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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모르는 여자의 행복 매일 느껴요”

트랜스젠더 연예인 최한빛

“여자들은 모르는 여자의 행복 매일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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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예쁘게 잘 출 수 있는데’

“여자들은 모르는 여자의 행복 매일 느껴요”

최한빛은 “난 한번도 남자였던 적이 없다. 항상 여자였고, 지금은 더 완전한 여성이 됐을 뿐”이라고 말한다.

▼ 덕원예고 무용과를 나왔는데, 강릉에서 서울로 온 이유가 있나요.

“어릴 때부터 꿈이 무대에 서는 것이었어요. 그렇다고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건 아니었어요. 춤을 추든, 노래를 하든 무대에 서는 게 목표였어요. 지금도 카메라 앞에 서는 것보다는 무대 위에서 뭘 할 때가 더 행복해요.”

▼ 무용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요.

“아빠는 안 그래도 계집애 같은데 무용까지 하면 더 여성스러워질 것 같다며 반대했죠. 하지만 엄마는 항상 저의 전폭적인 지원군이었어요. 지금까지 엄마아빠 말을 잘 들었고 실망시킨 적이 없으니 금세 승낙을 받았죠.”



춤이 좋아서 들어간 예고였지만, 그는 무척 힘든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주위에 제가 여자처럼 행동하는 걸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게 제 복인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었죠. 그런데 고등학교는 그렇지 않았어요. 난 남자가 아닌데 남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어요. 여자애들이 예쁜 치마 입고 춤추는 걸 보며 ‘내가 쟤들보다 훨씬 더 예쁘게 잘 출 수 있는데 나는 왜 할 수 없는 거지’ 하는 슬픔뿐이었어요. 애들이 다 돌아간 후 무용실에 혼자 남아 울곤 했어요. 그러다 치마를 꺼내 입고 혼자 거울 보며 춤을 췄어요.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그러면서 점점 춤에 의지하게 됐죠.”

▼ 선생님에게 ‘나도 여자애들과 같은 춤을 추고 싶다’고 말하면 되지 않았나요.

“커밍아웃을 할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없었죠. 참고 버텨야 한다는 생각만 했어요. 그렇다고 남자 역할을 하며 살 수는 없을 것 같고…. 너무 힘들었죠.”

▼ 그때는 성전환을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네요.

“내가 여자로 살아야 하나, 남자로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보다는 오직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과에 입학하는 게 목표였어요. 그 학교 공연을 보고 완전 반했거든요. 거기만 들어가면 행복할 줄 알았죠. 춤만 추면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 2006년, 그토록 원하던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는데.

“입학하자마자 남자들은 다 웃옷을 벗으라고 하는데,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공연할 때 남자무용수들은 웃옷을 벗고 할 때가 있거든요. 이게 아닌데 싶었죠. 더 큰 스트레스는 남자무용수 역할이었어요. 제가 키가 큰 편이지만 여자들도 보통 170cm가 넘어요. 몸무게는 별 차이도 없고요. 그런 여자애를 들고 돌리고 앉히는 걸 시키는 거예요. 거기서 완전히 멘붕(멘탈 붕괴)이 온 거죠. 힘이 달려 제대로 못 하니까 공연에서 빼더군요.”

‘나 이런데 군대 가도 돼요?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게 되었다는 좌절감에 방황하던 그는 문득 ‘나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이렇게 힘든데 그들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여름, 난생처음 트랜스젠더들을 만나러 이태원을 찾았다.

“트랜스젠더들이 일하는 유흥주점에 갔어요. 다들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근육이 울퉁불퉁한 사람도, 수염 난 사람도 있는 거예요. 그들을 보며 ‘저런 사람도 자기 삶을 살겠다고 여기 나와 있는데 난 지금까지 한 번도 나를 찾으려고 노력해보지도 않고 원망만 했구나, 현실과 부딪치려 하기보다는 자꾸 다른 것에 기대려고만 했구나’ 하는 걸 깨달았어요.”

▼ 그 무렵 성전환을 고민했나봐요.

“나도 하리수 언니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게 너무 두려웠어요. 그런데 거기서 동갑내기와 이야기하게 됐어요. 성을 전환하는 게 고민이 안 되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다고 너무나 확고하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부모님이 반대하더라도 하나뿐인 내 인생, 진짜 나로 살아야지 않겠느냐고요. 그때 머릿속이 완전 환해지는 기분이었어요. 바로 그날 결심하고 엄마에게 전화했죠.”

▼ 성 정체성이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단순히 여장남자처럼 여성적 취향을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장남자는 어쨌든 성 정체성이 남자잖아요. 그랬다면 20년 동안 그렇게 힘들게 살지는 않았겠죠. 성적 취향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예요.”

▼ 이태원 갔다 온 이후 치마도 입고 완전 여자처럼 하고 다닌 건가요.

“전에는 그냥 유니섹스 스타일로 다녔죠. 여자처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안 했어요. 내가 여자니까요. 이태원을 다녀온 후 처음 치마를 입어봤는데,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아시죠? 왜 그런지.(웃음) 그다음부터는 수술할 때까지 안 입었어요. 아, 한번 있다. 병무청 갈 때.”

▼ 병무청은 왜.

“공연에서 잘린 뒤 좌절감에 입대 신청을 했어요. 제가 진짜 가야 할 길을 찾고는 무작정 병무청을 찾아갔죠. 긴 머리에 치마까지 입은 사람이 입영 영장을 보여주며 ‘나 이런 사람인데 군대 가도 돼요?’ 하니까 직원들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땐 정말 당돌했어요. 그 자리에서 면제처분을 해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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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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