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는 결국 ‘숲과 나무’의 전쟁이다. ‘바람과 계절’이라는 변수에 따라 주변 형세가 어떻게 바뀌는지가 중요하다. 나무들은 변화하는 숲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잡으려고 애쓴다. 그 과정에서 가까워지고, 멀어지며, 때로는 싸운다. 궁금한 것은, 과연 중국과 일본의 급속한 밀월에 작용한 ‘바람과 계절’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한국과 중국의 최근 관계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 이후 일관되게 강조한 한미동맹 복원과 한일관계 강화 움직임은 중국에 분명 새로운 환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는 중국에 두 가지 숙제를 던졌다. 우선은 한국 정부의 고식적인 외교 틀 짜기를 감안해 중국도 동북아의 새로운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이 아니라 (외교관계의 개념상) 보다 상위에 있는 나라들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는 게 좋겠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최근의 중일관계 밀월과 한중 사이의 크고 작은 마찰은 이러한 판단이 구체적으로 반영된 현상이 아닐까?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 기간에 있었던 외교적 결례 등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국이 스스로를 종속변수로 규정한 이상, 중국은 한국을 더 이상 동북아 외교의 중심변수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인식이 그렇다면 현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6월 일본의 PHP종합연구소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향후 5년 내에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일본이 ‘지역사회 전략’ 부서를 개설해 대(對) 중국 전략 연구 및 중일 근대사 연구 등을 진행해야 하며, 중국의 자본과 관광객을 끌어들여 일본경제 발전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지하다시피 1972년 이후 일본의 중국 연구는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일본의 전략가들은 고이즈미 정권 당시 야스쿠니 참배를 계기로 중일관계가 경색됨에 따라 양측 모두 손실을 입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일본경제연구소 호가미 도시야(津上俊哉) 연구원의 경우 “중국은 단순히 염가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대규모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본 기업이 실력을 키우고 인재를 육성하는 길밖에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일본 측 전문가들 모두 중국과의 호혜적 관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추세인 것이다.
물론 중일관계의 밀월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전략적인 각축은 어느 시기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2005년 중일관계가 엉망이었을 때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아소 다로 당시 일본 외상에게 이에 대한 염려를 전했는데, 이때 아소 외상은 “지난 1500년간 계속 사이가 나빴으니 별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6월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구)에서 대만의 롄허(聯合)호가 일본 가고시마 해상보위부 소속 순시선과 충돌해 침몰한 사건으로 촉발된 반일 시위를 최근 중국 공안이 허락해준 일을 들어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대사관 앞에 모인 ‘바오댜오(保釣·댜오위다오 보존운동)’ 연합회 회원은 10여 명에 불과했다. 현안으로 떠오를 수 있었지만, 심각한 갈등으로 번지지는 않은 것이다. 더욱이 분명한 것은 2008년 현재의 중국과 일본은 상호협력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두 나라의 상호 의존성도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흐름이라면 가까운 장래에 양국 간에 물리적인 충돌 같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최근의 흐름은 1972년 다나카 총리의 방문으로 중국과 일본이 외교관계를 재개한 뒤 정확히 10년 만에 중국이 이른바 ‘중일관계의 3원칙’을 제시했던 시기와 흡사하게 느껴진다. 이때의 3원칙이란 평화우호, 평등호혜, 장기 안정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이런 종류의 ‘기본원칙’에 충실한 외교를 구사한다. 독도 문제로 한일 간에 드잡이질이 벌어졌던 최근 상황에서도 중국은 한일 양국을 모두 배려하는 중립을 견지했다.
2006년 상처 넘어서는 북중관계
이제 눈을 돌려 북한을 보자. 일본은 올림픽 이후 중국이 대북 접근을 강화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러한 예측은 미국 역시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중국의 원칙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중국에도 ‘제3국 간의 문제’와 ‘당사자 문제’는 의미가 다르다. 독도 문제가 전자라면 북한 문제는 후자다.

2008년 5월 일본을 방문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와세다대에서 탁구를 치고 있다. ‘핑퐁외교’를 의식한 듯한 이날 후 주석의 행보는 최근 중일관계 밀월을 상징하기에 충분했다.
중국은 2005년 말 이른바 ‘8대 접근방침’이라는 이름의 ‘중조일치(中朝一致)’ 프로그램을 입안해 그에 따라 북·중관계를 유지해나가기로 한 바 있다. 그러나 2006년 초 양국은 극심한 정보전쟁을 치르며 알력에 휩싸이게 된다. 그해 7월에 미사일 발사, 10월에 핵실험이 이어졌고,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한계에 부딪힌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그러나 중국은 예의 ‘건설적 역할’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 덕분에 10월말 6자회담이 재개됐다. 중국 입장에서 6자회담이라는 다자 테이블은 올림픽을 위한 일종의 안전망이다. 이 테이블이 깨지는 것은 중국에도 최악의 상황이다.
이후 상황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베이징올림픽이 흔들리는 고비마다 중국을 지지했고, 6자회담이 북한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와중에도 평양은 끊임없이 중국을 고려했다. 그리고 이제 올림픽이 끝났다. 중국이 북한에 무엇을 기대하는지, 어떤 정책을 구사할지 앞으로의 향방이 비교적 투명하게 모습을 드러낼 타이밍이 왔다.
그 구체적인 모습을 짚어보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9월 중국 및 베트남 방문설이다. 이 방안은 현재로서는 성사 가능성이 낮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유효한 카드라는 것이 정설이다. 북한과 중국 사이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재확인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여전히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여부와 같은 6자회담 프로세스에 맞물려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2006년 핵실험 와중에 중국 공산당이나 외교부 내에서 퍼졌던 북한에 대한 극심한 불신이 지금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당시와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최소한 중국 지도부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렇다. 그리고 이런 시각을 강화해준 건 다름 아닌 한국 정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