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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은사(隱士) 시인 이원규

바람이 나인가, 내가 바람인가

지리산 은사(隱士) 시인 이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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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도시 직장 생활이 지긋지긋하게 싫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지리산에 파묻힌 시인 이원규씨. 한 달 20만∼30만원의 원고료 외에는 별다른 수입이 없지만 그는 “인생은 원래 대책 없는것”이라며 오히려 백수생활을 즐기고 있다. 조만간 전국 탁발순례를 떠날 예정이라는 시인의 지리산 바람 같은 인생.
지리산 은사(隱士) 시인 이원규

지리산 자락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이원규 시인.

직장을 그만두고 처성자옥(妻城子獄)에서 벗어나, 밥벌이에 대한 근심도 던져버리고 산으로 가고 싶다. 청산에 살고 싶다. 이는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은 길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벗어나는 데서 오는 불안함과 가족 부양의 책임, ‘뭘 먹고사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 길을 걷기는 쉽지 않다. 그저 자신의 소심함을 한탄할 뿐이다.

시인 이원규(李元圭·42)는 그 3가지 두려움을 한순간에 던져버린 사나이다. 서울에서 잡지기자로 살다가 한순간에 인생을 ‘포기’하고 지리산으로 들어왔다. 대책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의 철학에 의하면 인생은 대책이 없는 것이다. 무작정 산에 들어왔지만 그는 아직까지 굶어죽지 않고 생존해 있다. 오히려 건달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는 백수의 즐거움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독거(獨居)

남들 출근할 때 섬진강 청둥오리뗴와 더불어물수제비를 날린다.남들 머리 싸매고 일할 때 낮잠을 자다 지겨우면선유동 계곡에 들어가 탁족을 한다.미안하지만 남들 바삐 출장 갈 때 오토바이를 타고전국 일주를 하고.정말이지 미안하지만 남들 야근할 때 대나무 평상모기장 속에서 촛불을 켜놓고 작설차를 마시고,남들 일 중독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일 없어 심심한 시를 쓴다.가끔 굶거나 조금 외로워하는 것일 뿐, 사실은 하나도미안하지 않지만 내게 일이 있다면 그것은 노는 것이다.일하는 것이 곧 죄일 때 그저 노는 것은 얼마나 정당한가!스스로 위로하며 치하하며 섬진강 산 그림자 위로 다시 물수제를 날린다.이미 젖은 돌은 더 이상 젖지 않는다.(옛 애인의 집’(솔),138쪽)

삶의 고수가 아니라면 남들 출근할 때 섬진강 청둥오리 떼와 더불어 물수제비뜰 수가 있겠는가? 무림에만 고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생계유지의 두려움을 뛰어 넘은 사람은 삶의 고수임에 틀림없다.



필자는 고수의 경지에 이른 이원규 시인을 만나러 지리산으로 향했다. 지리산은 백두산에서부터 달려온 조선의 종맥(宗脈)이 결국(結局)을 이룬 지점이다. 설악산이 골산(骨山)이라면 지리산은 대표적인 육산(肉山)이다. 푸짐한 육산이라 먹고 살 것이 많다고 한다.

그는 지리산의 남쪽에 살고 있다. 구례 화엄사 들어가는 길목에서 오른쪽으로 2km 정도 가면 지리산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고택인 운조루(雲鳥樓)가 나온다. 운조루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산길을 15분 정도 올라가면 저수지가 보인다. 그 저수지를 왼쪽으로 감아 돌면서 조금 더 올라가면 언덕 위에 외딴집이 서 있다. 지은 지 얼마 안된 새 집이다. 지세의 흐름으로 보아 풍수를 아는 사람이 지은 집이다. 앞산(案山)이 적당히 눈 높이에 걸리는 지점을 향해 있다. 동남쪽으로 터져 있으면서도 멀리서는 오산(烏山)이 받쳐준다. 오산도 보통산이 아니다. 이 오산 앞의 ‘사도리’라는 곳에서 풍수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이인(異人)으로부터 풍수의 요체를 전수받았다고 전해진다.

무림의 고수들은 사람이 살고 있는 터를 보고 그 사람을 대강 짐작한다. 그 사람의 스케일과 취향, 품격이 터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원규 시인이 살고 있는 집터는 지리산 노고단에서 남쪽으로 흘러온 왕시루봉(1200m)의 맥이다. 이 맥이 섬진강과 토지평야 쪽으로 흘러 내려오다가 뭉친 지점이다. 집터 앞으로는 바위들이 보인다. 바위가 있으면 지기(地氣)가 강하다는 증거이다. 뿐만 아니라 집터 앞으로 맥이 약간 더 흘러가 뭉쳐 있다. 풍수에서 말하는 ‘순전(脣前 : 입술 앞)’에 해당한다. 순전이란 지맥이 혈(穴) 자리에서 좀더 앞으로 나간 부분을 일컫는다. 순전이 있어야만 그 터가 힘을 받는다.

이 정도면 기가 센 자리에 속한다. 집터라기보다는 암자터에 가깝다. 아무나 살 수 없는 터다. 이런 지점에서 아마추어가 살면 얼마 못 가서 쫓겨난다. 정신수련을 했거나, 집착이 없거나, 계율을 잘 지켜야만 터를 누르고 살 수 있다. 나는 이원규 시인이 거주하는 집터를 바라보면서 그가 이 3가지 중에서 적어도 한 가지 관문은 통과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방이 2개에 현관이 있고, 화장실도 수세식으로 되어 있어 살기에는 괜찮을 듯싶다. 살림살이라고는 책 몇십 권과 간단한 가재도구밖에 없다. 도둑이 와도 훔쳐갈 것이 없는 살림살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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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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