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호

한 시대가 스치고 지난 자리

  • 글: 현기영/소설가, 문예진흥원 원장 사진: 지재만 기자

    입력2003-04-29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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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대가 스치고 지난 자리

    지난 2월 실로 오랜만에 ‘바쁜 직장인’이 되면서 서재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 아쉽다.

    젊은 시절 구해둔 국학사상전집 한 질이 서재 구석에 있다. 기회가 닿으면 한국 고전을 변용해 작품에 담아보리라는 욕심으로 마련했던 것. 그러나 1980년 이후 험난한 시절을 거치면서 욕심은 욕심으로 끝났을 뿐 현실이 되지 못했다. 문학 또한 민주화라는 절대목표를 벗어날 수 없었던 시절, 뒤틀린 역사가 분노를 만들던 시기에 ‘옛것으로 새것을 만들겠다’는 꿈은 한가한 것이었다.

    그 시절 절절이 목놓아 시를 짓고 소설을 쏟아내던 젊은 벗들을 기억한다. 이제 참여의 문학, 싸움의 문학은 그 시효를 다했다고 말한다. 다시 그런 시절은 없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그 젊은 작가들이 육필로 서명을 해 보내준 시대의 아픔에 관한 책들은 고스란히 서재에 남았다. 아무리 한 시대가 갔다 해도 책 한 권, 시 한 줄에 담긴 그 뜨거움은 버릴 수도, 잊을 수도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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