾는 데 학구적(Aacademic)이어야 한다. 정치의 궁극적 목적은 좋은 솔루션을 제시하는 데 있다. 좋은 솔루션을 찾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각종 현안에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는지가 얼마나 학구적인지를 평가하는 요소가 된다. 저출산을 막는 것이 국가 어젠다라면, 저출산을 막을 솔루션을 제시하려 노력하는 정치인과 이를 방관하는 정치인은 학구적 차원에서 차이가 크다. 모든 면에서 솔루션을 다 제시할 정치인은 없다. 그러나 국가 핵심 어젠다에 대한 입장과 솔루션을 찾는 모습은 매우 중요하다.

    ③ Valuable, ‘깜’이 되는가
    MVP, VIP에 들어 있는 V는 Valuable(가치가 큰)의 약자다. 정치 현안 해결에 미치는 개별 정치인의 무게감, 영향력을 Valuable로 계량화할 수 있다. 선거철 많은 후보가 지역 현안을 잘 해결하는 데 필요한 ‘힘센 후보’임을 다양한 리플릿에서 강조한다. 다선 경력, 정치 실력자와 좋은 관계라는 점을 내세워 중량감을 과시한다. 다선이나 핵심 관계자라는 점이 힘이 세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맞다. 그러나 Valuable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역량과 관계있다. 스포츠 경기에서 MVP, VIP가 핵심 관계자이거나 경력이 오래됐기 때문에 됐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관계보다는 자신의 역량, 퍼포먼스가 중요하다. 퍼포먼스가 기대되는 정치인이 Valuable 정치인이다.

    ④ International, 국제 감각이 있는가
    지구가 조그마한 마을, 도시처럼 느껴지게 하는 말이 ‘지구촌’이다. 이제 큰 나라든, 작은 나라든 국제사회의 협조 없이 발전할 수 없다. 정치인은 물론 모든 분야의 지도자는 남다른 국제 감각이 있어야 한다. 우스갯소리로 애완견도 몇 가지 외국어를 해야 사랑받는다. 주인이 외국인을 만날 때 외국인과 동행한 애완견도 만나서 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⑤ Goal-oriented, 목적 지향적인가
    공동체가 달성하려는 목적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달성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모든 공동체는 특정 시대에 구현해야 할 시대정신(Zeitgeist)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인은 정부 수립 이후 건국-산업화-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현재의 시대정신은 대한민국 정체성을 지키고 통일을 준비하는 데 있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갖고, 국가목표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⑥ Active, 적극적인가
    영어 속담에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 말로 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정치인이 학자, 평론가와 다른 점은 행동을 우선적으로 취하는 데 있다.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평론이 아니라 행동 자체다. 행동은 적극성 정도를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남긴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슬로건에 담긴 엑기스는 ‘적극성’이다.

    ⑦ Timely, 통찰력이 있는가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결단할 것인지를 정확히 판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조선과 명나라, 일본이 임진왜란 여파로 국력과 군사력이 바닥날 때를 기다려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건국한 누르하치는 기회를 놓치지 않은 정치인이다. 일본의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기다릴 때, 결단할 때를 잘 헤아린 지도자로 평가할 수 있다. 윤봉길·안중근 의사도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와 능력을 국내외에 알린, 통찰력을 가진 위대한 위정자로 평가할 수 있다.

    ⑧ Interesting, 재미를 유발할 수 있는가
    정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추종자를 만들어야 한다. 재미없는 프로그램과 언행으로는 지속 가능한 지지 세력을 만들 수 없다. 팬덤을 비난하지만,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팬덤 없이 큰 정치를 할 수 없다. 군주국가가 아니라 대의민주주의 국가이기에 대중의 지지를 받지 않고는 정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중의 지지를 받으려면 재미있는 정치인이 돼야 한다. 세계 최초로 인터넷을 이용해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대중에게 재미를 가장 많이 유발한 대통령으로 볼 수 있다.

    ⑨ Organized, 조직적으로 일을 추진할 능력이 있는가
    주어진 정치 자원을 잘 결합해 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우리가 가진 모든 요소를 잘 결합해 5000년 가난의 역사를 끊어내고 산업화를 달성한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조직적인 정치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베트남전쟁, 풍부한 인력, 잘살아 보겠다는 국민 의지를 조직적으로 잘 결합해 국부를 획기적으로 증진했다.

    ⑩ National Identity 국가정체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가
    정치인은 그 시대 국가 이익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바람직한 정치를 펼칠 수 있다. 한국의 국가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 우리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은 북한 체제, 북한 핵무기, 테러 등이다. 국가정체성을 위협하는 세력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국가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신념과 결기가 있는지가 정치인의 역량을 판별하는 데 중요하다.

