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21일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부 장관(왼쪽)과 윤광웅 국방부 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서울 국방부에서 한미연례안보협의회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회의의 핵심주제는 ‘북핵 사찰 검증의 로드맵’. 11월9일부터 열리는 5차 6자회담에서 관련 논의가 초보적으로라도 진행될 경우 한국측이 제시할 안(案)의 밑그림을 그린다는 목표였다. 회의는 전문가들이 제안한 초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식으로 진행됐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인원 및 능력 등을 고려해 북한 전역에 대한 사찰 및 검증에 필요한 시간을 산출하는 작업도 병행됐다. 대체적인 결론은 서두른다 해도 2년, 북한 당국과 밀고 당기기가 계속될 경우 5년 이상 장기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장면 2. 7월1일 국가정보원은 1급 상당의 ‘국가정보관(NIO)’을 신설해 민간전문가 네 사람을 영입했다. 눈길을 끈 것은 북한 분야의 J모 교수. 인선과정에서는 주로 북한 군사나 정치 분야 전문가들이 거론됐지만, 막판에 ‘발탁’된 것으로 전해진 J교수는 국제금융 전문가다. 북한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국제금융기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주제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한 J교수의 발탁을 두고, 국정원 주변에서는 “본격적인 북한 경제개발계획 수립과 관련해 전문인력이 필요하다는 정부 고위관계자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10월20일 통일부가 낸 자그마한 공고도 화제가 됐다. 평화체제 구축방안과 남북경협, 법령 정비 등을 위해 정치학·경제학 박사와 변호사 6명을 사무관으로 채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관련 분야 박사’라면 실무보다는 연구에 가까울 테고, 이는 이제야 인력을 채용해 로드맵 연구부터 시작한다는 뜻이므로 늦은 감이 있다고 평했다.
각 부처의 이 같은 전문인력 충원은 이 무렵 정부가 대규모의 포괄적 남북경협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면서 더욱 의미심장해졌다. ‘북방 경제구상’ ‘한반도 평화경제’ 등의 이름으로 회자되던 이 계획은, 향후 7~8년 내에 에너지, 통신, 물류 등을 기반으로 남북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공동경제권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11월9일 ‘한겨레’는 “8~10개 정도의 세부계획으로 이뤄진 포괄적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14개 관계부처 회의를 3차례 열었으며, 통일부는 실행비용으로 매년 2조~3조원이 적절할 것이라고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전했다.
#장면 3. 10월27일 주요 일간신문에는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 현재 한미연합사령관이 갖고 있는 한국군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10월21일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방한해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측이 ‘개념적인 수준에서’ 전시 작통권 이양시기를 거론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관계자는 “2015년보다는 앞당겨 이뤄져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우리는 이미 자체적으로 이양시기와 일정을 설정해둔 상태”라고 밝혔다.
익명의 이 ‘정부 관계자’는 NSC 이종석 사무차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차장은 NSC 상황실을 방문한 기자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비보도를 전제로 이 같은 내용을 밝혔지만, 기자들은 정부와의 협의하에 이를 ‘고위관계자’ 발언으로 보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에도 이 차장의 발언을 익명으로 처리해 보도한 경우가 자주 있었던 까닭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차장이 이 자리에서 “6자회담과 평화협정 논의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환수 일정도 앞당겨질 수 있다”고 밝힌 부분. 고위당국자가 작통권 문제와 북핵 문제, 평화체제 문제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밝힌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2005년 하반기 들어 작통권 문제가 갑자기 이슈가 된 까닭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