    유권자가 구입하는 내비게이션, 양자택일 넘어서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최근 미국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3연승을 기록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최근 미국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3연승을 기록했다. [뉴시스]

    유권자가 구입하거나 구입할 수 있는 내비게이션은 맞춤형이 아니다. 모든 유권자가 앞서 제시한 10가지 체크리스트를 기준으로 정치인을 선택할 기회와 권리가 있는가. 주권재민의 이론으로는 권리가 온전하게 있다. 그러나 정치 현실에서는 없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 필자가 참석한 학자들과의 만남에서 “유권자들은 원하는 음식을 구입할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권자들은 우동, 짜장면 두 가지 음식만 파는 중국집에서 양자택일할 권리밖에 없다. 식자재를 구입해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없다”고 냉정하게 꼬집은 적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직설은 맞다. 유권자는 당의 지도부가 공천한 거대 양당의 후보 중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양당 후보를 선택하지 않으면 투표권이 사표가 될 가능성이 많다. 현실적으로 많은 조롱과 비판을 받고 있지만, 양대 정당의 지도자들이 현실 정치의 판을 짠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큰 상황에서 미국 공화당 지도자들이 트럼프를 거부한다면 의회에 진출하기 힘들다. 정당을 이끄는 지도자들이 실세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지도자들이 정치지망생 중 특정인을 간택해 공천을 거쳐 유권자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정당 지도자들은 공천위원회를 구성해 다양한 추천 기준을 토대로 후보자를 선발한다.

    일상에 바쁜 유권자가 개별 체크리스트에 준해 입맛에 맞는 지역 정치인을 선택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유권자는 후보자가 어떤 내비게이션을 장착하고 있는지를 보고 선택할 수밖에 없다. 더 진솔하게 말하면 소속 정당의 정강정책이나 정당에 대한 호불호만으로 투표하는 일이 다반사다.

    저명한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은 정치인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눴다. 하나는 ‘세상을 어지럽힐 정치인’이다. 나치 독일을 이끈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나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그런 부류다. 조용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혼란스럽게 만든 지도자라는 점에서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독일이나 이탈리아 국민이 한 선택이 바른 방향일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어지러운 세상을 편안하게 만들 정치인’이다. 유권자는 ‘누가 세상을 편안하게 이끌 것인가’라는 잣대만으로 신성한 권리를 행사해도 된다.

    나치 독일을 이끈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세상을 어지럽힌 대표적 좀비정치인이다. [Gettyimage]

    나치 독일을 이끈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세상을 어지럽힌 대표적 좀비정치인이다. [Gettyimage]

    유권자의 선택이 정말 중요하다. 그럼에도 국민은 NAVIGATION 10음절로 시작하는 10가지 감별 키워드를 기준으로 내비게이션을 선택하지 않는다. 내비게이션 제작사의 광고를 보고 내비게이션을 장착하고, 업그레이드해 간다. 여기서 제작 회사의 광고란 정당의 정강정책이다. 유권자가 뽑은 정치인은 일정한 기간 동안 유권자가 거주하는 곳의 미래를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구실을 한다. 내비게이션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 교체가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유권자가 속한 정치공동체의 운영 방향에 남다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좀비 정치 내비게이션의 악성 콘텐츠

    필자는 현실 정치에 좋은 내비게이션을 가진 정치인이 자리 잡기를 기대하지만, 강준만 교수가 간파한 한국 좀비정치인의 콘텐츠는 기대와 거리가 멀다. 강 교수는 현실 정치를 이끄는 좀비정치인들의 콘텐츠에 대해 악담에 가까운 평가를 하고 있다.

     (1) 좀비는 머리가 텅텅 비어 생각 자체를 못 하고 움직이기만 하는 존재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을 물어뜯어 자신처럼 만들려는 본능을 발휘할 때는 전혀 무기력하지 않다. 놀라울 정도로 공격적이고 날렵하기까지 하다.
     (2) 좀비들은 상대편을 무조건 악마로 규정한다.
     (3) 좀비들은 음모를 구사한다. 공포심을 부추겨 적에 대한 ‘증오 정치’를 정당화하며 증폭시킨다.
     (4) 자신들은 순수하다는 ‘도덕적 면허’를 앞세워 정치적 반대파에게 법과 윤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호전적 공격성을 보인다.
     (5) 정치적 신념을 종교화한 사람들이기에 정치에 적극 참여한다. 이성과 양심은 독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강 교수가 좀비 정치의 현실을 정치과학의 눈으로 진단한 이유는 간단하다. 좀비 정치를 청산해야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양심과 신념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필자가 좀비정치인을 거를 수 있는 10가지 체크리스트를 제시한 이유도 지금보다 성숙한 한국 정치의 미래를 기대해서다. 좀비 정치의 나쁜 콘텐츠를 청산해야 더 좋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

    좀비 정치는 이론적으로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사상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the Principle)’을 한국 정치 현실에 맞게 해석한 측면이 있다. 1532년 발간된 ‘군주론’에서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군주는 나라를 지키는 일에 곧이곧대로 미덕을 지키기 어렵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군주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착해져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야 한다.”

    좀비 정치 청산의 길

    16세기 ‘군주론’을 쓴 이탈리아 사상가 마키아벨리. [위키피디아]

    16세기 ‘군주론’을 쓴 이탈리아 사상가 마키아벨리. [위키피디아]

    마키아벨리의 주장 중에서 군주를 정치인으로 대치하면 좀비 정치가 된다. “정치인은 배신도 해야 하고, 잔인해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한다.” 인간성, 신성을 포기하는 것은 좀비에게 영혼을 뺏긴 인간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혼을 뺏긴 인간이 하는 정치가 바로 좀비 정치인 것이다. 군주론은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메디치가(家)가 추구하던 절대군주제 건설을 정당화한 관변 학자의 정치 이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메디치가(家)에 바친 헌정 성격의 정치 이론이다.

    강 교수의 좀비 정치 관련 주장은 한국 정치의 패악을 진단하고 개선하는 출발점이 될 만한 가치가 있다. 좀비 정치를 청산하기 위해 정치인과 유권자가 좀 더 치열하게 노력한다면 우리 정치는 한 단계 발전할 것이다. 좀비 정치의 핵심 요소를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하나하나 청산할 때 새로운 내비게이션이 장착된 새 정치가 열릴 것이다.

    첫째, 시대정신을 생각하고 구현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우리 사회가 군사력을 사용한 권력사회에서 법이 지배하는 질서사회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법을 앞세운 권력과 운동권 민주주의가 결합한 사회로 퇴영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제 선비 정신, 노블레스오블리주, 대의민주주의가 씨줄과 날줄로 견고하게 짜인 질서사회로 거듭나야 한다.

    둘째, 진정한 협치를 만들어가야 한다. 상대를 악마로 보는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5년, 10년 주기의 정권교체를 순리로 받아들이면서 상대를 존중하는 포용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셋째, 증오 정치의 상대를 제대로 봐야 한다. 우리가 증오해야 할 정치는 북에서 진행되는 전형적 좀비 정치다. 주권재민이 아니라 주권재김의 정치, 김 패밀리 외에는 영혼을 가질 수 없는 북측 정치를 증오하는 데 합의해야 한다. 우리 정치인의 증오 대상은 국내 경쟁 정당, 정치인이 아니다.

    넷째, 자신들 정파가 한 모든 결정은 옳다고 여기는 범시론(汎是論)에서 벗어나야 한다. 역사 속에 소멸됐거나 존재하는 모든 정치적 결사체, 정파에는 공과(功過)가 있다. 진실 앞에 겸손한 태도가 필요하지 ‘범시론적 도덕적 면허’는 있을 수 없다.

    다섯째, 정파적 충성심 대신 ‘이성과 양심’이 정치 내비게이션의 에너지원이자 엔진이 돼야 한다. 좀비 정치의 핵심은 인간성과 신성의 소멸이다. 좀비가 영혼을 훔쳐갔기에 윤리적 판단이 불가하다. 이성과 양심이 작동하지 않는다. 정파적 충성심에 몰입하면 그렇게 된다.

    대장 리더십 장착한 정치 절실

    대장 철새는 지도자를 말한다. 대장 철새는 바람의 속도와 방향을 잘 숙지해야 한다. 쉬면서 먹이를 보충할 섬과 육지를 잘 아는 새여야 한다. 대장 철새가 바람의 속성을 잘 모르고, 섬 위치 등을 잘 모른다면 무리를 지어 따른 철새들은 참변을 감당해야 한다. 5000년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민족을 사지로 내몬 대장 철새도 있고, 영광으로 이끈 대장 철새도 있다. 호란(虎亂)보다 무서운 것이 지도자란(亂)이다. 북측이 겪는 고통의 시작과 끝은 바로 지도자란 때문이다. 대장 철새는 고정돼 있지 않다. 몇 마리 대장 철새군이 교대로 역할을 수행한다. 역할을 교대할 시기, 대장 철새를 교체할 시기가 중요하다. 대장 철새를 감시하고 잘 안내하도록 하는 것은 철새 떼의 역할이다.

    총선을 앞두고 있다. 좀비 정치와 굿바이하고 좋은 내비게이션을 장착한 선비 정치를 만날 수 있을까. 유권자의 감별에 미래가 달렸다.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現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국민대 석좌교수, 한중안보평화포럼 회장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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